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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pr 12. 2022

구글이 선택한 그녀

소프라노 몽세라 까바예

오늘의 구글이 로고를 통해 보여준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첫눈에 알아봤다. 저 당당한 풍채, 트레이드 마크 같은 헤어스타일...

스페인 출신의 위대한 소프라노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é 1933-2018)였다. 

아니, 그런데 왜 구글이 하필 그녀를? 오늘이 그녀 생일인가? 하고 찾아봤더니...

역시나 1933년 4월 12일에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다. 


오페라 팬이 아니라면 몽세라 카바에라는 이름이 낯설 수도 있다. 그렇다면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은 대중적으로 훨씬 더 알려졌을 텐데... 아래의 영상을 한 번 참고해보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위해 프레디 머큐리와 몽세라 카바예가 함께한 곡이다. (발표는 1987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적인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쓰리 테너 같은 성악가들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우면서 콘서트를 했던 90년대의 분위기가 실감이 난다.


(여담 1. 안타깝게도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사망하는 바람에 올림픽 주제가가 되지는 못했고, 해당 자리는 사라 브라이트만과 호세 카레라스가 부른 "영원한 친구(Amigos para siempre)"가 차지했다.)


https://youtu.be/hkskujG0UYc

(여담 2. 팝 음악과 오페라의 전설적인 두 가수가 만났고 또, 전 세계적으로 홍보된 크로스오버 곡임에도 불구하여도 이 곡이 덜 알려진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두 가수가 독보적인 기량과 음색을 가지고 있어서 그 누구도 이들처럼 노래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절대 따라 부를 수 없는 '감상용' 곡이다.)




예전에 나도 카바예의 음반을 모으면서 그녀에게 폭 빠졌다. 내가 그녀에게 매혹됐던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끝없이 구비구비 흐르는 엄청나게 긴 호흡

- 저음부터 고음까지 일정하고 또 기름진 음색

- ff(포르티시모)부터 ppp(피아니시시모)까지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테크닉

- 잘 알려진 오페라부터 숨겨진 진주 같은 오페라는 물론, 종교음악과 가곡까지 섭렵하는 광활한 레퍼토리 

- 드라마틱한 역할도 잘하면서 콜로라투라까지 날렵하게 아주 잘함

- 가난한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세계 정상에 오른 점


그냥 '성공적인 오페라 가수' 정도가 아니라 노래를 진짜, 진짜 잘했던 가수였다. 2018년에 돌아가셨는데, 그녀의 전성기 목소리를 음반으로밖에 접할 수 없다는 게 참 아쉽다.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는 전쟁으로 인해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어린 시절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오페라 가수들을 보며 그들처럼 되어야겠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1956년, 23세 스위스 바젤 극장에서 <라 보엠>의 미미 역을 대타로 부르게 되면서 프로로 데뷔하게 된다. 


1957-1959년 바젤 극장 소속으로 노래함, 

1959-1962년 독일 브레멘 극장 소속으로 노래함.


독일어권인 바젤과 브레멘에서 노래한 것이 그녀가 훗날 부르는 독일어 레퍼토리 확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됨. 

(그녀의 선배 격 프리마돈나인 칼라스 vs 테발디는 물론이고 동시대 프라마 돈나였던 조안 서덜랜드, 미렐라 프레니.... 등은 독일어 레퍼토리에 비교적 관심이 소홀했던 편이다.)


1962년, 29세 고향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 데뷔. 

1965년, 32세 그녀 인생의 전환점이 일어남. 뉴욕 카네기홀에서 콘체르탄테로 공연되는 도니제티의 오페라 <루크레지아 보르쟈>에 임신한 마릴린 혼의 대타로 투입되어 대박이 남. 같은 해 말에 뉴욕 메트에서도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마르가리트 역으로 데뷔하게 됨. 이후 국제적인 경력은 탄탄대로로 열림. 

1972년, 39세 비올레타 역으로 런던 코벤트 가든 데뷔. 


중간중간 병환으로 수술을 여러 차례 받는 등 다사다난했지만 그래도 항상 무대로 다시 돌아왔음. 경력 중반기까지는 벨칸토 오페라를 많이 불렀지만 70년대 말부터는 푸치니의 <토스카> 같은 드라마틱한 오페라로 방향 선회함. 

그녀는 이탈리아 오페라뿐만 아니라 R. 슈트라우스, 바그너 오페라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여줌. (다 가진 언니, 체중까지도....)


1985년, 52세 뉴욕 메트에서 <토스카>로 마지막 공연, 이때 상대역은 파바로티.

2015년, 82세 말년에 세금 탈루 문제로 시끌벅적했음. 

2018년, 88세로 사망했지만 그해 6월까지도 공연을 계속했음. (사망은 10월 6일)


1994년 인디펜던트 지 기사에서 카바예에 대한 언급


"카바예는 진정한 디바 중 최후의 한 명입니다. 칼라스는 죽었고, 키리 테 카나와는 새인스버리 광고 찍느라 바쁘고, 미렐라 프레니는 좁은 영역에서 벗어나지를 못해서 오페라 애호가들만의 가수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카바예는 항상 엄청난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녀와 함께합니다."



https://youtu.be/OIIDnoxQr74

그녀가 부르는 <투란도트> 중 류의 아리아 "Signore ascolta", 마지막 고음...... 언니 미쳤어요.....ㅠ.ㅠ

https://youtu.be/-_yeqsVAUIo

본의 아니게 카바예의 성공을 조력(?)한 마릴린 혼과 함께 한 로시니 오페라 <세미라미데> 중 2 중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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