글을 쓰면서 사랑을 배웠다

by 멜랜Jina

원이 없었으니 한도 없는 줄 알았다.


원이 없었다는 게 원 없이 했다는 말이 아니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원도 없었다는 사실을,

내가 재미있게 하고 있는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일이 있었고 원하는 일을 한없이 할 수 있기에 이제는 그야말로 원도 한도 없다.


나는 조용히 내 안에 갇혀 있었다.

나는 나를 보지 못하고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나는 보이는 나를 부정하고 나를 학대하고 못난 나로 살게 했다.

그러는 게 좋은 거라 생각했다.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면... 그러다 이생 마감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딸이 건네준 사진 한 장이 엄마가 감동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확인하고픈 마음의 선물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에 의미가 없어 취미가 없다고만 생각한 나..

나는 왜 감동이 없는 걸까? 기쁜 일이 그리 기쁘지 않았고 슬픈 일이 그리 슬프지 않았다.

사람뿐만 아니라 사물에도 집착이 가지 않았다. 무슨 도인도 아닌데 말이다.


나름 행복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숨은 듯 조용히 그리고 가만히 내색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아이들만 지켜내면

내 소임 다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를 발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했다.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재미있지 않았다. 헛헛했다.

누가 얼마나 재미있게 살려고...

이만하면 아이 키우며 재미있는 거지...

그래, 난 행복한 사람이야.

그래, 이만하면 훌륭하지.

내가 뭐라고...


그런데 왜 이 하루가 이토록 허무할까?


그러다 글을 만났다.


온통 글에 집중되어 글 한 자 한 자에 온 힘이 실리면서

나의 깊숙한 내면이 흔들렸다.

수많은 글들은 나를 여자로, 그리고 사람으로 자극했다.

글의 힘은 나를 아름다운 여자로 만들었고 글의 무게는 나를 강한 여자로 만들었다.


글의 눈으로 나를 보게 되었다.


나도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감정선이 무너져 버린 여자였었다.

원래 감정이 없었던 게 아니고 감정이 무뎌져 버린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던 거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환경이 나를 지배했던 거지.


항상 마음속으로만 생각했었다.


저 푸른 봄들의 옥수수와 점점 종잇장처럼 말라가는 늦가을의 옥수수의 운명을 나와 대입시키며 안쓰러웠다.

주방 창 밖으로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며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가장 슬픈 단풍은 아마 내가 처음으로 보는 저 노란 나무 일거야 라는 생각들...

붉은 석양의 나무 사이사이로 오렌지빛이었다가 진한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며 검게 변하는 하늘색이 서글퍼 고개를 돌리곤 했던 거무스름한 잿빛 내 마음을...

강한 바람을 견뎌내지 못한, 족히 몇백 년을 내 땅에서 지켜온 그렇게나 키 큰 나무가, 커다란 굉음으로 죽음을 알리며 훈훈히 지켜준 그 땅에 쓰러져 누워버렸을 때의 그 아픔을...


이런 내 흔들리는 머릿속을 작은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써 내려간 글들이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살아있는 나를 보았다. 머리와 가슴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을 글로 쏟아내니 감정이 되살아나고 사람뿐 아니라 사물에도 나의 감정이 이입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계절의 순환이 눈물 나도록 고맙고, 50번을 보아온 한겨울의 휘날리는 눈보라의 추위를 함께 느끼게 되었고, 아스팔트 위를 겁 없이 거닐다 쏜살같이 뛰는 다람쥐의 작은 떨림이 오롯이 나에게 전달되었다.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자연의 모든 것이 살아있었다.

슬픈 노랫말에 눈물이 흐를 수 있고 감동적인 영화에 가슴 절절한 아픔이 내게 전해졌다.


상자를 덮어 버리면 끝나버리고 열면 다시 움직이는 소꿉놀이 인형이 아닌 진짜 사람과 진짜 세상.


무엇보다 어떠한 사건과 어떠한 상황에 보통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고와 지적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 또한 글의 눈으로 나를 객관화해 보게 되었다.

글은 나를 사람으로, 특히 사랑이 많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일깨워주었다.


글을 쓰면서 사랑을 배웠다.


글로써 묘사되는 마음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끊어질 듯 실낱같이 가느다랗고 메마른 가슴에 사랑이라는 막이 하나 씌이면서 녹녹하고 말랑말랑한 스펀지가 되어 실실 웃음 나게 만들었다.

마음을 전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는 눈물 나도록 그립다는 걸 알게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심장 뛰는 소리가 나도록 두근거림을 가져다준다는 걸 알았고,

자연을 대하며 글로 표현되는 섬세함은 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마술 같은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더 중요한 건 사랑으로 사랑을 알게 된 일이다.


사랑은, 가슴 안으로 깊이 사랑의 마음이 들어가 따뜻해지는 행위이고

사랑은, 머리끝 정수리와 손끝까지 떨리는 전율이고

사랑은, 나 혼자여도 가슴 밑바닥까지 출렁이지 않은 비이커의 모래알 같이 고요한 것이며

사랑은, 무한히 나를 지탱해주는 몸안에 철심 같은 뼈대이다.


이제는 혼자가 두렵지 않다.

이제는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하기에 나를 둘러싼 모두와 모든 것들을 사랑한다.

사랑합니다.


https://youtu.be/Z1ysfAQi4T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