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도 잊혀질 오늘,
우리 언니가 요즘 해빙(Having)에 푹 빠졌다. 지금의 행동으로 봤을 때 언니가 어떤 신앙에 빠진다면, 그 누구보다도 깊은 신앙인으로 살며 누구보다도 앞장서 전도의 길로 들어설 기세다. 무섭도록 놀라운 속도로 해빙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먼저 해빙은 Have에 ing를 붙여 현재 진행형이고 해석되는 뜻이 너무 많아 한 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다. 특히 뒤에 오는 명사나 동사의 도움을 받아 해석되는 단어라 어떤 명사와 결합되는지 또 어떤 동사와 결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보편적인 have는 가지다라고 해석 하지만 여기에 ing를 붙이면 계속하고 있는 지금, 현재로 해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고 있다고 할 때 eating 보다는 having을 써야 더 매끄러운 영어가 된다고 할 수도 있다.
I have a baby라고 하면 나는 아기가 있다.
I am having a baby라고 하면 나는 아기를 갖고 있다. 즉 임신했다고 해석한다.
이렇게 간단히 가지고 있다 혹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수도 있지만, 해빙을 철학적인 양자의 논리로 대비하면 각자에게 내재된 무의식에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대뇌이면 잠재의식의 힘을 받아 그냥 원래 내 것인 양 모든 게 저절로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인거 같지만 간단하다. 이것이 돈으로 비유되면 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마음이 우리를 저절로 부자로 이끈다는 것이고, 이것이 명예라면 명예로운 위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명예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마음이 우리를 명예로운 위치로 이끈다는 것이다.
남편과 내가 연애 때 여행을 갔다. 부산 어느 바닷가에서 아이 둘과 함께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는 단란한 가족을 보았다. 그들은 바닷가를 뛰어놀다 흙이 묻은 발을 물로 씻으며 행복한 모습으로 일류 호텔로 들어갔고 그 순간의 장면이 우리 둘의 머리에 사진처럼 찍혀버렸다. 그 그림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게 한 사진이 되어버렸고 실제로 우리는 여행을 가면 가장 좋은 호텔을 가려고 노력하고 그 가족들처럼 행복을 바라는 그림과 꿈이 되었다. 어디들 가든 그곳의 호텔로 기억을 더듬으며 추억을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 대단한 장면은 단순히 발을 닦고 웃으며 호텔로 들어가는 가족의 한 장면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의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이 나의 잠재의식으로 들어갔고 그 꿈을 향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삶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란한 가족이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은 바로 현재 나의 가족 모습이 된것처럼 무의식 속에서 잠재의식으로 장착되어버렸고 그 힘이 나의 삶을 이끌었다는 결론이다.
우리 언니는 예전부터 고아원 원장이 되어 불쌍한 아이들을 돕는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을 도울 일만 생기고 이제는 자기의 인생에 부자로 사는 그림을 무의식에 넣어 잠재의식이 발동되게 해야겠다면서 해빙에 심취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즉 내가 어떤 나만의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 우주의 힘이 그대로 나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해빙이다. 우주의 법칙을 떠나서 누구나 어떠한 상황에서 내가 좋아하는 우선순위로 행동하는게 당연하고, 그럼으로 내가 그리는 그림대로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은 확률보다 높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자연의 원리다.
거기에 더 강하게 해빙을 하기 위해서는 확언 즉 큰 소리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말로 내뱉고 필사 즉 글로 적으면 잠재의식의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이 또한 말하면서 한번 더 나의 꿈을 위해 노력할 것이고 글로 쓰면서 또 한 번 다져지는 힘이 생기는 일이니 어찌 내 꿈에 도달하지 못할까?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도 아니라서 모두가 실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실천하지 않는 확언과 필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좋은 정보와 교훈도 실천 없이는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먼 훗날 멋진 호텔을 가기 위해 가족 모두가 희생하며 오늘, 지금이 불행하다면 미래의 행복도 장담할 수 없다. 막상 그때가 되면 건강이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고 가족 구성원과 함께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호텔보다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 뒷마당에 텐트를 치고 별을 헤아리는 추억을 만드는 게 해빙하는 것이다.
만약 50평 아파트를 목표로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고 싶은 것도 참으며 싼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주워온 옷만 입으며 매일 노력만 하고 산다고 하자. 지금의 50평과 미래의 50평의 화폐가치는 상상할 수 없이 상승할 것이고 돈을 한 푼 두 푼 모으는 속도보다 돈의 인플레이션의 속도가 빨라 돈을 모으느니 집을 먼저 구매하고 빌린 만큼 이자를 갚아 나가는 게 빠르다는 걸 먼저 알아야 한다. 이럴 때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황제가 먹을 수 있다는 음식을 돈이 있다 해도 건강이 좋지 않으면 먹을 수 없고, 멋진 명품을 입을 수 있는 돈이 있다 한들 몸의 나이로 옷의 형태를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몸매가 되어버리면 그림의 떡이 된다. 결국, 오늘을 살지 않고 내일을 살면 잃게 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사는 듯하다.
오늘, 지금의 행복에 만족하고 없음보다는 있음에 집중해서 있음에 감사하면 더 풍요로운 삶이 허락된다. 그래서 해빙은 오늘 내가 가지고 있음을 감사히 여기고 오늘 지금 이순간의 행복이 연속되면 결국,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정답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축덕'이라는 제목의 내용은 아무리 많은 재산도 아무리 멋진 차를 가졌다 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그래서 아무 날도 아닌 날을 우리가 그토록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며 살았다는 내용의 글이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날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며 오늘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를 둔 글이다.
베풀어서 덕을 쌓아 두어라!
반드시 은혜로 되돌아올 것이다!
미국 네바다주 사막 한복판에서 낡은 트럭을 몰고 가던 "멜빈 다마"라는 한 젊은이가 허름한 차림의 노인을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웠다.
그러고는 어디까지 가십니까? 타시죠! 제가 태워 드릴게요!
그 노인은 고맙소 젊은이! 라스베이거스까지 가는데 태워다 줄 수 있겠소? 하면서 낡은 트럭에 올라탔다.
어느덧 목적지인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가난한 노인이라 생각한 젊은이는 25센트를 주면서
영감님! 차비에 보태 쓰세요!
그러자 노인은 참 친절한 젊은이로구먼! 어디 명함 한 장 주게나! 그는 무심코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을 받은 노인은 멜빈 다마! 고맙다네! 내 이 신세는 꼭 갚겠네! 나는 "하워드 휴즈"라고 하네!
그 후 세월이 흘러 이 일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을 무렵에 기상천외한 사건이 일어났다. 세계적인 부호인 하워드 휴즈 사망이란 기사와 유언장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하워드 휴즈는 영화사, 방송국, 비행기 회사, 호텔 도박장 등 50개 업체의 회장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의 유산 중에 16분의 1을 멜빈 다마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이 유언장에 기록되어 있었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멜빈 다마란 사람이 누구인지 도대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유언장 뒷면에 하워드 휴즈가 적어 놓은 멜빈 다마의 연락처와 함께 자신이 일생 살아오면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란 메모가 있었다.
그 당시 하워드 휴즈의 유산이 250억 달러 정도였다 16분의 1은 15억 달러이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대략 1조 7천억원가량이었다. 낡은 트럭을 태워준 친절과 25센트의 차비로 친절을 투자해 1조 7천억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 글이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보여준다. 친절의 가치는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이며 그 많은 재산을 두고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워드 휴즈가 남긴 마지막에 한 말은 "Nothing “ (낫씽) 아무것도 아니야! 였다 즉! 인생을 살아보니 아무것도 아니란 것이다. 그는 낫씽! 낫씽!이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자, 여기에서 친절은 엄청난 축복으로 다시 되돌아온다는 무한한 가치에 염두를 둔 메시지고 더 중요한 건 여기에 있다. 오늘은 많은 날 중의 하루이니 너무 열심히 힘겹게 일하지 말고 그저 오늘을 즐기라는 뜻으로 자칫 이해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의 오늘을 해빙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희생으로 돈과 명예를 얻은 후에 죽음에 이르러서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걸 알았을 때의 그 허무함... 내일 그리고 미래를 위한 희생 그리고 그에 따른 나를 둘러싼 아쉬움들이 모여 결국 행복한 날들을 남기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공허함이 내재되어있는 성공한 자의 마지막 고백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꿈에 대한 열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힘 있는 자를 누구나 열망한다. 하지만 열정과 꿈만을 향해 현재의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다 막상 미래의 그때가 되면 잠깐의 기쁨 뒤엔 노력의 대가가 별거 아니었다는 허무함에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그래서 더 높은 목표를 또 세우고 또 오늘의 희생을 강요하게 된다. 반대로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그 허탈함은 희생에 대한 보상심리로 또 다른 불행으로 뒤덮여 심한 우울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작은 행복이 모이고 모여 나의 꿈과 나의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 더 큰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고 만약 이루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동안 즐기며 행복하게 즐겼으므로 그 또한 뿌듯한 마음으로 그다음의 목표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날을 힘들어 하지말고 그냥 흘러가는 강물에 맞기고 지금 '있음'에 만족하면 행복한 삶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지금 편안함 마음이 우리를 부자로 그리고 행복한 미래로 이끌 것이다.
그냥 행복하고 건강한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