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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r 15. 2021

이중생활<J2>

나는 요즘 이중생활에 푹 빠져 있다.          


이중생활을 하다 보니 그렇게도 더딘 하루가 딱 내 나이만큼 시속 50킬로로 달리고 있는 듯하다. 아침형 인간이 절대 될 수 없는 내가 저절로 눈이 떠지는 이유가 다름 아닌 이중생활 때문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거 아닌가? 이중생활이라고 하면 두 집 살림? 아, 이 말도 맞는 말이겠다. 두 집 살림을 하느라 이렇게 바쁜 거니까.               


어찌어찌 나에게 작업실이 생기면서 이중생활이 시작되었다. 남편이 처음 제안을 했을 때는 내가 왜 작업실이 필요하지? 라며 고맙지만, 마음만 받는 걸로 충분했다. 작업실의 개념이 나에게는  19살로 돌아가야 하는  기억 중의 하나다. 딴에 미대생들의 로망이라고 해야 할까? 커다란 이젤을 중앙에 놓고 밝은 햇살을 잔뜩 받으며 손이며 멜빵바지에는 물감을 잔뜩 묻히고 한 손에는 붓을, 입에는 담배 하나를 물고 멋지게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을 갖는 게 미대생들의 그냥 꿈같은 로망 중의 하나였다.               


실제로 작업실, 더 근사한 말로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는 선배들이 있긴 있었다. 스튜디오라고 해봤자 지방생이 서울 생활을 하기 위한 조그만 공간으로 자취를 포장한 스튜디오라는 명명하에 근사함을 가장한 멋짐의 미대생 작업실을 가 보면... 흠, 홀아비 냄새나는 지저분한 그저 혼자 살면서 그림을 그릴 수도 없는 작은 방을 작업실이라고 해서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혼자 사는 남자나 여자들이 혼자만의 집을 멋지게 꾸미고 남부러울 정도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취미를 가지고 절제된 일상생활을 보여준다. 절대 결혼을 해서는 안 될 거 같은 삶을 즐기고 있는 그런 사람이 많이 등장하는 걸 보면 시대가 많이 변하긴 했다. 하긴 내가 생각하는 그런 시대는 벌써 30여 년 전 일이라 호랑이 담배 먹는 이야기처럼 들리니 좀 우습긴 하다.               


솔직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장소는 일반 생활공간과 분리되어야 좋긴 하다. 일단 너무도 자잘한 재료들의 수납이 필요하고 이젤을 놓는 공간과 그림을 그려야 할 행동반경이 커야 시야가 확보되어 자유롭게 그림에 몰두할 수 있고 예술적인 느낌이 충만해야 그림도 잘 그려지는 법! 그런 창작 예술 활동이라면 나도 인정하지만,


글은 다르다.               


컴퓨터 전 시대에는 원고지를 먼지 가득한 책상 위에 산처럼 쌓아놓고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꼼짝 않고 지웠다 썼다를 손이 빠지도록 반복하며 수기로 써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을 때는 골방이라도 글 쓰는 장소가 따로 있어야 했다. 이외수는 골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방을 감옥처럼 꾸미고 혼자만의 장소에서 부인이 넣어주는 사식을 먹는 설정으로 자기의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는 말도 있듯이 자기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컴퓨터 시대가 되면서 작고 가벼운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세상 어느 곳에서든 글감만 있다면 쓸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왔다. 더 이상 연필을 깎는 수고가 필요 없고 원고지를 살 필요도 없다. 김 훈 작가님처럼 졸필이라 누군가에게 원고를 넘기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글을 알아볼 수 없어서 힘들어하는 일조차 없다. 그저 자판을 익히고 머릿속 말을 손가락만 움직이면 이글에서 저 글로 마음껏 고쳐 쓰는 이런 세대를 우리 윗세대들은 만끽하지 못함이 조금은 안타깝다.               


하긴 요즘은 레트로 바람이 불어서인지 예전에 썼던 원고지 200자 운운하는 그런 네모 칸에 한 자 한 자 적는 추억이 가끔은 생각나는 거 보면 그때의 그 시절 작가들의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고뇌하는 모습이 조금은 멋져 보이기도 하다. 난 절대 못 할 방식이지만 원고지 세대 작가님들은 갑자기 변해 버린 컴퓨터가 너무도 이질적이라 머릿속 이야기를 자판으로 두드리면 두드리다 번쩍이는 생각도 달아나지 싶기도 한다.                


나 또한 컴퓨터 세대가 아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워드가 나왔고 인문계 학생 몇몇은 워드로 리포트 제출한다는 말을 간혹 듣는 정도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인테리어에 CAD라는 프로그램을 비싸게 사서 깔고 설계도면을 빼기 시작한 그런 시절이었다. 나는 그나마 인테리어를 했고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컴퓨터를 접하긴 했지만 아래 한글 같은 자판을 이용한 글을 쓰는 일이 없어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커다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미국에 왔고 컴퓨터를 쓰는 일이 없어지면서 핸드폰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다 글을 쓰려니 처음엔 핸드폰으로 쓰며 만족했다. 그게 내가 아는 전부였으니까.. 사람은 아는 것만큼만 간다고 내가 딱 그 수준이었다. 그러다 본격적인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브런치였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니 도저히 핸드폰으로는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노트북이 내 손에 들어오고 지금처럼 내 머릿속의 이야기를 손으로 곧바로 적어 넣는 신세계에 빠졌다. 자판을 익혀놓으니 이렇게 술술 내 생각 속 이야기를 마구 적을 수가 있다니...               


말이 옆으로 세어 버렸다. 항상 이런다. 원고지에 쓸 때는 아마도 정제된 기승전결을 미리 생각하고 대략적인 아웃라인을 정한 다음 써야 다시 쓰는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단락 또한 미리 정하고 시작해야 할 일이다. 단락을 바꾸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일단 아무 말이나 머리에서 생각나는 데로 마구 쏟아낸다. 그다음 전체를 읽으면서 편집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이런 자판 두드리기가 쉬운지... 글 쓰는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이 느낄 것이다.


아무튼, 나의 작업실이 그렇게 탄생되었다. 작업실이라는 이름 대신 멋진 이름도 지어주었다. 화성의 사나이 일론 머스크는 자식에게 상식을 깬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아이디어를 살짝 도용해서 난 J2라 지었다. 내 이름과 생일을 조합하니 부르기도 좋고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이 되었다. 집에도 이름을 붙여주니 자기 집만의 개성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아직은 나의 어린양이 나의 음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마냥 작업실에서 시간을 소비할 수는 없다. 코로나로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가 집에 있는 바람에 더욱 복잡해지긴 했지만, 아이가 일어나면서 J2로 출근을 한다.               


미국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미국으로 오는 공간이동은 시공간이 주는 야릇한 시간차에 대한 무한한 우주 공간 개념이 생긴다.


백투더픽춰처럼 14시간을 비행기 안에서 정확히 말하면 하늘 우주 공간에 떠 있다가 내리면 다시 정확히 그 아침 시간에 미국에 도착한다. 예를 들어 1일 아침 11시에 비행기를 타고 14시간 동안 비행을 한 다음 미국에 내리면 정확히 1일 그 시간 아침 11시에 도착한다. 어떻데 14시간이 지났는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도착할까? 타자마자 내리는 것도 아닌데.. 왜냐하면, 서울과 이곳 메릴랜드까지의 시차가 정확히 14시간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한마디로 한국에서 미국에 오면 14시간을 공짜로 버는 셈이다. 공간의 이동을 했는데도 우주 공간의 역주행이 주는 시간차가 바로 이런 거라는 걸 매번 몸소 체험하며 알고는 있지만, 우주 천체의 신비는 아직도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공전이나 자전 등등 천체 우주의 과학적인 법칙에 의한 시공간의 다른 개념들이 적용되어 시곗바늘이 뒤로 돌아가는 그러한 일들이 그냥 마법 같은 일이다. 나에게는 아직도..               


중요한 건 그러한 공간이동처럼 살림하는 집에서 뭔가 끄적일 작업공간으로 이동하는 마음 하나가 이리 달라질 수 있다는 게 희한하다. 공간의 다름이 생각의 흐름을 바꾸고 공간이 주는 다름이 사고의 전환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꾼다.                


J2로 출근하자마자 스벅보다 맛난 바닐라라테를 한잔 만들어 마시며 커다란 창문 앞에 선다. 다행히 집이 동쪽이라 내가 머무는 오전 시간에는 환한 햇살이 바닥 길게 드리워진다. 해를 온몸으로 맞는 기분이란... 눈을 감고 몸을 살짝 흔들어 내 온몸의 세포를 아주 살짝 건드려 깨운다. 슬쩍 올라오는 싱싱한 세포들은 머리 정수리를 타고 팔과 허리 그리고 다리 끝 발가락까지 나를 간지럽힌다. 한숨 섞인 탄식이 힘없이 흐른다. 자유로운 비음이 희미하게 숨 쉬며 곧 휘파람이라도 불 기세다.                


그 기운으로 책상으로 서서히 가 앉는다. 자 오늘은 무슨 글로 시작할까?      


매일은 아니지만,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한 줄을 적는다. 아무 말 대잔치처럼 나에게 아무 일이나 걸어본다. 말이 되면 계속 말을 하면 되고 하다가 말이 안 되면 그만하면 된다. 누구도 나에게 대항하는 자가 없고 그 누구도 내 생각의 글을 비난하지 않는다. 내 머릿속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난 결코 결말을 알지 못한다. 글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주제로 끝맺음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내 글의 주인인 나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러다 술술 거미줄처럼 엮여 나오면 몇 시간이고 자리에 앉아 마구 쏟아내다 나가야 할 시간조차 잊어버리고 계속해서 쓴다. 내가 쉽게 써 내려간 글은 남들도 편하게 읽게 되고 내가 헤매며 심각하게 쓴 글은 읽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글이 되는 게 당연한가 보다. 오래 쓰지는 못한다. 기껏 두 시간쯤 지나면 돈을 버는 세 번째 공간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돈을 벌며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딱 6시간으로 정했다. 요즘 같은 이중생활로 바쁠 때는 뭐가 주 직장인 지도 모르겠다. 6시간을 후딱 일하고 집에 가서 나의 어린양에게 밥을 차려주고 집에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J2로 또 온다.                


지금처럼 글을 쓰는 일이 참 좋다. 내 생각이 글로 나오고 그 글이 이런 플랫폼에서 읽히고 잘 간추려 신문 칼럼을 쓰는 지금의 이런 글 쓰는 행위가 나에게 딱 맞는 옷이 되었다. 이중 삼중 생활로 정신없이 밥순이로 직장인으로 그리고 글쟁이로 왔다갔다 생활하고 있지만, 뭐든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몽골 유목민에게 생활이 힘들어 보인다며 뉴욕 숲에 데려다 놓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한다면 하루 이틀은 신세계에 정신없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유롭게 광야를 말 타며 사냥하는 희열을 느끼고 싶어 도시를 탈출하고 싶을 것이다. 반대로 할리우드에 수영장이 빙 둘러 지어진 집에서 사는 유명인이 그런 물질적인 호화로움에 마음이 허허롭다고 말해 특단의 조치로 광야에서 마음껏 말 달리며 자유만을 만끽하라면 가능한 일이겠는가?


몸은 힘들지만 이런 행복이 또 언제 올지 모르고 내일의 일은 알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코로나로 생각지도 않았던 가족과 친구를 하루아침에 잃는 많은 사람도 많아진 요즘 오늘의 바쁨을 행복으로 받아들이자. 당장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자. 곧 쏟아질 듯한 별이 당신의 가슴으로 파고 들어올 것이다. 그저 바라보며 행복을 만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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