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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Sep 22. 2019

큰 코 다칠 무서운 'STOP' 싸인

#32ㅣSTOP이 미국의 메너라면 일단정지는 한국의 예절이다

무사고 운전 10년을 하고 미국에 왔다. 한국의, 그것도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운전을 하다 온 경력자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미국 운전 면허증에 도전했다. 지금은 한국 운전 면허증과 메릴랜드주 운전 면허증을 맞바꿔주는(주마다 법이 틀려 교환되지 않는 주도 있다), 그만큼 한국의 운전에 대한 신용을 인정해주는 강대국이 되었지만, 그때는 전혀 고려해주지 않는 때였다. 필기시험부터 다시 봐야 했고 그것도 영어로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외우기만 하면 되는 거라 어렵지 않게 합격을 했고 실기 시험도 그다지 걱정되지는 않았다.

    뉴욕 옐로캡 운전자도 무서워하는 강남 베테랑

   

보아하니 주행 도로 폭도 한국보다 넓고 주차공간도 널찍하니 초보자도 쉽게 운전할 수 있고 16세의 어린아이에서부터 고령자까지 누구나 운전을 해야만 하는 나라니 그리 까다로운 시험은 아닐 거라 판단했다. 그래도 뉴욕 옐로캡 운전자도 무서워한다는 강남 베테랑인데~~ 아무런 준비 없이 몸만 달랑달랑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갔다. 합격만 하면 바로 내 차를 살 요량으로...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어찌하나, 어떤 코스가 있나 쓱 한번 보니 역시나 쉬운 시험으로 보였다. 에스자 곡선도 없었다. 디긋자 모양도 없었고 단순히 일자로 가는 거와 길가에 주차하는 거와 앞으로 들어갔다가 뒤로 나오는 정도? 누워서 떡 먹기로 그냥 속도만 내지 않으면 통과할 거 같은 느낌이었다.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거만하게 생긴 키가 큰 백인 남자가 옆에 탔다. 타자마자 내 이름과 이것저것을 묻고 운전자를 확인하고 깜빡이를 오른쪽, 왼쪽 켜 보라하고 비상등이 어디 있냐, 룸미러가 잘 보이냐를 묻더니 출발! 두근두근 악세레타를 살짝 밟으며 출발을 하고 천천히 가다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막 돌리는데.... ‘STOP’하라고 마구 손짓을 했다. 그러더니 라불라 라불라 빠르기 얘기하더니 불합격이라며 그냥 문을 열고 내리더니 뒤도 안 보고 가버렸다. 이런! 이유도 모르고 떨어지다니... 알고 보니 출발선에서 출발하자마자 바로 건널목이 있는데 건널목 오른쪽에 육각형 모양의 빨간 바탕의 굵고 하얀 글씨로 STOP이라고 쓰여있는 걸 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그게 뭔데??

    

우리가 흔히 보는 '일단정지'라는 교통표지판으로 한국 같으면 눈여겨보지 않는 그냥 그런 표지판이 여기에선 생명처럼 지켜야 하는 생명 표지판이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이나 삼거리, 사거리 할 것 없이 군데군데 STOP 싸인이 있는데 누구나 할 것 없이 신호등의 빨간불처럼 일단 서야 한다. 그 표지판 외에 것들도 눈에 들어왔다. 양보 싸인에선 꼭 양보를 해주고 웬만하면 끼어들기 차량에 들어 오라 손짓해주고 제한속도를 꼭 지켜야 하는 걸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철칙처럼 지키고 있었다.

    

두 번째 도전을 했다. 이번에는 '건널목에서 꼭 서야지' 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험에 임했다. 이번엔 덩치가 내 세배쯤 되고 엉덩이가 의자에 끼지 않을까 싶을 만큼 덩치가 산만 한 블랙 여자가 시험감독으로 내 옆 좌석에 앉았다. 발음이 미국 토종보다 내 귀에는 웅얼거림이 심하게 들려 더 못 알아듣겠다. 이름과 주소를 말하고 또 출발했다. 첫 번째의 악몽으로 건널목에서 일단 정확히는 아니지만, 슬며시 STOP을 한 다음 악세 레타를 밟는데 곧바로 또 그만하라고 손짓을 한다. 불합격이라며 이 여자도 내려서 팔을 휘휘 저으며 가버렸다. 이런 제기랄! 이번엔 스탑을 한 다음 얼굴을 돌려 이리저리 좌우로 살피기를 여러 번 하는 시늉을 하며 3초를 기다려야 하는데 안 했으니 불합격이라나 뭐래나..

 

세 번째도 비슷한 유형으로 떨어지고 난 즉사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가뜩이나 아파트의 빨간 문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처럼 싫었고 이웃들과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시베리아 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인데, 내가 운전 하나만큼은 베테랑이라 느려 터진 미국 사람보다는 잘할 거라 생각했던 첫 번째 관문에서부터 걸림돌에 걸렸으니 살맛이 나지 않았다. 이건 괜한 인종차별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지나가는 차 안의 운전자만 봐도 너무 부러워 얼굴을 확인하고 난 언제나 여기서 운전하나 아 저들은 저들의 얼굴이 박힌 멋진 운전 면허증이 있겠지? 다른 사람들은 다 있고 나만 아들이 없어 우울한 기분 딱 그 기분과 일치했다.

  

결국, 네 번째 시험에는 남편이 동행했다. 면허증이 없으면 운전을 못 하고 도망을 가고 싶어도 너무 먼 한국으로 가야 하니 시험을 아예 안 볼 수도 없고 다시 보는 것도 싫고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 하는 막다른 길에 놓인 비 맞은 생쥐처럼 거의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처음부터 남편은 블랙 여자 시험관에게 농담을 곁들이며 분위기를 띄우고 시작했다. 와이프가 4번째 보는 시험인데 또 떨어지면 우울증에 걸릴 거라는 둥, 한국에 가버린다고 한다는 둥, 말도 잘 통하지 않는 거 같은데 서로가 나를 보며 웃었다.


삼세판도 떨어진 마당에 이젠 거의 포기 상태로 별로 떨지도 않고 시작하는데 어라? 이 감독관은 아예 핸들까지 잡아주며 이제 출발, 스탑 하고 다시 출발, 뒤로 조금만 더, 룸미러 확인하고...... 합격!!! 합격은 했지만 기분은 영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친절하게 해 주던지, 아니면 끝까지 하던 대로 하던지, 난 그동안 하던 대로 했는데 그럼 그동안 왜 떨어진 거야? 내 실력이 아닌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마음으로 얻어걸린 듯한 기분이 들어 영 떨떠름했지만 미국에서의 Drive Licence를 손에 쥐었다.

    



그렇게 4번 만에 심통을 내며 획득한 면허증을 가지고 운전을 하면서 왜 그렇게나 STOP싸인에 목숨을 걸었는지에 대해 점차 알 수 있었다. 만약 신호등이 없는 조그만 사거리가 있다 하자. 사거리 모두 STOP싸인이 있으면 모두가 일단정지, 그중에서 제일 먼저 도착선에 선 차가 출발하고 그다음에 온 반대편 차가 차례로 간다. 만약 사거리에서 메인 도로에는 STOP이 없고 다른 좁은 양쪽 길에만 싸인이 있다면 메인 차량은 서지 않고 그대로 가고 메인 길에 차량이 없다는게 확인되면 좁은 양쪽길 차가 STOP했다가 메인 도로로 진입할 수 있다.


이해가 되는가? 이렇게 엄격하게 STOP싸인에서 양쪽 편 차량이 있나 없나를 정확히 확인하고 출발하니 누가 먼저라고 언성 높일 일도 없고 오히려 STOP 싸인만 있는 사거리가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에서보다 사고율이 훤저하게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을뿐더러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런 규칙은 한국에서도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된다. 신호등 없는 좁은 도로에 간단한 이런 표지판 하나로 교통사고율이 낮아질 거라 확신한다.

   

어느 날 진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앞차가 서서히 서길래 나도 따라 그 뒤로 섰는데 저 멀리 한 100미터쯤 떨어진 옆 차로에서 노란 스쿨버스가 천천히 노란 네온을 반짝이며 정차하면서 버스 양옆면에서 커다랗게 쓰인 STOP싸인 두 개씩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내가 가는 방향(버스의 반대방향)으로도 더 이상 다가오지 말고 정지하라한다.

 

보통 내가 가는 방향에서 버스가 STOP싸인을 보내면 멀치감치 버스 뒤에서 정지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양쪽 차선 모두 멀리서부터 서야 한다는 게 희한했다. 더군다나 그 버스에서는 다리를 다친 아이가 타고 있었는지 반대편에 서 있던 엄마가 길을 건너고 아이를 부축하고 다시 건너는 상황이니 차량이 점점 길어졌지만, 누구 하나 먼저 가려는 움직임 없는 정지 화면처럼 양쪽 차량 모두 그대로 그 모녀를  보고 있었다.

   



STOP 싸인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나의 15년 무사고에 금이 간 일이 생겼다. 집 앞 도로에 내가 가는 방향에는 STOP 싸인이 없다는 걸 잘 아는 터라 생각 없이 왼쪽으로 커브를 도는데 내 눈엔 보이지 않았던 빨간색 벤츠가 있었는지 정말 아주 살짝 부딪쳤다. 헐~ 내가 그 차를 긁은 것이다. 정확히는 같이 부딪혔다. 그 빨간 차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고 난 일단 손짓으로 ‘Sorry’ 임을 알리고 재빨리 내려서 차를 살펴보는데 빨간 차가 너무 오래된 차라 범퍼에 이미 여러 군데 흠집이 많아 도대체 내 회색 차가 부딪친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빨간 차에서 여자가 내리는데, 에구머니!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아이들 친구 엄마였다.

    

멋쩍게 인사를 했지만 할 건 해야 하니 서로 보험증을 교환하고 내가 못 봐서 미안하다 하고 내일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보자며 웃으며 헤어졌다. 하지만 일은 그다음 날 벌어졌다. 내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claim(클레임-사건 처리)을 상대편에서 걸었는데 나에게도 사고 경위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내 차에도 빨간 차에서도 흠집 하나 찾지 못할 정도의 경미한 사고였는데 클레임을 걸었다고? 그것도 내가 가는 길에는 없는 STOP 싸인이 그쪽에는 있었고 자기는 정차해 있었다지만 내가 그걸 어찌 믿겠는가? 난 분명 순간적으로 차가 없구나! 생각하고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 건데...

     

보험회사 측에서는 STOP 싸인이 상대방 쪽에만 있었다면 그쪽 잘못이지만, 분명히 정차해 있는데 벤츠를 보지 않고 커브를 돌다가 부딪혔기 때문에 내가 전적으로 잘못했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이웃이기도 하니 원만히 해결하길 바란다며 그냥 $400 정도 수리비를 주는 게 빠를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억울했다. 또 한국의 정이 그리울 타임이 왔다. 바로 건너편 집에 사는 그것도 아이들 친구라 스쿨버스도 같이 타는 사이인데 흠집도 보이지 않는 사고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심지어 웃으며 헤어졌는데?

   

물론 미국 사람 전체를 같은 부류로 볼 수는 없지만 절대 이런 일로 직접 얼굴을 맞대지는 않는다. 보험회사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겉으로 인사할 때는 천사 같은 얼굴을 하고 뒤로는 자기 잇속을 챙기는 두 얼굴의 모습에 평화주의적인지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개인주의적인 모습인지 지금도 그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기 어렵다.


아파트 살 때 아랫집 남자의 겉모습과 다른 이중적인 모습이 첫 번째였다면 빨간 차의 클레임이 실망적인 두 번째 모습을 본 것이다. 한국에서의 우리네는 이웃 간에 사건이 나면 부딪히고 싸워서 안 보던지, 화해를 하던지, 아니면 이도 저도 안 하고 혼자 참아버리든지 할 텐데 여기 사람들은 앞에서는 OK라고 미소 띠며 얘기하고 돌아서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처리해 버리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앞에선 서로 인사 잘하고 뒤통수 맞는 격이니 황당한 일이다.

     

암튼 사건은 $400 체크를 써서 메일로 보내며 일단락되었지만, 그 뒤로도 그 여자를 길에서 만나면 나는 무슨 죄지은 것처럼 숨어 돌아가고 그녀는 당당히 활보하고 걷는다. 그러면서 생활해 나가는 내가 여기에 점점 젖어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는 게, 한국의 예절와 미국의 메너가 주는 억양과 뜻은 너무도 닮았지만 그것을 대해는 생각과 태도는 극과 극임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한개의 STOP싸인 표지판은 작지만, 너무도 강한 어조로 미국 사람 전체에게 파급되었다. 하나님이 정한 십계명이 지금까지도 세계의 공통 계시명이 되었듯이 미국의 규칙은 다민족이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꼭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강한 십계명 같은 것이다. 겉으로는 운전자의 메너라고 불리지만, STOP싸인에서는 반드시 멈추고 양보 싸인에서는 꼭 양보를 하고 제한속도에서는 속도를 제한 해야 하는 게 규칙이자 강한 계시이다.

    

앞에서 보기에 좋은 메너라고 그대로 믿어 서는 안된다. 메너를 어기면 그 대가가 과히 계시가 아니라 중벌로 다스려짐이 이들의 뒷모습이다. STOP에서 서지 않고 그대로 가면 벌금이 $200이 넘고 깜빡이를 켜지 않고 끼어들기를 하면 돈이 문제가 아니라 벌점이 5점이 될 수도 있고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고 속도를 조금만 내도 벌금과 벌점이 부과되어 법원에 출두해야만 한다.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으로 일단 규칙이 정해지면 그 규칙을 말없이 그대로 따르는 게 메너이고 민주주의의 이론이다. 메너를 지키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벌금 폭탄과 더 이상 메너를 쓸 수도 없는 면허취소가 참으로 쉬운 나라다.

    벌금이 폭탄이 되면 예절이 아니라 메너가 되어 강한 계시명이 되지 않을까

      

한국의 예절은 쉽다. 겉으로나 뒤로나 예절이 바뀌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분명 한국에도 일단정지 표지판이 있고 양보 싸인도 있고 속도제한이며 비보호 좌회전 등 다양한 교통표지판이 있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다 경찰에게 걸리면 따지고 사고가 나면 서로 얼굴 맞대고 싸우고... 겉으로 보이는 표지판으로서의 예절도 지키지 않고 법규를 어겼을 때의 벌칙도 미국의 메너를 어겼을 때의 중벌에 비하면 너무도 약해서 예절을 지키는 거에 대한 중대함을 잊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처럼 벌금이 상상 초월하게 많으면 예절이 아니라 메너가 되어 계시명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까?

    

얼마 전 남편은 변호사를 선임해 법원에 다녀왔다. 차 안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벌금 $380에 벌점 5점을 받았던 건으로 변호사가 직접 남편을 변호해 운전하면서 전화를 직접 한 것도 아니고 정지한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들었다가 출발하며 내려놓지 못했다며(?) 선처를 바라는 차원이었다. 벌금은 내야 하지만 다행히 벌점은 없앴다. 머리가 나쁘면 수족만 고생이지만 메너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일뿐더러 시간이 돈인 이 시대에 변호사 선임에서부터 법원 출두까지 시간과 더불어 돈으로 맞바꿔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한국에서 35년을 살았던 착한 예절이 미국에서 16년을 산 무서운 메너를 따라잡지 못했나 보다. 그럼 앞으로 미국에서 19년을 꼬박 더 살면 똑같은 횟수인데 그때가 되면 메너라는 놈이 예의를 이길까? 나 또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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