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ㅣ 얼떨결에 흉선종 수술을 세계 1위인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했다
헐.. 종양이네요.
종양요?
네, 2cm로 작지만 흉선종은 조직 검사하기 전에 무조건 수술하셔야 합니다. 수술 후 조직검사를 하고 정확히 양성인지 악성인지 알 수 있어요.
급한 건가요? 제가 미국으로 내일 출국해야 하거든요.
그럼 언제 다시 오세요?
12월쯤.. 확실하진 않아요.
되도록 빠른 시일 내로 날짜 잡고 출국하세요.
그리고 미국에 왔다.
나는 미국에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주치의를 만나 한국에서 가져온 CT 영상 비디오를 주었다.
바로 수술 닥터 만나야 되겠네요. 곧바로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수술은 한국에서 하고 싶은데...
그리고 존스 홉킨스 흉부외과 수술 닥터를 암센터에서 만났다.
내 나이쯤인 거 같은데 흰머리가 희끗희끗 노출되어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이는 여의사였다.
왠지 마음이 놓인다. 이 의사에게 수술을 할거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아프거나 기침을 많이 했나요?
아니요
그럼 눈꺼풀이 무겁거나 근육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나요?
아니요
그런데 왜 흉부 CT를 찍었나요? 가슴이 아프거나 기침을 하는 증상이 있어야 X-ray나 CT를 찍고 찍어 본다고 보일 수 있는 곳도 아니고 2cm의 작은 혹을 건강검진으로 알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군요. 당신은 굉장히 행운아이시네요. MRI를 먼저 찍어보고 종양이 더 자랐으면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정확히 한 달 전에 반강제로 강남세브란스 병원에서 비싼 프리미엄 프로그램으로 건강검진을 하고 CT를 찍은 후 판독 닥터에 의해 흉선종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급히 흉부외과를 연결해주고 종양이니 수술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되도록 빨리해야 로봇으로 간단히 떼어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흉선종이라는 말 자체도 처음이고 희귀한 혹 하나가 폐와 폐사이 그리고 심장 앞쪽에서 발견되었으니 수술해야 한다는 말만 들었을 뿐 사실 뭐지?라는 간단한 마음으로 스케줄 데로 급히 미국에 오게 되었다.
일은 미국에 오고 긴박하게 돌아갔다. 지인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수술 닥터를 곧바로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일사천리로 수술 날짜를 잡게 되니, 그것도 유명한 존스 홉킨스의 흉부외과 닥터가 수술을 한다니 오히려 아무것도 아닐 거라는 내가 더 급한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은 내가 몇 차례 언급했다시피 너무 느려 기다리다 자연적으로 시간이 지나 낫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의식이 팽배한 만큼 나 또한 여기에서 수술을 한다 해도 몇 달 뒤에나 잡힐 거라 예상하고 12월이면 수술의 1번지 한국에 가서 내 몸을 맡길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수술 닥터를 만나고 일주일 뒤에 MRI 스케줄을 잡았다. 보통 2-3주 걸리는데 일주일 후에 그것도 같은 존스 홉킨스 병원으로 잡힌 것도 희한한 일이었다. MRI는 비싼 검사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보험회사에 의뢰하고 보험회사에서 승인이 떨어진 후에야 예약이 진행됨으로 미국의 느린 시스템으로는 2-3주는 보통으로 기다리야만 가능한 일이다.
MRI를 찍으러 갔다. 웬 보안 시스템이 그리 많은지 몇 개의 보안문을 거치고 영화에서나 본듯한 장면으로 카드를 대거나 발을 대면 문이 열렸다. 하얗고 커다란 터널에 들어가기 전의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흉부를 찍는 거라 그런지 상체 부분을 간호사 두 명이 나를 들고 로봇처럼 감쌌다. 물어보니 그 안에 카메라가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폐쇄 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정말 무서울듯하다. 꽉 막히고 좁고 어두운 터널을 혼자 누워서 들어간다 생각하니 조금 답답함이 엄습했다. 그때 간호사가,
시끄러울 텐데 이어폰 드릴까요?
네
음악 들려드릴까요?
네(그 정도로 클까?)
어떤 음악 들려드릴까요?
음...(설마 내가 좋아하는 재즈라고 해도 될까?) 재즈.. 색소폰 재즈...
그러고 1시간가량 따뜻한 담요와 함께 색소폰 재즈 음악을 들으며 살짝 잔 거 같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숨을 깊게 들어마시다 멈추라는 말을 반복했다. 비싼 돈 내야 할 각오를 그때쯤 했다.($2,500 한화 3백만 원이 청구되었다) 엄청나게 큰 로봇 통 안에서 내 몸 전체를 샅샅이 뒤져보고 알아보는 카메라가 대견했다.
일주일 뒤 닥터가 직접 메일을 보냈다.
'아직은 작은 사이즈지만 한국에서 가지고 온 영상보다 한 달 만에 종양이 0.5센티 자랐으니 수술해야 합니다. 지금은 로봇으로 수술할 수 있으니 당신이 원하는 날짜를 주세요. 제가 시간을 조정하겠습니다'
헐~세상에나! 존스 홉킨스가 동네병원인가? 물론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이니 동네병원이 맞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 1위를 자랑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의료시설을 갖춘 세계적인 병원 아니었나? 내가 원하는 날짜에 의사가 시간을 맞추겠다고? 난 메일을 몇 번 더 읽고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렇게 급한 수술인가?
수술을 최대한 빨리 일주일 뒤로 잡고 수술 이틀 전에 심전도 검사와 마취과 닥터를 만나러 다시 병원을 찾았다. 마취과 닥터를 수술 전에 만나야 하는 일도 생소했지만 평소데로 당당하게 혼자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큰아이만한 앳된 여의사가 들어와 이것저것 물었다. 어떤 약을 먹고 있나, 평소 알레르기가 있느냐, 수술한 경험이 있느냐, 가족력이 있나.....
그러다 내가 평소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게 어렵다는 말에 갑자기 비상이라도 걸린 듯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 한참 후에 할아버지 한분이 닥터 명함을 목에 걸고 자신을 제1마취과 닥터라 소개하며 허둥지둥 들어왔다. 몇 마디 묻더니 정확한 대화가 필요했는지 통역을 부르겠다고 했다. 에구 언제 통역이 오나! 이리 느린 나라에서 미리 예약한 것도 아니고 지금 부르면 언제 오고 언제 집에 가나! 나야 시간이 있지만 두 의사는 시간이 많지 않을 거 같은데라며 걱정하고 있는데 어머나! 이동식 화면에서 한국말이 갑자기 들렸다. "안녕하세요? 존스 홉킨스 동시 통역사 ㅇㅇ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중대한 사안이 된듯했다.
마취과 제1 닥터는 나에게 좀 더 자세히 물었다. 3자 대면 그것도 화면 속 남자와 미국 할아버지의 느린듯한 말투로 대화를 하려니 대략 난감한 상황으로 한 박자가 아니라 두 박자씩 빗나가며 엇박자 대화가 이어졌다.
어떻게 깨어났는지 기억해보라, 네? 다시 한번 말해주세요, 아,,,, 깰 때 어떤 반응이었나, 어지러웠나, 어지러웠냐고요? 아,,, 구토가 나왔나, 꿈속이었나, 후유증이 어땠나,,,, 이번 수술은 3시간 30분에서 5시간 이상 쇼요 될 예정이다, 폐와 심장 사이에 있는 종양을 제거하는 일이라 중요하고 큰 수술이다. 조금씩 대화가 익숙해졌다. 나올 때 튜브를 달고 나온다. 소변줄도 달고 나온다. 로봇팔 3개와 튜브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을 것이다. 수술 후 바로 입원실에 가지 못하고 회복실에서 지켜봐야 한다. 3일에서 5일 정도 입원하는데 더 길어질 수 있다. 수혈을 위한 혈액 채혈을 미리 해야 한다는 등 수술 닥터보다 훨씬 자세히 설명해 주웠다. 겨우 상담을 마쳤지만 내 가슴은 이미 벌렁벌렁 요동쳤다.
혈액을 채혈하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았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듯해 살짝 경계하고 있었는데 옆사람과 수다만 잘 떠는 늙은 여인의 모습도 보이고 그 앞 좌석에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노부부는 아내의 병에 위로의 눈빛을 보내는 듯하고, 늙은 노모를 모시고 왔는지 연신 혈액검사를 하러 들어간 엄마의 모습을 기웃거리며 살피고 있는 젊은 아들의 모습도, 휠체어를 힘겹게 밀어주는 아내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나에게 웃으며 인사하는 남편의 모습도 왜 그리 슬퍼 보이는지 난 연신 안경 너머의 눈물을 닦아야만 했다.
미국 가족의 애틋함이 병원에서의 극대화로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구라도 같이 올걸.. 다들 큰 수술을 앞두고 손 붙잡고 같이 오는구먼! 괜스레 서글퍼져 눈시울이 붉어짐은 나이 탓인가 혼자라는 서러움인가? 모르겠다. 괜히 부아가 났다. 여기 미국도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은 모양이다. 미국 사람들은 개인주의라 의리도 없다 생각했는데 아내를 데리고, 부모를 모시고, 남편의 휠체어를 밀고 가족의 애틋함이 병원에서의 극대화로 비쳤다. 동양 사람이 나 하나뿐인 외톨이라 더 슬픈 날이었다.
수술 날이다. 푸르스름한 새벽에 도착했다.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저절로 눈이 떠지는 일들이 몇 날 있다. 어릴 때 소풍 가는 날과 엄마가 되어서는 아이들의 큰 시험을 앞둔 날 그리고 비행기 타는 날 정도였는데 병원 가는 날도 이젠 포함시켜야 되겠다. 퍽이나 긴장했나 보다.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대기 침대에 누워 여기저기 링걸을 걸고 IB주사를 손등에 꼽으며 수술에 필요한 사항을 물어보는데 여기저기 의사들이 도대체 어떻게 흉선종을 알았는지에 집중 질문공세였다. 한국에서 건강검진으로 흉부촬영을 했다는 거에 놀라워하고( 미국에서 MRI 한번 찍는 가격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체 CT를 찍는 것도 모자라 3시간 안에 몸 전체 검진을 한다는 것 그것도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 진행한다는 건 여기에서 상상도 못 할 비용이다) 도도한 존스 홉킨스에서 임상실험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다며 비디오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는 사인도 요구하고 만약 로봇으로 제거하지 못할 경우 개복수술로 가슴을 30센티 정도 연다는 둥... 뭐가 그리 사인할게 많은지 그러면서 수술실로 향하고 에피도르(무통 주사)를 등에 꼽으며 난 정신을 잃었다.
남편이 어슴프레 보였다. 정상적으로 마취에서 깨어났나 보다. 일단 다행이었다. 수술 시간은 4시간 정도 걸렸다 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1시간에 한 번씩 직원이 수술 과정을 얘기해줬다고 한다. 마취 시작했다, 수술 시작했다, 회복실로 옮겼다, 깨어났으니 들어가라...
나는 입원실부터 생각이 난다. 양쪽 팔에 온갖 주사액들이 들어가고 있고 줄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전형적인 중환자 모습인듯하다. 난 1센티미터도 못 움직였다. 살짝 근육에 힘만 주어도 칼로 살을 베는 듯한 아픔이었다. 이렇게 아픈 수술이었나? 전신마비가 된 거 마냥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어서 오라는 그냥 와야 한다는 말만 했다. 혼자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몸이 된 것이다. 남편이, 그냥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럴 때 한국처럼 요양원이라든가 출산 조리원이라던가 아니면 집에서 살림을 도와주는 도우미 제도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이 나라는 내 몸 굴려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다. 인건비가 너무 비싸서 감히 개인적으로 개인 서비스받는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크니 말이다.
통증이 심했다. 오른쪽 가슴 위부터 옆구리 쪽으로 로봇 팔이 들어갔던 세 개의 구멍이 있고 가운데 배에 튜브가 들어있는데 아마 폐와 심장 사이에서부터 이어진 거 같다. 그곳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흘러나오는 튜브가 배안에 똬리를 틀고 있으니 살짝만 움직여도 칼로 베이는 아픔을 느꼈던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수술 후 대처다
그런 아픔인데도 수술 당일 자정에 소변줄을 뺀다고 하니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매뉴얼이 그렇다며 웃으며 친절하게 빼버려 황당했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난 아예 아침까지 소변을 참았다. 솔직히 살짝 힘만 주어도 아프니 화장실은 갈 생각도 못했다. 아침에 배에서 튜브를 빼니 정말이지 살 거 같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샤워를 해야 한단다. 아예 화장실에 샤워할 수 있게 세팅을 해놓고 날 부축했다. 보호자는 내 몸에 손도 못 대게 하고 의자에 앉혀놓고 샤워기 물을 뿌려댔다. 참 어이없는 수술 후 대처다. 어디 수술 후에 샤워를 하나..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긴 아이를 낳고 다음날 스파게티와 얼음 동동 띄운 콜라와 초콜릿을 준 나라니 할 말은 없지만 수술 자국이 여기저기 있고 겨우 밴드 하나 붙이고 있는 상태인데 샤워는 좀 심하지 않았나?
그다음 날 병원 안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한국으로 치면 집중치료실 모습이다. 병동 전체가 1인실만 있고 2인실이나 다인실은 없는 거 보니 홉킨스 병동 중에서도 제일 큰 메인 병동이니 환자를 집중 치료할 수 있는 병실인듯하다. 병실 안에 샤워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고 3인용 소파와 1인용 안락의자가 있고 커다란 창문에는 메릴랜드 제1의 항구 볼티모어시의 이너하버 모습이 너무나 근사하게 보였다. 내가 누운 침대에서 X Ray를 직접 찍고 내가 내 손가락 지문으로 아플 때마다 한 번씩 수술 전에 등에 꼽았던 에피도르(무통 주사)를 직접 눌러 투여했다. 버튼을 누르면 등에서부터 쏴한 박하가 퍼지며 진통이 금세 사라졌다. 모든 게 최신식이었다.
이 침대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건 물론 침대 쿠션이 메모리폼으로 되어있어서 얇은데도 푹신하고 상체뿐 아니라 다리도 올려지는 에스자 형태로 움직여서 허리가 아프지 않았고 똑바로 누워만 있어야하는 나같은 환자를 위해 종아리가 붙지 않도록 다리에 마사지 기계가 연결되어 있어서 입원 내내 부종 없는 다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대로 집에 옮겨 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워너비 아이템이었다.
내가 있는 병실은 11층이었고 바로 위 12층은 VVIP 병실이라며 간호사가 귀띔한다. 아랍국가의 부호나 중국, 아시아 사람들이 돈가방을 들고 온다고 거기다 요리사를 대동하고 와서 의사나 간호사 식사까지 챙긴다며 자기들도 올라가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라 말한다. 난 뜨끔했다. 왜냐면 한국의 대기업 총수가 자기네 기업의 병원은 믿지 못하면서 존스 홉킨스는 믿었는지 비밀인지 공개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수술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분도 돈 싸들고 내 입원실 위층에서 요리사 대동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와서 죽음을 기다렸겠지... 별걸 다 듣고 별걸 다 본듯 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은 귀한(?) 정보인데 씁쓸하다.
한국의 건강검진 시스템이 당신을 살렸다고 당신은 천운이라고..
아침저녁으로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의사만 100명은 본듯하다. 한국에서 아무런 증상 없이 흉부 CT를 찍는다는 사실이, 그리고 이렇게 작은 종양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또한 그 작은 종양을 폐와 심장 사이를 로봇팔로 수술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한 건지 모르지만 들어오는 의사마다 묻는다. 그리고 꼭 한 마디씩 한다. 한국의 건강검진 시스템이 정말 좋다고 당신은 천운이라고... 의사의 권위적이지 않는 태도와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간호사들의 친절함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함에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게 그들은 나를 어떡해서든 퇴원시키려 사투를 건 사람들 같았다. 보험회사와의 계약이 되어 있는 건지 하루도 더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1센티도 못 움직일 아픔을 호소하는데도 소변줄을 떼 버리고 배 안에 들어있는 줄넘기 길이의 튜브를 그다음 날 으~~~ 소리와 함께 확 당겨 빼버리고 퇴원하는 날 새벽 코드블루(혈압이 87 이하로 떨어졌다)가 두 시간 이상 갔는데도 오전에 퇴원을 시켰다. 거의 강제퇴원이었다. 칼을 댄 자리에 비닐테이프 하나 붙여놓고 집에 가서 떼고 샤워하란다. 수술 부위의 드레싱을 어찌하나 물으니 안 해도 된다며... 제일 서러운 건 밥 한 끼 그냥 주지 않고 매끼를 각자 1시간 전에 오더 해서 먹으라니... 오직 매뉴얼을 따르는 일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참으로 융통성 없는 사람들이고 그런 나라다.
어찌어찌 어설픈 퇴원을 했다. 한국식으로 1인용 전기장판을 준비했지만 물어보니 직접 일렉트릭 회사에 전화해서 승인을 받은 후 사용하라는 무식함의 준비물이 되어 버렸고 같은 맥락으로 추울까 봐 준비한 양털 담요와 털신 또한 내 맘대로 온도를 맞추는 입원실이 추울 거라는 선입견을 단숨에 깨버렸다. 세면도구도 1회용만을 써야 하는 병원임을 몰라 이것저것 잔뜩 준비했는데 오히려 밥을 안 주기 때문에 먹을거리를 준비했어야 함도 알았어야 했다. 미국에 맨 처음 도착해 모든 게 ~했어야 했다는 그런 초짜 미국 입성자도 아닌데 16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얼렁뚱땅 알아지는 게 하나도 없는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병원 생활만 남았다.
꼭 1주일 뒤에 수술 닥터로부터 한통의 메일이 왔다.
'수술은 깨끗하게 잘 되었습니다. 조직검사를 한 결과 STAGE 1으로 깨끗하게 제거했으니 더 이상의 치료는 필요 없지만 6개월에 한 번씩 CT촬영을 해야 합니다' 어? 이게 무슨 말일까? 스테이지 1이라는 것은 암1기라는 말인가? 2주 후에 닥터를 만나 자세히 물어보니 속시원히 말을 하지 않는다. 흉선종이라는 거 자체가 암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단다. 그냥 생기는 혹이면 떼어 내버리면 그만인데 이건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암 치료처럼 6개월에 한 번씩 다시 생겼는지 꼭 CT를 찍어보고 확인해야 한단다. 워낙 희귀병이라 한국에서도 암에 속해 보험처리가 되는 회사도 있고 암으로 인정하지 않는 보험회사도 있다고 한다. 암튼 난 성격도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듣듯 병도 참으로 특이한 병에 걸렸다. 암은 아니지만 암이라 생각하고 주의하며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친언니가 한국에서 14시간을 날아와 준 일이다. 수술 전에는 쬐그만 혹 하나를 떼는데 무슨 간호라며, 쓸데없는 소리라며, 고개를 휘휘 저었건만 수술후에는 '그냥 당장 오라'는 말만 했다. 단순한 혹이 아닌 폐와 심장 사이의 종양을 기다란 줄들을 단 로봇이 옆구리에서부터 살을 헤집고 갈비뼈 아래로 들어가 혹을 떼어내고 지지는 과정이 그리 위험한 수술인 줄 인식했다면 유서라도 써놓고 수술실에 들어가고 아이들과 마지막 통화라도 하는 건데 휴~~ 또 무식이 용감이다.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흉선종에 관한 내용이 참으로 미비했다. 암튼 난 최소한 1주는 침대에서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고 숨쉬기가 어려워 ER(응급실)을 갈뻔했고 간호사 친구는 매일 혈압을 체크하러 와야 했다.
환자는 나인데 환자의 식구들이 더 호강한 수술 후의 풍경이다
수술한 지 2주가 흘렀다. 얼떨결에 한국이 아닌 존스 홉킨스에서 수술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토록 미국 병원을 불신했건만 이곳에서 내 몸에 메스를 대게 하다니...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잘했는지 못했는지 솔직히 알 길이 없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고마운 사람들이 차곡차곡 내 마음의 창고에 쌓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누워있는 나에게 약은 물론 물이며 밥이며 모든 걸 간호해준 언니가 없었다면 난 버티지 못했었으리라. 우리 아들도 내가 주는 밥보다 이모의 밥을 더 맛있어했고 또한 나보다 두 살밖에 많지 않지만 나를 딸처럼 이뻐해 주는 회사 동료와 맛 내기 여왕인 친구 둘이서 연신 음식을 날랐다. 환자는 나인데 환자의 식구들이 더 호강한 수술 후의 풍경이다.
한국에서 그날로 슬쩍 날아와 24시간 밀착 간호를 해서 언니가 정한 나의 2Kg의 체중 증가를 달성하고 또다시 슬쩍 한국으로 가버린 예쁜 언니와 ‘건강 검진해야 하는데’라는 말 한마디에 이왕이면 기계가 좋은 병원에서 해야 한다며 굳이 비싼 돈 들여 프리미엄으로 예약을 하고 나보다 한발 빨리 계산을 해서 나에게 부담을 왕창 준 그분이 지금은 평생 생명의 은인이 되어버렸다. 음식을 매일 날라준 동료 언니와 친구, 매일 혈압을 재준 친구와 닥터를 재빠르게 연결해준 간호사 친구 그리고 날 위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준 이들...모두의 힘으로 거의 2주 만에 정상적인 활동을 거뜬히 하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인연이다.
글쓰기가 참 고마운 친구이고 고마운 인연이다
제일 중요한 분은 정확한 CT촬영과 판독으로 숨은 그림 찾기의 달인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의사분과 로봇 팔이나 제대로 들려나 모를 정도의 여린듯 보이지만 강인한 미국 여의사를 만나 제2의 인생을 다시 살게 되었다. 직 간접으로 한국과 미국의 공조 수술이 되어버린 나의 흉선종 제거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 다행이다. 침대가 높아 일어나는 게 힘들어 소파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해진 지금, 어느덧 창문으로 바라본 나의 가을 풍경이 노랗고 붉게 바래지고 있다. 글쓰기가 수술의 아픔을 견디게 해 주었다. 참 고마운 친구이고 고마운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