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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05. 2021

50세, 글쓰기 딱 좋은 나이

200만 조회수를 기념하며 남기고 싶은 말

잘하는 게 좋아하는 것이고,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누군가 묻는다. 잘하는 걸 먼저 해야하나요? 좋아하는 걸 먼저 해야하나요? 잘 생각해보면 내가 남들보다 잘하면 재밌는 것이고 재미있다는 건 그만큼 좋아한다는 것이다. 내가 잘한다는 것은 그 일이 만만하다는 것이고 만만하게 해도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고 그래서 재미있고 또 그래서 좋아하는 일이 된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좋아하는 일이 재미있는 일이고 내가 잘하는 일이다.


말장난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결국은 내가 잘하는 것이라는 것과 좋아하는 일을 찾은 행운이 그냥 온 것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이다. 처음 글을 쓴 게 딱 2년 전이다. 단 한 번도 글을 써 본 적이 없었다고 하면 말장난하냐고 말하는 분들이 계실 정도로 이제는 며칠 글을 쓰지 않으면 손이 근질근질거리고 가까운 지인들은' 요즘   ?' 라는 말을 하신다. 그 정도면 글쟁이라 할 수 있는데 사실이다.


2년 전까지 글을 쓴 적이 없다.


물론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우리 시대로 말하면 국민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의 반강제적인 추천으로 사생대회 같은 걸 나가 본 적은 있다. 원고지를 받아놓고 친구랑 얼굴에 팔을 괴며 커다란 바위 위에서 사색하는 척하며 찍은 사진이 남아있는 걸 보면 그냥 참석만 했지 뚜렷이 글을 써서 제출한 기억은 없다.


그래도 다이어리는 꾸준히 써왔다. 결혼을 하자마자 시어머님이 가계부를 주신 게 계기가 되어 간단히 일상 스케줄을 적다가 때에 따라 한 페이지 정도 일기식으로 쓰다 보니 약 20여 권의 다이어리가 내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간혹 '우리 딸이 언제 피아노를 시작했지?' 라던가 '언제 우리 아이가 처음 생리를 했더라?' 같은 사소하지만 한 번쯤 기억하고 싶은 날이 불현듯 떠오르면 '엄마가 기록해놨지' 하며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울고 웃는다. 그럴 때마다 기록이 주는 흔적의 소환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그러던 중 2년 전쯤 나의 무료함과 허무함에 극치를 달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나에게 글쓰기를 권했다. 우리 집 강아지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던 스토리가 너무 리얼했다며 글로 한 번 남겨보라는 권유를 장난삼아 말했고 난 덥석 물었다. 그래? 재미있겠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욱 적어 내려갔다. 일기장으로 3장쯤 적었을까? 친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쑥스러웠지만 친구의 리액션이 극에 찼다. "어머, 너무 재미있게 썼다. 글 속으로 들어가겠어. 너 재능 있다...." 라며 오두방정을 다 떨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칭찬으로 강아지 머리를 쓰다듬으면 꼬리를 살랑거리며 두 귀가 아래로 내려가며 주인의 손바닥을 얼굴로 비비며 웃는다. 꽃조차도 ‘잘 큰다’ 칭찬하며 물을 주면 물먹은 즉시로 고개를 바짝 들어 주인에게 화답한다. 꽃으로 말이다. 전문적인 글쓰기 코치도 아니고 하다못해 국문과를 나온 사람도 아닌 그냥 내 친구의 한마디가 나를 꽃 피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이었다.


난 원래 성격상 뒤집어 보지 못한다. 있는 그대로 보는 사람이라 그 말을 진심으로 듣고 냅다 매일 거의 한편씩 글을 써댔다. 시작은 글 한 편이었지만 50년 세월을 글로 표현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실타래 풀듯 지난 일들을 토해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이 말이 아닌 글로 풀어지면서 나의 아픔의 시작점이 어디인지, 어느 마디에서 꺾였는지 왜 허무함에 몸서리친 새벽의 날들이 그리 많았는지 서서히 알기 시작했다.


글의 치유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글을 브런치에 올리며 나를 위로해주고 응원해주는 독자가 한두 명 생기기 시작했다. 수필은 작가의 온 마음과 온 생각이 사실 그대로 표현되고 작가의 진실이 통했을 때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을 얻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 나의 생활 에세이가 서서히 독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신기하게도 나의 생활에 활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던 계기가 되었다. 내 몸에 글이라는 옷이 입혀지며 훨훨 날으기 시작했다.


내 미비한 글이 포털 사이트 다음에 올라가고 조회수가 올라가고 구독자 수가 늘면서 나에게도 이런 재능이 숨어 있었나 새삼 놀라게 되었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구독을 누른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라는 걸 나 또한 잘 알기 때문에 나를 구독해 주시는 모든 분께 뜨거운 감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구독자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는 창이 있다면 개인 개인에게 머리 숙여 감사함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왕의 서재'라는 유명한 한국 출판사와 연락이 되어 생애 처음으로 <킴스 패밀리 인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나의 수필집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게 순조로울 수는 없는 일! 2020년 3월 13일 책이 나온 날 미국에선 코로나로 세상이 셧다운 되는 불운을 맞았다. 나름 출판 기념회까지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날벼락이 난 것이다. 글을 쓴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책이 나왔다는 벅찬 감동이 너무 성급했음을 인지해야만 했다.


하지만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시기에 한국일보 칼럼의 한 섹션을 내 이름으로 장식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김지나의 살며 생각하며>라는 칼럼으로 매주 나오게 되었다. 그 뒤로 행운이 한 번 더 나에게 찾아왔는데 바로 한국일보 41회 신춘문예 공모전에 응모한 '창문으로 보는 드라마'가 미주와 캐나다를 포함해서 수필부문에 당당히 1등의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둥둥!!


미주 한국일보 워싱턴 DC 판 <김지나의 살며 생각하며> 칼럼



그날의 기쁨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한 번도 1등을 해보지 못했다. 공부든 피아노든 미술이든... 50세에 그것도 미국에서 한 번도 도전해 보지 않았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엉뚱한 곳에서 상을 타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고 난 그때부터 나의 재능을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모든 예술이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죽하면 머리 좋은 사람이 이쁜 사람 못 따라오고 이쁜 사람이 타고난 복을 못 따라간다고 했을까? 복이란 바로 재능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복을 내가 찾지 않으면 복인지 모르고 생을 마감하고 대부분 사람은 자기의 재능을 30%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한다. 즉 뭐든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 번에 브런치에 통과했을 때는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브런치 심사를 통과했다면 일단은 글을 쓰는데 하자가 없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고 그 말은 작가로서 세상에 글을 내놓아도 된다는 일종의 통과 의례를 마친 셈이니 걱정 없이 써도 된다는 보증수표와 같은 것임을 알았다. 혹시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고자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당장 심사대에 올려보시라는 말을 드리고 싶다. 흥정도 대봐야 하는 거고 진주도 꿰어야 빛을 발하는 이치로 글 쓰는 것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반드시 글로 내 생각을 표현하고 글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되어야 진정한 글로써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나의 최고 조회수를 찍은 글은 '명품을 대하는 미국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초창기 글이다.


이 글이 40만을 넘으면서 조회수가 급격하게 올랐고 구독자 수도 많아졌다. 나의 글 대부분 내용은 미국에서 생활하는 생활 에세이로 등장인물은 우리 아이들이고 '명품...' 은 막내아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명품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국 아이들과 명품에 민감한 한국 아이들을 비교하면서 쓴 글이었다.


나에게는 특별한 환경이 있다. 일단 한국이 아닌 외국 생활을 하고 있고 아이가 세 명으로 다각적이고 색다른 환경에서 교육하는 면에서 특이한 사항이고 한국과 밀접한 일을 하기에 거의 동시간대 생활을 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비교하는 글이 많았다. 그래서 응원 글도 많이 받은 반면 비교 글을 쓰다 보니 악성 댓글을 받는 일도 많아 마음고생도 많았다. 모두의 관심이 많았다는 의미에서 기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국의 2 VS 미국의 2’, ‘아직 멀었다 미국은’, 그리고 최근에 올린 글 중에 ‘미국에선 개나 소나 골프를 친다는데요’, 라는 글에서 보듯 미국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생활 에세이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던 덕에 메인에 올라가는 빈도가 잦았던 이유다. 중2 아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이 나라마다 다르게 느껴짐에 갑론을박이 있었고 골프 이야기에도 나라마다 느끼는 온도가 달라 댓글에 대댓글이 달리기 일쑤였다. 백신을 맞고 난 후 부작용을 논하다 더이상 마음을 다치기 싫어 글을 내린 적도 얼마 전에 있었다.


나라가 달라 생각하는 마인드 또한 다각적이다 보니 생각하지 못한 부작용으로 마음앓이를 하는 것 또한 글이 주는 탠션이고 매력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무런 이슈가 없었을 일을 글로 소통하다 보니 의견이 다름을 알고 조율하고 서로 배우는 계기가 됨이 글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면이 나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어릴 때부터 꿈이 작가가 되는 것이고 그 꿈을 위해 노력하며 매일 글을 쓰고 등단을 위해 많은 신문사와 잡지에 원고를 투고하는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만 6살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6시간씩 강행군으로 피아노를 쳐댔어도 예고에 떨어져 아빠와 의절을 한 나였기에 실패에 대한 아픔을 잘 알고 있다. 실패를 해보았기에 상에 대한 기쁨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글이 나에게는 행운처럼 다가왔고 내 노력보다 더 큰 행운이 단숨에 찾아왔다. 남들은 50에 무슨 새로운 일을 하냐고, 그냥 잘하는 일이나 잘하고 있으라며 인생을 다 산 것처럼 행동하며 조언을 한다. 갱년기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요란한지 모르겠다며 갱년기를 소리 없이 잘 넘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한 고개를 넘기라 한다. 하지만 난 50세라는 나이는 다른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딱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라고 무서운 일이 아니다. 일기도 좋고 메모도 좋고 날씨 이야기를 써도 좋고 그냥 그날의 기분을 그림이나 만화를 그려도 좋다. 그저 연필을 쥐고 내 생각을 표현하다 보면 내 생각이 정리되고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동안엔 우리가 너무 바빴다.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굳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도 않고 50이면 생활에 공중전까지 치러 여우 골에 들어가도 여우와 어깨동무하며 나올만한 맷집이 생겼다. 또한, 세월이 흐르며 너무도 많은 경험이 쌓여 나이테에 경험테까지 단단히 둘러져 있어 호랑이가 들어와도 끄덕없는 아줌마의 근성이 생겼다. 그런 이야기를 써보자. 그런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하자. 춤으로 인생을 승화하고 음악으로 소리를 내보자. 우리의 잠재된 능력을 펼치기에 딱 좋은 나이가 50이고 60이다. 오늘이 가장 우리 인생에서 젊은 날이다. 내일이 오기 전에 오늘 무엇이든 도전 해보자. 누가 아는가? 나의 재능이 그 어디에 있는지...



저를 선택해주신 2천여 명이 넘은 구독자님!


저를 지지해 주시는 많은 구독자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만, 미비한 제 글을 읽어주시고 때론 댓글로 응원해주시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조회수가 200만이 넘었고 구독자 수가 2천 명이 넘었고 글을 쓴지 2년이 넘은 시점에서 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슬프면 슬픈 이야기로 기쁘면 기쁜 이야기로 그리고 행복하면 행복한 이야기 그대로 글로 전하고, 그 글이 님들께도 그대로 전해져 저와 함께 기쁘고 슬프고 행복해하시는 모습에 저는 외롭지 않게 이런 타지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고질병인 허무와의 싸움에서도 글이 주는 행복함으로 그리고 그 글을 읽어주시고 힘주시는 님들의 바라봄으로 저는 너무도 행복하게 재미없는 천국을 아이들과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제가 보답할 일은 계속해서 님들과 함께 공감하는 글로 소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 우리 만나요. 감사드립니다.


미국 메릴랜드에서 김 지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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