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ㅣ두 딸을 낳고 숙제를 마치게 해 준 아들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나에게도 통하는 모양이다. 배란기를 맞춘다고 했는데도 임신이 되는 걸 보면 남편의 ‘내 아이 맞아?’라는 우스갯소리도 들을만하다. 동성동본이라 결혼신고를 하지 못해 1년 정도는 아이 없는 둘만의 신혼생활을 즐기자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난 임신을 하고 말았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도 민망했던 어린 신부였다. 어린 신부 옆엔 어린 신랑이 있는 법! 남편은 민망해하는 나의 속사정도 헤아리지 않고 햇복숭아며 신 자두며 심하게 입덧하는 나에게 먹고 싶다는 것이면 뭐든 박스채로 내 앞에, 어머님 앞에 날랐다. 한집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하늘에서 내린 효자가 모두에게 잡음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양쪽 여자에게 똑같이 공수하는 수밖에..
신념까진 아니더라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무작정 아들을 낳고 싶다는 마음에서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성별을 알 수 있을까요’? 나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아니요,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두 번도 못물어보게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당시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짙어 남자 영아보다 여자 영아의 인구비율이 낮아 법적으로 임신 때 의사가 임신부에게 성별을 알려주면 (혹시 여자아이면 낙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사가 혹독하게 처벌을 받을 때였다.
그래도 매번 물으니, 아니면 한 8개월쯤 지나 배가 제법 불룩하게 나오고 태아의 성장이 끝나 낙태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길녀를 낳겠어요. 체중이 안 느는 걸 보니 일을 많이 하시나 봐요. 에구! 입술이 엄마를 닮아 앵두 같네요" 어라? 이 말은 딸이라는 말인데... 잘못 말씀하시는 게 아닐까? 길녀 (길에서 여자애를 낳겠다는 말)가 아니라 길남이 일 것이고 앵두 같은 입술이 남자면 더 매력적이지 뭔 소리야!
모로 가도 집에만 가면 된다고, 의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법적으론 안 되니 돌려서 말하는 건데도 오히려 나는 진짜로 말하면 아들인데 돌려서 말한다고 혼자서만 착각을 한 것이다. 마인드 왜곡까지 해가며 아들을 원했건만, 공주를 낳아서 축하한다며 간호사가 막 태어난 아이를 분만실에 실신해 누워있는 내 코앞에 갖다 주며 말하는데, 난 내 눈을 그냥 슬며시 감고야 말았다.
딸을 낳았으니 아들 하나만 낳는다는 계획이 무산되고 둘째를 임신했다. 임신 7주 안에 입덧이 없으면 계류유산이 되는 두 번의 쓰라린 경험으로 제발 입덧을 해야 한다는 기막힌 기도를 했고 드디어 커피 맛을 잃어버리는 입덧이 시작되었다. 첫째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끼한 고기가 당기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여러 인테리어 현장을 돌아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공사현장의 소란함이나 거친 현장 노동자들과의 기싸움에 행여 내 배 안에 있는 남자아이(?)가 거칠어지는 성격이 될까 태교가 걱정이었다. 이번엔 첫아이를 대동하고 산부인과에 갔다. 들어가기 전에 딸아이 손을 붙잡고 교육을 시켰다. 의사 선생님께 이렇게 물어봐 ’ 아기가 여동생이에요? 남동생이에요?’ 기특하게 생글생글 웃으며 애교 섞인 말투로 시킨 대로 그대로 물었다. 그런데.......
”여동생이라 좋겠네~~“
”엄마, 여동생이래. 야호!! “
난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어 버렸다. 또 딸이라고? 상상도 안 했다. 나의 100% 맞는 예지몽에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백곰이 얼음 바다에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 오더니 내 오른팔을 덥석 물었으니 아들 태몽이 틀림없고, 첫아이 임신 때 당겼던 신 과일들은 입에 대기도 싫고, 평소엔 즐기지 않았던 기름진 고기 음식만을 찾아다니며 먹었고, 나의 임신한 배의 모양도 첫아이와는 다르게 뒤태가 배 양옆으로 넓어져 앞 배만 볼록 나왔던 첫째와는 확연히 달랐고, 정말이지 여러 가지로 아들이어야 하는 이유가 너무도 많았는데 이럴 수가!
꼭 아들을 낳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그러고도 두 번의 계류유산을 하고 나니 담당 의사가 습관성 유산이 되면 자궁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다시는 임신하지 말라며 임신중지령을 내리셨다. 손만 잡아도 임신이 잘되고 출산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잘 낳을 자신이 있는데 왜 그토록 원하는 아들은 없는 걸까?
누구는 말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불임부부도 있는데 복에 겨웠다 하고, 또 누구는 건강하고 이쁜 딸을 낳았는데 더 이상 바라는 건 죄라고도 하고, 딸을 낳으면 비행기 타고 아들을 낳으면 버스도 못 타는 노년이 된다고도 하고 딸은, 커서 엄마랑 친구가 되지만 아들은 커서 며느리 친구만 된다고들 한다. 그런 말들을 모두 나열하기엔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지만 난 그냥 귀를 닫았다. 난 아들이 없다....
그러다 미국에 왔다. 두 딸 애들과 씩씩하게 살고 있었지만, 마음 한쪽의 허전함은 채울 수가 없었다. 뚜렷한 이유를 알고 있었고 그 이유를 해결할 수도 없음을 알기에 겉은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텅 빈 속 빈 강정처럼, 다 끝내지 못한 숙제가 남은 것처럼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미국에 오니 성별이 확실히 나뉘어 더욱 날 절망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옷을 파는 매장에 들어서면 오른쪽은 진한 색감의 남자 상품이 왼쪽은 알록달록한 여자 상품들로(왼쪽과 오른쪽 성별이 바뀐 매장도 있다) 정확히, 나는 절대로 원치 않는데, 양쪽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이 옷을 구매하러 갈라치면 들어서는 입구부터 우리 아이들의 성별을 인식해야 한다. 일단 오른쪽에서 남자아이 옷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힐끗 본다. 부럽다. 얼마나 좋을까? 남자아이 옷을 고르는 기분이란....
모성본능에서 오는 일종의 단순 기억 상실증
험한 인테리어 일을 안하고 집안일만 해서인가? 공기가 너무 좋아 내 자궁도 건강해진 이유일까? 그것도 아니면 원래 정말로 손만 잡으면 임신이 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세 번째 임신을 했다. 일단 7주 안에 역시 커피 맛으로 입덧의 시작임을 알리고 이번에는 신과일도 맛있고 느끼한 고기 음식도 맛나고 특히 초콜릿이 달달 하니 당겼는데 희한한 건 모든 아이들의 임신 기간 내내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는 건 일치한다.
커피를 입에 달고 살만큼 설탕이 듬뿍 들어간 커피를 좋아하는데 임신만 하면 냄새가 고약해질뿐더러 아무리 설탕을 넣어도 커피 고유의 맛이 없어지고 한약처럼 씁쓸하고 텁텁한 맛이 느껴져 자동 반사적으로 커피 금지령이 내 안에서 내려진다. 엄마라는 모성본능에서 오는 일종의 단순 기억 상실증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여지없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16주가 흐르고 드디어 모노그램으로 성별을 알 수 있는 임신주기가 되었다. 이미 호랑이가 나를 덮치는 꿈을 태몽으로 꾸었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지인들에게 발설조차 하지 못한 채 미국 친구인 Donna와 함께 Lab 오피스에 갔다. 3D로 천천히 아이의 얼굴과 몸의 길이 다리, 팔 그리고 목둘레를 재는데 나와 Donna는 온통 그거(?)에만 집중되어 있어서 의사가 말하는 다른 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러다 서서히 중요 부분으로 가더니 ‘Boy’라고 말했다.
그 순간 나와 노랑머리 친구는 어깨를 부여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의사는 그 광경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친구가 연신 코리아의 아들 선호 사상에 대해 설명하며 동의를 구하고 우리 셋은 그렇게 울고 웃었다. 나는 숙제를 마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황홀했고 그들은 아들 선호 사상으로 이리도 좋아하는 나를 보며 기뻐했다. 딸이면 어떠냐 하시며 울고불고하는 나를 오히려 위로해 주셨던 시어머니는 전화를 드리자마자, ‘에구, 장~하다. 애미야’ 라고 말하심으로 얼마나 원하셨을까 하는 마음을 대신하셨다.
숙제를 다 마쳤다.
그 누가 보기에도 멋진 균형 잡힌 5명 합 채가 되었다. 딸이 위로 둘이 있고 아들을 낳았으니 300점짜리라며 기뻐해 주시는 사람들 뒤로 우리 딸들이 보인다. 통통하고 뽀얀 아기가 신기한지 사랑스럽게 만져보며 웃고 있다. 딸들에게는 숙제를 하다만 아이 대하듯 만족스러운 엄마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아들을 낳고서야 아이 탄생의 기쁨을 가슴으로 누리는 호사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어 아마도 죽을 때까지 딸들에게 미안해하며 살 것이다.
사실 셋을 키워보니 딸이 아들보다 낫다 아들을 둔 엄마로서 말하는 것이라 딸만 있는 부모는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지. 내가 딸만 있을 때 느끼는 기분과 같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