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오페라로는 <파우스트>(1859)와 <로미오와 줄리엣>(1867)이 있죠. 이 두 유명한 작품에 대해서는 조만간 신나게 이야기할 날이 올 거고요. 오늘은 젊은 날의 구노와 그의 쓰라린 첫 데뷔작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1860년, 즉 <파우스트>로 대성공을 거두고 난 다음 해의 샤를 구노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하는 신인들이 있죠. 19세 때 "슬픔이여 안녕"(1953)을 써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프랑수와즈 사강(1935-2004)이 대표적인 예일 겁니다. 대성공 이후 약물과 각종 사고에 얽힌 구설수와 (그래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했죠.) 또 곤궁했던 말년까지... 젊어서 대성공이 득인가, 독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소년등과(少年登科)의 부정적인 사례로 언급될만하죠.
반면 많은 이들의 첫 시작은 미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은 큰 위로가 되죠.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욥기 8장 7절)
저 같은 경우도 여러모로 찌질했던 20대 때, 껍질을 벗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이 구절을 되뇌곤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걸깨닫게 된 건, 한참 후의 일이었죠.
샤를 구노도 시작이 화려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1839년에 '로마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으로 이미 증명이 됐습니다. '로마 대상'은 프랑스의 국비유학생 선발 과정입니다. 그림, 조각, 건축, 작곡 분야의 학생을 선발하여 다년간의 로마와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구노가 오페라 작곡가로 데뷔하기까지는 그로부터 12년이 걸렸죠.
로마에서 구노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19세기 최고의 성악가 중 한 명이었던 폴린 비아르도(1821-1910)였죠. 폴린 비아르도는 아버지와 언니도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성악가였고, 본인도 6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리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워서 원래는 피아니스트로 장래를 생각했을 정도로 재능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작곡가들이 그녀에게 작품을 헌정했고, 그 자신도 놀라운 작품들을 작곡했죠.
1843년의 폴린 비아르도
두 천재가 로마에서 만났을 때, 폴린은 이미 엄청난 스타였고, 구노는 장래가 촉망받는 음학도였죠. 이 두 사람은 1849년에 파리에서 재회합니다. 그 사이의 폴린의 위상은 더 높아졌고, 구노는 여전히 신인 작곡가였을 뿐이었죠. 그렇지만 폴린은 구노 음악의 가치를 알아차립니다. 폴린의 힘으로 구노의 데뷔작 오페라가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올려지게 되죠. 물론 주인공은 폴린이고요.
두 사람은 함께 이 오페라에 몰두합니다. 구노는 폴린의 별장에서 작곡에 전념했고요. 두 사람의 관계는 세간에 분분한 구설을 낳았지요. 그렇게 탄생한 구노의 첫 오페라 <사포(Sapho)>는 1851년 4월 16일에 올려집니다. 폴린은 원래 8회 출연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단 2회를 출연하고는 이 오페라를 버렸습니다. 그 해 4월에 구노가 파리 음악원 피아노 교수의 딸인 안나 침머만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던 것일까요? 혹은 초연 때 관객과 평단의 차가운 반응을 보고 영리한 폴린이 발을 뺀 것일까요.
그렇다면 사포라는 여인은 누구이길래, 구노가 첫 오페라의 소재로 삼았을까요? 사포(Sappho BC 630 년경 ~ 570 년경) 고대 그리스 시인입니다. 고대에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 중 한 명으로 알려져서 별명이 '시의 여신', '열 번째 뮤즈' 였다고 하네요. 또한 그녀는 비극적인 최후로도 유명합니다. 사랑했던 뱃사공 파온(Phaon)에게 배신당한 후 레프카다 해변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고 하네요. 그리고 TMI로 하나 더,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지식인들이 이상적으로 여겼던 사랑의 형태인데요. 아무튼 사포도 여성에 대한 사랑과 욕망을 작품에 많이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여성 동성애자를 뜻하는 lesbian이라는 단어는 사포의 고향 섬인 레스보스(Lesbos)에서 비롯됐어요. 또한 영어 단어 sapphic(여성 동성애의)라는 형용사에도 이름을 남겼습니다.
구노의 오페라 <사포>의 초연 당시, 마지막 장면 무대 디자인 스케치
사포를 소재로 한 그림도 다양합니다. 아래는 역사적, 신화적인 소재를 낭만적으로 즐겨 그렸던 샤를 글레르(Marc-Charles-Gabriel Gleyre1806-1874)의 "잠자리에 드는 사포"라는 작품입니다. 1867년에 완성됐고요.
절벽에서 몸을 날린 후, 물에 빠진 사포를 몽환적으로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사포의 죽음", 샤를 아마블르 르누아르(Charles-Amable Lenoir 1860-1926)가 1896년에 그린 작품이죠. 이 화가는 로마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고 합니다. 대단하네요.
위 그림은 1877년에 샤를 멩갱이 그린 "사포"라는 작품입니다. 샤를 맹갱(Charles-August Mengin 1853-1933)의 명성을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죠. 이 작품 외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가였지만 최근에 재발견되고 재평가되고 있다고 하네요.
성악가 입장에서는 맹갱의 그림에서 영감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구노의 오페라 <사포>는 오늘날 더 이상 공연되지 않는데요. 그렇지만 사포의 최후의 아리아만큼은 여전히 많은 메조소프라노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이 곡을 불러봤는데요. 절벽에서 몸을 날리기 전 사포의 심정은 위의 그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