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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Nov 17. 2021

켄트 나가노 / 음악가 최저 임금

2021년 11월 셋째 주 세계 성악계 소식 

70세 생일을 맞이한 켄트 나가노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음악감독/ 함부르크 국립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인 켄트 나가노. 

70세 생일을 앞둔 몇 주 동안의 켄트 나가노의 스케줄: 

함부르크 국립오페라에서 2021/22 시즌 개막작으로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지휘한 이후, 취리히 톤할레에서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지휘했고, 베를린에서는 독일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브루노 불미에의 피아노 협주곡 "테라 노스트라(우리들의 대지)"를 세계 초연했음. 굳이 더 늘어놓자면 뮌헨의 새로운 홀인 이자르 필하모니에서는 메시앙의 교향곡을 지휘했고, 이어서 쾰른에서는 콘체르토 쾰른과 함께 쾰른 대성당에서 베토벤의 "미사 솔렘니스"를 지휘함.

이 모든 것을 어떻게 관리하냐는 질문에 "음악은 특별한 예술 형식입니다. 음악은 에너지로부터 살아가고 또 에너지를 줍니다. 그리고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항상 다시 돌아옵니다."라고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답함. 

 

켄트 나가노(우)와 그의 부인인 피아니스트 마리 코다마 (c) Stuttgarter Zeitung

이 일본계 미국인은 코로나 기간을 사용하고 연습하고 독서하는 등 배터리를 재충전했다고 함. 

"제 피아노 위에는 제가 언젠가는 읽고 싶은 책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이제 거기에는 더 이상 책이 없죠."라고 웃음. 

그는 처음으로 그의 아내인 피아니스트 마리 코다마를 자주 볼 수 있었다고. 왜냐하면 둘 다 더 이상 콘서트를 할 수 없었고, 파리의 아파트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보통은 그렇게 자주 보지 않아요. 아주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을 함께 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그들의 딸 카린 케이 나가노도 우연히 파리에 머물르고 있었다고. 

 

나가노는 2015년부터 함부르크 국립오페라의 음악감독이자 함부르크 국립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재직 중. 

함부르크 국립오페라 극장장인 죠르쥬 델농과 함께 그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비평가들은 새로운 출발과 나가노가 함부르크 오페라를 음악적으로 발전시킨 것을 칭송했음. 

그는 첫날부터 이 한자동맹 도시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함. 

"사회, 문화, 음악적인 전통" 

그리고 당연히 엘브필하모니 또한 그에게는 세계 최고의 콘서트 홀 중 하나라고. 

"저는 이 홀을 사랑합니다. 이 홀은 매우 정직하죠. 당신은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도 잘 연주해야 한다는 큰 도전이기도 하죠."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


나가노는 캘리포니아 해안의 작은 어촌마을인 모로 베이에서 TV, 영화관, 오디오 없이 성장했음. 헌신적인 음악 선생님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일깨워주었다고. 어린 나이에 피아노, 클라리넷, 비올라를 배웠고, 8살에 그의 마을에서 교회 합창단을 지휘했다고 함. 

"저에게 음악은 삶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집에서도 연주를 했죠. 그 시골 한가운데서 무엇을 더 할 수 있었을까요?" 라며 회상함. 

그 이후로 나가노는 음악이 결속시키는 힘을 믿게 되었고, 음악이 모든 사랑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음. 


미국에서 음악 교육을 받은 후 자신만의 고요한 음색과 독창적인 프로그램 선택으로 유명해진 이 지휘자는 유럽에서 그의 경력을 이어감.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을 지휘하거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정부주의적인 록 뮤지션 프랭크 자파의 오케스트라 작품을 지휘하기도 함. 

피에르 불레즈, 레너드 번스타인 밑에서 공부한 이후, 2000년에 독일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의 상임지휘자가 됨. 

이후에는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역임함. 


코로나 기간을 이용하여, 그는 자신의 고향 캘리포니아에서 딸에게 서핑을 가르쳤다고 함. 

"그것은 제가 어렸을 때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었어요. 저는 항상 서핑을 합니다. 매년 하죠. 건강을 유지하기에 이상적인 스포츠예요."


11월 22일 그의 70세 생일을 맞아 그는 그들의 음악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소원한다고 밝힘. 

오늘날 클래식 음악은 그가 젊은 시절을 보냈을 때 같지 않음. 

"많은 젊은이들은 모차르트, 바흐, 혹은 베토벤이 누구인지조차 모릅니다."


https://www.rnd.de/kultur/weltenbuerger-der-klassischen-musik-70-geburtstag-von-dirigent-kent-nagano-5IBG2M5YUC7HFKSZBKP6X5ZHW4.html



음악가에게 최소 임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


(흥미로운 기사가 있어서 요약이 아닌 전문을 번역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적은 금액을 지불하고, 일부 연주 주최자들은 점점 더 적은 비용을 지불하려 합니다. 공짜 문화가 널려있습니다.


아름다움은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음악은 초월적이고, 심지어는 천상의 것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모차르트, 멘델스존, 드뷔시나 마일스 데이비스, 베토벤, 존 콜트레인이 만든 초월적인 음악 앞에서 어떻게 돈에 대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속물스럽기는!


그러나 속물이 늘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음악은 천상의 것일 수 있지만,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고, 연습하고, 또 연주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 라이브 상황에서는 무조건 기계 대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은 상당수 대학교육을 마치고 집세를 내야 하며,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리허설이나 공연이 없는 기간이라도 어떻게든 끼니를 때워야 합니다.  

그들의 근로 시간대는 끔찍합니다. 남들이 쉴 때, 그들은 일해야 합니다. 늦은 밤, 주말, 그리고 공휴일. 


그렇지만 음악은 열정이라고.....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그 김에 청중 앞에 서는 거 아니냐는 주장을 합니다. 

그것은 노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순수한 자아실현, 성취입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성취와 열정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안토니오 비발디는 시대의 음악적 취향이 바뀌면서 가난하게 죽었습니다. 1980-90년대 팝스타였던 콜로넬 에이브람스는 2016년에 노숙자 신세로 사망했습니다. 

스타 재즈 기타리스트인 바니 케셀은 종양 치료를 받기 위해 친구와 지인들에게 돈을 구걸해야 했습니다. 

천재로 태어나고, 음악가로서의 삶을 즐기는 것, 그것만으로는 누구도 생계를 꾸릴 수 없고 의료비를 낼 수도 없습니다. 


공짜 문화

삶은 비쌉니다. 우리 시대에는 매우 비쌉니다. 동시에 음악을 공짜로 듣는 것은 점점 대중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운로드하고, 스트리밍 하며,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습니다. 그리고 돈을 조금만 지출하며, 이왕이면 완전히 무료인 것을 선호합니다. 

어떤 음악가는 최근 백만 번 재생된 노래에 대해 17달러의 스트리밍 서비스 수입을 보고했습니다. 

레스토랑에서는 연주할 밴드를 찾으면서, 급료로 각 1인분 식사와 제한된 양의 음료를 제공합니다. 

일부 교회는 주일 예배에 연주되는 음악을 위해 리허설을 포함해서 150유로를 지불합니다. 

꽤 그렇듯해 보이지만 프로 음악가로 살기에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습니다. 

팬데믹 시대에는 공연 주최자들의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일부 주최자들은 연주자들의 패이를 점점 더 낮춥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공연을 갈망하는 일부 음악가들은 그 가격에라도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 임금이 해결책일까요?

베르디 조합(역주-ver.di: Die vereinte Dienstleistungsgewerkschaft 독일 노동조합)이 현재 요구하고 있는 구속력 있는 최소 임금이 해결책일까요?

당연하죠!

그리고 소규모 공연 주최자들을 위한 더 강력한 자금 지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인정에 관한 것입니다. 이 사회가 예술가를 필요로 하고, 그들을 향유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노동이죠. 

많은 음악가들은 일생동안 최고의 스포츠 선수처럼 자신의 악기에 헌신해야 합니다. 

항상 음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남들이 낮잠을 자고 있을 때도 말이죠. 

그들의 능력은 훌륭합니다. 그들의 청중에게는 삶의 묘약과도 같죠. 

어떤 사람들은 금전을 원하는 것을 탐욕스럽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반사회적입니다. 

아름다움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만큼, 그것을 만드는 사람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것도 적절한 값으로요. 


https://www.br-klassik.de/aktuell/meinung/kommentar-ueber-die-notwendigkeit-eines-mindesthonorars-fuer-musiker-1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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