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8
얼마 전에 한국 지인으로부터 ‘머니 패턴’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개인의 심리 테스트를 통해 돈의 법칙을 이해하는 새로운 유형의 책이다. 테스트 결과 난 ‘외로운 팔랑귀형’으로 나왔다. 대부분 ‘억울한 질러형’이거나 ‘경쟁심의 쟁취형’인데 반해, 나는 팔랑귀형이라는데 그것도 외롭다는 단어가 나의 과거부터의 기억을 흔들었다.
팔랑귀라는 말은 나 스스로를 표현할 때 잘 쓰는 단어이다. 똑딱 3초라는 별명답게 무슨 일을 결정할 때에 그냥 저지르고 그냥 한다. 누가 이야기하면 말하는 그대로를 한 점 의심 없이 믿고, 할 수 있는 일이면 할 수 있을 거라 나를 믿고, 한다고 결정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 잘하면 좋은 일이 되는 거고 못하면 바로 포기하는데 후회도 하지 않으니 팔랑귀처럼 귀가 얇다는 말이 딱 맞다. 나한테는...
그 처음은 이랬다. 피아노의 쓰라린 맛을 본 후 3년의 세월은 나의 정체기이다. 그 3년이 고등학교 생활을 통 틀은 시간이니 고등학교 때의 기억은, 추억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만큼 통통 튀었을 성격이 물아래 침전된 비이커의 모래알처럼 가라앉은 상태로 누군가 흔들어줄 때를 기다리는 듯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재수를 하며 내가 꿈꾼 예지몽을 빌미로 엄마에게만 급제안을 했다. 아빠에겐 일급비밀로 하기로 하고 딱 9개월만 미술학원에 보내 달라고 그것도 미술의 일번지 홍대 정문 앞 그 당시 제일 잘 나가는 학원에 보내주면 홍대나 이대 정도는 갈 수 있다면서 겁도 없이 엄마를 설득했다.
꿈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릴 적부터 미술교육을 받아 이미 대학 수준의 실력을 갖춘 비밀 병사들인 반면, 난 쌩 초짜였으니 불쌍히 여기는 몇몇 친구들이 자기들의 경쟁자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다. 선 긋기부터 시작해서 소묘의 시작인 둥근 원의 형태나 삼각뿔의 그림자 표현법등 기본만을 살짝 배운 뒤에 대입시험까지 시간이 없으니 바로 그 유명한 ‘아그리파’를 그려보라는데 그만 각이 확실하게 잡힌 로봇 태권브이를 닮은 '로봇 아그리파'를 탄생시켜 웃음을 자아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학원에서 오전 수업을 듣고 오후부턴 낡은 이젤에 앉아 그 많은 하얗고 멋지게 생긴 역사의 인물 석고상들을 보노라면 하얀 도화지에 검은 석탄 연필로 그들의 자태가 하나의 점에서부터 쓱쓱 연필 가는 데로 윤곽이 나오고 그 명암 번짐의 황홀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의 도화지에서 그들을 멋지게 재탄생시키고 싶었다. 나의 침전된 모래알이 도화지에 흔들리며 번지고 있었던 때였다.
비이커를 제대로 흔들었다.
정말 9개월 만에 홍대나 이대는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그림을 원 없이 그릴 수 있는 미대에 합격했다. 한 번에 결정해서 단기간의 집중 노력으로 한방에 이루어낸 최초의 경험이 내 안에 잠재되어 지금 이 나이까지 나의 행동 패턴으로 고착되었고 그 뒤로도 팔랑귀의 행진이 계속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회사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일단 내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에 관한 모든 걸 해줄 수 있다는 당찬 포부를 적은 전단지를 만들어 아파트마다 돌렸다. 현관에 필요한 신발장 주문이 처음으로 들어왔다. 디자인과 실용성이 가미된 신발장을 만들어 주고 5만 원이 남았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 뒤로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를 만들고 안산 중앙역에 배 모양의 4층 카페를 만드는 데까지 두 번째의 귀가 팔랑대는 결과물이었다.
미국에 와서 나의 놀이터에서 놀이 친구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을 무색하게 나는 내 머리를 깎는다. 한두 번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조금씩 잘라보다가 전체를 깎을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내가 내 머리를 깎듯 놀이 친구들에게 머리를 깎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한순간 팔랑귀가 흔들렸을 뿐인데 버지니아에 있는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는 미용전문학교에 거금의 돈을 주고 등록을 해버렸다.
수개월에 걸친 나의 행보는 거의 사투를 건 싸움이었다. 직장도 다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고 세 아이도 돌봐야 하는 벅찬 일이었지만 누가 등 떠밀어 시킨 일도 아니고 꼭 필요한 일도 아닌 그냥 결정했으니 밀고 나가는 성격 탓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된다.
초집중해야 했다. 강의 들을 시간이 없으니 전문 의학 서적과 맞먹는 영어 원서를 거의 독학해야 했고 긴 머리가 민머리가 될 때까지 해야 하는 마네킹 머리를 쉴 새 없이 자르고 또 잘랐다. 학교 수업 1500시간을 채워야 시험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워지고 필기시험을 보았다. 학원에선 처음 보는 점수라며 놀랐지만, 필기는 무조건 외우면 되는 거니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실기시험이 문제였다. 5개 과목으로 나누어진 실기시험으로 손이 너무 떨려 정말 있을 수 없는 실수를 했지만, 다행히 개별 점수가 아닌 종합점수제여서 턱걸이로 간신히 한 번에 합격했다. 헤어와 네일, 얼굴 마사지까지 세 가지 모두를 할 수 있는 전문 Cosmetology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 미국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는 거밖에 아무 쓸모없는 이 카드 한 장을 위해 수개월의 시간을 가족의 희생과 함께 얻었지만, 실은 난 남의 머리 만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 두 딸들의 머리 하나도 쫑쫑 야무지게 못 매어 핀잔을 받았는데, 하물며 모르는 사람의 머리를 어떻게 만질 것인가? 더 나이가 들어 미용실의 원장으로 진두지휘만 할지는 나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남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 알고 그 시간을 즐기기를 원하지만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불안하고 힘들다. 오죽하면 남편은 자기가 죽은 후에 엄마를 재혼시키라는 유서를 써놓았다는 말을 할까? 혼자 있는 잠시의 시간이 불안해서 이것저것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다. 어딘가에 집중하는 시간이 혼자 아무것도 안 하는 외로운 불안함보다 낫다. 겉으로 보는 나는 뭐든 열심히 하는 열정이 많은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외로워서 펄렁이는 팔랑귀'라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팔랑귀가 외롭다는 걸 어찌 알았을까? 그 작가는..
그래서 난 글을 쓴다. 누군가가 글을 한번 써보는 게 어떠냐는 말을 덥석 물었다. 팔랑귀가 가만히 넘기지 않을 터이다. 미술학원에 다니게 해 준 엄마에게 평생을 고마워하며 살게 되었듯이 고생만 하고 손에 쥐고만 있는 헤어 라이선스가 어떻게 쓰일지 지금은 알 수가 없다. 글을 한번 써보라는 이에게 남은 일생동안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집중하는 일을 선사받았음을 정말 지금은 알 수 없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의 눈 꽃송이도 바람이 불어 흔들리든, 비에 젖든 정확한 그 자리에 내려앉는다는데 내 인생이 어디로 정확히 내려앉을지는 신의 법칙만이 알 것이다. 오늘도 난 내 비이커를 열심히 흔들어 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