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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an 23. 2020

미국의  화장실은  'Room'이다

락스 냄새로 머리가 빙 돌 지경이다.


샤워를 끝내고 샤워기를 벽으로 빙 둘러가며 물줄기를 쏴~아하니 뿌리기만 하면 될 걸 여기는 마른 청소를 해야 하니 화장실 청소는 맘 잡고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고된 청소 중의 하나이다.

난 이런 화장실 청소가 정말이지 싫다. 미루고 미루다 '엄마 거울이   보여요' 혹은 '부탁이 있는데 화장실 거울  닦아줄  있을까?'라는 간곡한 요구 사항이 없다면 난 모른 척, 내 일이 아닌 척 영원히 무시하고 싶은 맘뿐이다.



미국 오기 전 그러니까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난 한국에서 일하는 주부였고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직장일을 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었다. 물론 일하며 집안일을 하는 다른 주부들도 많았겠지만 난 낮에는 회사에서 현장에서 일을 해야 했고 저녁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도면을 치고 다시 다음날 도면과 견적서를 들고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해야 했기에 집안일을 전적으로 할 수 없었음을 핑계 아닌 핑계로 일단은 깔고 가야겠다.


내가 돈을 버는 시간과 노동의 비용이, 돈을 주고 내 일을 맡아해 주시는 시간과 비용의 함수관계가 잘 맞아떨어졌음을 난 강조하고 싶다. 암튼 내 살림을 도맡아 해 주시는 도우미가 계셨는데 일주일에 3번 세 시간씩이었던 거 같다. 청소는 물론이고 빨래며 다림질이며 저녁에 먹을 반찬을 해주시고 가시니 난 정말이지 집안일은 거의 하지 않고 저녁에 먹은 설거지만 하면 하루의 마무리가 끝났던 그런 봄날이, 그런 꿈같은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미국에 오고 온전히 내 몸을 써서 내 집안일을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바닥은 전체가 카펫으로 깔려있어 카펫 전용 베큠(청소기)이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며 분쇄되는 가벼운 청소기가 아니었고 무거웠을뿐더러 매번 청소 봉지를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너무 무거우니 아마 그때부터 남편의 힘을 빌렸던 거 같다. 돈을 주고 도움을 받는 도우미는 꿈도 꿀 수 없는 이민자로서의 힘듦이 오랫동안 나의 습관 된 노동을 대처하기란 한여름밤의 꿈처럼 하루아침에 놓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후로 바닥 베큠 담당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베큠이 해결되면 바닥청소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게 물걸레질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 하지만 아이들이 어린 관계로 밥을 먹다, 주스를 마시다, 간식을 먹다 조금이라도 흘리면 카펫의 세척은 그야말로 대락 난감이 된다. 아이들이 무언가를 흘리면 잽싸게 카펫용 뿌리는 클리너로 흠뻑 뿌려대고 휴지로 누구보다도 빨리 얼룩을 문지르고  문질러야 한다. 그 순간을 놓치면 영원한 얼룩으로 남겨질게 뻔하니 말이다.


카펫을 정신없이 문지르며 얼룩을 없애다 보면 카펫의 실들이 엉겨 스파크가 일어날 정도로 살짝 불꽃이 일어나고 엎드려 움직여야하는 반복된 팔의 운동으로 구역질이 날 정도이다. 참 못할 짓이다. 그냥 나무 바닥의 물걸레질이 백 번 천 번 나은 청소임을 그럴 때 정신이 번쩍 나도록 깨닫는다. 누가 카펫이 좋다 했던가!


바닥은 고사하고 화장실의 청소는
 가히 어렵고도 어려운 과정이다.


일단 화장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시인한다. 한국의 화장실 문화는 내가 예전에도 언급했지만 원래는 뒷간이라 해서 생활하는 공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코 '나는 남들이 보는 데에서 화장실이라는 곳을 가면 안 되는 양' 터부시 했던 게 사실이고 절대 가까이 있어서는 그렇다고 아주 멀어서도 안 될 사이... 딱 그 정도의 선으로 따로 있어야 하는 찬밥신세였던 공간이 현대화 즉 아파트라는 집에 대한 개념이 바뀌면서 화장실이 실내로 다른 공간과 나란히 들어왔다.


들어왔다지만, 부뚜막에서 주방으로의 전환처럼 완전한 공동체 공간이 된 게 아닌 실내이긴 하나 방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으로 다용도실 같이 춥고 어두워서 기분 좋게 갈 수 없는 곳이 바로 화장실이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은 거실이며 부엌 하다못해 현관까지 바닥이 따뜻하게 보일러를 넣는 반면 오로지 화장실만은 보일러를 넣지 않았기 때문에 화장실이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이 아닌 뒤간개념으로 볼일만 보면 나와야 하는, 다른 룸과는 따로인 왕따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한 샤워를 하는 공간과 볼일을 보는 변기 그리고 세수를 하는 세면대 공간 모두를 하나로 묶어 물을 쓰는 하나의 공간 개념으로 화장실은 그냥 방과는 완전히 다른 곳 즉 물을 사용하는 곳으로의 인식이 되고 물을 써야 하니 바닥이며 벽을 모두 방수 처리해서 샤워기 하나면 사방 어디에 물을 뿌려도 가능한 공간이 되어 그대로 고착되어버렸다. 물론 욕조의 배수와 화장실 바닥의 배수 두 군데가 있어 가능한 이야기이다.


일단 사방에 물기가 있다 보니 습하다.


창문으로 혹은 문을 열어 놓고 환기를 시킨다 해도 쉬이 빠지지 않고 요즘처럼 추운 겨울에 창문을 열어놓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문을 열어 놓는다 해도 화장실의 찬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니 그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바닥에 물이 있으니 같은 실내인데도 꼭 화장실용 슬리퍼를 신고 축축하게 들어가야 하고 사방의 물기가 마르지 않는 곳은 마른 타올로 닦아야 한다. 그 과정을 방치하면 쉽게 여기저기 곰팡이가 피어 곰팡이 냄새는 물론 몸에도 해롭다는 건 익히 아는 일이니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고 한마디로 한국의 화장실은 습도에 의한 곰팡이와의 전쟁을 치르는 게 청소의 관건이 되었다.



반면 미국의 화장실은 일찍부터 실내에 들어와,


다른 공간 즉 잠을 자는 방이나 다용도실, 세탁실 구분 없이 화장실도 하나의 룸으로의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 바닥으로 열을 내는 한국의 온돌식이 아니고 천정이나 바닥 심지어 화장실은 벽에서도 나오는 바람을 통한 히터는 화장실만 따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는 방과 똑같은 개념으로 이는 문화가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욕조 바닥과 벽의 일부만을 방수하고 변기와 세면대 사이에 유리벽을 치던가 샤워 커튼으로 해서 하나의 장소지만 간단한 구분으로 물을 쓰는 범위를 최소화해서 샤워를 하는 곳은 물을 쓰는 곳으로 차단하고 볼일 보는 곳과 세면 할 수 있는 곳은 방의 개념으로 보게 했다.


그러므로 바닥엔 배수 시설이 욕조에만 있고 다른 하나가 없으니 그냥 방처럼 나무 바닥이든 카펫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그래도 물을 쓰는 곳이라 타일로 마감된 곳이 많은데 타일이라 차가우니 카펫을 까는 가정이 많다. 우리 집을 예로 들면 1층 화장실은 파우더룸이니 나무 바닥이고 나머지 층의 화장실은 타일이고 타일 위에 카펫을 얹어 놓았다. 그야말로 REST ROOM 즉 쉬는 방이 된 셈이다.



자, 이제 청소하는 과정을 이야기해보자


욕조 청소는 샤워를 끝내고 그때그때 할 수 있으니 뭐 말할 것도 없고 변기 위나 세면대는 그야말로 건식으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변기는 참으로 곤란한 청소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남자도 서서 볼일을 볼 수 없고 앉아서 해결해야 함은 설명 안 해도 될듯하다. 하하... 일단 락스 스프레이로 구석구석 뿌려놓는 일부터 해야 오물의 제거가 쉽다. 락스를 여기저기 뿌려놓은 상태에서 거울은 윈덱스를 뿌리고 마른걸레로 문지른 다음 페이퍼 타월로 정성껏 긴팔을 높이 올려 한 뼘 한 뼘, 전면이 모두 거울이므로 인내를 가지고 닦고 또 닦아야 한다.


세면대도 락스 스프레이로 뿌린 다음 세제가 묻혀 있는 타월을 이용해서 물때 낀 세면볼과 가장자리 그리고 배수구를 닦아낸 다음 페이퍼 타월에 물을 입혀 닦고 다시 마른 페이퍼 타월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다음 변기로 다시 돌아가 세면대처럼 물기 묶은 타월과 마른 타올로 마무리하면 된다. 모든 게 건식으로 청소해야 하는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이렇게 건식으로 청소를 하니 좋은 점은 청소를 한 후에 비로소 나타난다.


청소 후 습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모든 게 달라지는 점이다. 물기가 없으니 습하지 않고 습하지 않으니 다른 룸과 같은 온도가 유지되니 곰팡이가 필 일이 없고 언제든 슬리퍼 없이 맨발로 들어갈 수 있고 난방이 유지되니 특별히 화장실에서의 온도차를 전혀 느끼지 않고 설사 가족이 샤워를 한다 해도 샤워 커튼으로 가려져 있기에 따로 세면대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욕조에만 배수구가 있고 바닥에 배수가 없으니 건식으로 항상 뽀송함을 유지할 수 있다


한국식으로 사방을 물 뿌리며 깨끗하게, 속시원히 한방에 끝낼 수 있는 청소를 매일 할 수도 없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날 잡아 그것도 물과 건식을 번갈아가며 조심히 그리고 물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오물을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처음엔 너무도 낯설어 굳이 왜 이렇게 설계를 했을까? 한국처럼 사방 모두 방수하고 타일을 깔면 한방에 해결될 텐데 참으로 발전되지 못한 구조를 가졌구나 하고 청소를 할 때마다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살면서 문화의 다름을 이해하게 되니 한국의 습식 화장실과 미국의 건식 화장실 모두 문화의 다름이고 장단점이 있다는데 그 또한 재미있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한방에 해결되는 청소의 용이함에 놀라고,
건식의 뽀송함에 청소의 번거로움을 잊는다.


분명 미국에 살다 한국에 가는 외국 사람들은 축축한 한국 화장실의 습한 느낌에 처음엔 당황스러웠겠지만 한방에 해결되는 청소의 용이함에 감탄할 것이고 나처럼 한국에서 미국에 온 사람들은 카펫이 깔려있는 방 같은 화장실이 문화 충격이었다가 건식의 뽀송함에 청소의 번거로움을 잊을 수 있는 있는 문화의 차이를 살면서 느꼈을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락스 냄새를 맡고 나오면 어질하며 온몸에 락스의 소독 냄새가 내 몸에도 배어 내 몸도 소독이 되는 느낌이다. 젊었을 땐 행여 한점 곰팡이라도 내 집에 피어 어린아이들에게 옮을까 싶어 정신 바짝 차리고 누가 볼세라 하루 걸러 하루 페이퍼를 들고 있었는데 이제는 가족 누군가가 말로 내뱉지 않으면 버티기 식으로 눈 감고 귀 닫고 있자니 나의 게으름인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 뭐 깨끗함의 의미가 퇴색되어버린 건지 그냥 그냥 천천히 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 오늘도 아들의 한마디가 없었다면 하루 이틀은 버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청소가 끝나고 나니 마음은 개운하다. 아들아! 마음껏 누리렴. 깨끗한 화장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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