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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Feb 27. 2023

한국에서 당장 사라져야 할 단어는?

늦둥이를 출산하고 좋은 점이 하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를 가서 시장을 보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마음씨 좋게 생기신 분이 나를 보며 하시는 말씀이,


"새댁, 아이가 참 이쁘네. 엄마를 닮았나? 참 잘생겼네. 호호호"

"네? 저.. 저요? 호호호 감사합니다.."


그분은 아이가 잘 생겼다는 말에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까지 감사하게 고개를 꾸벅일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난 아이가 잘생겼다는 말은 둘째치고 아줌마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쉽지 않은 적잖은 나이에 아줌마가 아닌 '새 댁'이라는 갓 시집을 가서 받을 수 있는 호칭에 크게 기뻐, 그 감사함에 고개를 몇 번이나 숙였던 기억이 있다.


반대로, 오늘 손님 한 분이 샾에 들어오시면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에게 하소연을 하셨다. 


"아, 글쎄 나더러 할머니래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내가 할머니는 맞지요. 그런데 면상에 대놓고 할머니라니 그것도 철없는 애기도 아니고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나더러, "할머니, 이거는 이렇게 하시면 돼요"라고 하는데 내가 그 얼굴을 짝 째려봤잖아요. 에이.. 여기가 한국도 아니고 어디서 할머니라니.."


그 당시의 표정으로 그 상황을 그대로 재현했을 테니 아마 그 젊은 청년은 이 어른의 행동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얼마나 서로가 놀란 얼굴을 했을까나?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 싸한 말투로 보아 등골이 오싹했을 것이다. 참고로 나는 그분을 '언니'라고 부르고 그 언니분은 나를 '~씨'라고 부르신다.




모두가 알다시피 영어에도 할머니라는 호칭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Grand mother, 줄여서 Granma(그랜마)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위의 젊은 청년처럼 '그랜마'라고 부르진 않는다. 미국은 누구에게나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에 이름을 모른 채 호칭을 꼭 써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남자에게는 Mr(미스터), Sr(써)를 여자에게는 Mrs(미세스), Madame(맴)이라고 뭉퉁그려 사용한다. 학생이건 아줌마건 할머니건 어른으로 보이는 사람한테는 서로가 그렇게 호칭하면 된다. 


하지만 한국은 어른을 초년, 중년, 장년 그리고 노년이라는 이름으로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 놓았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름답게 어른이라고 다 같은 어른이 아니고 나이값에 따른 대우를 사회적으로 규정해 놓고 지하철이나 버스에도 노약자라는 이름으로 약한 어른에 대한 공경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일은 양면의 동전이 있듯이 어른으로 대접하는 기준을 나누는 과정에서 중년의 호칭이 문제가 되었다. 특히 폭넓은 나잇대를 대변하는 중년의 여자에게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른다거나 중년 남자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호칭은 상대방의 기분을 망치게 하는 한 방이 될 수 있다. 분명히 나이상으론 맞는 말인데 막상 들으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호칭이다.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십 대에는 왜 그리 나이가 더디 가는지 누가 누가 더욱 성숙해 보이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때는 20대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어서 20대가 되어 성인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소망했었다. 몰래 훔친 언니의 화장품에 손을 대 짙은 화장을 해보고 엄마 옷장에서나 봄직한 정장을 입어 보기도 하는데 모두 어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들을 강하게 유혹하기 때문이다. 몰래 먹는 사과가 달지 않는가? 


하지만 딱 20대만 지나면 상황은 역전된다. 그때부터는 누가 누가 천천히 그 경계선을 진입하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세월에 장사 없고 흔히 20대는 20마일로 달리고, 30대는 30마일로 60대는 60마일의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역시 어른들의 말은 틀린 말이 하나도 없음을 지나치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20대가 넘어서면서 그 모호한 경계선을 넘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건 그 누구도 중년의 문턱 즉 아줌마 아저씨의 대열을 반가워할 리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난 아줌마 같은 옷은 입기 싫어" 아줌마가 된 지 고삼년이 지났음에도 아줌마 같은 옷(?)은 그 누구도 싫어한다.

"난 아줌마처럼 주책없이 말하는 사람이 참 싫더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아이를 낳고 기르다 보면 힘센 아저씨처럼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주책없이 막말을 한 적은 없는지..

"아저씨처럼 꼰대는 되지 말아야 할 텐데" 아저씨만 꼰대인가? 요즘은 젊은이도 꼰대가 많은 시대에 꼭 아저씨만 꼰대는 아닐텐데 꼭 말끝마다 아저씨란다.


그럼 아줌마와 아저씨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줌마라 하면 일단, 결혼은 필수고 아이가 있어야 한다. 막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면 아줌마가 되기에는 조금 이르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 그러니까 약 30대가 되면 아줌마 대열에 들어선다고 봐야 한다. 아줌마의 반대가 아가씨니까 아이를 낳았다면 최소한 아가씨가 아니니 당연히 아줌마 영역에 들어간다고 본다. 그렇지만 30대에 아줌마 소리를 듣는다면 당연히 기분이 엄청 나쁠 일일테고 그래 좀 더 얹어서 40대를 진정한 아줌마 그룹에 포함하자.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혹, 이 글을 읽고 있는 40대 독자라면 당신에게 누군가가 '아줌마'라고 뒤에서 부른다면, 과연 뒤돌아볼 것인가? 반 이상은 절대 뒤돌아보지 않는다고 본다. 자, 그럼 40대도 아줌마이기를 거부하는 그룹임에 틀림이 없고 그럼 50대는? 이도 아니다. 지금의 50대는 과거 젊게 봐주면 30대, 조금 덜 봐준다 해도 40대로 보일 것이다. 특히 요즘엔 보톡스다 필러다해서 모든 물리적인 요건들을 동원해서 한 살이라도 어려 보이는 일에 모든 역량을 동원하는 시대라 실제 나이보다 5년 아니 10년도 어려 보이는 추세로 보았을 때 과연 젊은 50대가 아줌마라 불릴 나이라 생각되는가?


아, 그럼 60대는 어떤가? 내 직업상 60, 70, 80대를 많이 만나는데 모두 예전에 비해 10년 이상 젊게 사시는 분이 대부분이다. 굳이 나이를 밝히지 않은 분의 나이를 가늠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나 생각보다 나이 많아요 (내가 묻기도 전에 이실직고하신다. 왜냐면 내가 맞먹을까 봐서인 거 같다. ㅎㅎ)" 그러면 나도 이렇게 대답한다. "저도 생각보다 나이가 좀 있어요" 대답하며 서로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우린 절대 말할 수 없다. 크게 실수할 게 뻔하니까...


그렇다 


아줌마의 정의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든 여자는 아줌마로 불리는걸 무엇보다 끔찍하게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아저씨는 다르겠는가? 아마 크게 발설하지 않아서이지 아줌마보다 더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죽하면 늙은 남자에게 '오~빠'라고만 하면 아주 무서운 아저씨도 무장해제 되어 실실 볼이 올라갈까나?ㅎㅎ 아줌마 아저씨가 이럴진대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호칭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아줌마와 아저씨의 경계를 허무는 간단한 단어가 정말 없는 걸까? 미국의 예를 들어보면, 미국에 사는 한국인들을 ko-merican이라고 부르는데 코메리칸들은 나이가 자신보다 많을 경우 대부분 미세스 다음 성(Mrs. Kim)을 붙여 부른다. 그러다 친하게 되면 언니 동생으로 호칭이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메너를 중요시하는 분들은 절대 말을 놓지 않고 꼬박꼬박 미세스를 앞자리에 붙여 존중을 표시한다. 


그럼 왜 이렇게 아줌마와 아저씨의 호칭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애매한 비유일수도 있겠지만, '아줌마'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가 있다. 뽀글뽀글한 파마머리에 일자 눈썹을 붙이고 한 손에는 야구 방망이 들고 다른 한 손은 야무지게 옆구리에 얹고 떡하니 서 있는 여자인데 일명 '쓰리랑 부부'라는 개그 코너에서 다소 우스꽝스럽고 촌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녀는 아무 때나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교양은 제로인 채 막무가내 대사로 호통치며 남편과 아이들을 몽둥이로 때려 한국인 모두를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며 웃음을 자아냈고 그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쓰라랑 부부'라는 개그 코너에서 순악질 여사로 열연한 배우


아마 그때부터 '아줌마' 하면 그런 기 세고 나쁜 촌스럽고 기고만장해서 목소리만 커 집안을 휘어잡는 무식한 사람으로 대변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이미지 마케팅에 모두가 홀릭되어 그 뒤부터는 아줌마라 불리는 사람은 모두가 촌스럽고 모두가 요란하고 모두가 무식함이 철철 흐를 거 같은 순악질 여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데 어느 누가 그런 아줌마로 불리고 싶겠는가? 


아저씨 또한 어느 때부턴가 '~라테는 말이야' 해가며 아저씨는 모두가 꼰대라는 말로 격하시켜 버렸다. 즉 아줌마와 아저씨는 우아한 사모님이나 사장님의 반대적 의미로 혹은 선생님이라 부르기엔 저급 호칭이 된듯하다. 그 이전에는 분명히 '아줌마' 또는 '아주머니'라는 호칭은 아이를 낳고 힘들게 가정을 꾸려가는 위대한 어머니의 위상을 드높였던 평범한 단어였을 텐데 말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나 통했던 진부한 속담이 되었고 지금은 '자고 나면 바뀌어 있는 세상'에 살면서 한국에서 제일 싫어하는 단어인 '아줌마나 아저씨' 라는 이름을 아이만 낳으면 평생 듣고 살야야 한다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아줌마나 아저씨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당장 사라져야 할 것 중의 하나다. 사라지지 못할것 같으면 비호감 단어에서 강한 호감으로 바뀔만한 대 사건이 일어나면 모를까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내가 왜 아줌마야?', '아줌마라는 말은 정말 듣고 싶지 않아'로 일관된 비관적인 삶을 살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난 아줌마처럼 낡고 넓은 파자마를 입고, 아줌마처럼 펑퍼짐하게 앉아, 아줌마처럼 소리 내어 밥을 먹었고, 아줌마처럼 아들에게 메너 없이 큰소리를 쳤으며, 아줌마처럼 '아줌마라는 단어는 당장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맥락 없이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내가 바로 진정한 아줌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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