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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1. 2021

'코로나 베이비붐', '코로나 고아'  그 치명적 차이

코로나로 아이의 출산이 많아질 거라는 예상을 누구나 했었다. 격리된 집에서 부부가 함께 집에 많이 머물면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피임에 관한 대책들이 마련된 나라들이 많았다. 미국 같은 경우 무료로 피임약을 배포한 주도 있었고 인니 같은 경우 '다 해도 임신만은 하지 말라'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오히려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불안감의 스트레스로 인해 출산율이 낮아졌다.


2년여 세월이 흐르고 결국 위드 코로나 시대를 접어들면서 코로나 시기의 출산율에 사회적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처음 중국 우한 바이러스 운운할 때에는 이렇게 무섭고 장기전으로 갈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세계 모든 사람은 재택근무로 인해 출산율이 높아질 거라는 예상을 안 할 수 없었다. 오락 시설이 부족한 시골일수록 그리고 저학력일수록 출산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그중 한국 시골은 예외다. 지금 한국은 도시나 시골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지방도 도시 못지않은 오락 시설과 사회적 기반시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고 지방자치제의 도입으로 경쟁적으로 각 지방의 개성을 살려 구석구석 낙후되지 않게 발전되어가고 있다. 아주 구석진 시골이나 바닷가 근처를 여행해도 그곳만의 특성을 살려 도시보다 더 멋진 장소로 만들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국처럼 골고루 발전되지 못하고 주마다 교육 수준이나 경제 활동의 제반 시설이 도시별로 구분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곳도 많다. 뉴욕이나 엘에이 같은 도시는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더욱 발전되고 있지만 그런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백악관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걸 알면 미국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선진국과는 다르게 미국의 출산율은 결코 저조하지 않다. 미국의 출산율은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 다산을 하는 가정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평균 2명 이상이고 나를 비롯해 3명의 자녀를 둔 가정이 많고 4, 5명의 자녀를 둔 가정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는 나라가 부강한 관계로 18세 이하 자녀에게 주는 정부 보조금도 있고 지금처럼 코로나로 인한 각종 혜택도 다양하고 세금 절세에도 유리한 이점이 많아 다산에 대한 부담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래서 특별히 미국에서 출산율에 대한 생각 자체에 초점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코로나 시기의 출산율은 예상을 깨고 저조했다. 사상 최저 출산율을 보였다. 확실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미국 가정의 98% 이상이 아이를 병원에서 출산하는 데 가장 안전해야 할 그 병원이 코로나로부터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의료시스템 붕괴로 미국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그래서의료인과 의료에 관련된 어느 것 하나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출산율의 비율이 크게 차지하게 되었다. 그동안 바쁜 현대인으로 살면서 가족계획을 미루었던 부부들은 행복한 아이의 웃음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죽음으로 이르는 무서운 바이러스의 확산이 인간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인간의 출생이 죽음을 넘지 못한 결과로 출산율 하락이라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코로나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미국에서만 70만 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1900년대 67만 5천 명의 사상자를 냈던 스페인 독감을 떠올리며 더 이상 코로나부터 자유로운 세상이 오지 않으리라는 짐작을 하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100년 전의 미개한 의료에도 1년 만에 종식되었던 독감이 21세기 그것도 코로나 백신이 개발되어 국민의 50%이상이 접종했는데도 여전히 수치가 내려가지 않음을 보고 더 이상 코로나 없는 세상은 있을 수 없고 이제는 위드 코로나 즉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에이즈나 독감처럼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격리만을 강요하며 전 세계가 움직이지 못한 채 제2차 팬더믹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점점 체념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코로나 베이비에 대한 생각이 높아지게 된 시작점이라고 생각된다. 이때다 싶은 것이다. 처음엔 병원의 시스템으로 불안해서 아기를 가질 수 없고 미루기만 했던 부모들은 더 이상 시기적으로 물러설 수 없고 서서히 안이한 생각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


왜 그러지 않는가? 맞다 보면 맷집이 생겨 더 이상 아픈 느낌이 없어지는 게 사람이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그러려니 싶은 게 사람이고, 더 이상 기대가 없으면 부러울 것도 없어지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가진 게 없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고 말하듯 코로나로 방금 내 곁에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저세상으로 가버리고 내 옆에 함께 누워있었던 사람이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세상이 왔으니 그래서 더 이상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어지게 된 걸까?


출산율이 평균을 초과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만 매년 300만 명 정도의 아기가 출산되고 있었고 매년 조금씩 감소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코로나의 여파로 더욱 줄었다가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긴 하지만 전년 대비 수치로 볼 때 위드 코로나 시대가 개막되면서 코로나 베이비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출산과는 반대로 코로나로 한 부모를 잃은 세계 아동의 수는 150만 명이 넘었고 양부모 모두를 잃은 고아만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만 14만 명이 넘는 고아가 생겼다. 실로 비통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왜 부모가 안 계신 아이를 고아라 하고 그만큼의 안쓰러움이 배가 되는가? 아이들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18세가 되어야 성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힘이 생기는데 그전에 부모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면 그 정신적 충격과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울타리가 없어짐에 커다란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전쟁고아를 생각하면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미국 같은 경우, 1946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베이비 부머라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말하는데 전쟁 기간 동안 떨어져 있던 부부가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만나게 되고 그동안 미루었던 결혼과 출산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면서 생겨난 세대다. 그 이전과는 다르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세대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성장과 함께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회와 교육 문화 등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들은 80년대와 90년대 소비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6.25 전쟁 이후인 1955년에서 1963년 사이를 베이비 부머로 보고 미국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같은 베이비 부머지만 한국은 오히려 부모로부터 아무런 경제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수성가해야 했던 세대이고 그러면서도 부모와 자식을 동시에 부양하고 공경하면서 살아야 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할 만큼 아빠의 재력에 목숨을 걸었기에 조기유학이나 기러기 아빠라는 신종어를 만들면서 자식들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베풀면서도 자식에게는 도움을 받기 힘든 세대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유교 시대와 신세대에 낀 우울한 베이비 부머가 되었다.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미국은 전쟁을 치르긴 했지만, 자국에서 치른 전쟁이 아니라서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전쟁을 치르고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정부에서 그만한 보상을 해주었기에 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교육과 경제에 힘이 보태졌다. 하지만 한국은 자국에서 전쟁을 치루었기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희생이 강요되었고 특히 그 시절에 태어난 아이들의 희생이 가장 크게 작용 되었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자, 다시 코로나 베이비 붐으로 돌아가 보자.


베이비 붐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의 붐이다. 코로나 베이비붐 또한 반드시 일어날 일인데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듯하다. 아마도 모든 게 제약이 많아지는 세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벌써 코로나로 인해 신생아들의 평균 아이큐가 현저히 낮아졌다는 결과를 발 빠르게 내놓았다. 이들이 크면서 받게 되는 2020년 이후 태생에 대한 암묵적인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는 그들에게 또 다른 굴레가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더 안타까운 일은 코로나 고아도 모자라 그 아이들이 이젠 고아를 해외로 수출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한국이 지난 65년 동안 전체 입양아의 40%에 달하는 치명적인 숫자로 해외에 입양을 보내고 있다. 너무도 믿기지 않은 사실은 세계에서 제일 저조한 출산율로 한 가정당 1.0명도 되지 않는 비율인데 어떻게 해외입양은 이토록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입양에 대한 인식의 문제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은 돈이다. 한국에서 입양을 하면 한 명당 2백여만을 받는데 해외로 입양을 하면 2천만원 가량을 받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그저 믿기지 않는다.


코로나 이후에 코로나 베이비붐이 이슈가 될지 아니면 코로나 고아가 더 많아 이슈가 될지 아니면 그것도 모자라 코로나 고아 수출이 이 와중에도 너무 많아 더 크게 이슈가 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 이상 아이들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으로 인한 아이들의 희생은 정의와 이념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대단한 무언가로 고철 되어 고아가 될지언정 부모의 죽음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정당하게 살아갈 힘과 토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떠한 이념이나 사랑 없이 무차별적인 폭격을 맞은 죽음은 그 누구에게도 정당함을 인정받을 수도 존경스러운 마음으로 그들을 기릴 수도 없는 그저 unlucky 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가장 소외된 코로나 고아와 그 가족들을 더욱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고 어떠한 곳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고 정부는 그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시대에 베이비붐으로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과 코로나 시대를 겪으면서 부모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 모두에게 사랑과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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