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신문에 '영혼을 갉아먹는 치매'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동안 치매에 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성과 그리고 예방에 좋다는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획기적인 기삿거리는 물론 아니다. 내 눈을 끈 건 치매 질환에 본격적인 치료제는 아직 없지만 머지않아 정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준 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흔히 우리 대화중에 "다른 병엔 다 걸려도 제발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하게 된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가까운 건 아니지만 부모님과 지인들 사이에 꽤 많은 사람들이 치매로 고생을 하거나 치매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애환을 많이 접한 터라 치매는 불치병임과 동시에 걸리면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건강과 가족의 안위를 헤치는 무서운 것(?)이라는 인식을 확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노라 하는 학자에서부터 멋진 우리의 우상이나 정치계는 물론 문학계를 막론하고 학식이 높건 낮건, 건강에 이상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돈의 유무를 떠나 아무런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오는 불치명이 바로 치매라는 녀석이다. 예전에도 분명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한없이 헤매는 모습을 종종 보았었고 집안에 꽁꽁 숨겨야만하는 존재로 치매인지도 모르고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커다란 충격으로 정신을 놓아버려 미쳐버리는 것이 아닌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무서운 정체불명의 병, 치매란 무엇인가부터 알아보자.
치매는 간단히 말해 뇌 속 피질에 쓸모없는 단백질이 쌓이고 잘못 접혀 응집되거나 엉키면서 뇌신경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이다. 이를 자세히 풀면 뇌 속에 신경세포(뉴런)가 밀집되어있는 뇌 속 대퇴 피질에 독성물질이 쌓이고 신경세포 내 미세 소관 성분이 타우(TAU) 단백질이 엉겨 붙어 우리의 건강했던 시신경이 힘을 잃고 기억력을 파괴하며 우리의 사고를 담당하는 인지능력을 떨어뜨린다.
치매 초기에는 일상생활에서 기억력 감퇴로 사물과 행동하는데 문제가 생기고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치매 단계를 거치게 된다. 치매의 말기가 되면 우리 뇌의 70%까지 쪼그라들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상처럼 보였던 사람이 한순간에 매일 가던 집을 잃어버리고 숫자를 세지 못하고 가스불 켜는 걸 잊어버리고 칫솔질하는 행위를 잊어버리는 등 갓난아기 수준의 단계가 된다.
내가 처음 치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건 아주 오래전 영화를 통해서다. 한 중년 남성이 회사를 다니다 조금씩 기억력을 잃어가며 회사생활을 할 수 없게 되고 이유를 알아가는 내용으로 가장이 무기력해지는 슬픈스토리였다. '82년생 김지영'은 젊은 여인이 치매에 걸리면서 온갖 애환을 그린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고 엄청난 호응를 받았다. 그 결과로 치매는 단순히 노인성 치매만이 아닌 젊은 사람들에게도 걸릴 수 있다는 인식이 넓게 퍼져 숨겨야하는 장애가 아닌 누구에게나 걸릴수 있는 보편적인 질병임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치매에 걸리셨고 그 수발을 오롯이 아빠가 하셨고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나이드신 아빠를 위해서 그리고 멀리에서 마음만 안타까워했던 불효자식인 나를 위해 세상을 떠나심이 죄스럽지만 다행이었다. 코로나의 치명적 시대적 상황으로 많은 사람의 환송도 받지 못한 상태로 저세상으로 떠나신 엄마의 영정에 그저 고개를 숙이는 일밖에 하지 못한 이 못난 불효자를 용서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보내드려야 했다.
정작 치매에 걸린 당사자에게는 고통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나이들어 이것저것 속상한 일에서부터 모든 고통에서부터 자유를 택한다면 그리 나쁘진 않겠다. 하지만 그 고통의 짐을 사랑하는 내 가족이 져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나와 함께 젊음을 함께한 동반자라며 그나마 조금 보상심리가 작용되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은 자식에게 그 짐이 지워진다면 그 고통은 나를 포함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같지 싶다.
사람에게만 치매가 있는 건 아니다.
내가 키우던 진돗개가 치매로 고생을 하다 몇 해 전 죽었다. 사람은 아프다고 말이라도 하고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자료와 데이터가 있어 대처할 수 있는 잠재적 예상 범주라는 것이 있는데 동물은 그렇지 않다. 처음엔 매일 다니던 산책로를 기억 못해 엉뚱하게 다른 통로로 갔다. 벽을 보고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한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넘어졌다. 급기야 집을 나가서 길을 잃어 며칠 만에 겨우 찾는 소동을 벌이다 나중에는 13일 만에 찾기도 했다. 그러나 턱관절이며 모든 뼈를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밥도 먹지 못하고 대소변도 하지 못하는 완벽한 중증치매로 끝내 숨을 거두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눈에 보이는 염증이 아니라 뇌 속에 있는 단백질 구성에 오류가 생겨 신경세포에 이상이 오는 병이고 하루아침에 눈에 보이는 아픔이 아니다. 서서히 뇌에서 진행되는 정신적인 문제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인지를 한다해도 이미 진행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쉽게 고칠 수 없는 질병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요즘엔 간단한 방법으로 치매 증상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치매에 대한 치료제 개발에 온갖 힘을 쏟고 있는지는 꽤 오래전부터다. 하지만 대머리 치료제나 에이즈 치료제가 없듯 지금까지 이렇다 하는 획기적인 치료제는 나오고 있지 않다.
현대 의료기술에 기대를 걸고 있는 건 우리의 생체세포와 나노기술 정도로 인지할 수 있는데 한마디로 우리의 줄기세포를 우리 몸에 직접 사용하는 방안으로 세계 곳곳에서 연구 중에 있다는 정도로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알고 있다. 엄청난 데이터 베이스가 수반 되어야하고 그에 따른 절차와 인력 그리고 비용 등 나라와 정부 차원에서의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지만 '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에서 2020년에는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모든 병을 로봇이 고쳐주는 세상에서는 '모두가 늙지 않고 영원히 산다면 그것도 문제겠다'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맞았다. 과거가 바라본 미래, 지금의 모습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핸드폰 화면으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고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었고 의료가 발달되어 병원에만 가면 어떡해서든 인간을 살려내고 있다.
이론적으로 뇌를 둘러싼 뇌혈관 장벽(blood brain barrier-BBB)을 여는 시술을 하면 치매를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의 이상 행동도 개선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장진우 서울대 연구팀은 개방 술을 통해 치매 마우스 모형에서 아두카누맙(치료제) 복용과 뇌혈관 장벽 개방을 병행하면 아두카누맙 단독 치료 때보다 뇌 속 아밀로이드 베카 단백질 감소 등 치료효과를 나타냈고 이번 연구로 치매 치료제 사용에 장애였던 뇌혈관 장벽을 안전하게 뛰어넘어 획기적인 치료법이라고 말한다.
또한 한국의 가톨릭 의대 김종기 교수는 양성자(Proton) 빔을 이용해 뇌 속에 쌓인 아밀로이드 베카 단백질과 산화철 나노 입자의 결합을 끊어 이를 동시에 제거해 인지 기능 회복을 유도하는 방법을 개발해 환자에게는 희소식이 전해졌다. 암환자에게 암세포를 죽이는 키모를 하듯 치매 환자에게도 뇌에 직접 빔을 쏴서 치매를 유도하는 단백질을 없애는 방법을 개발했고 그 결과 단백질의 양도 줄이고 타우 증가를 차단해 치매 환자의 인지 능력 기능 회복을 도와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다.
자, 이로써 치매의 원인은 고작 이름도 어려운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라는 걸 알았고 치료제도 개발되리라는 기대도 하게 되었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될까? 화투를 치는 것에서부터 구구단을 외우라는 조언 등 치매 예방법은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쓸데없이 잔머리를 쓰면 단백질이 더 엉킬거 같은 예감은 든다. 그런 머리를 쓰라는 것이 분명 아닐 터.. 두뇌회전을 위해 글을 일고 글을 쓰는 것이 좋단다. 단어가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치매예방에 좋다고 한다. 그럼 나 같은 글쟁이는 치매에 걸리지 않겠나? 우리 엄마는 매일 아침에 안경을 끼시고 오전 내내 신문을 정독하시고 일기도 쓰셨다. 그런 분이 왜 그렇게 누구보다도 젊은 나이에 치매에 걸리셨나? 단지 그럴 수 있다는 확률이니 절대 믿으면 안 되는 일이고 뭐든 읽는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지식이 쌓여 시대를 함께 공유하는 입장에서 좋은 일인듯하다.
몸을 조금씩이라도 움직여 뇌뿐 아니라 신체적인 면에서도 활발히 움직이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배 이상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나는 운동을 싫어해서 거의 숨쉬기 운동만 한다고 했지만 얼마 전에 골프에 입문해서 운동이라면 치를 떠는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틈나면 잠시라도 연습장에 가서 몸을 풀어주고 있다. 산책처럼 가만히 걷는 일은 나에겐 고역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반면 그렇게 작은 공을 기다란 막대기로 쳐서 날아가는 그 맛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휘두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땀이 나고 희열을 느껴 운동을 계속적으로 하게 만든다. 운동을 작정하고 하면 힘이 드는데 공놀이 하듯 재미로 맞추다 보니 자연적으로 운동의 효과를 보고 있으니 이처럼 좋은 일은 없다. 무조건 걷는 운동보다는 자신만의 재미겸 운동겸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하겠다.
오래 씹고 오래 먹는 습관이야말로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인듯하다. 음식을 하는 데는 2시간이 걸리지만 그 밥을 해치우는 데는 불과 몇 분밖에 되지 않으니 얼마나 허무한가? 프랑스인들은 음식 먹는 시간으로 4시간가량 소비한다고 한다. 음식 하는 시간이 한 시간이 소요된다면 먹는 시간도 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생각하면 오래 씹으며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고 나눌 상대가 없다면 좋은 영화를 켜놓고 즐기며 먹는 방법도 추천하고 싶다. 단지 배가 고파 배에 집어넣는다는 생각을 금하고 한입한입 입안에서 씹히는 음식의 향과 질감을 음미하며 즐기자.
글을 읽고 쓰고 사색하며 나만의 운동으로 신체를 즐겁게 움직이고 좋은 사람과 오손도손 정답게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인생을 즐기는 삶이라면 치매 예방뿐 아니라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간단한 치매 치료제가 하루속히 개발되어 치매없는 세상에서 맑은 정신으로 자기의 의지대로 죽음을 준비하고 마감할수 있기를 바란다.
하늘빛에 나무 끝자락이 오렌지색으로 물들고 있다. 석양이 주는 서향집의 조용한 하루넘김이다. 찬란했던 하늘이 붉은 검은빛으로 고요히 검게 넘어가느라 안쓰럽다. 나의 삶도 찬란하다가 고요히 그리고 조용히 넘기기를 바라는 무겁도록 시린 겨울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