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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Nov 02. 2019

데자뷰가 뭐지? 예지몽?

#19ㅣ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남편과 둘이서 커다란 육중한 문을 힘껏 밀어서 열고 손을 잡더니 하늘로 부~웅 날았다. 두 팔 벌려 한참 바람을 가르며 성냥갑 같이 작아진 집들이며 산과 들을 새처럼 훨훨 날아 구경하고 있는데 왼쪽에는 하얀 백악관에 푸른 줄무늬 성조기가 걸려있고 오른쪽엔 파란 청와대에 하얀 태극기가 우뚝 걸려있어 확실한 칼라 대조를 보인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얀 태극기는 그대로 서 있는데 파란 성조기만 하얀 백악관을 배경으로 힘차게 휘날린다. 그러다 깼다.

  

미국에 가느냐 마느냐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심지어 용하다는 점집에도 가보고 하던 참이었고 난 나의 꿈을 기다리고 있었더랬다. 여지없이 나의 결정에 확실한 도장을 찍어준 고마운 꿈이었다. 꿈 덕에 난 남편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가자 우리, 그냥 가면 될 거 같아!”




언제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아주 어릴 때 내 꿈 내용을 할머니께 말하니 “진짜 천국에 다녀왔구먼”이라고 말씀하신 게 신비한 꿈의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산이나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크려는 꿈이라고 하고, 악몽을 꾸면 꿈은 반대라며 꿈을 좋게끔 해석해 주기도 하고, 이가 빠지면 그것도 어금니가 빠지면 부모님이 상을 당할 수 있다는 말도, 돼지나 똥 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 한다는 말등 우리는 꿈에 대해 참 많은 지식들을 오래전부터 공유해 왔다.

 

예지몽의 신비함이 실제 사건으로 연결된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은 내가 미술을 하게 된 결정적인 한방이 되었다. 내가 투명하고 두꺼운 붓대에 끝이 빳빳하게 날이 선 미술용 붓을 들고 커다랗고 봉긋한 무덤 앞에 서 있다. 무덤을 향해 붓끝에 힘을 주고 힘껏 던지니 붓끝이 화살처럼 날아 무덤 중앙에 정확히 꽂히면서 어디선가 나타난 사물놀이패가 무덤 주위를 돌며 꽹과리며 북을 치며 요란하게 축하를 해 주었다.

 

또 하나의 꿈은 그림을 그릴 때 붓을 빠는 용도로 흔히들 쓰는 바게스에 내가 두 손을 담갔다가 그대로 들어 올려 보니 내 손등에 여러 가지 색들이 줄을 그은 듯 선명하게 물들어 있다. 마치 무지개가 내 손등에 염색된 것처럼..... 이런 꿈을 꾸고 엄마에게 학원에 보내달라 설득하니 어떤 부모가 거절을 할 것인가?

 

큰아이의 대학원서를 10여 곳을 내고 기다리는데 몇 달의 기다림은 끝이 없었다.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서 한두 개는 합격을 하고 한두 개는 대기자 명단에 있는데 진짜 원하는 곳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마지막 발표 전날에는 피가 말리는듯한 숨 막힘으로 우리는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내 꿈도 거의 막다른 길에 있어야 보여 주는 걸 잘 알기에 기다려야 했는데 역시 꿈을 꾸게 되었다.

 엄마 합격이래! 형형색색 폭죽 그 데로의 모습이다

역시 하늘이다. 하늘에 풍선이 주렁주렁 달린 플랭카드가 둥둥 떠다니고 여기저기서 형형색색 폭죽이 터지고 사람들은 웃으며 손뼉 치며 환호한다. 된다는 신호다. 모든 입학원서를 낸 대학의 발표 마지막 날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이는 큰 심호흡과 함께 노트북을 열고 메일을 검색하다 눈이 커지며 손을 번쩍 올리며 소리친다 “엄마 합격이래” 우리는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남편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참는 듯했다. 자세히 읽어보니 John's Hopkins University 4년 전액 장학금 Bloomberg를 받은 것이다. 꿈에서의 일들이 현실로 그대로 옮겨온 거 같은 예지몽이었다.

 

슬픈 예지몽도 있다. 내가 의지하고 좋아하는 아버님이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이역만리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은 임종도 볼 수 없는 불효자들이 많아 앞일은 모르니 아이들 여름방학을 끼고 전 식구가 한국을 갔다. 아버님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암의 진행이 느리다는 병원 측 말도 있고 아직은 건강하신 모습이라 한편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번 정도는 다시 뵐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고 미국에 온 날 꿈에 회색빛 도시에 비가 쏟아지더니 검은 구름이 온 도시를 덮어버리고 자세히 보니 흙비가 날리고 있다. 순간 돌아가시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흙비라니... 그다음 날 비보를 받고 그 길로 남편은 비행기를 다시 타야만 했다. 효자 아들이 흙비를 철철 맞으며 날아가는 심정이 오죽했을까?

 

이런 일도 있었다. 꿈속에서 탑 모양의 석조건물을 파내고 땅을 파보니 꼭 옛날 엿장수들이 들고 다니며 칼을 먼저 넓적한 엿에 대고 탁탁 치던 까맣고 두껍고 커다란 그 열쇠, 그걸 내 손으로 번쩍 들어 올렸다. 하도 이상한 꿈이라 남편에게 말하니 고개를 숙였다. 털어놓을 이야기가 있다며 "실은 오피스텔 하나를 서울대 입구에 샀어. 장손이 학교 다니기가 불편해서 마련한 거야" 아뿔싸! 꿈에서 진실을 말해준 거였다. 그 뒤로 나에게 속이는 일이 없었는데... 꿈이 완벽한 진실은 아니니까... 그래도 예지몽이니 믿는 수밖에!

 

둘째도 큰아이와 마찬가지로 10여 개 입학원서를 넣어놓고 기다리는데 다른 학교에 비해 원하는 대학교 합격자 발표가 늦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로 대학 발표 이전까지는 피 말리는 시간이다. 난 종교가 없지만, 하느님 부처님 모든 신을 총동원해서 간절히 합격을 기원하는데 꿈도 안 꾸어지니 답답한 날들이었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구름 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멀리서 노란 버스 한 대가 서서히 왔다. 그 안에 있던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손짓하며 타라고 한다. 버스 앞문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운전자가 나한테만 무슨 종이를 꺼내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내가 올라탄 즉시 자동문이 닫혀버렸다. 그래 이번에 되겠네! 꿈을 꾸고 난 안심했지만,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행여 불합격이면 그 실망이 얼마나 클까 해서... 며칠 후 Carnegie Mellon University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아 우리 가족 모두가 춤을 추었다. 대견한 아이들이다. 대단한 예지몽이다.

 

최근의 꿈은 정말 대박이다. 큰아이의 의학전문대학을 앞두고 20군데쯤 원서를 급하게 넣었다. 원래는 대학 졸업 후 2년 정도 원하는 중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 했는데 막상 가르쳐보니 힘들었나 보다 1년만 하기로 결정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니 다른 준비생에 비해 늦게 원서를 넣고 초조히 기다렸다.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반은 합격한 셈이라 몇 개나 연락이 올지 걱정만 하는데 또 하늘 꿈이다. 이번엔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천천히 움직여 ‘4’라고 씌는 게 아닌가? 기분이 묘한 게 한문으로 죽을 사자일 수도 있는데 설마 4개 학교에서 인터뷰 요청이? 반신반의했지만 꼭 4개의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또 기다림의 연속... 이번엔 속속 친구들의 합격 소식이 들리는데 우리 아이만 소식이 없다. 아이는 엄마의 꿈을 은근히 바라는 눈치지만 꿈이 없다. 막바지가 아닌가 보다. 낙담하는 아이를 위로차 아이가 있는 뉴욕 아파트에 가서 위로하고 돌아온 날 드디어 꿈을 꾸었다.

  

이번에는 조그만 터널을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아무도 들어가질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운전대를 잡고 홀로 어두컴컴한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솜 같은 하얀 무언가가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터널 안을 가득 메워 눈 앞을 가려버렸다. 그래도 달릴 수밖에 없어서 참고 가는데 갑자기 빛줄기가 한 줄 비추더니 환해진다. 그렇게 많은 솜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멀리 보이는 터널 입구에서 너무도 눈 부신 빛이 환하게 비춘다.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만약 합격하지 못하면 1년을 더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으로 거의 탈진상태라 힘을 주고 싶었다. “될 거야, 꼭 될 건데, 된 후에는 너의 앞날이 승승장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이번에도 역시 아이가 정말 원하는 학교에 합격했다. 왜 우리 아이들은 막바지까지 기다려야 되는 걸까? 힘든 기다림의 달콤한 꿀맛을 맛보기 위함인가 보다.  에효.. 대학만 가면 걱정할 게 없으려나 했더니 부모의 기다림은 끝이 없나 보다.

 

얼마 전 데자뷰라는 영화가 꿈의 중심에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데자뷰(Dejavu)란 분명 처음 보는 풍경인데 과거에 비슷한 장면을 봤던 적이 있던 기억이라든지, 처음 가보는 곳인데 마치 이전에 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예지몽도 어찌 보면 데자뷰와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예지몽은 말 그대로 미래의 어떤 일을 미리 꿈으로 예견되어 예방을 할 수 있다거나 준비할 수 있는 살짝 꿈보다 해몽이라고 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시각의 차이만으로 본다면 데자뷰와는 확연히 다르다. 거기에 비해 데자뷰는 확실한 과거로의 아니면 미래로의 뚜렷한 기억 현상이다. 본 것 같음과 본 것의 차이는 있지만 꿈처럼 불확실한 장면이 아닌 분명 그 장면을 보긴 봤다는 얘기이므로 데자뷰는 하나의 현상으로 간주되고 예지몽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은 것 즉 허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허상에 지나지 않은 예지몽을 꾸는 나에게 어떤 이는 영혼이 맑은 사람이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꿈으로 보여 준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신끼가 있어서 미래를 볼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도 한다. 내가 보는 예지몽은 나의 간절함과 그 소망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허구임을 안다. 꿈에서의 나는 또 다른 나이다. 현재에 실존하는 나와 꿈에서의 나는 다르지 않지만, 무대가 다른 나일뿐이다. 꿈에서의 나는 내가 드라마 보듯 내가 열심히 연기를 한다. 난 그저 그런 나를 보며 웃고 놀라고 기뻐한다. 마치 현실인 것처럼.

 인생사 한바탕 꿈을 꾸는일

인생사 한바탕 꿈을 꾸는 일이다. 드라마 같은 이번 생에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사는 연기자든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연기자든 최종회까지 열심히 연기하고 또 다음 작품의 배우가 되어 쓰인 대본대로 연기하면 되는 것이다. 진짜 인생도 한 편의 영화나 연극처럼 연기하는 것임을 안다면 겹겹이 사는 인생, 참으로 걱정 없이 사는 삶일 것이다. 내가 이번 생에는 세 아이를 기르며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열심히 꿈꾸고 실천하는 김 지나라는 주인공이다. 이생망(이번 생애는 망했다)이라는 재미있는 말도 있지만 그 다음 생에는 데자뷰가 연상돼 두 번 사는 인생이니 실수하지 않고 잘 연기하지 않을까? 하하

  

아이가 친구와 재미있게 종이 인형놀이를 한다. 엄마와 딸이 되어 드레스를 입혔다가, 구두를 신겼다가, 그러다 친구가 집에 간다. 종이 인형을 박스에 넣고 뚜껑을 닫는다. 내일은 선생님 놀이를 해야지... 매일 다른 꿈을 꾸듯 이번 생은 엄마놀이를 재미나게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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