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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Oct 28. 2021

베르나르트 하이팅크(92), 토마스 구가이스(28)

2021년 10월 마지막 주 세계 성악계 소식

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타계

세계적인 지휘자들 가운데 고요한 거성이었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향년 92세로 런던에서 별세.

그의 부인 파트리치아 하이팅크가 2019년 여름에, 남편이 몇 달 전에 여러 번 넘어진 후 연주활동을 은퇴했으면 좋겠다고 밝혔음. 

바이올린을 전공한 하이팅크는 1956년에 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에서 병든 스타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의 대타로 등장한 이후 63년 동안 세계의 중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음.

대타로 연주한 이후 불과 3년 뒤 콘체르트헤보우의 음악감독으로 임명됨. 

처음에는 공동으로 맡았지만 1964년부터 단독 상임 지휘자로 임명됨. 같은 해 베를린 필하모니에도 데뷔. 

네덜란드인이지만 훌륭한 독일어를 구사했다고. 

훗날 그가 회상하기를 자신은 학창 시절 희망이 없는 학생이었는데 독일어 선생님이 훌륭했던 덕분에 독일어를 열심히 했다고 함.


1989년 베를린에서 카라얀의 후계자를 찾을 때, 하이팅크도 자연스럽게 후보자 중 한 명이었다고. 그 자리는 결국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갔고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그는 그 결과에 분개하지 않았다고 함. 그래서 그들의 특별한 음악적 우정은 깨지지 않고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고. 

사이먼 래틀은 10대 시절부터 하이팅크를 동경함. "하이팅크가 다시 필하모니의 객원 지휘자로 온다면 그 주에 오케스트라는 더 편안하면서 입체적이며, 더 힘찬 표현력을 보여줄 것이다."


처음부터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작업할 수 있었기에 하이팅크는 말러, 부르크너, 바그너 및 R. 슈트라우스와 같은 위대한 교향곡 작업을 경력 초반기부터 전문화할 수 있었음. 그리고 그는 쇼스타코비치를 좋아했다고. 

암스테르담은 27년 동안 그의 음악적 활동의 중심지였음. 

그동안 그는 1967년부터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맡았고, 1978년부터는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 지휘를 맡았으며, 1987년에는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코벤트 가든)를 이끌었음.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언급한 하이팅크를 예술가로서 특별하게 만든 이유: "지휘대에서 그 어떤 장난이나 '쇼'도 없으며, 포즈를 취하거나 큰 움직임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수한 음악을 위해 진행되며, 연주자 중심이 아닌, 장인정신으로 만들어진 노련한 결과물입니다."


하이팅크는 항상 자신을 악보의 하인으로 여겼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행함. 

리허설 중 그의 신조는 다음과 같음: "음악가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할 지점과 그들이 약간의 내 도움이 필요한 지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https://www.tagesspiegel.de/kultur/der-stille-star-unter-den-weltklasse-maestri-dirigent-bernard-haitink-mit-92-jahren-gestorben/27729676.html


내려놓음의 예술 

그는 젊은 나이에 음악적인 성숙을 이루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음악적인 성숙이 멈추지 않았던 사람. 

특히 말러의 브루크너의 해석이 두드러짐. 


"이 직업의 위험은 모든 조직적인 소란함과 공개적인 비평, 그리고 주최 측의 압력 등으로 이해 음악적으로 고갈되어 오로지 박자만 젓게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값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장인 중의 장인

탐욕이라는 것처럼 그에게 낯선 것은 없었음. 


"나도 그에 속하긴 하지만, 오케스트라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불필요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비생산적이기까지 많은 것들을 지휘자로서 하고 있습니다.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지휘자로서 유념해야 합니다. 물론 오케스트라를 지휘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케스트라에 동기를 부여하고 영감을 불어넣는 것이죠."


"지휘의 예술은 어쩌면 내려놓음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www.br-klassik.de/aktuell/news-kritik/bernard-haitink-dirigent-gestorben-nachruf-100.html



https://www.spiegel.de/kultur/musik/dirigent-bernard-haitink-ist-tot-a-e13d13f2-1a40-41a1-98fb-c7583772006a?sara_ecid=soci_upd_KsBF0AFjflf0DZCxpPYDCQgO1dEMph


견줄 수 없는 커리어

1928년 3월 4일 암스테르담 출생. 

그의 아버지는 전기회사 공무원으로 나중에는 회사의 수장이 됐음. 

하이팅크는 나치가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는 암살 시도에 대한 보복으로 강제 수용소에 잠시 끌려가기도 했다고. 

전쟁 후 여러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하면서 페르디난트 라이트너에게 지휘 수업을 받음. 

라디오 필하모니쉬 오케스트라에 두 번째 지휘자 자리를 얻어서 일하던 중, 1956년에 카를로 마리아 쥴리니 대타로 등장하게 됨. 

콘체르트헤보우 상임지휘자였던 에두아르트 반 베이눔이 1959년에 갑자기 사망한 이후 하이팅크는 상임지휘자로 임명됨. 


언제나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었음. 

1988년 콘체르트헤보우가 하이팅크와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을 때, 그는 이후 거의 5년 동안 이 오케스트라와 작업하지 않았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에 콘체르트헤보우는 그를 명예지휘자로 임명함. 

2002년에 하이팅크는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됨. 하지만 후임자 파비오 루이지 선출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하이팅크는 2004년 초에 사임함. 

2019년 9월 6일, 당시 90세인 하이팅크는 루체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빈 필과의 콘서트로 고별무대를 가짐. 


말러와 브루크너의 해석이 특히 두드러지고 많은 음반을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말러의 <대지의 노래>는 하이라이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음. 

그는 진정성과 장인정신으로 빛나는 이였음. 

그는 화려한 스타 지휘자와 그들을 따라하는 이들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고. 

하이팅크는 클래식 음악의 나침판이었고, 우리는 그를 잃었음. 


https://www.wienerzeitung.at/nachrichten/kultur/klassik/2125465-Dirigent-Bernard-Haitink-92-jaehrig-gestorben.html


https://youtu.be/yhew-g3AWGg

하이팅크가 2016년에 베를린 필이랑 바리톤 크리스티안 게르하어(원래는 메조소프라노가 부름)와 함께 한 말러 <대지의 노래> 트레일러


토마스 구가이스 프랑크푸르트 음악감독 후임자 지명

이번에는 28살의 젊은 나이로 프랑크푸르트 오페라 음악감독이 된 지휘자 이야기.

현 음악감독 제바스티안 바이글레의 후임자가 되어 2023/24 시즌부터 맡을 예정.

5년 계약. 

68세의 프랑크푸르트 극장장 베언트 로에베는 세대교체에 대해 밝히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휘자라는 중요한 자리에서 달성해야 할 모든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앞서 있다. 

구가이스는 모차르트, 바그너, R.슈트라우스 등 고전작품과 현대작품을 모두 지휘하고 싶다고 밝힘. 

https://www.wienerzeitung.at/nachrichten/kultur/klassik/2125757-Thomas-Guggeis-wird-Generalmusikdirektor-der-Oper-Frankfurt.html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내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극장장 베언트 로에베가 새로운 '요아나 말비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역주-요아나 말비츠는 젊은 나이에 뉘른베르크 음악감독이 됐고,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되어 스타로 떠오름. 이제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로 자리를 옮겨 크리스토퍼 에셴바흐의 후임이 됨.)

로에베는 말비츠에게 여러 번 새로운 프로덕션 지휘를 맡겼음. 


구가이스는 '전혀 음악적이지 않은 가정' 출신. 바이에른 남부 출신으로 양자물리학과 지휘를 전공함. 

23세에 베를린 슈타츠오퍼에 음악코치로 취직하여 다니엘 바렌보임의 조수가 됨. 

거기서 바렌보임의 '끝없는 지원'을 받았다고. 

2018년에 크리스토퍼 폰 도난이가 연출자 한스 노이엔펠스에게 분노해서 <살로메> 지휘를 거부했을 때, 바렌보임은 구가이스를 투입함. 당시에 베언트 로에베가 공연을 관람하면서 구가이스의 지휘에 매료됨. 그의 지휘는 전국적인 화제가 됐고, 그의 이름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됨. 

즉시 슈투트가르트에서 카펠마이스터 자리 제안이 들어옴. 

그리고 베를린 슈타츠오퍼는 그가 돌아오길 바랬고, 그를 위해 '국립카펠마이스터 Staatskapellmeister'이라는 새로운 직책이 만들어짐.

바렌보임은 베르디의 <맥베스> 총보를 "토마스를 위해, 그의 위대한 미래를 위한 기원을 하며 경의와 감사의 마음을 전함"라고 하며 선사함. 


2023/24 시즌부터 시즌당 35회의 지휘를 하게 됨. 

전임자인 제바스티안 바이글레도 베를린 슈타츠오퍼의 제 1카펠마이스터로 지휘자 경력을 시작했다는...


https://www.faz.net/aktuell/feuilleton/buehne-und-konzert/thomas-guggeis-wird-generalmusikdirektor-der-oper-frankfurt-17600296.html


양자물리학 대신 오페라

"양자물리학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기에, 다소 고독하지만 음악은 공동체 안에서 만들죠. 음악 안에서 무언가를 열정과 감동을 가져올 수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최고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렌보임에 대해서는 "거의 끝없는 지원"을 해줬다고 밝히면서 "지휘자의 모든 면"을 가르쳤다고 함. 

"때로는 차가운 물에 던져버립니다. 많은 책임을 일찍 맡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덕에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극장을 "최고 수준의 혁신적인 극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힘. 

프랑크푸르트는 최근 2015, 2018년에 이어 2020년에도 '올해의 오페라하우스'로 선정된 수준 높은 극장. 그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5년이 주어짐. 

그는 두렵지 않다고 밝힘. 

"저는 프랑크푸르트 팀이 달성한 것이 대단하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임자) 제바스티안과도 매우 가깝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있고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잘 지내며 서로 잘 이해합니다. 그가 여기서 이룬 것들을 제가 이어갈 수 있어서 기쁩니다."


https://www.br-klassik.de/aktuell/news-kritik/thomas-guggeis-neuer-generalmusikdirektor-oper-frankfurt-1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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