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Feb 19. 2021

내 남편은 '셔터맨'이 아닙니다

내 글에서 간간히 남편이 등장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일들이 소재가 되어 수필식의 글을 쓰다 보니 가족사가 다반사이고 가족의 일상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내 글을 읽은 독자라면 나의 일대기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느끼는 소소한 미국의 일상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그러면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가 남편의 이야기지 싶다.


매일 스벅의 바닐라 라테를 나의 샾으로 배달해줘서 오봉맨이라고도 칭했고, 때로는 비정한 남편으로 비유되었고 때로는 나의 연애사의 단골 메뉴로 첫 남자부터 지금까지의 스토리에 등장하며 양념을 톡톡히 쳐주었다. 최근엔 마트에서 매너 없이 아직도 휙 지나간다고 말해 남편의 눈총을 받은 터다.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쓰다가도 남편의 뒷담화로 재밌게 끝맺음을 하기도 하고 나만 잘났다 쓰다가 함께 한 남편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에 엉덩이 두들겨주는 식으로 칭찬 한마디를 슬쩍 끼워 넣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과 나는 대학교 때 동갑끼리 만나서 실컷 연애하다가 내가 먼저 사회인이 되고 남편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 대기업에 합격하고 월급봉투가 들어온 첫 달에 결혼을 해서 친구처럼 아웅다웅 지금까지 살고 있는 커플이다. 그래서인지 부부간의 거리감은커녕 어릴 때부터 너무도 잘 아는 사이라 일이 없을 때는 너무도 평화롭지만 한번 불이 붙으면 친구와 격하게 싸우는 꼴이라....


양면의 날처럼 남편과 나는 개인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면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나를 간섭하는 면도 없지 않다. 특히 젊었을 때는 의처증이 있다 할 만큼 적극적으로 나의 방어를 남편이 했다.


한 번은 내가 다니는 회사 앞에서 퇴근 시간만 되면 무조건 서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걸 내 윗 상사가 모르고 하는 말이 "지나, 오늘 저녁 식사하고 가지?"라는 말을 해버렸다. 아뿔싸! 그 당시는 학생 신분이었던 남자 친구가 내 상사에게 와서 왜 여직원에게 그냥 이름을 부르냐며, 왜 이름 뒤에 씨를 붙이지 않느냐며 따지는데.... 더 나아가 월급에 비해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냐며..


하하 다 지난 이야기다. 하긴 그럴 때가 좋았을 수도 있겠다. 나이가 드니 이제는 나이 든 마누라에게 그런 면에서는 방어를 할 일이 없다 싶은 건지 내가 밖에서 뭐를 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게 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저녁 시간에 밖에서 치맥 한잔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서 특별히 관리할 일이 없을뿐더러 나 또한 남편의 일에 관여하는 자체를 귀찮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점점 나와 남편의 생활을 서로 존중해 주는 생활 패턴이 되어가고 있다.


즉 집안일의 대부분은 내가 처리한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일은 전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해결하고 집안을 꾸민다거나 가구나 가전제품을 사는 일들은 남편의 의견이 거의 없을 정도다. 집안 전체를 페인트로 도색을 해도 남편은 알아보지 못하고 바닥을 카펫에서 마루로 교체를 해도 인식하지 못하고 액자를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예를 들어 페인트에서 벽지로 도배를 하고 아이들과 내기를 했다. 아빠가 과연 집이 바뀐 걸 알아보실까?

집에 들어오는 남편은 여전히 귀에 핸드폰을 대고 대화를 하면서 점점 벽지 쪽으로 다가 가더니 만지작거린다. 설마 알아보는 거야?... 전화를 끊고 하는 말 "어? 여기가 원래 벽지였나??" ㅎㅎㅎ


그 정도로 인테리어에 관해선 남편의 의견이 1도 없다고 생각하면 맞다. 그러면 보통은 너무했다, 그러고 어떻게 사니? 하겠지만 모르는 말이다. 이런 거조차 모르는 남자니 무엇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없어 그만큼 잔소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남자가 나이가 들면서 집안에서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것처럼 귀찮은 게 없다고들 한다. 맞다. 눈으로 보이지 않으니 서로 잔소리로 싸울 일이 없어 그거 하나만큼은 왔다로 좋다.


대신 남편은 남자로서 경제적인 능력만큼은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는 강한 믿음이 내재되어있는 고루하면서 권위적인, 그러면서 남자다운 면이 있는 옛스럽지만 지금으로 치면 상남자 스타일이다. 대학교 때부터 여자는 돈을 벌어선 안되고(그래서 데이트 비용은 한 푼도 내가 내지 않았고 오히려 용돈을 받을 정도였다) 집안에서 고고한 학처럼 예술을 즐기며 자식을 잘 키우는 여자가 현모양처라는 굳은 믿음으로 나를 상대했으니 나처럼 활동이 충만한 사람과 어찌 맞을 수가 있었을까? 그런 걸 보면 남녀관계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공부한 게 아까워서라도 죽어라 일한다 말하고 남자 친구는 여자가 일하는 걸 죽어라 반대하는데도 결혼해서 이만큼 잘 살고 있다니... 참 희한하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일을 열심히 하고 남편은 남편의 일을 열심히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고 있는데 2021년 새해벽두부터 일이 터졌다.


어떤 고객분이 전화를 하셨다.


"요즘 생활이 어려워져서 일을 많이 해야 한다면서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남편이 일이 없어서... 한국으로 갔다고..."

"네? 남편은 미국에서 아주 잘 있는데 어디에서 그런 소문이 나왔을까요??"

"에구,그럼 됐지요. 지나씨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안 하니까 남편이 셔터맨..." 하며 말을 흐렸다.


이런! 남편과 나를 동등 선상에 놓고 남편의 일과 나의 일을 구분 지어 금남의 집이라며 남편이 내 샾에 오는 것도 금지 시켜 오로지 커피만 살짝 배달하고 가는 정도로만 출입을 허락하고 고객들에게는 내 남편의 이야기가 거의 금기어가 되어 남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나 또한 남편의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남편의 사업이 얼마만큼의 규모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는 우리의 일을 서로 간섭하지 않고 믿으며 지금껏 살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내 남편이 불쌍해졌다.



남편은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한국 대기업에서 10년을 일하며 동료를 아우르는 리더십으로 최연소 고속 승진을 했고 총명함과 성실함으로 회사생활을 해서 지금도 그 기업에서는 전설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미국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그런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가족을 설득해(나 또한 설득을 당하고 내 회사와 집도 정리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나섰다) 미국으로 건너왔고 몇 년 뒤 뉴욕에서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웬만한 중소기업은 저리 가라 할 만큼 큰 기업으로 성장했고 코로나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보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일하는 미국의 수출기업의 경제인으로 국제 경제 포럼이나 세미나에 초대되어 실제 한국의 중소기업에게 수출의 길을 열어주고, 미국에서 보면 한국과 북한에 대한 인프라의 특성상 남편의 조언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어 오히려 남편의 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며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

 

특히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에 다니는 어려운 학부생에게 장학금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이 부분에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기업인이 작지만 기부문화에 동참하는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으로 선두주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에 아내로서 남편에게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여기까지 하고... 이런 사람이 집에만 오면 백수가 된다. 정말 남들이 보면 저 남편은 할 일이 없나 보다 싶을 만큼 봄부터 가을까지(남편은 운동삼아 한다지만) 매주 잔디를 깎고 아이들 라이드며 하다못해 강아지 산책까지 모든 걸 혼자 하는 듯이 보일 것이다. 거기에 내 샾에 매일 커피를 들고 서 있으니 셔터맨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그러고 보면 멀티가 되는 사람이 있다고 하고 멀티는 여자에 비해 남자가 갖기 어려운 일이라는 소리를 많이 한다. 즉 남자들은 단순해서 한 번에 여러 가지를 못하는 뇌구조를 가졌고 여자는 한꺼번에 집안일도 하면서 아이들도 기르고 거기에 직장일까지도 잘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남편은 여자처럼 모든 매사에 놓치는 일이 없어서 나를 포함 아이들의 사소한 일에도 안부를 묻는다거나 경제적인 면에서 먼저 부족함 없이 보조해주니 남편은 멀티의 레이다망이 360도로 뻗어 있는 듯하다.


나의 일은 남편의 일에 비하면 그 규모 면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나겠지만 작다고 해서 사업이 아닌 것도 아니다. 크건 작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에 필요한 것은 다 있어야하고 치워야 하는 집안 일은 똑같이 힘든 것처럼 아무리 작은 샆이라도 경제, 회계 그리고 한 달을 꾸려가야 하는 비즈니스의 일은 같다고 본다.


그래도 나는 항상 이야기한다. "나처럼 조그만 샆도 골치 아픈 일이 있는데 당신은 그렇게 큰 규모를 어떻게 말 한마디 힘들다 하지 않고 돌아가게 만들지?"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다 하는 일인가? 직원들이 하는 거지. 직원들이 힘든 거야. 나는 말만 하면 되는 거지만..." 그래서인지 남편은 집에 들어오면 아주 편한 사람이 된다. 회사는 회사에 맞기고 집에 들어오면 회사일은 잊나 보다. 하긴 회사일을 집안까지 끌고 들어오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질 텐데 감사한 일이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글을 쓰면서 사랑을 알게 되어서인지 이제는 모든 사람이 짠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남편의 듬성한 머리칼도 짠하고 말없이 거실 바닥에서 머리카락을 줍는 모습도 짠하고 노안 때문에 다른 사람과 식사할 때 오히려 안경을 벗어야 해서 힘들다는 말을 들어도 짠하고 저녁식사 후에 "차 한잔 줄까?" 하는 말에 천진하게 웃으며 "좋지~~" 하는데도 마음이 짠해진다. 글 쓰는 마누라가 그렇게 좋은지 작업실을 마련해 주면서 마음껏 즐기라는 말에도 고마움보다는 짠함이 앞서는데 왜 일까?


이런 남편을 내가 셔터맨이라는 소리를 듣게 해서 미안하다. 남편에게 이런 말을 고객에게 들었다 하니 웃으며 말한다.


"좋네, 마누라 덕에 먹고사는 팔자 좋은 남편으로 봐주니..."


에구 짠해라...

매거진의 이전글 재벌도 부러워할 나만의 공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