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두고 니체가 떠오르다니...

갑자기 이 남자가 궁금해졌다.

by Jina

"신은 죽었다."라고 부르짖는 남자를 굳이 성탄전 시즌에 찾아보는 건 이 무슨 고약한 취향인가.


독일의 겨울답지 않게 볕이 좋았던 어느 날, 집 앞 새로 개장한 놀이터에 가득 찬 꼬마 아이들의 경쾌한 떠들썩함 덕분이었나 보다.

"이 기분과 에너지라면 오늘은 니체를 좀 알아봐도 괜찮겠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나는 평소에도 니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 이름이 주는 압박감이 너무나 커서 건드릴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이 관심은 니체의 저서였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영감을 받아 동명의 오케스트라 곡으로 쓰기도 했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 덕분이기도 하다. 그의 오페라 <살로메>, <엘렉트라> 등을 살펴보면, 두 남자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 한 명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이며, 또 한 명이 바로 니체다.


그리고 바그너와도 니체는 밀접하다. 니체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 사랑은 격렬했고, 그만큼 이별도 요란했다.


모차르트 이후 (그 사이에 베버가 약간의 존재감을 보이긴 했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독일 오페라 계의 기둥이 된 바그너와 슈트라우스를 이야기하다 보면 그 사이에 이 니체라는 남자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 이 니체 씨를 오늘은 좀 켄넨 레어넨(kennen lernen: 알게 되다 to get to know) 해볼까. 책장을 뒤져서 니체를 부분적이라도 다룬 책 4권을 찾아냈다. 이 중에서 내 나름의 인상적인 구절을 뽑아봤다. (이것들은 내가 전부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절을 추리고 또 여기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내가 니체를 더 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11년 같이 산 남편도 "부인은 남편 마음을 너무 몰라"라고 투덜대는 마당에 고작 하루 만에 누군가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도 이렇게 씨를 뿌려놓으면, 물 안 주고 방치해놓고 있어도 언젠가, 어떤 계기로 발아하여 생각지도 못한 꽃이 피기도 한다는 걸 알기에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니체에 대한 평가

니체는 서양철학의 나쁜 남자다. 너무 똑똑하고 선견지명이 가득해서 무시할 수 없는 날라리다. 사람들은 니체를 미친 사람이나 반反유대주의자, 또는 잘못된 것에 현혹된 사람으로 보고 싶어 하지만 니체는 이 중 그 무엇도 아니었다. 니체는 가장 매혹적이고 가장 설득력 있는 철학자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64p.


니체가 읽기 버거운 것은 소크라테스처럼 니체도 확고한 신념에 의문을 품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철학이 명백한 근거와 냉정한 논리로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루소가 그러한 믿음에 흠집을 냈다면, 니체는 그 믿음을 분쇄해버린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6p.


니체는 체계적 철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한 예언자였다. 그는 형이상학과 인식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고, 독일 사람들의 이른바 생(生)의 철학(Lebensphilosophie)에 그의 위대한 문학적 재질을 온통 기울였다. 그는 칸트를 도덕 광신자라고 비웃었다. 그는 다윈과 헉슬리의 저작들을 알고 있었으나, 졸렬한 것으로 여겼다.

<서양 철학사> 538p.


니체는 교수의 안정적인 생활을 방랑하는 철학자의 삶과 맞바꾸었다.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해명할 필요가 없고 그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인 삶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용기 있는 행동, 혹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아마 니체만큼 과거의 삶을 멀리 내던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4p.


여기 실스마리아에서 “신은 죽었다”라며 철학에서 가장 뻔뻔한 주장을 했다. 또한 실스마리아에서 춤추는 예언자이자 자신의 또 다른 자아, 자기 지혜를 인류와 나누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가상의 페르시아 예언자 차라투스트라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가장 위대한 사상("사상 중의 사상")이 상상하지 못한 흉포함으로 니체를 덮친 곳 또한 실스마리아였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68p.

실스 마리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인생

다음 잠언은 오랫동안 나의 좌우명이었다. “상처로 인해, 생기(生氣)는 증가되고 힘은 성장한다."

<신과 인간> 93p.


니체는 일상의 규칙을 간절히 필요로 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차가운 물로 목욕을 하고 자리에 앉아 날달걀과 차, 아니스씨 비스킷으로 수도사처럼 아침 식사를 했다. 낮에는 글을 쓰고 산책을 했다. 저녁 7시에서 9시 사이에는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엄격한 규칙이지만 영웅적인 면은 별로 없다. 궁금해진다. 철학계의 무법자, 정신의 비행사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65-367p.


결혼이야말로 최선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자 재앙이다. 이제까지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과연 결혼한 자가 있었던가?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치, 쇼펜하우어 등등 위대한 철학자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들의 결혼 자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결혼한 철학자라는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이것이 바로 나의 신조다. 단, 예외에 속하는 심술궂은 소크라테스라는 이 신조를 실증해 보이기 위해 일부러 결혼을 한 것 같다.

<신과 인간> 128p.


그리하여 어떤 그의 강경한 경구들에서 니체는 남녀의 순결을 비난하고 있다. 그가 순결을 비난한 것은 탕아를 찬미해서가 아니라, 욕망이 없는 사람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강렬한 욕망은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하는 보증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하나의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다. 성문제(性問題)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보다 훌륭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저 체념을 일삼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은 옹졸한 짓이다.

<서양 철학사> 542p.


니체는 건강을 미덕으로 찬양한 몇 안 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본인은 건강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니체는 열세 살부터 편두통을 앓았고, 편두통과 더불어 여러 다른 질병이 평생 니체를 괴롭혔다. 시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빠졌다. 가끔은 발작처럼 몇 시간 동안이나 구토를 하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아예 침대에서 나오지 못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66p.


니체는 죽음의 그림자를 예민하게 느꼈다. 니체의 아버지는 서른여섯 살에 사망했다. 의사는 “뇌 연화증” 때문이라고 했다(아마도 암이었을 것이다). 니체는 비슷한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이 곧 임박했다는 말이 니체의 편지 곳곳에 쓰여 있다. 니체의 책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사람의 긴박한 문체로 쓰였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67p.


어떤 철학자는 충격을 준다. 많은 철학자는 논증을 한다. 일부 철학자는 영감을 준다. 오직 니체만이 춤을 춘다. 니체에게 패기와 아모르파티, 즉 운명애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춤추는 법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미친 것처럼 열렬히, 일말의 자의식도 느끼지 않고 춤을 춘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7p.


니체가 보기에 춤추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비슷한 목표를 향한다. 바로 삶의 찬미다. 니체는 그 무엇도 입증하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기를, 자기 힘으로, 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기를 원할 뿐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8p.



자신의 저서

내 글들 중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나는 인류에게 지금까지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을 준 것이다. 수천 년을 넘어서 울려 퍼질 만큼의 큰 소리를 지닌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책일 뿐 아니라 참다운 높은 희망에 대한 공기의 책이며, 또한 가장 심오하면서도 내부 깊이 존재하는 보고(寶庫)에서 태어났다. 즉, 황금과 자비로 가득 채워져 있는, 퍼내도 퍼내도 바닥이 드러나지 않는 샘과 같다.

<신과 인간> 56p.


니체의 나쁜 시력은 아무도 모르는 축복이었다. 덕분에 니체는 책의 횡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니체는 책을 읽지 못할 때 걸었다. 한 번에 몇 시간씩, 엄청난 거리를 걸었다. “바깥공기를 마시며 자유롭게 이동할 때 탄생하지 않은 생각은 그 어떤 것도 믿어선 안 된다." 니체가 말했다. 우리는 손으로 글을 쓴다. 발로는 더 좋은 글을 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1-372p.


니체는 마조히스트가 아니었다. 니체는 고통을 좋은 삶의 구성 요소로, 배움의 수단으로 여겼다. “오로지 고통만이 지식으로 이어진다.” 니체는 말했다. 고통은 청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답해야 하는 부름이다. 우리는 자신을 마비시킴으로써 그 부름에 답하는가, 아니면 쇼펜하우어의 제안처럼 예술과 금욕으로 숨어드는가?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에 더욱 깊이, 심지어 맹목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고통에 답하는가? 니체는 이 마지막 선택지를 와인과 연극과 삶을 사랑한 그리스 신의 이름을 따서 디오니소스적 방식이라 칭했다. 니체는 말했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앞으로 더욱더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84-385p.




바그너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 바그너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나는 청년시절을 견디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바그너가 창조해낼 능력이 있는, 바그너 이외엔 아무도 그곳에 나아갈 날개를 갖고 있지 않은 50개의 낯설고 황홀한 세계를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가장 의심스럽고 위험한 것까지 이로운 것으로 불리고 강해질 만큼 충분히 강해져서, 나는 바그너를 내 생애의 가장 위대한 은인이라고 부른다.

<신과 인간> 22p.


니체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니체는 기차를 싫어했다. 난방이 안 되는 객차를 싫어했다. 기차가 흔들리는 것을 싫어했다. 니체는 구토를 많이 했고 하루를 여행하면 3일은 쉬어야 했다.


니체는 기차를 갈아탈 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도 했다. 한 번은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를 만나러 가다가 기차역에 가방을 두고 왔다. 가방 안에는 니체가 소중히 여긴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여러 에세이와 바그너가 친필 사인한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복사본이 들어 있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4p.


확실히 그때가 결별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그 자리에서 입증되었다. 내 눈에 가장 찬란한 승리자로 보였던 리하르트 바그너도 실은 절망적이며 부패한 낭만주의자로, 제대로 반항 한 번 못하고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말았던 것이다.


도대체 그 당시에는 이 무서운 광경을 애도할 만한 눈을 가진, 또는 양심을 가진 독일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그 광경을 보고 가슴 아파한 사람이 나 혼자뿐이었단 말인가?

<신과 인간> 23p.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이 마침내 완성되어 내 손에 들어왔다. 이는 중환자인 나에게 깊은 감탄을 안겨주었다. 책이 내 손에 들어온 날, 나는 여러 곳 가운데 바이로이트로 두 권을 보냈다. 그런데 우연 속에 깃들인 의미심장한 기적으로 인해 그날 나에게는 한 권의 아름다운 <파르지팔>이 도착했다. 거기에는 '나의 고귀한 벗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교직자 회원 리하르트 바그너 근전'이라는 헌사가 적혀 있었다.


두 책의 묘한 엇갈림! 나는 그때 불길한 소리를 들은 듯했다. 마치 두 개의 단검이 교차하는 듯한 소리가 나지 않았는가? 여하튼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느꼈다. 그 증거로, 우리는 둘 다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이 무렵, 〈바이로이트 신문>이 처음으로 발간되었다. 나는 드디어 무엇을 할 때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믿을 수 없는 일, 바그너가 신앙심이 깊어졌다니…!

<신과 인간> 24-25p


나는 개인을 그저 강력한 확대경의 하나로 이용할 뿐이다. 거의 잡을 수 없는 위험 상태를 눈에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그러한 확대경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다비드 쉬트라우스를, 더 정확히 말해 독일 책 <교양>이 거둔 성공을 공격한 바 있다. 나는 이놈의 <교양>을 현행범으로 잡은 것이다.


즉, 나는 바그너 같은 닳아빠진 자들을 풍부한 인물로, 뒤떨어진 자들을 위대한 인물로 혼동하는 우리 문화'의 허위성과 본능의 잡종성을 공격했던 것이다.

<신과 인간> 36p.


바그너의 경우를 올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마치 상처가 크게 난 것처럼 음악의 운명을 괴로워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음악의 운명에 괴로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괴로워하는 뜻일까? 그것은 음악이 세계를 밝게 만든다는 긍정적인 성격을 상실함으로써 퇴폐적인 동시에 더 이상 디오니소스의 괴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처럼, 자신의 수난사(受難史)처럼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늙은 포병으로서 바그너에 대해 나의 중포(重砲)의 포문을 여는 일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데 누가 의심의 말을 던지겠는가?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의 모든 결정적인 부분을 나에게 그냥 남겨두었다. 즉, 나는 바그너를 사랑했던 것이다.

<신과 인간> 58p.




초인/극복인(위버멘쉬 Übermensch) / 권력(힘)에의 의지 (Wille zur Macht)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인간이란 원숭이와 초인 사이에 놓여 있는 다리에 불과하다는 놀라운 말을 하였다. 이제 '인간 본성'의 미래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철학> 405p.


걷고 또 걷는다. 다리가 아프다. 하지만 걷는다. 그 고통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고통 때문에 걷는다. 니체라면 내가 나의 권력에의 의지를 단련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위버멘시(말 그대로 '초인')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기꺼워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1p.


완전히 지쳐서 다 그만두고 싶지만 안 된다. 인내해야 한다.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가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니체는 사랑하는 이에게 거부당하고 독자에게 무시당해도 멈추지 않았다. 나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79p.


니체도 쇼펜하우어처럼 인간과 자연의 다른 존재들도 본질적으로 의지적이라고 주지하였다. 하지만 니체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그리고 모든 자연의 생명제들에게는) '힘(권력)에의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은 우리 생명의 활력과 힘을 팽창하려는 욕구에 의해 추동된다고 하였다. 니체는 생존은 이차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삶의 의미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비관론에 반대하여, 니체는 생명의 활력 그 자체가 삶의 의미이며 철학의 결론은 삶에 대한 거부와 '단념' 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그러한 긍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의 모든 철학> 407-408p.



영원회귀

니체 버전의 영원회귀에는 그런 해피엔딩이 없다. 나는 한 치의 벗어남 없이 똑같은 길을 걷고 또 걸을 것이다. 똑같은 벤치에 앉아 똑같은 나비를 만날 것이고, 니체의 바위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찾지는 못할 것이다. 매번. 영원히.


이 끝없는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니체는 묻는다. 아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기꺼이 끌어안을 수 있는가? 사랑할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389p.



종교

고전 문헌학자로 교육을 받은 니체는 서양의 그리스적 유산이 유대 그리스도적인 배경과 상충함을 알았다. 그는 결국 그리스도교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발전되어온 이 둘의 '종합'을 거부하였다.

<세상의 모든 철학> 405p.


예를 들어, 니체는 인간의 고통에 접근하는 방식에서 두 전통이 보이는 차이에 충격을 받았다. 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인간의 불행을 죄에서 찾았던 반면(니체의 견해로는, '희생자를 비난하는' 접근방식),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깊은 고통을 인간 삶의 근본적인 비극성의 징후로 보았다.

<세상의 모든 철학> 405p.


니체에 따르면, 유대 그리스도교(와 칸트의) 윤리학이 금지하는 대부분의 것은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들을 유리하게 하고 더 재능 있고 더 강한 정신을 소유한 이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평준화' 장치들이다. 니체는 선과 악을 넘어서, 우리 자신과 타인들의 행위에 대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는 우리의 성향을 넘어서, 더욱 창의적인 심리학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전망으로 나아가는 견해를 옹호하였다.

<세상의 모든 철학> 408p.


그는 때로 '진리'라는 관념 자체를 거부하기까지 하면서, 우리가 진실로 여기는 관념들이 단지 유용하다고 입증된 우리의 믿음일 뿐이며 또한 거짓된 것일 수도 있다고 하였다.

<세상의 모든 철학> 409p.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그럼에도 나의 내부에는 종교의 개조 같은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종교란 천민의 일이다. 나는 종교적인 인간과 접촉한 뒤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나는 신자'를 원치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어느 날엔가 나를 '성자'라고 부를까 봐 끔찍이 겁을 먹고 있다.

<신과 인간> 61p


일찍이 악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신도 지옥을 가지고 있다. 즉 이것이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이다.” 그리고 나는 악마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었다.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신은 죽었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동정에 대해 경계하라. 어느 날엔가 동정에서 무거운 구름이 인간에게 닥쳐올 것이다. 나는 머지않아 천기(天氣)가 변할 것 같은 징조를 느낀다.

<신과 인간> 114p.


이미 자랑스럽게 살 수 없을 때는 자랑스러운 죽음, 자발적으로 선택된 죽음, 밝고 즐겁게 어린이나 입회인 속에서 이루어지는 죽음, 그리하여 죽어가는 사람이 아직 현실적으로 생존해 있을 때 진정한 이별이 이루어지고 인생을 정리할 수 있다면 이는 그리스도가 임종할 때 느껴지던 가련한 전율의 희극과는 반대의 것이 된다. 그리스도교가 죽어가는 사람의 약점을 악용해 양심을 능욕해 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죽는 방법 자체를 악용해 인간과 과거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려왔다는 사실을 그리스도교를 위해서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신과 인간> 118p.


예수는 마음속에 있는 '천국'으로 직접 향하였지, 결코 유대 교회의 계율 속에서 수단을 찾지는 않았다. 그는 지기 보존의 개념을 가진 유대교의 실제성조차 무시했다. 예수는 순수하고 내면적이었으며, 조잡한 공식으로 신과의 접촉을 날조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참회나 속죄의 가르침을 모두 반대했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스스로가 신격화되었다' 고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것 만으로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죄에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요 판단이었던 만큼 죄, 참회, 사면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들은 혼합된 유대교이거나 이교(異敎)적인 것이다.

<신과 인간> 144p.


루터는 법왕권(法王權)의 퇴락을 간파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되는 현상을 정확히 파악했어야 한다. 낡은 퇴폐와 원죄, 그리고 그리스도교 등은 이미 법왕의 자리를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것은 그렇지 못한 삶, 그것이 아닌 삶의 개가(凱歌), 그것이 아닌 모든 높고 아름다우며 대담한 사물에의 위대한 긍정이다.


이로써 루터는 교회를 부활시키고 말았다. 그가 교회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르네상스는 하나의 무의미한 사건이자 거대한 허사가 되어버렸다. 아아, 이 독일인들은 우리에게 어떤 희생을 치르도록 했는가. 모든 일이 허사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일이 늘 행하는 독일인들의 사업이었다.

<신과 인간>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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