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처럼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귀여운 미소를 가진 아들의 전화벨이 울리는데, 평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쯤이면 아들은 집에 도착하고도 남는 시간이고 강아지들 산책을 시킬 시간이고 아니면 이번 주에 시작된 인턴이 힘들다며 소파에 널브러져 있을 시간이었다. 가끔 내 퇴근 시간에 맞추어 전화해서 귀염귀염하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부탁하는 거를 빼고는 참으로 드문 시간의 전화라 순간 당황했었던 거 같다.
실은 하마터면 전화를 놓칠 뻔했다. 손님들이 남긴 컵을 씻으려던 참이어서 웬만하면 설거지를 하고 나중에 리콜하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받아야 할 거 같은 다급함이 분명 느껴졌고 그걸 순간 알았기에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전화를 받았다. 첫마디는 이랬다.
"엄마, 나 살았어"
(살았다고? 뭐가 살았다는 건지 그럼 죽을 뻔했다는 거야? 한국말이 조금 서툴지만 이렇게 앞뒤 문맥 없이 말하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순간 너무도 놀랐다)
"응? 살았다고? 무슨 말이야? 너가 살았다고? 그럼 사고 났어?"
"응. 사고 났어"
"...다...다쳤어?"
"아니, 난 살았어"
"음...그래... 그럼 다행이고.. 지금 어디야?"
"학교 앞 우리 테디 병원 앞이야"
"알았어. 엄마 지금 가는데 어떤 상황인지 말해봐"
"경찰이 뭐라 하는데..."
"그럼 일단 경찰하고 대화하고 엄마는 출발하니까. 또 콜 해. 일단 떨지 말고 잘하고 있어"
말로는 이렇게 아들을 안심시켰지만, 잠깐의 통화로 내 가슴은 너무 두근거려 금방 터질거 같았고 다리는 심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17살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운전을 시작한 지 한 6개월 정도 되어서 운전의 감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고, 12학년(고3)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되었고, 인턴을 시작한 지는 이제 4일 차로 고속도로를 타야 하는 출근길이라 운전이 힘들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던 참에 이런 사고가 터졌다.
학교 수업 도중에 인턴으로 일을 가야 해서 친구들과 스케줄이 달라 시간이 없다며 힘들다고 말했지만, 그 신호를 단박에 무시한 건 얄팍한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된 거 같아 심히 미안하면서도 그래도 일 년을 공들인 일이라 쉽게 포기하라는 말은 못 하겠고 아들의 하소연을 나약한 아이의 '징징댐'으로 어설프게 어물적 넘어가려는 속셈을 들켜버린 듯해서 그 또한 마음이 좋지 않았던 참이었다.
일이란 어찌 이런 어설픔과 단호함의 경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설프다 싶은 마음을 스리슬쩍 넘어가지 못하고 기어이 상처를 내고 어설픔을 끄집어내게 하는지... 더욱이 무거운 마음을 이렇게 커다란 바윗돌로 꽁꽁 묶어 더욱 세차게 칼을 그어대는지 삶의 무게란 정말 예측불허한 일이다. 모든 게 내 탓이다. 현장으로 가는 10분 안에 해서는 안 될 오만가지 상상과 함께 나의 죄책감에 돌을 얹고 얹어 기어이 뜨거운 눈물을 나게 하고 말았다.
보통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가 걱정과 함께하니 1시간도 넘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별의별 상상을 다 하고 가서인지 멀리서 본 사고 현장의 모습은 한가로워 보였다. 4차선 교차로에는 경찰차 몇 대와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차 3대가 얽힌 대형사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한적하고 순조로운 모습이었다. 순간 내가 길을 잘못 알고 왔나 싶은 의심이 들기까지 했다.
일단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크게 안도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경찰이 찌그러진 아들의 차를 다른 쪽으로 이동하라는 말을 몇 번 하는 거 같은데 사고로 정신이 없는지 허둥대고 있었다. 경찰의 재촉이 있고 '내가 하겠다'고 하니 경찰의 눈치는 '네가 왜 하냐'는 듯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엄마고, 내 아들이 지금 다리가 떨려서 운전을 못 하니 내가 하겠다고!" 순간 경찰이 놀랬나 보다. 소리를 아주 작게 내며 오케이 사인을 수신호로 한다.
차를 한쪽으로 빼고 내려서 현장 상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려는 아들의 차를 반대편에서 직진하려던 상대방 차가 아들 차의 조수석 뒤 옆구리를 받은 후 아들 차 옆에 있던 차를 또 한 번 2차로 받았다. 아들차는 운전석 뒤를 박혀서 문이 다 찌그러지고 뒷바퀴가 틀어져 옆길로 빼는 잠깐 사이에도 도로를 심하게 긁는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들 차를 박은 상대방 차는 정면이 박살이 나면서 모든 에어백이 터지면서 다른 차의 운전석 문을 부딪치고 있는 모습으로 정지화면처럼 거리에 서 있었다.
그림으로만 보면 어마어마한 대형 교통사고다.
일단 3대가 널브러져 있는데 한대는 거의 폐차 수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란 기름이 도로에 흘러내리고 있어서 위험해 보였고 아들 차는 뒷좌석이 모두 찌그러져 움직이지 못하고 앞이 거의 전소된 소형차가 다른 차와 부딪쳐 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경찰차 4대가 여기저기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모든 교차로를 막고 있으니 누가 봐도 혀를 쯧쯧 찰 정도로 대형사고의 한 장면이었다.
이런 끔찍한 광경의 한가운데 내 아들이 속해 있다니 무서울 수밖에 없는 찰나에 길가 한쪽에서 웃음소리가 왁자하니 들렸다. 이 정도 교통사고라면 모두가 심각하게 화난 표정을 지으며 너나 할 것 없이 고성으로 자신의 행위에 정당함을 인정하려는 목소리로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 그냥 보통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돌아가는 판을 보니 대파된 차 안에 몇 명이 같이 타고 있었는데 작은 동네다 보니 아는 지인들이 나처럼 달려왔나 보다. 그들은 큰 사고에 비해 서로 다치지 않아서 좋아서 기쁨의 대화를 그렇게 하는 있는 모양새다. 그들 중의 한 명이 우리에게 오더니 아들은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보았다. 나 또한 그 운전자는 괜찮냐며 안부를 물어보았다. 모두 크게 다치지 않은 거 같아 천만다행이다. 모두가 천운을 타고난 사고였다.
그러는 동안 경찰은 각자 운전자에게 아주 친절하게 묻고 대답하며 기록한다.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하고선 이번엔 모두 한자리에 모이라며 세 명의 운전자 이름과 보험회사 그리고 목격자 두 명의 신원도 함께 카피해서 주면서 각자 보험회사에 연락하라고 한다. 그리고 경찰의 보고서 결과는 1, 2주가 걸린다는 말과 함께 친절하게도 토잉 하는 절차를 도와주겠단다. 그리고 오케이 해산!!
차례대로 차를 토잉 해가고 그것으로 사고처리가 끝났다. 미국에 오고 20년 만에 처음으로 당하는 교통사고였다. 아이 셋이 차례대로 운전을 시작하고 나나 남편도 운전하고 있지만 이렇게 대형사고는 처음이고 그것도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장 어린 초짜가 대형사고를 치다니 참으로 대견한 일을 자처했다. 그래서인지 너무도 생소한 교통사고 처리 과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통상적인 개념이 있는 한국의 교통사고 현장을 생각해 보았다.
일단 사소한 접촉사고라도 뒤차가 내 차를 받았다면 반드시 뒤 목을 잡고 나와야 한다. 이는 온갖 드라마의 한 장면들이 똑같이 말해주고 잘했든 안 했든 상대방보다 큰 소리로 말을 해야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고 난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잘잘못을 따져야 현장에서 이길 수 있고 사고를 합의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찰이 오기도 전에 상대방의 운전 결점을 찾기에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지금도 사실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블랙박스가 보편화 되어 사람의 주장을 카메라가 무색하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아는 한국은 일단 사고가 나면 경찰을 붙잡고 잘잘못을 따진다. 마치 경찰이 현장에서 심판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경찰의 보고서가 사건의 큰 역할을 하는 건 맞겠지만, 경찰은 사고 현장의 정확한 경위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역할임을 잊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경찰이 오기 전에 일단 서로에게 우격다짐으로 잘잘못을 따지기 바쁘고 이 과정에서 고성과 함께 몸싸움이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경찰이 오면 또 한 번 자기의 잘잘못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의 주장으로 난장판이 되어 간다. 그래서 생긴 말이지 싶다. 교통사고가 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지금까지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 살았나 보다.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경찰을 보자마자 신경질적으로 대하면서 다른 사고자에게 어떤 상황인지는 자세히 모르지만 표정이나 자세만으로도 지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이는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축제 분위기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아이가 이렇게 큰 사고를 당했는데 굳이 웃고 떠들 일인가? 경찰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증언해야 할 거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고 그래서 아들이 경찰에게 곧이곧대로 조용히 이야기할 때 내심 속상해하고 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미국인들의 두 얼굴은 심히 다르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웃고 있는 친절한 미국인의 얼굴 뒤에는 어떠한 얼굴로 나쁜 일이 꾸며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국민성으로 볼 때 한국인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 일이 나면 그 즉시 대면하고 해결하려는 것이 인간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가산점을 주는 한국인의 정서와는 다르게 미국인은 뒤에서는 욕을 하든 뭐 하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는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이 좋은 메너라고 생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은 다혈질이지만 뒤끝이 없는 반면, 미국인은 앞과 뒤가 다른 두 얼굴로 조용하지만, 뒤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아마 이번 같은 경우에도 바로 뒤돌아 차를 타면서 보험회사에 클레임을 걸어 잘잘못을 철저하게 따져 사건을 처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우리 또한 차를 타자마자 병원으로 향했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클레임을 했다. 다행히 아들은 경직된 뒤 목을 제외하고는 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아서 천만다행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 교통사고는 슬프고 아픈 사고 현장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축제 분위기(모든 사고가 이렇지는 않겠지만)로 바꾸어, 다치지 않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축복을 함께해 준 사람들과 나의 소중한 아들의 무사함에 고마움을 전하는 마음에서 쓴 글인데.., 아들이 차가 없으니 갑자기 나의 일은 산더미가 되었다.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 한없이 감사한 마음도 하루가 못 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