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Sep 16. 2019

미국의 'Holiday' / 한국의 '명절'

#27ㅣ폭죽 한 번에 끝나버리는 미국의 홀리데이는 참 재미없다

    Holiday란 영어 단어를 난 꽤나 일찍 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문예창작과에 다니는 사촌 오빠가 자기가 시를 썼다며 보여주었는지, 몰래 봤는지, 어쨌는지 그 기억까지는 없는데 제목이 ‘Holiday’ 영어로 쓰여 있어서 그때는 모르는 말이었지만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어렴풋이 대단히 황홀하고 멋진, 왠지 누군가에겐 설레는 단어로의 인식이었다.

    

   그 뒤로도 이 단어는 언니들이 흥얼거리는 팝송에서 간간이 들렸고 영어를 배우고부터는 이 단어가 언젠가는 나에게도 무한한 꿈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판타지 같은 단어로써 꿈을 주는 야릇한 상상을 주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Holiday가 한국말로는 명절에서부터 축제일, 휴가, 경축일, 공휴일, 주말 등 너무도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고 영어로는 ‘a time of festival or recreation when no work is done 축제의 시간이나 즐거운 날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다. 한 단어에 이렇게 많은 명사로서의 정의가 포함된 단어가 또 있을까?라고 할 정도로 모든 즐거운 날에 쓰일 수 있는 일종의 노는 날의 대명사인 단어이다. 

     

     그래서였는지 어릴 때의 홀리데이는 명절이나 생일, 여행, 방학이 이 단어에 속하니 뭐하나 즐겁지 아니한 게 없어서 그렇게나 황홀한 단어였나 보다. 조금 커서도 크리스마스가 오면 아주 큰 홀리데이 행사가 열린다. 고등학교를 미션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로 나에게는 친구들과 밤샘을 할 수 있는, 부모님의 허락하에 친구 집에서 잘 수 있는 무언의 탈출이기에 앞뒤 잴 것도 없이 좋았나 보다. 

    

    그런 무언의 기쁨의 단어가 시집을 가고부터 약간의 경고를 해왔다. 조건 없는 행복의 말이 아닌 나의 노동의 대가가 치러져야 함을, 시집에선 노동과 조신함을 친정에선 달콤한 쉼을, 양존의 홀리데이를 공유하기를 강요했다. 그래도 홀리데이는 어쩌다 누리는 호사였고 아직은 설렘 가득한 보석 같은 휴식을 할 수 있는 젊음의 단어였다.

     무시무시한 문신들은 거대한 미국인의 다른 모습으로 웅성 거리며 몰려있는 군중의 힘

   

     Holiday라는 단어를 직접 쓰고 말하는 미국에서의 홀리데이는 어떨까? 미국에 와서 처음 접하는 Holiday는 ‘Fourth of July’ 즉 독립기념일이었다. 처음 맞는 홀리데이라 기대를 가득 안고 워싱턴 백악관 앞 조지 워싱턴 연필 탑이라는 곳으로 가서 직접 기념일을 맞닥뜨려 보기로 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주차하기도 어려워 뱅글뱅글 백악관 주변을 돌다가 후미진 주택가에 겨우 주차를 하고 한참을 땀 흘리며 걸으며  알 수 없는 피켓시위대와 함께 언덕에 올랐다. 조용한 미국인들만 보다가 팔에, 다리에, 어깨에 그 많은 무시무시한 문신들은 거대한 미국인의 다른 모습으로 웅성거리며 몰려있는 군중의 힘이 느껴져 무섭기까지 했다. 

     

     어렵사리 잔디 귀퉁이에 겨우 연필 탑이 눈에 보일랑 말랑한 자리를 잡고 보니 남들은 준비해온 브랭킷이며 접는 간이 의자며 맥주들로 진을 치고 있는데, 우리는 마른 노란 팔과 노란 다리를 의자도 없이 오므리고 쪼그리며 마른풀 위에 앉아 있자니 거인의 나라에 들어온 소인처럼 작아진 느낌이었다. 그러자 남편은 어디에선가 사 온 시원한 물과 스낵을 아이들에게 쥐어 주고 맥주 한잔을 하더니 덥다며 남들처럼 웃통을 벗었는데 하얗다! 이상하게 미국 사람의 피부는 분명 우리보다 하얀데 햇볕을 좋아해서 그러는지 빨갛게 그을려 있고 덩치가 큰 데다가 문신을 해서인지 위압적인 느낌인데, 남편은 살집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하얗다! 하얀 게 그리 약해 보이는 색인지 처음 알았다. 문신이 그렇게나 아쉬운 그림이 될 줄 몰랐다.

      설마 뭔가가 있겠지...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드디어 폭죽이 터졌다. 연필 탑 위로 옆으로 연신 팡팡 터지는데 빨갛고 파랗고 네온 빛 가득한 불빛들이 동그랗게 연속적으로 커지다가 삐죽하게 옆으로 사라지고, 로켓처럼 큰소리로 불을 뿜으며 올라가다가 폭탄처럼 구름이 터져 나가듯 연기를 발사하고, 연속해서 귀가 터져라 터트리더니 갑자기 뚝! 끝났다. 겨우 5분 정도? 그러자 갑자기 그렇게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천천히 아니 재빠르게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정리하더니 언제 그렇게 모여서 소리 지르고 언제 그렇게 박수를 쳤냐 비웃듯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설마 뭔가가 있겠지.. 가수라도 나와 한 곡 뽑겠지.. 누군가 나와서 연설 비슷한 말 한마디라도 마이크를 잡고 하겠지...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단지 5분의 폭죽을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먼 거리를 달려 그 먼 거리에 주차를 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렸단 말인가? 

    

    문화의 차이라는 게 이런 거였다. 군중심리가 개인 심리로 빠르게 전환되고, 해야 하는 일에 묵묵히 따라가 주는 규율과 법칙에 반하지 않는 깔끔하지만, 그 깔끔함에 정이 가지 않는 나라라는 인식이 그날 내 머리에 박혔다. 마트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계산하는 사람이 앞사람과 수다를 떨고 있어서 계속 기다려야 하는데도, 주차를 하는데 옆 차에서 고령 운전자가 내리는 데에만 10분이 걸려 문을 못 여는 상황에서도, 어린아이가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해서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길에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웃으며 기다리는 그들이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득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나면 좀 화도 내고 불편하면 양해도 구하는 게 인간적일 때도 있는 건데 참으로 정이 안 가는 미국 사람들이다.

      


   나의 나라, 나의 홀리데이가 왔다. 추석이다. 한인들이 꽤나 살고 있는데 추석이라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건 없다. 추석이지만 여기에선 공휴일이 아니니 모두가 일상처럼 일을 하고 학교를 가고 고작 마트에서 송편을 만들어 파는 정도? 한국에서의 최대의 명절로 인식되어온 나로서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명절에 대해 알려 줘야 한다는 의무감과 나름의 정체성을 부여해주고 싶었다. 갈비찜과 여러 가지 전, 잡채며 3가지의 나물 그리고 송편까지... 항상 해오던 습관대로 상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한복을 입히고 한자리에 모여 앉히고 추석 명절의 유래와 격식 등을 얘기하며 아침 식사를 했다. 

     

삼색전과 삼색나물 그리고 약식과 퓨전 떡... 홍합?


    남들은 가족 중 한 명이 미국에 와서 정착하게 되면 줄줄이 굴비 엮듯 온 식구들이 오게 되어 사촌의 팔촌까지 대가족의 무리로 살게 되는데, 남편도 막내이고 나도 막내여서 친척 모두 우리보다 나이가 많아 나름 한국에서 자리를 잡아버린 이유여서인지 해외이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듯하다. 그나마 내 쪽으로 사촌이 먼저와 자리를 잡긴 했는데 남부 끝에서 살고 있기도 하지만, 그리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보니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대문 대문 하니 이 땅에 의지하고 살 수 있는 가족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날이면 원래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지난 추억과 안부를 물으며 보내는 건데.. 시집에서의 노동이 힘겨워서 눈물짓던 그런 날들이 그립기까지 하니 그렇지 않아도 향수병에 시달리는데 이런 한국 명절이 오면 괜스레 그렇게 밉던 아빠와의 추억까지도 아름답게 묘사된다. 내 어린 생일날 핑크 체크무늬 잠옷을 케이크와 함께 들고 오셨던 모습이...

    

    미국의 홀리데이는 독립기념일처럼 7월 4일로 정해진 날도 있지만, 추수감사절은 11월 넷째 주 목요일, 그다음 날은 블랙 프라이데이, 마더스 데이는 5월 둘째 주 일요일, 파더스 데이는 6월 셋째 주 일요일 이런 식으로 임의로 날을 정해 모든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주말로 정해져 있다. 한국의 명절은 음력으로 계산되어 매번 날짜가 바뀌니 예의 주시하지 않으면 음력 달력이 없으니 놓치기가 쉬워 제사나 음력으로 세는 생일이나 추석, 설 명절도 그냥 지나쳐서 눈총을 받곤 한다. 그런 걸 보면 한국의 음력 계산법에 의한 명절은 계절의 변화에 하늘의 계시대로 순응하는 삶을 따르는 반면, 미국의 양력 계산법은 인간의 편리에 움직이는 개인주의적인 삶이라는 것을 홀리데이의 문화에서도 다르게 보여준다.

    

   추석은 한국의 명절을 기념하기 위한 추석 음식으로 그날을 추억하며 장만하고 추수감사절은 미국에 살고 있어 아이들에게 미국의 문화도 알려 줘야 해서 추수감사절 음식을 해야 하니 어떤 해에는 추석과 추수감사절이 며칠 사이로 겹칠 때도 있었다. 두 문화 속에 사는 비애이기도 하고 두 문화를 동시에 체험하며 사는 다양성에서의 혜택이기도 하다. 그나마 큰 아이가 대학 가기 전까진 그렇게 할 수 있었지만 가고 난 후엔 같이 모이기가 어려워 추석과 추수감사절을 동시에 하는 믹스된 명절을 보내야 해서 터키도 구워야 하고 갈비찜도 해야 하고 호박파이와 송편도 만들어야 하는 웃지 못할 퓨전 명절이 되어가고 있다.

     

추석 음식과 추수감사절 터키와 와인이 섞인 퓨전 명절

    

     이제 며칠 후면 독립기념일이 돌아온다. 백악관이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 오시는 분에게는 1순위의 관광코스이다. 그래서 백악관에 가는 횟수가 잦다. 갈 때마다 첫해의 불꽃놀이가 생생하게 기억되어 관광 오시는 분들에게 그날의 일을 또 이야기하며 되살아나게 만든다. 이래저래 내가 미국에 사는한 5분의 짜릿한 불꽃놀이로 한 50년의 지루함을 견뎌야 할 거 같다. 정말 재미없는 천국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