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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pr 19. 2021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

오랜만에 불륜도 막장도 아닌 그리고 머리를 써가며 시대를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잔잔하고 느긋한 드라마를 보았다. 바로 박인환 씨가 주인공인 '나빌레라'라는 작품이다. 보통은 드라마라고 해야 할 텐데 드라마라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특정한 사건도 없고 특별한 주인공의 얼굴값으로 만든 것도 아니고 그저 내용과 연기력으로 승부를 건 드라마이기 때문에 작품이라고 평하고 싶다.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라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날지 아무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굳이 결론이 중요하지 않아 더욱 좋다.


처음 '나빌레라'의 제목은 내 이목을 끄는 데 성공하지는 않았다. 제목만 봐서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만화 같은 내용일 거라 예상이 되었고 그게 아니면 판타지 같은 몽환적인 내용일 거라는 짐작을 했다. 하지만 박인환 씨가 발레하는 모습의 예고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샷이었다. 그 예상은 적중했고 첫회부터 멋진 남자의 춤 선과 박인환이 춤을 바라보는 아련한 눈빛이 교차되며 가족중심의 이야기로 잔잔하게 나의 가족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 오버랩되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왜 박인환의 나이에 발레를 그토록 배우려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바로 알츠하이머였다는 실마리가 풀리면서 중반부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박인환이 매일 가지고 다니는 까만 수첩에 쓰여있는 한마디가 나를 깊이 울렸다.


'나는 알츠하이머입니다'


나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아주 오랫동안 살아만 계시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가 그토록 내 가슴에 파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병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 전체에 드러나 보이지 않게 깊은 상처를 주고 돌보다 지쳐버리는 유일한 병이지 싶다. 병을 앓는 사람도 돌봐주는 사람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공허만이 남을 수 있는 병이다. 알츠하이머 즉 치매는 걸려보지 않은면 그 아픔의 깊이를 정말이지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매일 직접적으로 그 아픔을 직면하고 나의 수고로움에 힘이 붙일 때까지 엄마를 돌 본 적도 없어서 그 부분은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옆에서 가족을 돌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보다 백배 천 배 심적인 힘듦에 더해 육체적인 힘듦으로 더 이상의 아픔이 없을 줄 안다. 오죽하면 우리 부모님처럼 애틋하신 부부라도 도저히 돌보실 수 없으니 요양원에 보내시고 요양원 근처로 집을 지으시고 돌보실 생각을 하셨을까?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님의 판단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최소한 육체적인 힘듦이 가족에까지 전달되지는 않았으니까...


치매라는 병명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저 노인이 되면 정신줄을 놓고 미친 사람이 되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가끔 동네를 돌아다니는 미치광이를 본 적은 있지만, 많이 볼 수 없었던게 밖으로 노출되는 걸 극도로 싫어하고 집안의 수치로 여겨 치매 노인네가 있다는 존재 자체를 숨기는 집이 허다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동네 소꿉친구의 아버지가 집안에만 계시는 분이 계셨다. 그런데도 아이는 5명이 있어서 모두들 수군덕거렸다. 미친 아버지에게서 어떻게 저런 건강한 아이들이 태어난 건지 모르겠다며 무슨 괴담처럼 떠돌아다녔지만, 우리 친구들은 그런 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빠를 보며 부지런히 인사만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치매인 남편이었을 것이다. 집안에만 숨겨놓으신 그 아내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싶으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분도 당신의 남편이니 정성껏 돌보았을 것이고 사랑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을 것인데 왜 그리 못된 아줌마들은 그렇게 험하게 남의 말을 했을까? 내가 나이가 들어보니 참 쓸데없는 동네 어른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치매의 평균 나이층이 어려졌다고 한다. 치매는 나이에 상관없이 올 수 있는 병이라고도 하는데 20대 청년 치매도 있고 30-40대 조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젊은 층의 치매 현상도 무시 못 한다고 한다. 박인환은 극 중에서 70은 되어 보이는데 요즘 70은 예전의 50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너무도 젊은 나이다. 힘들게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고 이제쯤 인생을 조용히 재미있게 보내야 할 나이인데 덜컥 기억을 잃어가는 병을 얻었다니...


나의 미래와 오버랩된다.


내가 70이 되었다. 약 20년 후의 내 자식들은 모두 자기의 일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전형적인 평범한 미국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손주들이 있고 손주들의 나이도 어리지 않다.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천천히 하루의 일과를 이행한다. 조금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들었고 일어나자마자 여전히 모닝커피로 눈을 뜬다. 햇볕 드는 흔들의자에 앉아 아침 신문을 읽으며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밝은 햇살이 들어오면 가만히 그 길이를 내 발등으로 재어본다. 창문 밖으로 내 나이만큼 자란 기다란 고목 나무에 어느새 새순이 나무 자락 끝마다 얼굴을 내밀어 인사한다. 하나씩 보면 보이지도 않는데 저마다 손짓하니 둥그스레 처녀 젓 몽우리처럼 부끄럽게 솟아있다. 벌써 봄이 왔다보다.


70번째 만나는 새봄인데 만날 때마다 이리 부끄러우니 이제 몇 번 남지도 않을 봄이련만 언제 익숙한 모습으로 인사할지 모르겠다. 파랑새를 흥얼거리시며 저 파란 하늘로 가버리신 나의 할머니여, 하얀 가루가 되어 저 제주 바다에 뿌려져 어디론가 흘러가 버린 나의 언니여! 당신들을 만나러 갈 때쯤에나 이 찬란한 봄이 익숙해지려나 싶다.


 엄마가 치매가 시작된 나이가 되었다. 하나둘 기억해야 할 것들이 줄어들 나이가 되었지만, 꼭 필요한 기억은 늘어만 나는듯하다. 하나둘 기억이 지워질 거라는 충고를 의사에게 들어서 너무 슬픈 날이었던 기억도 이제는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가 젊었을 때 나누었던 치매에 걸리면 안락사하고 싶다는 말이 불현듯 떠올라 아들에게 전화로 확인해 놓은 참이다.


엄마가 조금씩 기억이 지워져 너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엄마를 부디 저세상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아들은 울며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 세포의 70%가 없어지는 그 지점에 안락사할 수 있는 법적 효력이 발생한게끔 내 주치의에게 조치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다시 박인환이다.


박인환이 울며 혼잣말을 한다. 엄마! 나 어떡해요, 점점 기억이 없어지고 있어요...

나의 기억 세포에 불멸은 없을 터, 언젠가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기억이 도망을 가지 않으려나 싶은 게 지금도 안면 기억장애를 앓고 있고 건망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할 정도로 한 번에 두 가지를 못한다고 이미 소문이 나 있는 상태다. 더군다나 가족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면 내 엄마의 피로 인해 나의 치매 증상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렇다면 나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꽉 붙들고 산다는 건 이미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아무리 몹쓸 병에 걸린단 해도 치매는 피하고 싶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정신이 밖으로 나가 있는 상태에서 숨을 쉬며 인생을 연명한다면 숨 쉬지 않고 그냥 이 세상과 이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머리는 온전하지만 내 몸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당연히 지각 있는 행동으로 사고할 수 있어서 감히 생과 사를 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만, 치매처럼 정신세계가 달라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 사고와 상관없이 밥을 먹고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아무런 이해 없이 무언가를 쳐다보고 숨을 쉬고 있다면 그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다. 그냥 숨만 쉬고 있어도 내 옆에만 있어 달라는 말은 상대방보다는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만약 유언을 실행할 수 있는 법적인 조치가 있고 치매 증상 70%가 진행되어 나 자신을 알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으로 내 몸만을 보호해야 한다면 안락사에 사인할 것이다.


나이가 든다,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죽음으로 향하고 죽음은 이 세상과의 이별을 뜻한다. 그 이별은 신과의 약속으로 거역할 수 없는 일이고 그 약속 뒤에 찾아오는 불치병으로 우리의 뇌를 집어삼켜 버린 치매의 종말은 그야말로 죽음으로밖에 되돌리 수 없는 일이다. 일론 머스크가 머리의 뇌관에 컴퓨터 칩을 뇌관에 넣어 사람이 기억하는 게 아니라 칩에 입력된 데이터를 인간이 가져다 쓰는 방식을 이미 돼지에게 실험해보았다. 그리고 성공을 거둔 듯하다. 찬반양론이 거듭되고 있지만 나는 대찬성이다.


내가 만약 치매에 걸려 결국 안락사를 택하든 컴퓨터 칩을 택하라면 나는 안락사보다는 칩을 넣고 싶을 것이다. 고의로 인간에게 칩을 넣어 생명을 연장시키는 문제에 대해 비인간적이고 생명논란에 우려한 많은 데이터가 발동되겠지만 내 건강 상태가 허락하고 단지 내 기억만을 되돌려 준다면 난 그곳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만약 우리 엄마의 기억을 다시 70으로 돌리고 칲을 넣어 거의 15년을 정상적인 삶으로 살게 했다면 내가 생각하는 나의 엄마는 좀 더 밝고 활기찬 엄마의 자화상으로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나와 함께 어른으로의 대화를 진지하게 하며 인생을 논할 때쯤 나의 존재가 그들의 영혼에 힘을 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다시 나는 70이 된 우리 엄마의 얼굴로 이 글을 마친다.


아직은 치매가 20% 정도 진행되어 아침햇살의 따뜻한 온기를 맞을 준비를 하고 설레는 하루를 만나며 글을 쓴다.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하루해가 넘어가고 있는  능선의  길이만큼은 아니리라.  붉고 건강한 해가 보이지 저세상으로 넘어가는 그런 , 나의 기억도 해와 함께 넘어가리라. 아직은 나의 생이 나의 기억을 붙잡고 싶나 보다. 박인환처럼 훨훨 나는 나비가 되어  해의 끝을 맴돌며 나의 기억을 지워나가면 그뿐이다. 안녕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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