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

이지은의 오브제 문화사 1 / 모요사

by Jina

가독성: 빠져든다 (최소한 나에게는)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 작년 여름 한국 일정을 마칠 때쯤, 어떤 책을 독일로 업어갈까 하고 서점을 몇 차례 방문했다. 이 책을 선택하면 다른 여러 책을 포기해야 할 것 같은, 꽤 나가는 무게와 만만치 않은 가격(33,000원) 때문에 몇 차례 책을 들었다 놨다 망설였다. 비닐로 꽁꽁 싸여 있어서 내용을 짐작조차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표지의 고혹적인 여인과 내 취향을 관통하는 제목 '귀족의 시대 탐미의 발견'은 이 책을 홀린 듯이 집어 들게 했다.


이 책을 하루에 1,2 챕터씩 읽었는데, 매 번 어떤 아름다움이 날 기다릴까 하는 설레는 경험이었다. 이제까지 내 소장 도서 중 가장 아끼는 미술 관련 책은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였지만, 이제 이 책이 나의 '최애' 자리 1등을 차지했다. 저자의 내공과 노고가 매 페이지마다 느껴져서 저자와 출판사에 감사할 지경이다.


추천 대상:

1. 드라마 '베르사유' 같은 유럽 시대물을 좋아하는 분

2. 오페라나 클래식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싶은 분

3. 미술 사조 중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를 재미있고 현란하게 접하고 싶으신 분

4. 도판 많은 책 좋아하거나, 책 컬렉션 하시는 분

5. '장식 미술사'에 관심 있으신 분

6. '앤틱' 좋아하시는 분

7. 루이 14세부터 나폴레옹에 이르는 프랑스 근대사가 궁금하신 분


인상적인 구절:

... 미학이나 미술사 책에서는 로코코를 이러니 저러니 어렵게 설명하지만 결국 로코코란 내일을 근심하지 않는 낙천성, 가볍고 우아한 곡선, 축제에서 만난 미지의 여인, 왠지 애잔한 로맨스, 날아오를 듯이 가벼운 형태, 연애편지를 기다리는 달뜬 마음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열의 같은 것이다. (166쪽)


.... 오페라를 감상할 때는 조용히 듣는 것을 관람 예절로 생각하는 요즘과는 달리 18 세기인들은 아이돌의 콘서트를 찾은 십 대 팬이 할 법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했다. 아리아를 따라 부르고, 수건이나 꽃을 던지고, 마음에 드는 성악가가 나오면 괴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236쪽)


..... 어릴 적 어머니가 화장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본 적이 많다. 화장대에는 아름다운 빨간색 립스틱과 예쁜 상자에 담긴 분통이 있었다. 몰래 립스틱을 발라보고 분통을 열어 향기로운 냄새를 맡아보던 유년의 기억은 풀풀 날리던 분가루처럼 아련하다. 이제는 화장하는 여자의 모습에서 간혹 슬픔이 배어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됐지만, 그래도 거울 앞에서 바쁜 손놀림으로 얼굴을 단장하는 여자의 모습은 늘 매혹적이다. (246쪽)


... '투알레트(toilette)'는 현대 프랑스어로 화장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18세기에는 몸을 치장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입는 것뿐만 아니라 목욕하고 이를 닦고 머리를 손질하는 것까지도 투알레트라고 했다. 투알레트는 서로를 보고, 보여주며, 소개하고 만나는 18세기의 사교 문화에서 가장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었다. (247쪽)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에는 하녀인 아델레가 주인마님의 옷을 훔쳐 입고 귀족의 무도회에 가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거기서 주인인 아이젠슈타인을 만나게 되는데, "너 우리 집 하녀랑 너무 비슷한데?"라고 하는 아이젠슈타인에게 "나의 이 투알레트를 보고도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죠?"라고 당당히 받아치는 장면이 생각난다.


.... 두 번째 투알레트가 공적인 화장인 이유는 화장뿐만 아니라 사교를 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지체 높은 여인이라면 이 시간에 온갖 민원과 청탁을 하러 온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실제로 루이 15세의 정부인 마담 퐁파두르나 마담 뒤바리,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투알레트에는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청탁하러 온 사람이든 애인이든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번째 투알레트가 몇 시간이 걸릴 정도로 길었다는 점이다. (256쪽)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1막에는 마르샬린(원수 부인)의 정신없는 두 번째 투알레트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 기부금을 받으려는 수녀들, 마르샬린을 단장하는 미용사, 심지어는 마르샬린의 기분을 돋우기 위해 이태리 테너가 등장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아리아 'Di rigori'를 부르고 간다. 오페라 볼 때는 그려려니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슈트라우스가 오페라 안에서 정말 리얼하게 잘 묘사했구나 싶다.


.... 특정한 시대에 태어나 당시 사회의 흐름을 온몸으로 감지하며 그 시대정신을 작품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분명 아무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한 시대가 저물자 부셰 역시 지나간 유행처럼 금세 잊히고 말았던 것이다.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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