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Aug 04. 2023

서이초를 바라보는 미국 아줌마의 시선

글을 쓰고 싶었다. 사실 글보다 말을 하고 싶었다.


얼마 전 일어난 서이초 사건은 결국 누군가가 희생되어야만 세상에 알려지는 일이었다. 그것도 학교 내에서 희생되어야 정말 모든 사람이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는 일이었다. 꽃같이 이쁘게 기르셨을 부모님의 천불을 싸안고 우는 가슴 절절함이 먼 이국땅에까지 생생히 전해오는 이유는 나 또한 비슷한 나이의 딸을 가진 부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우리 아이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에 왔기에 서이초 1학년 선생님과 더욱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교육에 손을 떼지 못하고 있어 아직도 학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미국으로 온 첫째는 딱 1년이 흐른 후에 정확히 자기 의사를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이유는 정말 말이 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지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전교조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때라 선생님의 교권이 하늘을 찌르지는 않았지만 거의 하늘에 닿아 있을 때였다. 첫째 딸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나이가 좀 있으셨고 개량한복을 입으셔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첫아이를 맡겨야 하는 젊은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를 가르친 경험도 많아 보이고 푸근하게 대해줄 거 같은 마음이 들었다. 거기에 개량한복을 입으셔서 나이가 많은 단점을 극복하시려는 의지도 보여 좋았던 거 같다.


하지만 학교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일 울면서 집에 오는 게 아닌가? 자세히 물어보니 옆 친구랑 이야기하거나 시험문제 하나를 틀리거나 심지어 아이들과 쉬는 시간에 웃고 떠들고 천천히 걷지 않으면 손바닥을 맞는다는 것이었다.


‘설마... 아이가 그냥 하는 말이겠지. 집에서랑 아이들이 다른 행동을 한다더니 정말 우리 아이가 학교에서는 잘못된 행동을 하나 보다. 얼마나 잘못을 많이 하면 그렇게 순하게 생기신 분이 매를 들까? 이래서 엄마들이 문제인 거야. 맞을만하니까 선생님이 때리는 거겠지. 저 조막만 한 손바닥 어디 때릴 게 있다고 때리겠어. 그래 다 아이가 잘못한 거야’


그러면서 학교에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 겨우 학교에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 일이 났다. 아이가 학교에 돌아와서 정말 억울하다며 말을 하는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수박에 없었다. 친구들은 영어 대회에 나가는데 자기는 들은 적이 없다며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어 가는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이왕 가는 거 촌지를 들고 갔다. 촌지에 대한 시선이 그 당시에도 전교조 바람이 살짝 불고 있어 어찌해야 할지 정확히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로 봉투 하나를 만들었다.


개량 한복을 단정히 입으신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내 손을 냉큼 잡으시며 참치 박스(박스 안에 현금을 넣었다)를 거의 빼앗다시피 가져가시며 "왜 이제야 오셨나요?"는 말을 아주 정확히 그리고 당당히 내뱉으셨다. 아뿔싸! 너무 늦게 촌지를 들고 온 거였구나.. 선생님의 이 같은 행동은 나에게 충분히 미안하고 죄송하고 그리고 앞으로 더 자주 이런 걸 들고 와야 아이가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내비쳐지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영어 말하기 대회에 참석하는 건 물론이고 아이들 앞에서 연습을 시키는가 하면 상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그 뒤로도 한두 번 약발이 떨어질 때쯤 더 찾아갔고 무사히 1년이 지나가게 되었다. 그러다 2학년이 되자마자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이랬던 아이가 미국에 왔으니 여기는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지금의 나와 내 딸이 20년 전으로 돌아가 지금의 사회 시선으로 상황극을 한다면 서이초의 어린 선생님과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긴 글로 그때 그 상황을 쓴 이유는 20년 전에는 이처럼 교권의 힘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랬던 교권이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전교조의 시작으로 엄한 선생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학생과 학부모의 입김이 세어졌다. 지금은 그렇게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잡은 교편을 죽음으로 대신하면서 한국의 모든 선생님의 희생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언젠가는 터질 일이 터진 셈이다. 미국과 한국의 학교에 대해 잠시 비교해 보는 것으로 한국의 교육에서 어떠한 면이 바뀌어야 되는지 알 수 있을 거 같다.


첫째, 선생님의 비밀 편지 한 장으로 대학의 당락이 좌우될 수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학교 깊숙이 들어가 봐야 알 수 있다. 겉에서만 보면 절대 알 수 없는데 바로 학생이나 학부모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인들은 자유롭게 선생님과 대화하고 어른 아이 할거 없이 한마디로 위아래 없이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친하다고 봐준다거나 사소한 일이라고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다. 전반적으로 천천히 처리되는 사회의 시스템이 학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한 번은 우리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선생님 교실에서 커닝을 하다 들켰다 한다. 너무 좋아하는 선생님이라 더 잘하려는 욕심에 살짝 옆 친구의 답을 보았고 선생님이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곧바로 선생님 회의를 소집해서 아이에게 학생부 기록에 올리겠다고 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폭도 아니고 도벽도 아니고 그저 쪽지시험 한 문제를 커닝했다는데 그걸로 생활기록부에 올리겠다니 말이다. 그만큼 미국의 교권은 무섭지만 공평하다.


물론 한국도 생활기록부가 있고 대학에 가면서 그 기록이 올라가는 건 같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미국은 학교에서 직접 대학으로 선생님의 친필이 보내진다. 한마디로 선생님의 편지가 학생이나 부모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선생님의 소견이 그대로 대학에 보내진다는 것이다. 편지 안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학생이나 학부모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선생님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 선생님은 무서운 촌지를 받지 않는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국의 기억을 떠올리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비싸고 질이 좋은 커피를 사서 보냈다. 다시 돌려보내는 사태는 없었지만, 정중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처음으로 이런 선물을 받아서 매우 기쁘기는 한데 $25이 넘는 선물은 학교오피스에 보고해야만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잘 모르니 돌려보내지는 않지만, 다시는 이런 선물을 보내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내용의 편지였다.


비싼 선물을 내 아이의 선생님에게 보낸다는 것은 무엇인가? 선물을 받았으니 내 아이를 다른 아이보다 이쁘게 봐달라는 의미이고 결국엔 차별을 종용하는 부모가 된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미국 학교를 한국 엄마의 치맛바람이 흐려놓는다는 말을 듣고 있던 차라 더욱 낯이 뜨거웠다. 그다음부터 $25 짜리 선물카드나 저렴한 초콜릿등 정말 감사의 마음만을 담아 선물을 보냈고 그나마도 고학년이 되면서 보내지 않는 해가 많아졌다. 굳이 촌지를 드리지 않아도 학생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대한다는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셋째, 학교를 위한 공권력이 학부모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미국 고등학교에 경찰이 항상 상주해 있는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의 모습 같다. 처음에는 고등학교에 경찰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학군이 최상위권에 속해 있기도 하고 주변 환경이 도시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활해야 하는 학교에 총을 장착한 경찰이 학생들을 일일이 주시하고 학생들도 그런 모습이 익숙한 듯 행동하는 모습이 매우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최소한 학생을 통해 마약이나 총기가 학교에 반입되는 일은 없게 하고 학폭을 예방하고 즉각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경찰이 버팀목이 되어주기 때문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한국처럼 단순히 정문을 지키는 단순직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등교 시간이 끝나면 학교에서 안팎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 자동으로 닫히는 시스템이 있다. 이런 것은 한국에도 적용되면 무단외출 같은 통제는 가능할 거 같다. 언뜻 보기에 경찰이 학교 안에 상주한다는 자체에 굉장히 비호감적인 이슈가 될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학생뿐 아니라 학교를 위한 공권력이라면 미국처럼 학부모의 지지를 받지 않을까?


넷째, 미국에는 사교육비가 워낙 비싸 사립학교가 아니면 공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가장 고질적인 방과 후 학원 직행이라는 사교육장이 미국엔 없다. 학원이라는 말 자체도 생소하지만, 학교 이외의 사교육비가 워낙 비싸다 보니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공교육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학교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그에 따른 정책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학군이 좋은 동네를 선호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좋은 학군이란 잘 사는 카운티고 그런 곳에서는 학교를 위한 지원이 좋기 때문에 학습의 질이 좋을 수밖에 없다.  



서이초등학교 선생님의 타계를 시작으로 그동안 겪어왔던 선생님들의 인권이 도마 위로 올라왔고 미투처럼 너도나도 봇물 터지듯 일어나고 있다. 이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언제 그랬나 싶게 그 불씨가 사그라들 것이 뻔한데 이런 고질적인 병은 그 뿌리부터 잘라내지 않으면 또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썩은 뿌리를 뽑아야 하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전교조의 시작은 선생님의 교권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학생들의 인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지만, 오히로 선생님의 인권이 발목 잡혔다. 선생님의 무서운 회초리는 이빨 빠진 종이호랑이가 되어 급기야 교실에서 잠을 자는 학생도 깨우지 못하는 그저 수업시간을 지키는 어른이 되었고 혼이라도 낼라치면 아이들이 일제히 휴대폰으로 찍어 부모님께 전송해서 고발을 당하는 그런 학교가 지금의 결과를 낳았다. 전교조의 희망찬 출발은 결코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으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는 소리는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우화에나 나올법한 옛날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미술 시간에 비싼 물감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귓방망이를 맞았다거나, 음악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 년간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는 일화나, 수업료를 내지 않았다고 손바닥을 수차례 맞아 피멍이 들었다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겪고도 믿기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 학창 시절, 불가항적인 손찌검으로 얼룩진 딱 그런 선생님이 다시는 학교에 발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운동이 전교조였고 그 노조에 동참을 권고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한 자녀 가정에서 금쪽같이 자란 아이가 선생님이 되고 부모님이 된 세대와 일직 선상에 서면서 이번 서이초 같은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젠 선생님이 돈 있는 학부모와 학생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되는 시절이 되었고 학생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침범하는 행위는 곧 선생님의 처벌로 이어지는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학생과 선생님의 인권은 한치도 다르지 않고 동등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미국의 시스템이 엉망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딱 하나 잘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이다. 교육만큼은 미국의 시스템이 한국보다 잘 되어 있고 학원 수업이 필요 없을 만큼 공교육이 잘되어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미국의 교육을 따를 순 없다. 다만 미국은 공부할 학생과 미술 하는 학생 운동하는 학생 그 외에 잘하는 모든 걸 존중해 주기 때문에 일등에서 꼴등까지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하는 한국과는 사고가 다르다.


전반적인 공부에 대한 사고가 교육 시스템보다 중요한 이유은 공부만이 최고라는 공부 우월주의가 낳은 비현실적인 흐름이 우리 아이를 병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나 선생님 그리고 사회 전체가 공부만이 최고이고 공부를 안 하고 못 하는 학생은 잘하는 학생의 비교 대상으로서만 생각한다. 1등과 상위권 학생이 전체의 몇 프로인가? 그들만이 최고라면 나머지 90프로 이상 학생은 10프로도 되지 않는 극소수의 들러리 인생이라는 말인데 그럼 수많은 90프로의 인생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지만, 안다. 땅덩어리는 작은데 인구는 많고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부지런하고 똑똑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고 그랬기에 지금은 세계를 주무르는 동방의 작지만, 힘 있는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개천에서 용 났던 시절의 갑옷은 이제 벗어던져도 될 세상이 되었음 또한 한국이 인지해야 한다. 서로의 인권 다툼이 아닌 공부를 벗어난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찾자는 이야기다.

      

지금 세계를 들뜨게 하는 것은 바로, 한류다.


한류를 이끄는 젊은이들이 공부를 잘해서인가? 아니면 우리 모두가 그렇게 바라는 의사나 변호사인가? 타고난 모양과 성질이 다른 모두에게 오로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그런 구태의연한 사고에서 우리 한국인들은 벗어나야 한다.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며 무슨 일이든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한국인일 때 서이초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 동부 시골에서 산딸기에 취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