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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Dec 16. 2021

총을 가지고 학교에 가는 미국 아이들

아이가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엄마, 메일 봤어요? 학교에서  메일요!"

"왜 무슨 일인데.."

"어떤 애가 내일 학교에 총을 가지고 온다고 하나 봐요"

"정말? 그럴 리가.. 소문만 있는 거야, 아님 진짜 가지고 온다고 하는 거야.."


믿기지 않은 일이라 재차 묻다가 단순한 상황이 아님을 직감했다. 메일을 자세히 읽기도 전에 학교 소식을 누구보다도 빠르게 아는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그 엄마 말이 어떤 학생이 SNS에 내일 학교로 총을 가지고 가겠다는 말을 썼고 그 말을 들은 학교와 경찰이 연계해서 지금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 했다. 직접 총을 가지고 있는 걸 봤다는 아이도 있고 그런 말을 직접 들은 아이도 있다고 했다. 내일 당장 총을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그럼 다음날은 안전한 건지도 의문이고 이래서 어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지 걱정만 하다 전화를 끊었다. 긴 여운이 남았다. 하지만,


일단 아이를 안심을 시켜야 했다. 뒤돌아보면 아이러니한 말이지만 엄마인 내가 볼 땐 우리 아이가 15살 아직 어린아이 같은데 같은 15살 아이가 총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친구를 죽일 수 있는 나이라니.. 그래도 난 열심히 나름 설명했다. 아마 어떤 친구가 장난으로 했던 말에 혹시나 해서 경찰이 조사 중인 거 같으나 별일은 아닐 거라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 아침에 메일이 다시 오면 학교에 가고 메일이 없다면 아직 조사 중이라는 거니깐 학교에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하고 일단 잠자리에 들게 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조차 어른인 나도 모른 채 얕은 잠을 청해야 했다.


여기는 미국이고, 미국은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나라다.


매년 감기로 죽는 일보다 총으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할 정도로 총으로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는 위험한 나라인데도 총하나 갖지 않고 버젓이 살고 있는 것만으로 대단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위험한 전쟁 시도 아니고 의료가 후진국이라 예방접종을 하지 못해 죽는 것도 아니고 모든 자원이 풍요로운 21세기에 총싸움 하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더구나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큰 땅에서 선진국으로 매너있고 개인의 의견을 철저히 존중하며 살고 있는 멋진 나라다. 하지만 총기 소유의 자유로 감기로 죽는 사람보다 많은 숫자가 무고하게 목숨을 잃고 급기야 아이들이 총을 가지고 학교에 가서 무고한 생명을 위협한다 하니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1월 30일 미국의 미시간주에 있는 옥스퍼드라는 공립 고등학교에서 10학년 SOPHOMORE(고등학교 2학년)가 학교 교실에서 총기를 난사해 부상자 중 결국 1명이 더해 4명이 죽고 교사 1명을 포함 7명 이상이 다쳤다. 경찰은 아무런 저항 없는 범인을 검거하고 그 원인을 조사하고 있지만 별다른 발표 없이 이슈화 되지 않은 채 조용히 묻혀지고 있는 듯하다.


중요한 건 그 학생이 SNS에 미리 총소지에 관한 언급으로 이 같은 사건을 미리 예고를 했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은 누구나 사춘기의 아픔을 겪으며 한 번쯤 터무니없이 무풍지대의 한 일면으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큰소리치며 뛰쳐나간다. 우리 때도 그랬었고 세월이 흘러도 그러한 시기에 그러한 일들을 겪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청소년의 반항 시기에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죽음이 그저 인형 놀이에 불과하다고 생각되는 건 아닐까? 설마 어른들이 이렇게 아이들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정말 그 녀석은 총을 소지하고 학교에 등교했고 별다른 이유 없이 여기저기에서 총을 쏘았고 실제로 친구가 그 총을 맞고 죽었다. 어떠한 연유로 그 어린 나이에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렇게 아무런 이유 없이 죽게 한 그 총을 왜 이 나라는 아무런 대책 없이 쉽게 소지하고 마구 휘두르게 만드는가? 엄마 입장에서 그리고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이 나라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우리가 당당히 말해야 하지 않을까?


"12분에 한 명꼴로 총으로 사망하고 있는 미국"


미국에서는 학교 내 총기사건으로 1년에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백여 명의 학생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다. 코로나로 등교를 하지 않아 그나마 그 숫자가 줄어들긴 했지만 매년 1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온다. 12분에 한 명꼴로 총으로 사망하고 있는 미국이라 학교 총기 사고는 그저 빙산의 일각처럼 생각되는지 어린아이들의 희생이 그저 어른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힘없이 죽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난감처럼 놀다 장난감 인형처럼 쓰러지는 이러한 현실을 그 누구의 잘못이라 생각하는가?


미국의 인구가 3억 3천여 명인데 민간인의 총기 보유는 미국 인구보다 많은 4억정 정도 된다고 한다. 세계 인구의 4%인 미국인의 총소유는 전체의 42%를 차지하고 있다는 계산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해 총을 구입하는 절차가 그만큼 쉽다는 이야기다. 희한한 일은 술은 21세가 되어야 살 수 있는 나라 또한 미국이다. 21세가 되지 않으면 절대 술을 살 수 없고 마실 수도 없도록 제도화되어있다. 담배 또한 18살이 넘어야 구매를 할 수 있도록 법을 단단히 묶어 놓아 한국처럼 술이나 담배에 절대 관대하지 않다.


하지만 총을 구입하는 절차는 너무도 쉽게 그 안전망이 뚫려있다.


주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대체로 사냥용 장총은 18세 이상, 일반 권총은 21세 이상이면 간단한 신원조회를 거쳐 총을 구입할 수 있다. 신원조회에서 중범죄거나 마약 중독자 그리고 정신 이상자 등과 같은 기록만 나오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탈 때도 ID(운전면허증) 조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불법체류자는 국내 비행기도 타지 못하는 현시점에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살상무기는 이렇게 간단한 절차로 구매할 수 있는지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총을 사기가 담배 사는 것보다 쉽고 술을 사는 것보다 10배는 쉬운 일이라고 한다. 또한 투표를 할 때는 유권자 등록 등 상당히 까다롭기도 하고 등록을 하지 않으면 당일 투표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반면 총은 당일 구매가 가능하고 그날로 내 소유가 된다. 한마디로 마트에서 껌 사는 일처럼 쉬운 일이고 심지어 생일선물로 아이들에게 이쁘게 디자인된 권총을 사주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사격연습을 하기도 한다. 모두 나를 지키는 일이 우선이다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다.

 


생각해 보라.


한국에서 총기를 소유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영화에서 총을 항상 휴대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경찰이나 형사들도 총을 반입하는 절차나 반납하는 과정이 까다롭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일인지를 보여준다. 탈영범이 그토록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 또한 총을 소지하고 무단 탈영했을 확률이 높아서일 것이다. 하물며 민간인 특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소년에게 총을 소지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한국의 사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해 본다.


그러한 일이 미국에서는 너무도 쉽고 간단한 절차로 청소년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1인 1가구도 아니고 1인 1권총 이상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러한 사고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올 한 해만 해도 4만 명 이상이 총으로 인해 사망했고 그중 11세 미만은 282명, 12-17세 청소년은 1118명에 이른다. 학교 총기사건은 이처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한 부분이기 때문에 총 소지의 규제를 완벽하게 막지 않은 한 절대 그 수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총기규제에 대한 여론이 들끓는다. 하지만 이번엔 오미크론의 코로나 확산 등 다른 이슈에 밀려 크게 여론화되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총규제를 강화하는 그러한 법은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수정헌법 2조에 의거, 무기를 가지고 휴대하는 시민의 귄리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미국인의 다수가 존재하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오히려 트럼프 소속 공화당에서는 마치 총 소지가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절대 흔들릴 수 없는 것인 양 더욱 확고하게 붙들고 있다. 바이든으로 정권이 교체될 때 총기규제가 강력해질 것을 대비해 전국적으로 총구입이 증가 되었음을 보면 총이라는 것이 한 개인이 갖는 소장품,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시 내 아이의 고등학교로 돌아가자.


정확히 2주 전에 있었던 사건과 흡사한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옥스퍼드 하이스쿨에 다니던 그 용의자 또한 범행 며칠 전에 SNS에 이미 소문으로 흘렸고 진짜 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청소년들은 어른처럼 앞과 뒤를 재지도 않을뿐더러 무풍지대로 흔들리는 정신 상태를 제대로 잡고 행동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쯤은 우리도 그 시절을 넘겨 왔기에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학교에서 띄운 메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총을 소지한 어떤 학생이 내일 학교에 올지도 모른다는 황당하고도 위험한 도발적인 상황…


자, 이런 메일을 받고 그 어떤 부모가 학교에 보낼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가야 한다고 말하는 부모가 있다고 한다. 죽어도 학교에 가서 배우다 죽는 게 낫다는 말을 듣고 자란 세대이기도 하고 배움의 열정이 하늘을 찌르는 한국 사람을 누가 따라가겠냐만은 다른 것도 아니고 총이다. 한방에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고 이런 죽음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는 한마디로 개죽음과 견줄 수 있을 만큼 죽은 아이와 그 가족만 가슴 아픈 일이 될 수 있다.


해가 쨍쨍 내리쬐어 도저히 토네이도가 올 거 같지도 않지만, 일기예보를 믿고 당장 내일부터 학교 문을 닫아 버리는 곳이 미국이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버스 길에 살짝 살얼음만 얼어도 학교 문은 굳게 닫히고 거기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그 전날부터 학교에 오지 말라고 아우성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오후에 태풍이 온다면 일찍 귀가를 시켜 정작 워킹맘의 맘을 조리게 하는 한마디로 대단한 예방정신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그런데 정작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절체절명의 개인의 총소유에는 이리도 관대하며 나 몰라라 할 수 있단 말인가?  


매일 아침 총을 옆에 끼고 학교 정문에 서 있는 경찰을 만난다. 아이들도 익숙한 모습으로 알고있다. 처음엔 그런 모습이 얼마나 기이한 장면이었는지 모른다. 신성한 학교에 경찰이 떡하니 학생들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모습이라니 꼭 일제강점기에 검은 복장을 한 경찰이 학생들을 일일이 검거하는 모습 같아서 적잖이 놀랐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뿐 아니라 학교마다 공항 검색대에서 쓰이는 보안 시설을 설치하고 학교에 등교하는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외부인출입때 보안 검색으로 총기를 걸러내 더욱 철저히 보강해야 그나마 안심하고 학교에 등교할 수 있지 않을까?  


신성한 교육을 하는 학교에 검색대를 설치하고 아이들을 감시하는 모습이 결코 좋아 보이진 않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총규제를 정부에서 하지 않으니 최소한 아이들의 신변 보호는 우리 어른이 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어불성설이다. 한쪽에선 총을 소지해야만 불안한 사회로부터 나를 보호한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총을 버리고 총을 소지하지 않아야 이 나라가 안전할 수 있으니 그 총을 소지하지 못하게 경찰의 수를 늘리고 더불어 보안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말이다.


알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싸움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난 한국처럼 총 소지 규제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총이 없는 나라에서 살아봤고 그러한 것이 일반 시민에게는 얼마나 안전한 일인지를 알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집에 총이 있는 사회에서 자라왔고 부모님이 자유롭게 총을 다루는 걸 보고 자란 아이들 역시 총을 대하는 모습 또한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총을 강제로 빼앗긴다면 자신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싶다.


내가 이 나라를 선택한 이상 이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한나라의 국민으로 배움의 권리 그리고 그를 실행하기 위해 학교에 갈 권리마저 총으로 인해 위협을 당한다면 배움의 기회를 잃고 그에 따른 학창 시절에 대한 추억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2년여 만에 만난 친구들과 또 헤어져야 하는 비운한 이 시대의 아이들의 앞날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부디 총기 없는 세상에서 자유롭게 학교에 가는 그날이 되면 좋겠다.


카풀로 등교하는 동네 아이 친구에게 물었다.

"어제 학교에 갔었니?"

"아뇨, 당연히 안 갔죠. 학생의 30%만 등교를 했데요"

".. 30% 너도  가길 잘했다. 소피아!"

“총소리 나면 바로 땅에 엎드리고 죽은 척해라. 막 뛰지 말고….”


학교에 안 가길 잘했다고 안도하며 무슨 70년대 반공훈련도 아니고 얼마나 어이없는 아이와의 대화인지…학교를 보내 놓고도 마음 졸이는 이 시기가 얼마나 길지는 모르겠다. 어서어서 자라 성인이 되어 너희가 꿈꾸는 세상에서는 총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도 없어져야 하고 총도 없어져야 하고 이래저래 없어져야 하는 것들 투성이인 세상이 되었다. 있으면 뭔든 좋겠다는 세상은 어디 가고 뭐든 없어지면 좋을 세상이 왔다. 너무 풍족하고 과해서 생기는 과함이 병의 근원이다.


어떠한 사건이 나면 인재니 자연재해니 하는 말에서 인재로 인한 사망을 크게 탓하며 조금만 미리 신경 썼더라면 하는 후회를 낳는다. 만약 미국인 대다수가 주장하고 있는 네가 가지고 있으면 나도 가지고 있어야 안전하다고 해서 총 소지를 정당화하고 있다면 네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에 대한 리스크는 반대의 상황에 비해 아예 없다는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있어서 안전하지만 있기 때문에 위험의 빈도수가 없을 때보다 훨씬 높다면 당연히 모두가 없어야 맞는 말이다.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모두가 갖지 않는 세상 그래야 안전한 환경에서 우리의 젊고 이쁜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자연재해라 치면 총 소지는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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