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닥쳐올 아이들의 학비에서부터 재산세에 이르기까지 일 년 중 가장 돈이 많이 나가는 달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세 명이고 터울이 많은 편이라 물려받아 쓰는 일이 거의 없고 여자아이들의 취향도 달라 공유해서 입는 옷가지며 생활품조차도 함께 쓰는 일이 없어 이중으로 생활비가 들어간다. 더구나 막내가 아들인 관계로 취미생활에서부터 성별에 따른 생활용품이 따로따로 각개전투처럼 5인 가족의 비용이 정말이지 만만찮다. 거기에 항시 동물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인간의 생활비에 미국에서 동물을 제대로 키우려는 1인으로 병원비며 사료비에 에고.. 나열하기도 버겁다.
아이를 키우며 들어가는 이러한 생활비는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치고, 가족이 살아야 하는 장소에 따른 비용이 그중에 으뜸이고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처음 미국에서 월세를 내는 아파트 생활을 할 때는 주택을 구입했을 경우 그 비용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고 렌트비는 그저 다달이 돈을 지출하기만 하고 생돈을 거리에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빨리 내 집을 마련하는 길만이 미국에서 잘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남는 장사인 것처럼 온 마음과 정신을 집중한 시기를 거치다 보니 지금은 그래도 제법 근사한 집을 소유하게 되었다.
미국에 온 지 5년 만에 이룬 성과였으니 우리 부부에게 칭찬할만한 대단한 일이긴 하다.
맨땅에 해딩을 하다시피 한 미국 생활이었다. 부부가 영어를 잘하기는커녕 현재형과 과거형 시제도 말할 때 헷갈리는 정도의 영어 실력이었고 그나마 남편은 오자마자 회사를 다녀야 했기에 생활 영어는 (여기에선 생존 영어라 한다) 그럭저럭하는 편이었다. 그 실력으로 월급을 받고 5인 가족이 생활을 한다는 건 20년이 지난 지금에 생각해보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지 싶을 만큼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라고 한다면 절대 못 한다고 대뇌인다.
집을 소유했으니 집에 관한 재산세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재산세(Property Tax)는 부동산 평가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데 주마다 재산세 규정이 다르다. 미국의 평균 재산세율은 1.69% 정도다. 가장 낮은 하와이는 0.28%이고 가장 높은 주는 뉴저지로 2.42%에 달한다. 즉, 내 집이 1억이라면 평균적으로 봤을 때 1,690,000원을 내면 된다. 하지만 소득세에 재산세 등 지방세 납부액 중 연간 1만 달러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어 일단 납부를 해도 전체적인 세금 부담이 한국보다 조금 감면이 되는 건 사실이다. 한국도 재산세에 대한 공제를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 재산세 기준이 되는 부동산의 가치 평가는 미국 주택 감정(Appraisal)에서 사용되는 방식과 거의 동일하게 산정된다. 가치 평가 기준으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 주택 건설 비용, 주택에서 발생하는 수익 등을 따지게 되는데 만약 가치 산정이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면 로컬 정부에 재심사를 요구할 수도 있다. 우리 집 같은 경우에도 집을 구매하고 1년 뒤 너무 높게 책정된 재산세의 재감정 요구를 해서 세금을 낮추는 성과를 냈다.
여기에서 예상치 못한 큰 오류가 있었다.
재감정으로 세금이 낮아져 당장은 이익이 된 줄 알고 좋아했지만 결국 집의 가치는 평가절하된 셈이었다. 세금을 적게 된 만큼 집의 가치가 하락해서 팔 때의 가격은 그 전의 가격에 비해 높게 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당장 이익이 나중에는 큰 손해가 된다는 걸 그 당시에는 결코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 부동산으로 인한 재산세를 많이 낸다는 건 결국, 집의 가치가 그만큼 높기 때문에 다른 집에 비해 재산세가 비싸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다른 집에 비해 비싼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재산세를 납부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모기지를 낼 때마다 재산세를 12로 나누어 매달 은행으로 모기지와 함께 내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모기지 회사에서 에스크로 계좌에 재산세에 해당하는 부분을 따로 모아 두었다가 매 분기별로 재산세 납부일에 맞추어 납부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직접 내는 방법인데 일 년에 1회에서 분기별로 4회에 나누어 청구서를 가지고 체크나 카드를 이용해 납부할 수 있는데 이는 지방 정부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고 한다.
처음 아파트에서 살 때 (미국의 아파트는 렌트의 개념이라 한국처럼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만났던 한국 이웃 중 한 분이 그 아파트에서만 10년째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란적이 있다. 하루빨리 내 소유의 집을 사리라는 생각을 그분을 보고 결심을 했을 정도로 한 달에 백만 원 이상의 돈을 허투루 허비하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다운페이 할 돈이 조금만 마련되어도 주택을 구입하고 매달 렌트비 내듯 모기지를 내면 결국은 내 소유의 집이 되는데 백날 렌트비만 내는 아파트는 결국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돈을 죽어라 내는 일이라 생각했었다.
겉으로 보는 것과 다른 무엇이 있었다. 한국에선 예를 들어 강남의 1주택의 재산세는 이백만 원이 넘지 않는다(인터넷상으로 나와 있는 금액이라 다소 다를 수 있다). 물론 강북이나 지방에 있는 주택이나 토지의 재산세는 이보다 훨씬 적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재산세가 이렇다는 말이니 20여 년 전에는 이보다도 훨~~ 씬 저렴했을 것이고 그 당시의 세법으로 본다면 적어도 5분의 1 가격이지 않았을까? 한국의 재산세가 워낙 적다 보니 미국에서도 구입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지고 구입 후에 매년 평생 내야 하는 엄청난 비용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암튼 주택을 덜컥 구매하고 보니 그다음 해부터 날아오는 재산세는 과히 청천벽력이었다. 집값의 1%가 넘어 거의 2%에 육박한 금액이 청구되었다. 만약 집값이 5억이라면 쉽게 말해 1%면 5백만 원이고, 2%면 1천만 원이다. 그럼 10억짜리 싱글 하우스라면 재산세가 1천만 원은 훌쩍 넘고 거의 2천만 원이라는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10억짜리 아파트의 재산세를 인터넷상으로 알아보니 (물론 무작위 10억짜리 아파트의 재산세를 물어보았다) 100만 원이라고 알려주었다. 한국의 거의 10배를 넘어 20배에 가까운 금액을 미국에서는 재산세 명목으로 집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들에게 엄청난 세금을 걷어들이는 셈이다.
미국이 여러 가지 면에서 세금이 세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운전 과속으로 딱지를 끊으면 벌금이 3-400불은 기본이고 거기에 벌점을 주니 법원에까지 가서 잘잘못을 따져야 그나마 벌점을 없애주는 바람에 시간과 돈의 가치를 따졌을 때 되도록이면 과속하지 않고 도로 규칙을 잘 지키는 게 상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한국에서 운전대만 잡으면 자연적으로 전투태세로 돌입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급하게 운전하는 습관을 여기에선 버리게 되어 다행이긴 하다.
월급을 받는 월급쟁이가 이 사회의 봉이라는 말이 있다. 월급의 30%는 기본이고 부양가족이 없다면 35%, 고소득 군에 속하면 40-50%까지도 세금으로 내야한다. 중산층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말이다. 고소득층은 돈이 워낙 많아서 괜찮다 치고 저소득층에 대한 우선 배려가 미국이 살기 좋다는 입장에서 좋다 치고 중간계층인 소위 나 같은 중산층은 죽어라, 세금만 내다 세금을 낸 만큼의 이익은 하나도 받지 못해 일만하다 죽는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고 있다.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겠지만, 소득 불균형에 따른 세금 유형이 특히 심한 나라가 미국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의료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한국의 국민의료 보험으로 받는 전 국민의 공평한 혜택을 미국에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코로나로 인해 미국 등 선진국의 의료행태의 민낯이 고스란히 나와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의료 시스템의 후진성을 보여주었는데 아직도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없다.
우리 집을 예로 들면 5인 가족 한 달 의료보험으로 나가는 비용이 매달 $1,890(한화로 이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그렇다. 20년 전에도 이미 1천 불이 넘었고 점점 올라서 지금은 2천 불 가까이 되었다. 그럼 에도 일단 일 년 중 처음 2백만 원 정도는 개인이 병원에 지불하고 그다음부터 보험이 적용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약관을 만들어 악랄하게 국민을 우롱한다. 의료 보험 이야기는 여기까지.. 말하다 혈압으로 쓰러져도 해결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종부세는 종합부동산 세금을 말하는데 이는 부동산 보유세인 동시에 고액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매기는 부유세다. 경제학에서는 토지 보유세는 좋은 세금이라고 하는데 이는 고액 주택자에게 세금으로 부담을 주어 투기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부의 과도한 편중 문제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 이러한 종부세를 내야 하는 부동산만이 아니라 소득, 금융, 주식 등을 망라한 별도의 부유세를 두는 것이 차등화된 세금법의 정곡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종부세 대상자가 아닌 98% 국민 중에도 종부세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종부세를 내야 하는 사람은 9억 원 이상의 부동산을 가진 한국인의 상위 1%에 해당되는 사람들인 점을 감안 한다면 나머지 99%에게는 나쁜 세금이 아니다. 더구나 종부세와 무관하거나 세액이 얼마 되지 않는 비수도권 주민이 서울 부자들의 종부세에 대한 불평에 동조한다는 모습은 정치와 언론을 장악한 기득권층이 정보를 왜곡하고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달리 해석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내 손에 번듯한 집이 남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재산세뿐만 아니라 집을 유지하기 위해 그동안 들어간 비용과 집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며 일군 땀방울을 생각한다면, 렌트비만 내며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았을 아파트의 생활이 그리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나면 보일러와 에어컨을 통채로 교체해야 하고 지붕도 시간이 지나면 걷어내고 새 지붕으로 갈아주어야 하고 매년 잔디와 나무 관리에 눈이 오면 눈을 치우는 비용과 물세 등등 주택을 소유하면서 들어가는 소소한 잡비들과 묵직한 관리 비용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자녀가 대학을 간다면 문제가 또 달라진다.
부모의 재정 상태에 따라 대학에서 부담해 주는 비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를 아는 부모들은 일부러 아이가 대학을 가기 전까지 집을 구매하지 않기도 한다. 집이 있고 년간 수입이 많을수록 학교 입장에서는 서류상 부모의 재정이 튼튼하다는 생각을 하고 가정 부담금을 크게 올린다. 만약 주택이 있고 재산세를 많이 내고 자동차와 연봉이 높은 부모의 자식이라면 학비 전액을 학교에서는 받으려 한다. 반대로 싱글맘이고 아파트에 살고 연봉이 높지 않은 부모의 학생에게는 학교에서 보조해 주는 금액도 높고 주 정부에서도 보조를 받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않으면 전액 장학금을 받고도 용돈까지 받아가며 다니는 학생도 많이 보았다.
미국 대학은 이러한 기준이 매우 명확하기 때문에 세금에 따른 비용 또한 매우 정확하게 산정되고 그에 합당하게 시스템이 돌아간다고 봐야 한다. 때문에, 미국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어떠한 이익과 손해가 있는지를 잘 따져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턱대고 나처럼 싱글 하우스를 미국의 드림이라며 구매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6월 말에서 7월 초가 되면 재산세 청구서가 날아 들것인데 과연 이번해에는 얼마나 더해서 나올지 심히 걱정된다. 코로나 이후 미국의 집값이 올랐고 집의 가치가 오른 만큼 정부에서는 재산세 산정을 필히 다시 했을 터인데... 그럼 왜 미국에서 주택을 고집한 거야? 미국에서 처음 만났던 10년 동안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그분은 이 모든 걸 알고 그러셨다는 건가? 하지만 여기에서 놓치고 있는 게 하나 있었다.
싱글 하우스만이 가지고 있는 넓은 잔디와 많은 친구가 와서 즐겁게 뛰며 놀 수 있는 놀이 공간, 그리고 숲이 우거진 자연에서 마음껏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여유를 다른 곳에서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스트레스 없이 돈을 모았을 행복 대신 아이들의 건강하고 큰 웃음으로 맞바꾸었다면 조금의 위로가 되지 않을까? 오랜만에 가족 모두 합체되어 신난 한국 영화에 흠뻑 젖고 있는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