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Sep 14. 2021

미국에선 개나 소나 치는게 '골프'라는데요,

골프를 시작한 지 4주가 되었다. 골프와 관련된 용품을 일괄 주문하는 일을 시작으로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코치를 섭외하고 연습장을 들락거리며 레슨을 10차례 받았고 도둑고양이처럼 골프장에서 혼자 연습을 해보기도 했다. 몸 쓰는 일이라고는 옷걸이 거는 일밖에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몸의 모든 뼈와 근육이 오므라지고 펴지며 모든 세포와 근육들이 제맘대로 죄였다 폈다 하고 있다. 어설프게 한 달이 지난 후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딱 1개월 전으로 돌아가자.


안타깝게도 내 작업실 통창으로 골프코스가 보인다. 언덕으로 힘겹게 카트를 밀고 올라가는 한국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내 시선을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마치 폐지가 가득한 수레를 끄는 아주머니를 오르막길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힘겹게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모습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밀어줄 수도 뭐하고 그냥 지나치지도 못해 어정쩡하게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그렇게 무겁고 힘든 모습으로 보이는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서양 사람에 비해 우리 한국 사람 체형은 그리 좋지 않은 데 이유가 있다. 골프클럽 즉 육중하고 커다란 골프백을 실은 카트가 한국 여자들이 밀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크다. 거기에다 위와 아래의 색을 다르게 입으면 그렇잖아도 비율이 좋지 않은데 더 작아 보이거나 더 왜소해 보인다. 더구나 한국 아줌마들은 무채색보다 밝고 화사한 색상을 선호해서인지 더욱 눈에 띄고 얼굴이 햇빛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얼굴 전체를 덮을만한 모자와 커다란 검은 선글라스 거기에 작은 틈 하나도 용납할 수 없다는듯 얼굴 전체를 이중 마스크로 가린다.


몸집이 작아 카트가 너무도 무거워 보이는데 옷은 아이들처럼 총천연색으로 입으니 꼭 작은 아이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지고 올라가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러면서까지 골프를 해야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마치 대단한 다짐이라도 하듯 '난 절대로 저런 모습으로 골프를 치지 않을 거야' 라며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하지만 젊고 잘 빠진 젊은 여자들이나 키가 크고 건장한 미국 남자들의 모습은 불행하게도 정반대다. 멋을 내지 않은 듯 무심히 편하게 무채색으로 입는데도 그린필드와 어울린다. 골프가 원래 서양 운동이라 그런지 이상하게 노랑머리 사람들과는 찰떡같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필드와 노랑머리가 원래의 모습인양 동양사람이 특이하게 끼어있는 듯한 불편한 모양새와 색감으로 톡톡 튀고 있으니 한마디로 환장할 노릇이다. 아무리 눈코입 그리고 머리를 가린다해도 그 몸집과 옷만 봐도 멀리서 우리 한국인임을 알수 있다.


한국의 여자 골프가 강세이다 보니 감히 미국 사람들도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 놓지는 못하지만, 내심 그들 속에 울긋불긋한 한국 아줌마들의 등장이 그리 반가울 리는 없다. 예를 들어 태권도장에 껑충하게   노랑머리가 파란색 윗도리와 노란색 바지 도복을 입고 어정쩡하게 하얀색 도복을 입은 한국 사람들 사이에 껴있다고 상상해보면 어떤 느낌일지  것이다.


왜 그런 모습으로 굳이 힘들게 골프라는 운동을 할까? 차라리 그냥 편안한 옷을 입고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며 천천히 자연과 호흡하며 산책로를 걷는 게 운동이라면 낫지 않을까? 솔직히 골프가 운동이 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채를 왜 그리 몽땅 가지고 다녀야 하는지, 왜 꼭 그렇게나 무겁게 생긴 기다란 가죽 가방에 넣어 더 무겁게 끌고 다녀야 하는 건지.. 사람이 아는 것만큼 보이는 것이니 내가 아는 게 없으니 그리 힘들어만 보이고 '굳이'라는 단어와 함께 강하게 도리질만 쳤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내가 골프를 시작했다는 자체에 일단 점수를 줘야겠지만 그만한 계기가 있었다.


한국을 방문했을때 코로나로 인해 골프 이외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서울이 4단계까지 올라가며 6시 이후에는 2명만 만나야 하는데 골프는 예외라 한다. 일단 4명이 18홀을 다 돌 때까지 같이 시간을 나눌 수가 있고 넓은 필드에서 마스크 없이 마음껏 웃으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말로 거의 모든 지인의 반강제 우격다짐을 들으며 미국에 왔다. 다음 해엔 반드시 골프 치는 멤버가 되어 같이 골프를 즐기는 걸로...  


내가 그렇게 치부하며 나의 전체 뇌에서 1%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눈을 흘기며 바라봤던 그 장면을 지금은 그대로 착장하고 있다. 알록달록 그야말로 총천연색이다. 손바닥만 한 치마에 갖가지 색이 들어 있어야 어떠한 색상의 티셔츠를 입어도 어울린다는 걸 알게되었다. 특히 이 나이에 언제 이런 짧은 옷을 벌건 대낮에 아무런 부끄럼 없이 입을 수 있단 말인가? 아직 필드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천하에 완전 초짜 연습생인데 패션만큼은 프로들이나 입는다는 옷을 쫙 빼입고 무릎까지 오는 검정 양말을 신고 생전 처음 써보는 캡 모자를 쓰고 룰루랄라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내 딸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 고등학생 같아. 하하하"


"어머, 고등학생?? 그렇게 어려 보이니? 좀 너무했나?"


"아니야 엄마, 보기 좋아. 건강해 보여요^^"


운동이라면 몸서리치게 싫어했던 엄마였다. 큰 수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숨쉬기 운동만 하고 있으니 가족 전체가 엄마를 설득하려 했으나 말에 씨도 안 먹혔는데 이젠 자진해서 옷까지 갖춰 입고 나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아니면 주책맞아 보였는지 그 속내까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딸이 보기에 젊어 보인다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내가 왜 골프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그렇게 눈살 찌푸리며 비난만 했던 패션에 있다.


그렇게나 혐오하던 아줌마들의 골프 옷에 대한 의문이 풀렸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렇다. 젊었을 때는 성숙되고 나이가 들어 보이면 멋진 여자로 보이고 시크해 보이기까지 하다가 나이가 들면 어떡하면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일지 온갖 애를 다 쓴다. 인생의 척도가 아마 1번은 다이어트일 것이고 2번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일일 것이다. 이건 전적으로 외적인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니 내적인 아름다움에 비할 수 없다는 외향 지향적인 발언은 아니니 오해는 금지다.


희한하다. 다른 운동은 패션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둔다 하더라도 운동할 때만 입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으면 끝인 운동들 특히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운동복도 나름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하는 패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수영이나 스키 또한 패션에 중점을 둘 수 있으나 운동하는 그 안에서의 패션으로 한계점이 있다.


하지만 골프는 일단 골퍼들이 같은 평지에서 걸어 다니며 서로를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 골프가 메너 운동이라 아무렇게나 입고 나갈 수 없다는 규칙 또한, 패션을 이끌고 갈 수밖에 없는 일이라 솔직히 돈이 많이 드는 운동임에도 부인할 수는 없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젊어 보이게 할 수 있는 요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멀리서 보았던 아줌마들의 반란이 막상 그 안으로 들어가보니 이보다 더 좋은 나만의 만족감이 생기는 일인줄 몰랐다. 심히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 이유는 다른 운동에 비해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이렇게 운동이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떤 운동을 할 수 있을까? 남자라면 그래도 뛰기라도 하고 헬스를 하며 근육이라도 단련할 텐데 그저 숨 쉬며 다니는 것으로 운동이라며 위안 삼는 운동 젬뱅이 수준의 나 같은 사람이 과연 나이가 들면서 어떠한 방법으로 몸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겠는가? 그저 산책하며 걷는 거밖에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그제야 건강 운운하며 시작할 수 있는 게 무얼까?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다이어트라는데 골프는 젊었을 때부터 입는 옷을 나이가 들어도 크게 달라짐 없이 입을 수 있기에 비싼 돈 들여 사놓은 골프 옷을 그대로 입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운동할  것이다. 그래서 골프는 그야말로 몸매 유지를 위해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 중에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세 번째 이유는 인간관계 정립이다


일단 2명에서 4명이 썸을 이루어 필드를 나가야 하는데 인간관계를 최소한 1명에서 3명까지는 확보해야 살아남는 서바이벌 게임이니 인간관계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데 대단한 인내를 요 하는 일이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혼자 집에서 틀어박혀 있어 보았자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으면 그나마 골프의 골자도 말해선 안 되는 일이니 이점이 나이 들어도 소외되지 않는 방법 중의 하나다.


즉 인간관계를 좋게 하는 일이자 운동까지 결부되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터이다. 그나마도 걸을 수 있는 나이까지 한정된 운동이고 9홀이나 18홀까지 어찌 되었건 걸어야 게임이 끝나는 일이니 싫든 좋든 걷고, 떠들고, 머리 쓰고, 그리고 서로 단합하는 과정에서 치매나 관절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거기에 심판이 없는 유일한 게임이라 정직하게 스스로 점수를 계산해야 하니 정신을 끝날때까지 놓을 수 없고 한번에 승부가 나지 않고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게임이라 한두번의 실수는 개의치 않아도 된다. 그 또한 승부욕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아도 되는 일이라 정신 건강에 좋은 운동이라 할 수 있다.



골프를 시작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한국보다 미국은 골프를 운동으로 하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운동 또한 아니다. 누구는 그런다. 개나 소나 치는 게 요즘 골프라고.. 사실 쳐보니 그런 것만은 아니다. 골프 입문에는 장비에서부터 레슨 그리고 연습 비용과 필드에 나가는 비용, 거기에 사교 비용까지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고도 골프를 쳐야 하는 이유를 굳이 대자면 딱 한 가지.. 바로 우리가 더 늙어서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걷지 못할 정도이고 인지능력이 확연히 떨어진다면야 무슨 운동이든 할 수 없으니 그건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내 의지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골프지 싶다는 것이다. 머리 회전이 둔해지는데 느릿한 독서 모임을 계속할 수도 없는 일이고 손주들이 나이 든 할머니를 재미있게 대해 줄 리도 만무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젊었을 때부터 게임을 계속 즐기다 보면 나이가 들어도 천천히 걸으며 인생을 논한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일 코스 연습을 처음 나가는 날인데 걱정이 앞선다. 레슨 10번을 다 했으니 결과를 보고하는 차원인데, 헛땅이나 치고 헛스윙에 같이 가주는 친구에게 창피나 당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하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즐기며 가는 게 인생이고 죽을 때까지 천천히 칠 건데 뭐 그리 바쁘다고..


골프가 인생 여정과 같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 재산세는 한국의 10배? 20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