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Jan 31. 2020

미국 학교엔, '10분 쉬는시간'이
정말 없다고요?


우리 아들은 매일 날씨 체크를 미리 한다.


오늘내일은 물론이고 앞으로 일주일 단위로 면밀히 체크하고 꼭 나의 의견을 미리 묻는다. 오늘 저녁에 눈이 올 거 같아요? 온다면 얼마만큼 올 거 같아요? 내일 학교를 갈 수 있을까요? 학교가 몇 시간 뒤에 문을 열거 같아요? 지금 오고 있으면 언제 학교 문을 닫을 것 같아요? 아주 귀찮을 정도로 나의 의견을 묻고 또 묻는다.


나의 예견을 묻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판단이 거의 100% 맞기 때문이다. 아들은 모를 것이다. 이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날씨를 바라보는 연륜이 쌓여 기온이 내려가면서 영하 날씨가 되어 비가 오다면 눈으로 바뀔 확률이 높다던가, 흐릿하면서 눈이 오면 기온이 점점 내려가 계속해서 눈이 올 확률이 높다던가, 눈이 오는데도 해가 쨍쨍하면 곧 그치며 쌓인 눈도 녹아버려 곧 학교를 갈 수 있다던가, 눈이 오더라도 길이 얼지 않아 학교 문을 닫지는 않을 거라던가,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며 안개가 끼면 길이 살짝 얼어 미끄러져 거의 빙판 수준이라 눈이 오지 않더라도 학교를 가지 못할 거라든가....


하지만 나의 예견을 묻는 진짜 이유는 딴 곳에 있다.

만약 눈이 오거나 길이 미끄럽거나하면 새벽 5시에 최종적으로 카운티(한국으로 치면 구단위)에서 학교 문을 닫을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문을 열 것인가를 정한다. 그것도 아니면 2시간을 늦게 오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임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눈이 온다는 아주 작은 싸인만 있더라도 간절히 문을 닫기를 소망하는 탓이다.


새벽 5시에 일제히 문자가 온다, 카운티로부터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아침부터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해야 했다. 티브이 자막으로 조그맣게 학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문을 닫는다거나 2시간 늦게 문을 연다는 소식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기에 눈만 오면 눈이 빠지게 티브이에 고정해야 했다. 지금은 새벽 5시에 일제히 부모님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온다. 문을 닫는다거나 2시간 늦겠다는 연락을 해주고 부모는 그에 맞게 대처를 하게 된다.


대처라는 건 물론 스쿨버스 타는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학교 문을 닫으면 아이들은 꿈나라의 연장으로 꿈속을 헤매면 그뿐이지만 2시간이 딜레이 되는 날이면 일제히 2시간이 늦어지는 스케줄로 바뀌는 시스템을 인지해야만 한다. 즉 2시간 딜레이 되었다는 말은 스쿨버스가 정확히 2시간 후에 온다는 이야기이고 끝나는 시간은 똑같은 시간에 끝나므로 그 안에 모든 수업을 진행해야 하므로 모든 수업이 단축된다는 의미이다. 빠지는 수업이 없고 똑같이 하되 시간이 조금씩 짧아져서 진행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확한 메뉴얼데로 한치의 오차없는 행정처리로 내가 살아온 17년의 세월동안 똑같이 진행되어왔고 앞으로도 같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눈만 오면 길이 미끄러워 학교가 문을 닫으니 허구한 날 학교에 가지 않는 해도 있었다. 그러려면 겨울방학을 길게 하면 될 일을 죽어라 바뀌지 않은 학교를 보고 있노라면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는다. 여기 메릴랜드는 정확히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와 신년 1월 1일을 포함한 열흘남짓이고 봄방학은 일주일, 여름방학은 10주에서 12주이다. 동부 끝자락에 위치해 위도가 한국과 같아서 4계절이 똑같이 있고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겨울방학이 필수일 거 같지만 여름 날씨만 있는 타주와 같이 겨울방학이 거의 없다는 건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리라.


겨울방학이 없다는 것 이상으로 희한한 건,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손을 들고 선생님 허락하에 갈 수 있다. 한교시에 50분 수업후 10분 쉬는 시간이 우리에겐 절대 변할 수 없는 불문율 같은 거 아니었나? 10분의 휴식시간을 거의 1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았나? 선생님의 뒷얘기에서부터 친구들과의 비밀 이야기며 잘 나가는 아이들의 공공의 싸움도 큰 재밌거리였고 누가 먼저 매점에 달려가 맨 처음 맛난 컵라면을 먹느냐도 관건이었고 도시락을 미리 까먹어 다음 수업 선생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음식 냄새로 가방 검사를 감행한 냄새에 예민한 여선생님도 계셨더랬다.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결할 수 있는 10분의 황금 같은 쉬는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우리 아이가 영어에 서투르니 뭘 모른다 생각하고 무시했지만 정말 쉬는 시간 없이 연속적인 수업을 한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수업이 끝나도 곧바로 다음 수업이 시작되고 수업 도중에 아이들은 손을 들어 선생님의 허락하에 한 명씩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다. 그러니 10분 안에 전교생 모두 한꺼번에 몰리는 화장실이 아니니 절대 줄을 서서 갈 이유가 없고 화장실이 번잡하고 혼잡스러울 일이 없는 것이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한꺼번에 똑같은 시간에 각 교실에서 점심을 먹는 게 아니고 학년별로 식당에 가는 점심시간이 달라 어떤 학년은 11시에 먹는다 해서 아침을 조금만 먹어도 안심일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학년은 1시가 다 되어 먹기에 따로 간식을 넣어주기도 한다. 그것이 습관 되어 아이들이 커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이 모두 달라 각자 식사를 해야 하는 개인주의가 여기에도 보인다. 공공기관의 점심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점심시간이라는 사인을 본 적이 없고 병원이나 어디나 딱 정해진 시간이 없으니 굳이 점심시간을 피해 갈 필요는 없다.




이런 시간적인 개념이 어릴 때부터 다르다 보니,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와도 우리랑은 다른 문화가 되어 하나에서 열까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단 획일적인 문화가 되려야 될 수가 없다. 각자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게 점심시간이 모두 다르게 스케줄이 짜여있다. 공동으로 식사를 하면 오피스 자체를 클로즈해야 하기에 30분이든 1시간이든 한 명씩 돌아가며 점심을 먹어야 한다. 혼자 먹어야 하니 식당에 가는 것도 쉽지 않고 간단한 각자의 도시락으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혼자서 점심을 먹는다는 게 어색하거나 외롭다거나 할 거라 생각되지만 여기에선 전혀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뭐 습관이니까..


그래, 식사를 혼자 한다고 해서 뭐 그리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될지 모르겠으나 생각해보라. 우리가 같이 먹고 마시며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공감되는 교류와 동질감을 느끼는지.. 학교 다닐 때는 오로지 도시락 까먹으며 수다 떠는 재미로 학교에 갔고 어른이 되어서도 친하다는 상징은 함께 먹으며 시간을 얼마만큼 시간을 보내느냐에 달려있지 않은가? 점심만 이러는 게 아니고 퇴근도 각자의 스케줄로 파트타임에 길들여져 있기에 동시에 퇴근을 한다거나 퇴근 후 함께 술을 거나하게 하는 그런 공동체적인 문화가 있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희한하지 않은가?

어릴 때의 작은 습관들이 모여 어른이 되어서도 당연한 일과들이 되고 그런 일상들이 모여 이사회의 문화가 된다는 어쩌면 당연한 일들이 뒤돌아보면 무엇이든 일맥상통하여 나도 모르게 나의 습관이 이사회의 관습이 되어 몸에 딱 맞는 것들로 몸에 배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문화의 차이가 그 나라의 메너가 되고 그 나라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재미있고도 결코 관과 할 수 없는 것들임을 우리가 안다면 우리의 어린아이들을 어떤 시각으로 어떤 자세로 행해져야 할지 알게 된다.


미국의 이런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시간운용을 이해해야만 미국의 개인주의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겉으로 보기에 미국인들은 각자의 생활로 누구의 간섭을 받기 싫어하는 극히 개인주의만이 비치기 쉬운데 물론 개인적인 행동이 모두 좋은 건 아니라는 전제하에, 개인적인 사고가 남들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으로서의 메너는 배울만하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행동들이
이 사회를 조용히 움직이는 힘이다


길을 가다 어깨가 부딪히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쏘리를 외치고 공공장소에서는 앞사람이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주고 절대 큰소리로 나만의 일을 처리하라는 다그침을 하지 않고 어린아이라도 똑같은 인격으로 대화하는 모습에서 어린아이가 어른을 무서워하며 피하지 않고 예의 바른 행동을 보일 때 이러한 행동들이 모여 모여 이사회를 조용히 그리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힘이 느껴진다.


미국이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말의 일맥상통함이 이런 시간적인 운용의 다름에 있음을 또 한 번 알게 된다. 유치원 때부터 쉬는 시간이 따로 없어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선생님의 허락하에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것과 점심시간이 모두 다른 시간대를 가지고 있어 함께가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이 두 가지의 시간 운용이 이 나라의 관습을 지켜오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문화로 되는 출발점이 된듯하다.


획일적인 재미있는 지옥의 오명을 벗기 위한 방법을 의외로 간단하고도 쉽게 찾을 수도 있겠다. 재미없는 이곳에서의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행동을 시간 운용의 시간차 공격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다는 각자의 메너만 챙긴다면 그것이 재미있는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지 싶다. 그러려면 한국도 쉬는 시간이 없어야 하는데 그건 어렵지 않을까? 반대로 재미없는 천국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쉬는 시간의 부활이 관건인데 그것 또한 어려운 일이지 싶다. 어디에 한 표를 던질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의  화장실은  'Room'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