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한 달에 한 번 내 손가락에 호사를 시켜주는 날로 지정되었다. 나를 위한 호사가 네일뿐이겠냐만은 네일은 왠지 단번에 이뻐지는 것으로는 최고이지 싶다. 여자의 상징인 명품백을 산다 해도 몇 번 들면 질려서 괜히 비싼 걸 샀나 싶게 후회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때가 되면 또 다른 게 없나 다른 여자들의 손을 훔쳐보는 나를 보며 또또...
구두나 액세서리도 마찬가지다.
살 때는 내 아기처럼 애지중지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낡아지고 유행이 지나 언제 샀었나 싶게 싫증이 나고 새로운 것에 다시 눈독을 들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비싼 물건을 매달 바꿔가며 쓸 수도 없는 노릇이고 평생을 쓸 거라는 생각으로 아니면 대물림할 요량으로 가족들에겐 '내가 쓰다 딸이나 며느리한테 주지 뭐!'라며 선전 포고하듯 구매를 하지만 세월엔 장사 없다고 몇 년이 흐른 뒤에 유행 다 지난 걸 누가 신고 누가 낄까? 여자들의 자기만족이고 자기 암시에 지나지 않는다. 나 또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고객에게 '이건 평생 간직해도 되는 물건입니다'라며 살짝 부풀려 말하며 구매를 유도하기도 하지만 몇 개나 될까? 평생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
또 있다. 여자들이 호사를 떠는 일이 바로 마사지를 받는 일이다. 몸의 모든 근육을 손으로 풀어주며 주물러주는 마사지야말로 여자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 중의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은 집집마다 마사지 의자를 놓고 수시로 받을 수 있는 일이 현실로 되어 뭐 특별히 마사지 샾에 가서 시간 들이고 돈 들여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일이다.
첫째 기계가 사람 손을 어찌 따라갈 수 있을까? 아무리 좋은 첨단의 마사지 의자라 하더라도 사람 손처럼 요리조리 내 입맛에 맞게 주물러 주지는 못할 터이다. 둘째는 분위기다. 집에서 설거지하다 그 옷차림으로 벌렁 눕는다거나 일어나자마자 잠옷을 입은 채로 혹은 티브이를 보다 스르르 잠이 들어버리는 그런 분위기 말고 현대적인 근사한 샾에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은은한 향과 조명 불빛 아래 편안하게 누워 누군가 나만을 위해 정성껏 내 몸을 만져주는 그 기분은...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 내 온몸의 긴장 세포가 나른한 말랑 세포로 이완되어 그 시간만큼은 온갖 근심이 없어지고 마치 나비가 천국의 구름을 타고 다니는 기분으로 비유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이 또한 한번 받으면 그뿐! 곧바로 여기저기 다시 아파지고 그럴 때마다 비싼 마사지를 매번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또한, 그 호사가 눈에 보이는 멋짐이 아니라 내 몸만이 기억하고 느끼는 거라 돈을 쓴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호사에 대한 연속성이 너무 짧다는 데 문제가 있다.
굳이 이유를 말하라면, 명품은 보이는 그대로 누구나 알고 있는 가격이라는 데에 있다. 굳이 내가 내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명품백은 곧 자신이 명품이라는 착각을 해주게 만드는 최고의 이름값이기 때문이다. 에르메스는 돈을 주고도 VIP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걸로 유명하다.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명품도 매년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 여자들이 불을 켜고 이번 해가 아니면 절대 그 가격에 살 수 없다는 명목 하에 호주머니를 비워내는 게 현실이다. 그게 어디에서 오는 소비 심리인가? 돈 쓴 만큼 눈에 보이는 게 있으니 그만큼의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줄을 서가며 구매하는 게 아닌가?
네일은 시간적 소요도 한 시간 정도로 짧고 티셔츠 한 장 정도의 저렴한 가격으로 약 한 달가량 동안의 기쁨을 준다. 더군다나 그때의 내 기분과 유행에 맞게 칼라를 선택할 수 있고 시간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사람도 선택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내가 원하는 데로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리적으로도 몇 백가지의 선택권과 결정권이 내 손안에 있고 실질적으로도 아름다움을 한방에 보일 수 있는 강력한 호사다.
미국에서는 노인이 되어 지출하는 목록 중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의 하나가 네일과 헤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미국 할머니의 상징은 얼굴은 동양인에 비해 주름이 많아 나이가 들어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매일 헤어샾에 가서 드라이를 하고 주기적으로 네일 샬롱에 들러 손발톱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함으로써 전형적인 미국 할머니의 단정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옷이나 가방 같은 패션이나 소품의 명품 이름은 몰라도 자기 신체에 주는 호사는 빠트리지 않는 지출의 필수 아이템으로 미국 여자들이 지켜가고 있는 문화다.
네일이 어느 순간 한국에서도 유행이 된 듯하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조그맣고 아기자기한 네일 샾이고 이제는 웬만하면 네일 샾에서 내 손을 맡기는 여자들이 많아졌다. 역시 한국인들의 손기술은 일품이라 어느 곳이나 선수들이 대기하고 있다. 그런 거에 비하면 이곳은 베트남 사람들이 네일 시장을 꽉 잡고 있어서 한국 사람처럼 디테일하게 잘하는 곳이 없다. 한국인이 네일샆을 오픈한다면 대박이라는 정보를 마구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는데 암튼 이제는 그냥 맨손을 내미는 게 예의에 벗어나는 정도의 인식까지 흐른듯하다. 더군다나 시간이 없는 사람을 위해 네일 샾에 굳이 가지 않더라도 요즘엔 스티커형의 네일이 많이 나와서 편리한 세상이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마사지를 집에서 기계로 받는 것이 샾에서 받는 것보다 시원찮듯 네일도 집에서 스티커로 붙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일반 주부들은 매일 설거지에 집안일을 해야 하기에 스티커를 사용한다는 게 쉽지 않을뿐더러 네일 샾에서 편안하게 음악을 들으며 소곤소곤 나의 일상을 공유하며 느긋한 1시간의 여유로 호사를 떠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뭐 돈이 많으면 뭔들 못하랴'라고 말할 수 있다. 맞다.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돈이란... 누구든 돈을 쓴다. 누구나 돈을 쓰는데 과연 이 돈을 누가 어디에 얼마큼을 쓰느냐는 모두가 다르다. 누구는 자식 입에만 다 털어놓고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돈을 모으는 재미로 입지 않고 먹지도 않고 오로지 자린고비처럼 돈만 모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나를 개발하기 위한 것에 집중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돈을 쓰는 구멍은 모두가 다르다고 한다.
내가 어디에 돈을 지출하는지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고 뭐든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욕심내서 구매해서 사치하고, 자신에게는 지나치게 아끼고, 반대로 나만을 위한 일만 해서도 안 된다. 뭐든 적당한 선에서 나를 가꾸고 자식에게 나누어주는 중도의 길을 걸으며 평행을 유지한다면 크게 비난받거나 크게 남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돈을 유용하게 다룰 수 있다. 돈도 물건처럼 내가 다루기 나름이고 돈은 내가 써야 내 돈이지 내가 쓰지도 못하고 통장에만 있다면 내 돈이 아니고 내 주머니에 있다가 다른 주머니로 넘어가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실은 여자의 호사가 별것도 아니다. 많은 돈이 들어가야지만 호사고 힐링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아주 조금, 아주 작은 것에 크나큰 기쁨과 만족을 느낀다. 복숭아 막걸리 한 모금에 핑크빛 얼굴이 되어 헤죽 웃으며 호사를 만끽할 수 있고 장미 한 송이가 들린 남편의 손에 마음이 심쿵하고 무심히 이쁘다는 말 한마디에 멀리 추억여행을 떠난다. 그런 작은 호사들로 힐링이 되고 그 힐링으로 나이 듦에 만족하며 삶을 영위한다.
중요한 건 한 달에 한 번 네일을 하며 나만의 힐링타임을 갖는다는 건 내가 오늘을 살아가며 보상받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침부터 기분이 업된 이유가 바로 '오늘은 어떤 칼라를 내 손에 입힐까?' 하는 것에 있었음을 형광 그린 칼라를 손톱에 바르며 알게 되었다. 나를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주는 베트남계 남자의 손길이 고맙고, 봄이 되면 갑자기 건강해지는 내 손톱에 감사하고, 다시 찾아온 찬란한 봄에 끝없는 미소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