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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Nov 12. 2021

베이스 연광철 인터뷰 전문

월간 객석 10월호를 위해 베이스 연광철 선생님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정된 지면 상황 상 인터뷰가 다 실리지 못해 아쉬웠는데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아래와 같이 전문을 공개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30년 넘게 무대에 서 오시다가 처음으로 휴식기를 가지셨죠. 2021년 상반기까지 약 60회 정도의 연주 일정이 취소됐다고 들었습니다. 코로나 시기 동안 “예술가곡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라고 밝히신 바 있는데요. 오랜만에 베를린 슈타츠오퍼 전막 무대에 선 소감이 궁금합니다.


개막공연이 8월 28일이었는데, 19일에 리허설이 시작해서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공연 스케줄이 너무 늦게 확정 됐거든요. 지난 6월에 빈에서 <로엔그린>을 하고 있을 때 이 공연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실 2014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피델리오>를 공연했지만 디알로그(대사) 같은 것도 프로덕션마다 다르게 하고 또 독일 관객 앞에서 독일 오페라를 선보이는 것은 또 다른 긴장감과 부담이 있거든요. 만약 이 오페라를 다시 하게 되면 공부할 게 많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급하게 계약하게 되어 준비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케스트라 리허설도 한 번 밖에 못했거든요. 그래서 본 공연은 관객 앞에서 하는 드레스 리허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14년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공연된 <피델리오> 중 로꼬 역을 노래하는 베이스 연광철 


무대 뒤에서 그런 상황이 있었는지 상상도 못 했네요. 말씀하신 긴장감과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요. 연륜의 마법인가요? 선생님만의 마인드 컨트롤하는 방법이 있으신가요?


모든 리허설을 공연을 한다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리고 실제 공연은 그동안 해왔던 것과 똑같이 무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대에서 평소보다 더 잘하겠다는 욕심이 있으면 소리를 더 내는 등 무리하게 됩니다. 연륜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통해 잘하려고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과장되게 연주하다 보면 단점을 보여주게 되죠. 리허설을 하면서 스스로의 기량과 허용치를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리허설에서 많은 시도를 하시겠네요? 보통 리허설에서는 동선을 맞추고 앙상블을 체크하잖아요. 


동선이나 앙상블 같은 것은 이미 완료가 되어있어야 할 기본적인 것이고 그 위에서 음악적인 혹은 성악적인 시도를 더 많이 합니다. 


2006년에 예술의 전당 오페라 '돈 조반니' 중 레포렐로로 선생님의 연주를 처음 접했습니다. 당시에 차원이 다른 이탈리아어 레치타티보를 구사하셔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돈 조반니 역의 지노 킬리코와 함께, 두 분의 등장신에는 유독 생동감이 넘쳤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피델리오'에서도 독일어 대사 처리하시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객석 끝까지 전달이 잘 되면서도 극적으로도 자연스러웠는데요. 실제로 한국의 젊은 가수들이 오페라 무대를 도전할 때 외국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선생님께서도 외국어로 그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현재의 그 '능력'을 갖게 되셨나요?


디알로그는 일상적인 이야기이죠. 자라스트로의 디알로그는 권위적인 면도 보여줘야 하지만 이번에 맡은 로코는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수는 오페라 홀 전체를 하나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공간의 울림을 통해 자음 하나, 모음 하나가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첫 디알로그는 어땠나요?


지금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은사님이 보셨는데 ‘자라스트로 처음 하는 사람 같지는 않는구나’라고 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은 애초에 언어적인 감각을 타고나신 분인가 봅니다(웃음)


글쎄요. 언어도 사실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음악 자체가 언어에서 시작됐고요. 노래를 하려면 먼저 텍스트를 읽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언어가 중요한 것이죠. 성악가들이 너무 소리 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악가는 언어, 문화를 전달하는 사람, 문화에 대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19년 베를린 국립오페라에서 <마술피리> 중 자라스트로를 노래하는 연광철


보통 로코 역은 '사람은 좋은데 돈 좋아하는 속물적인' 캐릭터로 통합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깊고 노블한 음색을 가지고 계시잖아요. 레포렐로도 인상적이었지만 저에게는 필립포 2세나 구르네만츠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즉, 고귀한 역할이죠.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로코는 어떤 인물이며, 또 선생님만의 로코를 구현하시기 위해 특별히 생각하신 것이 있을까요?


이번에 해리 쿠퍼의 연출은 평범한 인물이 각각의 인물을 맡아 연기해보다는 콘셉트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평상복을 입었던 것이고, 또 베토벤 동상이 놓인 피아노 주변에 모여 악보를 들고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지요.


아, 그렇다면 선생님은 연광철이라는 사람이 부르는 로코를 표현하신 것이군요! 그래서 보통 로코하면 떠오르는 속물적인 모습이 없었던 거군요.


네, 관객들이 이해하기 쉬운 연출은 아니었죠. 



올해 한국 나이 57세로 알고 있습니다. 2006년에 레포렐로로 처음 뵀을 때나, 2010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필립포 2세를 들었을 때, 그리고 이번에 로코까지... 선생님 음색은 세월에 바래지지 않고 여전히 그 건강함과 탄력이 있었습니다. 많은 가수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잃고는 합니다만, 선생님의 비결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입니다. 근육이 노화되듯이 나이가 들수록 변하죠. 주변 동료들을 보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악기는 변하고 있는데 테크닉은 여전히 같은 것을 사용하죠. 우리가 차를 사면 5년이 지난 후 생기는 문제와 10년 후의 문제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을 고쳐가듯이,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운 테크닉을 적용하면서 노래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결국 끊임없는 연습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기에 나이에 맞는 근육을 가질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합니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페라 홀 전체를 악기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역을 하더라도 극장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가령 빈에서 노래하게 되면 오케스트라 피트가 굉장히 높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피치는 높고, 극장의 규모는 크죠. 다른 곳과 다르게 노래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바이로이트처럼 오케스트라 피트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곳에서는 어떻게 하시나요?


바이로이트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낮지만 극장 자체의 울림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선명하게 들리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울림이 큰 곳에서 빈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노래하면 곤란하죠.


후배 성악가들에게 정말 귀한 정보군요. 2010년 프랑크푸르트의 <돈 카를로>에서는 필립포 2세의 아리아 "Ella giammai m'amò"를 부르실 때 선생님의 레가토 라인 덕에 관객들 모두 숨을 죽였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가수들이 격정적인 신파로 이 아리아를 해석하는데 당시 선생님의 필리포 2세는 고뇌와 비탄과 함께, 선을 넘지 않는다는, 그래서 더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을 빨아들이는 그 집중력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일종의 작전이죠. 저보다 소리도 크고 키도 큰 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들과 다른 점을 보여주는 것은 인텐시브한 울림이죠. 전쟁에서 이기려면 남들이 가지지 않는 무기를 써야 하지 않습니까? 레가토와 피아노가 제가 가진 무기입니다. 바이로이트에서 18년 동안 노래할 때 연배 많은 동료들이 너 같은 구르네만츠, 훈딩은 본 적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저의 훈딩을 파인(fein:정교한, 우아한)하다고 하더군요.


2009년 바이로이트에서 오페라 <파르지팔> 중 구르네만츠 역을 노래하는 베이스 연광철


파인한 훈딩이요?(웃음) 상상이 잘 안되네요.


실제로 훈딩 악보를 보면 소리를 강하게 내야 할 곳이 5번이나 나올까요? 필립포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리아를 부르는 필립포는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극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원작 <돈 카를로스> 속, 필립포의 부자간의 갈등과 정치적인 압박감을 이해한다면 그가 처한 입체적인 고뇌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곡을 강하게 부를 이유가 없죠. 


요즘 오페라는 연출의 비중이 높습니다. 리허설 과정에서 가수 입장에서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하는 연출자를 만난 경험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연출자의 의도를 받아들이기 힘들 때면 설명을 요구합니다. 말이 안 통하면 싸워야죠. 연출자는 가수가 자신의 구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설득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연출자 칼리스토 비에토와 <돈 조반니>를 할 때였습니다. 레포렐로 역을 노래하는데 성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표현을 요구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옥타비오를 부르던 동료는 화가 나서 집에 가는 등 무리한 요구가 많았습니다. 당시에 저는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내가 왜 그 행위를 해야 하는지 설명을 하라고 했죠. 다행히 대화를 통해 잘 해결됐습니다.


신인일 경우는 연출가에게 맞서기 힘들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신인일 때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신인일 때는 그런 일이 별로 없었네요.


운이 좋으셨네요(웃음)


신인일 때도 연출자의 의도를 납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서로의 의견차를 좁힐 수 있도록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연출가는 가수가 최대치를 발휘해 공연에 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연주 때문에 전 세계를 이동하는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충주가 고향이시지만, 선생님이 고향처럼 편하게 느끼는 도시가 더 있을까요? 예를 들면 베를린이라던지... 혹은 바이로이트라던지요.


많은 도시를 일 때문에 가게 되니까 개인적인 취향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음악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바이로이트입니다. 그곳에서는 공연과 바그너에만 집중하면 됩니다. 시골이라서 달리 할 일도 없습니다. 음악적인 성취도도 높은 곳이죠. 베를린도, 빈도 편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이 가장 편안한 곳은 바이로이트입니다. 노력한 만큼 반응이 오니까요. 


페터 슈라이어와 같은 캄머쟁어(Kammersänger 궁정 가수)를 보며 많은 걸 느꼈다고 밝히셨죠. “캄머쟁어 칭호를 받았기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라고 한 인터뷰에서 밝히신 바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선배 캄머쟁어를 보며 느꼈던 점, 후배 성악가들에게 보여주고 싶으신 부분이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한데요.


대기실에 명패가 붙어있는데, 지금은 이름 앞에 K.S.(캄머쟁어의 약자)가 적혀있죠. 사실 크게 의미는 없습니다. 하나의 명예이긴 하지만요. 무대에 서다 보면 점점 저보다 젊은 이들과 노래하는 일이 많아집니다. 그럼 이 타이틀이 굉장한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 하죠. 그저 한 사람의 뻔한 가수가 아닌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는 가수가 되고자 합니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하는 가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선생님처럼 많은 것을 이루신 분들도 여전히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목표가 있을까요? 선생님의 시작점을 돌이켜볼 때 현재 높은 위치에 올라와 있으시잖아요. 현재의 선생님에게 성공이라는 것, 혹은 부와 명예라는 것은 삶에 있어서 얼마 큼의 가치가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마 작은 극장에서 노래한다고 해도 음악적인 퀄리티가 달라지지도, 음악적인 태도가 바뀌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꿈을 너무 크게 가지면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고 그만큼 이룰 확률은 낮아지죠. 저는 처음부터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유학길에 올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래 자체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독일에 왔죠. 나이가 들고, 육신은 쇠퇴하는 가운데 이상적인 음악 사이에서 조화를 찾으며 조금씩 성장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도 따라왔지요. 음악은 커피처럼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고 또 다른 이는 싫어합니다. 그래서 음악에서 최고를 꼽는다던가,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만이 노래할 수 있는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하고 성공을 위한 수단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해야겠지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이런 생각을 하신 적은 없나요? 가령 베이스는 오페라에서 작은 역할을 노래하기도 합니다. 나는 최소한 작은 아리아라도 있는 역할을 부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나요?


제가 슈타츠오퍼 오디션에 섰던 날, 비록 오디션이었지만, 무대에서 피아노와 함께 노래하게 된 그 자체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슈타츠오퍼에서 노래하게 됐을 때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노래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음에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오페라 전체에서 단 두 마디를 불렀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저는 그래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것을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또 남과 다른, 저만의 음악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저도 ‘내가 쟤보다 잘하는데 왜 더 큰 역을 주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하다고 해서 제 상황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이고자 했고, 감사하고자 했습니다. 




오페라 <피델리오> 리뷰 보기

https://brunch.co.kr/@jinaohmezzo/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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