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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20. 2022

미국의 출산율이 한국의 2배인 이유

누가 나에게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난 주저 없이 말할 게 딱 하나 있다.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자신 있게 음식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구석구석 깔끔하게 청소를 잘하는 타입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지천명에 이르러 누구에게나 칭송받는 좋은 어른도 되지 못한다. 일을 오래 했지만, 경제 관념이 뛰어난 커리어 우먼도 되지 못하고 미국에 2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영어 울렁증에 시달려 지금이라도 한국으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내가 누구에게나 '나, 이거 하나만은 잘했어요'라고 세상에 태어나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꺼리는 단 하나... 바로 내 안에서 나의 아이들이 이 세상에 그것도 세 명씩이나 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처음부터 가족계획을 한 건 아니다. 여자로 자라면서 불공평한 사회적 일들이 많아 남자로 이 세상을 사는 게 훨씬 좋겠다는 이유 하나로 아들 낳기를 희망했다.


세상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들 하나만 딱 낳아 단출하고 심플하게 살고자 하는 내 욕망은 그저 욕심이었을까? 처음부터 시련을 안겨주었다. 첫 딸을 낳고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누가 보면 무지막지하게 권위적인 종갓집으로 시집을 가 반드시 대를 이어야만 하는데 아들을 낳지 못해 소박을 맞고 친정집으로 쫓겨난 상황인 줄 알았을 것이다.


두 번째 임신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반드시 아들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생각한다면 로또를 사서 반드시 당첨되어야 한다는 확률과 같은 것인데 세상에 내 맘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번에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한다. 왜 그리 정부의 정책과 의사 선생님은 아기 성별을 일급비밀로 여겼었는지 행여나 딸이라고 하면 낙태법을 어기는 무서운 젊은 엄마라는 생각을 해서였는지 정말 막달에 언뜻 지나가는 말로 넌지시 내 조그만 딸아이에게 '넌 좋겠다 이쁜 여동생이 생겨서...'


더 늦기 전에 악착같이 아들을 하나 낳아보고 싶은 열망과 심한 자격지심이 합해진 욕망 덩어리 상태로 연속적인 임신을 했지만 매번 계류 유산이 되었다. 몇 번 고생하다 보니 '습관성 유산'이라며 이러다간 큰 병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며 담당 의사는 절대 임신 불가 판정을 내렸다.


이럴 수가... 이젠 절대 아이를 가질 수 없구나...해야 하는데 웬걸 그런 마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 와서 공기가 좋아 아이에게도 좋을 거라는 핑계로 또 한 번의 임신을 하게 된다. 무슨 괴기 영화도 아니고 임신을 하면 절대 위험하다는 현대 의학도 무시한 채 자살골을 작정하고 넣는 수비수의 마음도 아니고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정말이지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아집으로 그냥 아이를 낳아야지라는 마음 하나였다.


미국 의사도 노산이기도 하고 체력도 약해서 위험하니 낳을 때까지 조심하라는 경고를 했다. 하지만 내 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아기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게 불법이 아니라는 점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임신 16주면 아들일지도 모를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


16주에 혼자서는 도저히 자신이 없고 내 미국 친구와 함께 울트라 사운드 룸에 들어갔다. 쿵쾅거리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들입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즉시로 눈물이 나왔다. 주르륵주르륵 흐르는 눈물에 미국 친구는 나를 안고 울었고 여의사는 어리둥절하고 친구는 동양의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해 설명을 하고 나는 나와서 남편에게 아들이라고 울며 전화를 했고... 꿈 같은, 정말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마음으로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들을 만끽했고 17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모습이 생생하다.


아들을 낳았으니 그제야 숙제가 끝났다. 그저 아들 하나만을 낳으리라 마음먹었던 나의 인생 설계가 심하게 흔들려 사람이라는 존재를 이 땅에 세 명이나 내놓았다. 실로 생명 창조의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도 단 두 명의 인간을 흙으로 빚으셨는데 난 세 명을 낳았으니 하나님보다도 더 대단한 일을 했다고 본다 ㅎㅎ. 이러니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눈치를 채신 분도 계시겠지만 전 세계에서 맨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 출산율의 숫자는 내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출산율이란 1년 동안 총 출생아 수를 15-49세 여성 인구의 수로 나눈 값에 1000을 곱한 값이라고 한다. 1위는 니레로라는 나라로 7.1명이고 한국은 0.86명으로 세계 꼴찌다. 1명이 채 되지 않는 숫자에 기암을 토할 일이다.


이런 현상은 내가 미국에 온 20년 전부터 심상치 않았다. 단지 아들을 낳기 위해 3명의 아이를 어부지리로 낳게 된 사연을 소개했지만, 그 시절엔 '한 명은 조금 외롭고 두 명은 낳아야지'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했었다. 대부분 두 명 정도 자녀를 두고 나처럼 딸만 둘이면 아들 욕심에 하나 더? 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 '한 명만 낳아 잘 키우자'라는 바람이 불었다. 외롭기는 하겠지만 사회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하고 개인의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사회적 이슈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어떤 방송인의 말이 생각난다. '내가 번 돈 내가 혼자 쓰는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을 때만 해도 '뭐 저런 이기적인 남자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맞다, 가족이 있다면 혼자 번다고 혼자 다 쓸 수는 없는 일이고 혼자 쓰면 참 풍족하게 쓰겠구나!'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거 같다. 단 한마디였지만 혼자 멋지게 사는 생활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일반인 모두가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경제적 오류나 개인주의적 이기가 상승한다 치더라도 출산율이 이렇게까지 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은 가정 중심적 사회인데 정확히 말하면 대가족 중심제라 3대 혹은 4대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면 거기에 답이 있을 듯하다. 대가족 중심제라 각 개인의 생각과 행동은 단절과 희생으로 강요되었고 특히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와 어린아이들의 희생은 당연시 되었다. 유교 사상을 지나치게 강조해 남녀노소를 확실하게 구분해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하게 했고 남아 선호 사상은 성차별로 이어져 여자는 출산 후 독박 육아와 함께 경력이 단절되는 폐해가 결국은 세계에서 출산율 꼴찌라는 타이틀을 초래했다.


아기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남자가 여자 옆에서 조금 도와준다는 소극적인 역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출산에서 양육까지 온전히 여자만의 몫이 아닌 가족 전체의 일이고 온 가족이 나누고 함께 하는 공동 육아에 익숙해져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존재해 왔기 때문에 기저귀나 분유값을 정부에서 보조해 준다는 것은 2차 적인 문제고 남녀 모두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안정적으로 사랑도 하고 사랑스러운 아기를 안고 싶다는 마음도 생길 것이다.


또한, 시대가 변해 선진국일수록 여자의 학력이 남자보다 높아지고 있다. 교육의 기회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신분 상승의 목적으로 남자에게 모든 교육의 혜택이 돌아갔다. 경제적인 여건이 좋아지면서 여자에게도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갖게 되었고 사회 진출과 공공기관의 유입은 발 빠른 여성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커리어를 쌓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러다 한국처럼 빠르게 성장 된 경제적 카테고리 안에서 출산이라는 긴 꼬리표는 더 젊고 유능한 여성들에게 힘들게 쌓았던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경력단절은 결코 쉽게 넘지 못하는 철문이 된다는 뜻인데 아이가 있는 여자를 채용한다는 것은 엄마 역할이 아빠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이 사회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이가 있는 남자는 솔로인 남자보다 가정적으로 안정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곧 여자의 경력단절은 사회 단절이라는 의미고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경력은 사회적으로 상승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마트에는 파파 할머니 파파 할아버지들이 어깨를 쫙 펴고 웃으며 일을 한다. 우체국이나 은행에서도 나이 많은 어른들이 일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고 어떠한 기업에서든 아이들로 인한 결근과 휴가는 그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고 아주 당연한 일로 여긴다. 아이는 무조건 돌봐야 하는 대상이고 어떠한 이유로 태어난 아이든 반드시 사회가 뒷받침해줘야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미국에서 양육할 수 있는 힘이고, 그런 이유로 한국 출산율의 2배를 갖게 된 미국이다.



미국의 출산율은 한국의 두 배인 1.7명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내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미국 한가정의 자녀는 3명이 보편적이다. 한인 중에서도 3명을 둔 가정은 드문 일이지만, 두 명의 자녀를 둔 한인의 수는 상당히 많고 한 명만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특히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환경에서 자녀의 수는 경제적으로는 부모의 어깨를 무겁게 할 수 있지만, 외로운 여정에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부모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꼭 한 가지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코 3명의 자녀를 두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 잘났거나 못났거나를 따지는 게 결코 아니다. 나 또한, 내 부모의 몸을 통해 이 땅에 태어나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사람으로 키워주셨음에 감사한다. 내 아이들 또한 아주 미비하지만 한 생명체로 태어나 이 지구에 먼지 한 톨이라도 사회의 일원으로 보탬이 되는 그런 존재가 되길 바란다.


아직도 한 녀석은 지하에서 커다란 강아지를 끌어안고 해가 중천임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고 있고 또 한 녀석은 오늘 왜 학교에 가지 않는지 이유를 알지도 못한 채 작은 강아지를 안고 2층에서 쿨쿨 자고 있다. 아, 큰 녀석은 캐나다 어디에선가 재즈를 들으며 맛난 커피에 취해 있다고 사진이 말해준다. 난 이런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럽고 이쁘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931647

SBS 뉴스 인잇 디지털 오리지널 칼럼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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