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골프를 시작하면 만불 정도는 든다는 말을 많이 들은 터라 정말 만불 정도는 써야 골프에 입문을 하려나? 싶어서 시작한 메모였다. 나름 기록을 좋아하는 터라 처음 골프채를 잡고 레슨을 받은 비디오에서부터 골프채를 받은 날 찍은 반짝이는 골프채 그리고 어제 산 골프옷까지 차근차근 그 기록들을 남겼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결산을 보았다. 두둥..
만불이면 요즘 환율로 따졌을 때 천백만 원이 넘는 돈인데 그만큼 드는 운동이 어디 있다고..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고급 스포츠 중의 하나인 건 사실이다. 특히 겨울 스포츠로 스키가 그 대표적 운동이라 하겠다. 땅이 아닌 산이라는 특수함이나 4계절이 아닌 겨울에만 할 수 있는 스포츠임을 감안해서 일단 운동복 또한 특수 제작을 해야 하고 그에 따른 운동 장비 또한 눈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재질 등을 고려해 만들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스키를 위한 기본적인 설계에서부터 건축이나 설비까지 기초 비용이 다른 운동에 비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니 자연스레 비싼 운동일 수밖에 없다.
산에서 즐기는 운동으로 스키가 있다면 땅에서 즐기는 운동은 바로 골프다. 골프 또한 같은 맥락이다. 골프를 위한 넓은 면적을 먼저 소유해야 하고 그 넓은 잔디를 매일 관리해야 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위한 계절별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고급 스포츠임에 확실하다. 아무튼 공 하나로 치고 때리고 던지고 받고 넣고 하는 운동 중에서 최고 럭셔리 운동은 골프지 싶다.
성격적으로 할만하다 생각이 들면 아주 깊게 파고드는 성격 탓으로 운동으로 돈을 들여볼 만하다는 판단 아래 마음껏 저질러보았다. 만불을 들여 내 생애 죽을 때까지 건강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특히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가지고 매일 조금씩 운동하며 평생 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 만불 정도를 투자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호기에 찬 생각에서였다.
매번 종목을 바꿔가며 각종 운동에 투자한 적도 없거니와 운동이라면 기겁을 하고 도망 다니기에 바빴고 운동을 안 해도 몸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일종의 안이한 마음이 깊이 자리 잡고 있던 터라 누가 운동이야기만 하면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속으로는 '아니, 나는 운동이 정말 싫어. 싫어하는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안 하고 그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오히려 건강에 좋은 일이야' 라며 나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었다.
정말 나를 아껴주는 많은 분들이 '어찌 그리 운동을 안 하느냐'며 비타민 하나도 먹기를 귀찮아하는 나를 향해 비난 아닌 걱정과 조언을 퍽이나 오랫동안 하셨지만 오랫동안 잘도 무시하며 살아왔다. 운동을 하면 밥맛도 좋아질뿐더러 건강 유지의 하나가 비타민 섭취라는 사실도 깨닫는 데에는 운동을 시작하고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운동을 하니 배가 고프고 밥을 먹으니 힘이 생기고 힘이 생기니 더 운동할 수 있는 근력이 생기고 조금 욕심을 내어 비타민도 챙겨 먹으니 좀 더 활력이 생기게 됨을 이제야 터득하게 되었다.
또 글이 옆으로 샜다. 언제 돈 만불 이야기를 하는 거야. 후후
왜 이리저리 말을 돌리느냐 싶겠지만, 솔직히 만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니 맘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말이 만불이지 정말 내일 당장 먹을 밥이 없고 당장 내일 고지서에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집도 절도 없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내 글이 만약 그들에게 상처가 된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쉽게 글이 써지지 않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그렇다. 내가 쓰는 만불이 누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위한 발전의 계기로 쓰이는 돈이 되기도 하고 또 누구에게는 만불이 그저 명품 백 하나 사는데 쓰일 수도 있고 또 그 누구에게는 살아가는 데에 있어 아주 커다란 의미로 쓰이는 소중한 돈이 될 수도 있다. 나 또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단돈 만원이 귀한 날이 여러 날이었고 학교 다닐 때는 스타킹 살 돈이 없어 울상 지었고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서 집에 간 적도 있는 이십 대를 보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풍족하게 산 사람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 있었고 그런 시절을 거치며 열심히 일하고 모으고 절약하며 살았기에 지금 그나마 만불이라는 돈을 내 건강과 내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다.
정신적으로 평생 끈을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라면 두 번째로 찾은 게 바로 골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얼마 전 글(개나 소나 치는 게 골프라면서요)에 남겨놓았고 그렇다면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 투자 비용을 일단 만불로 책정했다. 그 이유는 물론 내 주위에 있는 여러 지인들의 말로 어림잡았고 그 비용은 모두 내가 내 힘으로 벌어서 마련하겠다는 생각을 일치감치 계획에 넣어두었다.
골프채에 대한 많은 의견들이 분분했다. 120타 치는 사람이 130타 치는 사람에게 조언하고 110타 치는 사람이 120타 치는 사람에게 열심히 조언하는 게 골프라고 나처럼 완전 초보에게 내리는 조언은 그야말로 의견이 넘쳐났다. 초보니까 일단 여러 가지 채로 쳐보고 나한테 맞는지를 알아보고 그다음에 채를 구매해야 실수하지 않는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어떤 분은 초짜는 어떤 채가 나한테 맞는지조차 감이 없으니 처음부터 인지도가 높은 채로 내 키와 몸무게 그리고 팔의 힘에 따라 처음부터 딱 맞는 채를 구입해 내 손에 익혀서 끝까지 치는 게 좋다는 말이 있었다.
옳다구나! 나는 후자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처음부터 나한테 딱 맞는 채를 골라 그 채로 내 몸에 익히는 게 좋은 말인 듯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채를 바꿔가며 쳐보기엔 나이가 이미 너무 많고 돈이 더 많이 들 거 같은 강한 예감이 들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좋은 채를 구매해서 연습하면 내 손과 채가 하나 되어 최고의 파트너가 되지 싶었다. 뭘 하든 3초 안에 결정을 내버리는 탓에 후회도 걱정도 없이 사는 게 스트레스 없이 사는 비결 중의 하나라는 믿음을 굳게 믿고 나에게 적합한 좋은 채로 구매하기로 했다.
키는 큰 편이지만 몸은 약하고 팔도 약한 편이라 가장 가벼운 채가 필요하다며 젝시오를 권했다. 한술 더 떠서 젝시오 프라임이 새로 나왔다며 이런 채를 프로 선수는 사용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 잘 나가서 다른 선수들과 비교가 되어 선수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말에 선뜻 결정을 해버렸다. 요즘은 물건이 없어 사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임을 고려했을 때 아주 빠른 시간에 젝시오 프라임 골프채가 내 손에 들어왔다.
골프채가 내 손에 들어오니 다른 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구비되었다. 골프가방에서 골프 장갑이며 잡다하게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코치를 섭외하는 일이었다. 누구는 유튜브가 세계에서 제일 좋은 선생님인데 누가 필요하냐며 유튜브만 열심히 보며 연습해도 훌륭하다고 하고 또 누구는 구태여 돈을 들여서 하지 말고 잘 치는 사람에게 가끔 한 번씩 필드에 나가 배우라는 조언도 해주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난 성격이 그리 느긋하지 못하다.
날렵하게 생겼지만 강하게 푸시하지는 않는 느긋하지만 강한 선생님을 만났다. 벌써 두 세트를 돌았으니 나나 코치나 인내를 가진 시간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골프옷에 들어간 비용이다. 내가 그렇게도 극혐 했던 골프옷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며 휘어지는 다리를 감안해서라도 그리고 동양인의 작은 키를 고려하더라도 도저히 용서되지 않는 게 골프웨어였다. 아줌마들이 고등학생도 아니고 왜 그리 짧은 치마와 딱 붙는 티를 입어야만 하는지 거기에 일본 아이들처럼 무릎까지 오는 반 삭스를 떡하니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신고 신발까지도 색색으로 튀게 신어야만 하는지 골프를 치기 전까지는 도. 저. 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도 싫어했던 옷들이 완전히 세상이 뒤집어져서 갑자기 사랑스러운 옷으로 보이기 시작한 건 절대 아니다. 지금도 형형색색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 나와 같은 아줌마들을 완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왜 그리 딱 붙는 옷을 입고 왜 그리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는지는 알겠다. 일단 허리를 비틀어야 하는 운동이기에 헐렁한 옷은 몸의 움직임에 방해가 됨이 분명하다. 몸에 어느 정도 밀착이 되어야 최대로 공간을 넓혀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마 또한 그 안에 함께 부착된 바지가 있어 전혀 부담감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최적화된 옷이라 할 수 있다.
메너란 행동하면서 지켜야 하는 메너도 있겠지만 그 메너 안에는 드레스 코드도 함께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입어야 하는 옷이 있듯 골프에도 드레스 코드가 있다. 승마 같은 운동 또한 메너 운동으로 반드시 연미복 같은 옷으로 엉덩이 부분을 가려야 하고 챙이 있는 모자를 써야 하고 몸에 붙는 옷을 입어 바람의 세기에 맞서 입어야 하는 것과 같이 골프 또한 필드에서 꼭 갖춰 입어야 메너 있는 운동이다.
남자 같은 경우 반드시 카라 깃이 있는 티셔츠를 입어 햇볕 노출로부터 목을 보호해야 하고 벨트 걸이가 있는 바지를 입어 티셔츠가 바지 밖으로 나오지 않게 단정하게 입어야 하고 모자를 써서 날아오는 공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 여자 같은 경우 카라 있는 티셔츠까진 아니지만 파인 옷이나 끈이 보이는 옷은 입지 못하고 반드시 모자를 써야 하고 드레스도 입지 못하고 두꺼운 외투를 입어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잘 가지고 다녀야 하기에 기능성이 강한 옷을 준비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드레스 코드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골프채와 두세트의 코치 레슨비 그리고 골프옷을 구매하는 비용에 연습장에서 볼을 사는 연습비까지 약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쓴 내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만불이 들었다. 초기 비용치고 어마어마한 돈을 투자한 셈이다.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에 투자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뿌듯한 일이고 내가 벌어 내가 산 운동 도구니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요즘엔 명품백 하나에 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서인지 그런 것과 비교한다면 그리 큰돈도 아니라고 혼자 위로해본다. 본전을 뽑아야 하니 더욱 열심히 하리라는 예상도 해보고..
운동은 장비빨이라고 하는데 그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똑같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똑같은 성과를 얻는 게 이치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일단 재능이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하고 무엇보다도 환경이 받쳐 주어야 잘할 수 있고 즐겁게 할 수 있다. 똑같은 재능이 있다고 가정해 볼 때 어떤 도구로 어떤 환경에서 하느냐에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부모들이 기를 쓰고 아이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땡 빚을 내서라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하는 게 부모의 열망이니까..
난 오늘도 골프 연습장에 가서 작은 사이즈 바구니를 칠 생각이다.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가 되어 작은 바구니 하나도 치지 못하는 그런 날이 오면 난 필드 한켠에 있는 넓은 벤치에 앉아 밝게 쏟아지는 햇살과 함께 나의 젊은 날에 입었던 브라운 칼라의 짧은 스커트를 생각하며 환하게 웃을 것이다. 84세가 되어서도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뜨거운 젊음을 노래하며 청중을 압도하는 쟈니리처럼 나에게도 만불이 주는 행복이 평생이길 간절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