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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n 01. 2022

'테이 콘서트'가 미국 한인에게 주는 의미

"테이가 누구지?"

"몰라? 그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가수?"


언뜻 알 것도 같고..

가슴 아파서~ 목이 메어서~

라며 테이의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설명하는 친구가 안쓰러워서라도,


"그래 알겠어. 근데 왜?"

"응. 테이가 이 코로나 시국에 콘서트를 한데 가까이에서.. 티켓 있어. 한번 가봐"

"그래. 뭐 티켓이 있다면 한번 가보지 뭐.".


믿지 않겠지만 실은 난 태어나 단 한 번도 콘서트를 가본 적이 없다. 쿵쿵거리는 시끄러운 사운드가 싫어 영화관도 안 가는데 더 무지막지할 거 같은 가수 콘서트라니..


테이인지 태이 인지도 모른 채 일단 가는 걸로 마음을 먹었다. 계획된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의 성향을 보았을 때 갈지 말지를 고민하는데도 한참이 걸렸고 준비를 다 해 놓고서도 망설였다. 아마 남편이 계속해서 '한번 가보지 뭐’를 연발하지 않았다면 난 결코 그곳까지 가는 걸 한순간에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일단 의상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딱 붙는 슈트를 입고 화려한 임팩트로 포인트를 준 의상이어야 할까? 아니면 요즘 젊은이들처럼 찢청에 흰 티에 모자를 쓰고 가벼운 마음으로 가야 하는 걸까? 그래도 콘서트 장소가 호텔 이벤트홀이라는데 너무 애들처럼 입고 입장하는 건 예의에 벗어나지 않을까? 그럼 준수하게 주름진 긴치마에 짧은 가죽 쟈켓을 입어서 분위기를 타 봐?ㅎㅎ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만 아팠다. 그래도 크롭티에 검정 통바지를 입고 그나마 현란한 운동화로 포인트를 주고 출발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좋진 않았지만 티켓을  친구와 약속을 했기에 마지못해 가는 심정이었다. 겉으로 보면 화려하게 차려입고 어디든 좋아라   같은 외향적인 모습이지만  밖에 나가는  극도로 귀찮아하는 니즘에 방안퉁수형이다.


집과 일터만 오가던 익숙한 길이 아닌 낯선 길을 지나자니 내가 사는 세상이 아닌 곳에선 벌써 봄이 찾아와 있었다. 연하디 연한 연둣빛 작은 잎들이 바람에 어우렁 거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빼곡하고 잔잔하게  가지들을 채워놓고 나뭇가지 사이사이  공간을 채우느라 그린빛 수채화 물감에 바삐 붓을 놀리는 듯했다. 하긴 집을 지키고 서 있는 우리 집 나무들 보는 것도 바쁜 세월인데 어찌 먼 산을 볼 틈바구니가 있었을까? 왜 그리 눈을 감고 살았나 싶다. 말없이 창문으로 보이는 푸르른 산만 보아도 눈이 맑아지며 벌써 힐링이 되는 고마운 길이었다.


콘서트가 열리는 카지노 호텔에 도착했다.


파친코 드라마에 푹 빠져 있어서인지 그동안 카지노는 나와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진 게 사실이었지만 괜스레 친근함을 느꼈다. 희한하다. 글이 그리고 영상이 주는 이미지가 손바닥 뒤집기처럼 한 번에 뒤집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오바마가 흑인은 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한방에 뒤집어 버렸듯이 카지노가 도박의 온상이고 절대 고개도 돌려선 안 되는 곳이라고 아예 머릿속에 쾅쾅 못이 박혀 있었던 게 엊그제인데 흑에서 백처럼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이 반짝이며 머신을 당기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한가하고 재미난 놀이터로 보였다.


미국에서 카지노는 불법이 아니다. 성인이면 누구나 아무런 제재 없이 입장할 수 있어서인지 한국보다 훨씬 일반 생활 반경과 가까이 있다.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백인 흑인 가릴 거 없이 한가하게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써 대중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좋지 않은 소식 또한 들린다. 너무 쉬운 접근으로 돈만 조금 생기면 달려가서 패가망신했다는 소리도 들리고 그런 도박 인생으로 가정이 파탄되었다는 소식 또한 간간히 들린다. 그런 걸 보면 어느 사회나 쉽게 돈을 버는 일에는 반드시 화가 따른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닌듯하다.


암튼 생각지 않은 카지노 풍경까지 여유롭게 거닐며 지나가는 행운도 얻었다. 그러다 이벤트홀까지 거의 다 왔는데 어? 미국에서 한국 사람을 이렇게 많이 본건 거의 처음인 듯 많은 인파에 깜짝 놀랐다. 컴컴하고 붉은빛이라 처음엔 사람들 무리라고만 생각했는데 가까이 보니 멋지게 차려입은 남녀노소가 저마다 티켓을 들고 줄을 서서 자리를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웅성웅성…

 

카지노 안이라 사람들의 모습이 모두 붉게 보였다


티켓을 확인받고 이벤트홀에 들어섰다. 내가 상상한 콘서트는 불빛이 요란한 싸이키 조명이 돌아가고 시끌벅적하게 젊은이들이 소리 지르고 어지러운 장면들이 이어져야 하는데 조용하다. 조용히 자리를 잡고 서로 누군가를 확인하고 멀리 무대가 보이고 중간에 불빛이 요란한 컴퓨터들이 놓여 있고 무대는 현란하진 않지만, 커튼 뒤의 모습들이 연상되게 조용히 테이의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먼저 게스트로 뉴욕대 교수라는 사람이 나와서 한국 발라드 몇 곡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미국 사람이 한국 노래를 한국 사람보다 더 잘하는 걸 보면 이상하게 뭉클하다. 무엇보다 자국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지고 노래 부르는 이가 너무도 멋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미국 티브이를 보다가도 한국말로 무언가가 들리면 그리도 반가운 일이 된다는 걸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상상하지 못하리라. 하물며 미국 땅에서 미국인이 한국 노래를 목청껏 구슬피 부르는데 어찌 목이 안 메이겠는가! 갑자기


 나도 늙었구나.
나도 한인 이민자로 오랜 세월을 살아내고 있구나!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지막 곡까지 멋들어지게 부르고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드디어 기다리던 테이의 등장!! 모두가 한 목소리로 환호를 했다. 등장만으로 무대가 번쩍였고 걸음걸이, 태도, 옷맵시 그리고 얼굴에 빛이 나는 걸 보니 역시 연예인이 맞는구나 싶었다. 그러니 테이가 등장하는 순간 그렇게나 탄성을 지르지… 얼굴에선 광이 나고 입에선 달콤하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가슴 아파서 목이 메어서… 정말 목이 멜 거 같은 짙은 호소력으로 모든 관객을 사로잡았다.


사진은 정말이지 전국 노래자랑 수준으로 보이는데 현장은 이보단 훨씬 근사했다 ㅎ


전국 노래자랑이 장수를 누린 이유가 물론 ‘송 해’라는 MC의 말씨에서 안도하는 국민적 정서가 먼저겠지만, 무엇보다 전국 팔도에서 모인 사람들의 노래에서 캐캐 묵은 구수한 고향의 향수가 시청자를 자극해서일 것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가삿말에 우리의 정서와도 맞지 않은 영어 랩을 듣고 있으면 여기가 무슨 외계인이 사는 곳도 아닌데 괜히 갑옷을 입은 듯 맘이 불편해지고 정말 여기가 내 나라가 아니구나 싶어 이질감이 생기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테이의 음악은 진짜 내 나라 음악이고 내가 한국에서 들었던 발라드의 감미로운 음악이다. 그래서 고국의 진한 향수를 순간적으로 자극했다. 테이의 감미롭고 마음을 살살 녹이는듯한 가삿말은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귀에 쏙쏙 들어가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에게 알사탕을 주면서 가만히 앉아만 있으라 해도 1시간도 좋으니 제발 사탕만 녹지 않으면 하는 마음과 같고 내 아이의 깽깽거리는 바이올린 소리가 훌륭한 바이올린 리스트의 소리보다 멋지게 들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앞 좌석에 있는 관객은 테이의 팬인 듯 모든 노래를 열창으로 따라 하는가 하면 색색 형광 스틱을 들어 보이며 가수와 하나 되어 호흡하며 마음껏 목청을 높였다. 테이도 그이들을 아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뒤에 앉은 조용한 관객들에게도 호응을 얻어내려 애쓰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모두가 박수로 화답했다. 감미로운 목소리는 그의 큰 키만큼이나 말씨에서의 현란함이 묻어 나왔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되는데 거기에 말까지 잘하니까 뇌색남처럼 정말 더 멋져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멀리 하와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사람도 있고 몇 시간씩 드라이브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람도 있어서 나처럼 1시간 거리에서 온 사람은 명함도 못 내미는 열혈팬들이 많았다.




나와 다르게 남편은 노래를 참 좋아하는 사람 축에 속한다.


한국에 가면 보컬 레슨을 한번 받아보는 게 꿈이라 말하고 은퇴 후엔 그룹사운드를 만들어 즐거운 노년을 보내는 게 꿈인 사람인데 노래라면 질색을 하는 아내를 만나 한 번도 콘서트를 가보지 못한 불쌍한 남자다. 처음엔 나처럼 가만히 조용히 테이의 노래를 듣나 했더니 나중에 '비상'이라는 임재범의 노래를 할 때는 마치 자기의 노래인 양 따라 하더니 나중엔 약간 울먹이는 듯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그 노래는 자신이 미국에 와서 어려울 때마다 혼자 차에서 울면서 목청껏 불러 재꼈던 잊을 수 없는 노래라고 말했다.


그만큼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노래의 가삿말로 허전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고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음악의 힘이다. 나 또한 요즘엔 아침마다 재즈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재즈는 조용히 기분을 업시키고 때론 술을 한잔 한 기분으로 즐겁게 만들어주고 때로는 춤을 출 수 있게도 만들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발라드 또한 나에게는 그런 기분을 만들어 준다. 지금은 하루도 음악을 듣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나의 플레이 리스트는 다양해지고 있다.


어부지리로 다녀온 나의 첫 콘서트였지만 가수가 내 눈앞에서 직접 노래를 하고 관객과 눈을 맞추며 호흡하는 현장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이런 콘서트에 열광하는지 알게 되었다. 소리로만 들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밀접하고도 은밀한 직접적 만남은, 허상에서 보이지 않아 충족되지 않은 부족함이 실체에서 보는 분명하고도 명확히 손에 잡히는 만족감과의 차이만큼이나 달랐다.


고국에서  유명한 가수의 위문 공연을 다녀왔다며 감격스럽게 이런 글을 쓰고 있지만, 한편으로 한없이 서글퍼진다. 되돌아오는 길은 시대에 뒤처진  낡은 철도 길도 지나고 한국과 동떨어진 기분처럼 깊은 산속을 지나면서 주가 다르다 보니 정말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나라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그리  거리라고 한번 가보지 못했을까?  그리 사는  바쁘다고  나라의 노래를 듣지 못하고 이제 서야 콘서트를 오고 귀가 였을까? 이고 보니 내게 익숙한 노래는 내가 한국을 떠나온  시점 2000 초반의 가수밖에 모르는 이민자가 되어 있었다.


나이테 같은 깊은 회한이 들면서도  같은 이민자를 잊지 않고 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 동부 버지니아까지 날아와  테이와  스태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않을  없다. 욕심을  내어, 위안과 희망을 전해주는 많은 가수가  나라를 떠나  나라를 그리워하며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 많은 한인 이민자에게  번쯤 고개를 돌려 감동과 사랑을 전해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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