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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1. 2019

이게 말이 돼? 한국 의료보험은 미쳤어!

#15ㅣ미국과 한국의 의료보험 이야기

한국에 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병원에서 미리 보내준 4리터짜리 장 내시경을 위한 물을 마시는 일이다. 지금은 시절이 좋아져 2리터 물을 마셔도 되지만 가자마자 시차 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지릿하고 비릿한 물을 억지로 마시고 장에 있는 모든 것들을 쏟아내기란 정말 고역이다. 의료관광 이야기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오바마케어로 조금이나마 시정되나 기대했는데, 시도도 해보기 전에 트럼프 정부로 바뀌면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현재 우리 집 5명 기준으로 집의 유무와 연봉, 아이들의 나이와 Deductible(디덕터블/일 년에 얼마만큼의 돈을 병원비로 내야 할지 개인과 보험회사와의 계약에 따라 그 비용이 달라짐)의 차이에 따라 개인마다 다르지만 매달 $1,700(2019년 기준 한화 약 이백만 원)을 의료 보험비로 내고 있다. 치과치료는 포함되지 않고 주치의가 없어도 되는 미국 내에서는 알아주는 보험회사로 미국에 와서 처음 들었던 보험을 지금까지 바뀌지 않아서 그나마 싼 편이고 지금 새로 가입하려면 이보다 훨씬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한다.


한국처럼 의료보험을 나라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회사를 선택해서 가입해야 하므로 잘 따져봐야 한다. 가급적 전통이 있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회사가 좋은 이유는 병원과 보험회사와의 긴밀한 조건들이 맞아야 환자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차보험을 예로 들면 같은 맥락이다. 어찌 되었건 이렇게 많이 내면 모든 병원비가 커버되어야 마땅한데 그렇지가 않다. 1차 병원인 지정 소아과나 주치의에 갈 때마다 co-pay로 $10-30은 기본으로 내기도 하고, 2차 병원 즉 스페셜 닥터에 가면 $400-500은 기본으로 내야 한다. 한국처럼 일정한 규칙으로 되어있지 않고 사람마다 가정마다 의사마다 회사마다 천차만별로 비용이 다르다. 이런 걸 여기에선 우리끼리 한마디로 말한다.'UP TO YOU' 즉 너 맘 데로라는 말이다. 


의료보험비는 $1,700이지만 Deductible(이하 디덕터블)은 $2,000이므로 가족 모두 병원비로 일 년에 $2,000까지는 개인이 내야 한다. 만약 그 돈이 넘으면 그러니까 일 년(12월 말로 정산) 안에 $2,000을 병원비로 내면 그 이후부터 일 년 이내에는 병원비가 얼마가 되든 보험으로 커버가 되는 시스템이다. 다른 예로 디덕터블이 만약 $1,000이라면 매달 나가는 의료보험비는 우리보다 더 비싸다. 왜냐하면 일 년 중 $1,000까지만 개인이 지불하고 나머지 병원비용은 보험회사가 지불해야 하므로 매달 나가는 의료보험비는 더 비싸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디덕터블의 액수가 작으면 매달내는 의료보험비는 비싸고 디덕터블이 크면 의료보험비는 싸다. 이해가 되는가? 난 처음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예를 들어 여자가 5월에 임신을 하고 병원에 갈 때마다 co-pay로 $10씩과 검사비용으로 $500씩이 들어간다면, 11월 정도에  디덕터블 $2,000을 개인이 병원비를 냈으니 12월 한 달은 보험회사에서 기본비용을 제외한 치료비를 내주고 다음 해 1월부터는 다시 $500을 개인이 지불하고 3월 출산까지 $2,000을 채우게 되면 어마어마한 나머지 출산비용은 보험회사가 커버한다. 그래서 수술 후 입원을 되도록 안 시키고 퇴원하는 이유가 보험회사에서는 돈을 병원에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예는 보험이 있는 사람들 이야기이고, 미국은 의료보험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보다 많다고 하니 상상 초월하는 병원비 때문에 아예 병원을 못 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엄청난 혜택을 받는다. 단 $1도 내지 않고 이교정까지 받을 수 있는 나라 또한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은 중산층만 고달프다는 말이 있다.


중산층이지만 의료보험비가 워낙 높다 보니 경제사정이 된다 해도 가입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만약 의료보험이 없으면 의료비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아기를 수술로 낳는데 $50,000 (한화 6천만 원 정도) 이상이 들고 간단한 일반수술도 $10,000-$20,000은 우습게 든다. 어떤 분은 암 수술하는데 집 한 채 값이 들었다고 하는데 농담이 아니고 진담임을 여기 사는 사람들은 안다. 치료비만 겁나게 많이 드는 게 아니다. 무슨 병이든 그 절차가 너무 더디고 까다로워서 기다리다 지쳐 죽는다는 말도 사실이다. 


몇 해 전 남편이 배가 아팠다. 일단 주치의에게 전화를 해서 예약을 하는데 예약 날짜를 2주 뒤에 잡아준다. 2주 후에 주치의를 만나니 스페셜 닥터한테 가라 하고 예약을 하려니 또 2주 후에 잡아준다. 2주 후에 내과 전문의를 만나서 상담을 하고 내시경 검사가 급하니 이틀 후에 하란다. 이틀 후에 위내시경을 하고 나서      

“선생님, 어떤가요?”
“내시경 결과가 나오고 말씀드리죠”
“결과는 언제 나오는데요?”
“한 4-6주 후쯤 나올 겁니다”
“.... 제가 그때까지 살아서 뵐 수 있을까요?”     

아파서 전화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꼭 두 달이 걸렸다. 그 안에 남편의 배는 기다리다 지쳐 나았다. 만약 정말 심각하게 아프고 고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린 병이었다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나는 부인과 검진을 2년에 한 번씩 한다. 내 주치의가 자궁에 뭔가 있는 거 같다며 스페셜 닥터를 소개해주었고 초음파도 찍고...... 한 달 만에 결과를 보기 위해 닥터를 만났는데,     

“자궁에 작은 혹들이 여러 개 있어요”
“네...”
“시간이 허락된다면 한국에서 수술을 하시죠”
“왜요?”
“한 개 한 개 조직 검사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어요”


한 달에 내야 하는 비용이 적은 보험료도 아닌데 굳이 보험을 드는 이유는 작은 병에서부터 큰 사고가 나거나 중병을 대비하기 위함인데 감기에 걸리면 예약하기 어려워 마트에서 감기약 사 먹고, 배가 아파도 참다가 주위 사람들의 경험치에 기대어 약국에서 약 사 먹고, 허리에 통증이 와도 파스로 해결하거나 한의원에서 침을 맞는 것도 모자라 자궁에 혹이 있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 데도 한국 가서 하라니 이게 말인가? 글인가? 알 수 없는 나라에 살고 있다. 

  

결국에 난 한국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한국 의료보험이 없는 나로서는 일반인 수술비의 4배를 내야 했다. 비행기 표와 체류비를 합하더라도 미국과 비용이 별 차이가 없음에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으로 가족 친척의 간호도 받고 훌륭한 의료진의 수술도 받았지만 미국 같은 선진국을 놔두고 한국까지 가서 수술을 한다는 걸 극성스럽게 보는 시선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전인데도 이런 의료제도를 미국에 오기 전에 소문으로 어렴풋이 알았기에 치과 치료를 앙큼하게 받고 왔는데 불행하게도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 어금니 하나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 누구도 참지 못한다는 이가 아프니 한국 같았으면 하루 만에 뚝딱 할 일을 여기서는 큰 걱정거리가 되어버렸다. 아는 의사도 없고 돈도 없는데 참 의료보험도 없는데..


처음엔 진통제로 견뎌 보았고 다음엔 약국에서 아픈 어금니로 물어 진통제가 직접 투입되는 솜방망이 같은 것으로 며칠을 견뎌 보았지만, 오히려 더 아파 왔다. 신경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고 금으로 씌워 버린 것 같으니 치료를 한다 해도 대공사가 틀림없었다. 일사천리로 그 많은 이를 한꺼번에 치료했으니 한 개 정도는 하자가 나지 않을 수 있겠나 암튼 그 당시 비행기 왕복 티켓이 $800이었는데 이 하나에 $650의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불했다. 그것도 금도 아닌 아말감으로... 여건만 된다면 한국으로 다시 가서 무료로 A/S를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지금도 금색들 사이에 거무스름한 아말감이 신경 쓰인다.

 

의료제도가 이렇듯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도 만만찮다 보니 웬만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어떻게든 참아보고 집에서 해결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열이 펄펄 나고 눈이 거의 돌아갈 지경인데도 열을 내리기 위해 물수건으로 밤새 아이와 사투를 벌이고 배가 아프다며 학교를 못가도 꿀물과 숯가루 물을 먹여가며 이겨 내야 했다. 일 년에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는 해도 있으니 아마 나나 아이들 몸엔 항생제의 흔적이 거의 없으리라.


그러니 한국에 가는 해가 되면 우리의 의료관광 스케줄이 바빠진다. 일단 제일 먼저 치과 검진을 위한 예약을 하고, 여자애들 필수코스인 피부과를 찾아보고, 검안 비(기본 눈 검사비)가 무료인 안경점과, 보약을 짓는 한의원까지 아이들을 위한 병원을 순례하고, 우리 같은 어른은 종합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 3-4시간 소요되는 종합 검진을.... 여기에서 종합검사를 하려면 아마 1년은 소요될 것이다. 더군다나 증상이 있어야만 주치의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도 된다는 사인을 받고 엑스레이에 뭔가 이상이 발견돼야 전문의한테 갈 수 있고 전문의의 판단에 따라 CT든 MRI를 찍을 수 있다. 순전히 보험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인데 보험회사에서 승인이 안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냐? 보험회사가 병원에 돈을 지불하니까.. 그러니 종합검사 비용은? 상상에 맡기겠다. 나도 가늠이 안 되니까. 

 

3시간 만에 종합검진이 끝이 나고 일주일 후에 결과가 나오는 한국 의료 시스템을 누가 따라올 것인가?

미국에서 그 비싼 의료보험료를 매달 지불하고 또 한국에서 의료관광을 해야 하는 실정에서 억울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한국의 스피드 한 시스템을 여기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을뿐더러 아프지 않으면 피검사 하나에서부터 엑스레이며 감히 위에 언급한 데로 CT를 어찌 개인적으로 찍을 수 있을까? 한국처럼 2년에 한 번 전 국민이 의무로 받는 종합검진 시스템이 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고 미국 사람이 듣는다면 거짓말이라고 웃을 일이다. 그것도 무료로... 한국에서의 무료가 여기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니 예방차원의 의료 즉 발생되기 전의 의료는 상상도 안 되는 말이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선 미국 그것도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존 홉킨스 같은 대학병원이 대단하다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얼마 전에 존 홉킨스 병원에서 갑상선 수술을 했는데 (그것 또한 한국에서 종합검진 결과에 나온 걸 토대로) 입원은커녕 마취만 겨우 풀린 상태에서 바로 집에 와 며칠을 고생했는데 목에 씨 하나가 걸려 있는 듯 답답하다 해서 한국에 가서 다시 재수술을 한 남편은 기가 막혀, 목이 막혀 역시 수술의 1번지는 한국이라며 엄지를 올렸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미국의 의료기술이 최고라며 기업들 총수며 국회의원들이 앞다퉈 비밀리에 와서 치료를 받는 걸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보험이 있는 자국민도 수술 후 입원비가 비싸 붕대 감은 채 마취 정도만 풀리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판에 보험도 없는 외국인이 어떤 절차로 그 비싼 비용을 낸단 말인가?

 

존스 홉킨스의 병원은 볼티모어를 먹여 살리는 방대한 규모와 의술을 자랑한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은 일반인들이 쉽고 빠르게 병원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임상 실험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수술 같은 경우 음악을 하는 사람처럼 의사의 손으로 하는 일이라 경험이 제일 중요한 일인데 여기는 수술비가 워낙 비싸 임상 실험이 적기 때문에 리서치의 방대한 자료로는 세계 최고일지언정 수술의 기술력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에 사는 이민자들은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이 발달된 한국으로 의료관광을 가고, 한국에 사는 몇몇의 사람들은 역으로 수술 경험도 부족하고 절차도 까다로운 미국으로 원정을 온다니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지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오늘도 난 골반뼈가 살짝 아픈데도 참으며 글을 쓴다. 한국에서 소염제 한대를 예약도 없이 단돈 만 원에 맞고 거뜬해졌는데 일주일 뒤에나 예약이 될 게 뻔하고 $400(오십만 원 정도)을 내야 하는데.... 그냥 참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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