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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17. 2020

고음이 안 나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으리니...

이제 두 가족까지 만나는 게 허용돼서 주말 내내 손님을 맞았다. 그간 사회적 거리두기로 억눌린 수다 본능을 유감없이 해소할 수 있었다. 어제는 최근에 결혼한 후배 부부가 손님이었는데, 근황과 신앙생활 등으로 시작한 대화는 소위 '깔때기' 법칙이라고 말하는, 마성의 '그곳'으로 흐르고 말았다. 남자들의 축구나 군대 이야기에 버금가는, 성악가들이 언제든지 밤을 새울 수 있는 주제, 바로 '소리', 즉 '발성'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후배의 소리에 대한 열정은 한결같았고, 화두도 그대로였다.

"누나, 고음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아요."


진리는 죽을 때까지 탐구해도 알까 말까인 것... 아마 궁극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게 오직 한 가지 있다면, "나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는 알지 못했다" 정도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후배의 화두를 공유하며 후배의 노래도 들어봤다. 그의 고민은 고음이 시원스럽게 안 난다는 것. 그는 베르디 같은 드라마틱한 레퍼토리에 꿈이 있었던 테너였다. 그러려면 시원한 고음이 필수적인데, 이게 항상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화성과 금성에서 왔을 정도(!)로 서로 다른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발성의 차이를 함부로 언급하기는 매우 신중을 요한다. 하지만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는데, 그건 그 후배의 턱과 입 이 있다. 그 친구는 날렵한 V라인 턱을 가지고 있었고, 입이 작은 편이었다. 대신 코가 높고 코끝이 뾰족하게 잘 모아진 편이다. 즉, 타고난 생김새가 소리가 진하고 포커스가 잘 모이지만, 반면 드라마틱하고 풍성한 고음을 내기에는 턱과 입이 받쳐주지 못한다는 게 내 소견이었다.


아래 성악가들은 가볍고 날렵한 소리를 가진 대표적인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들이다. 이들의 턱과 코를 잘 살펴보며 감상해보자. 노래할 때 입모양도 중요한 힌트다.

https://youtu.be/RBQoup3zmgE

소프라노 리젯테 오로페자

https://youtu.be/YuBeBjqKSGQ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

https://youtu.be/QOB_xXAhFgw

소프라노 나탈리 드세이





자, 그럼 풍성한 소리를 내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들을 살펴보자.

https://youtu.be/GwHnfay7hrc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슨

https://youtu.be/EseMHr6VEM0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https://youtu.be/3jSCTbNnOcY

소프라노 임세경



물론, 발성이라는 것이 얼굴 생김새 하나로 정의하기는 그 이외에도 심오한 변수가 많기는 하다. 또한 잘 발달된 하관을 가지고 있는데도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굴지의 위치에 오른 다음과 같은 소프라노들도 있다. 


https://youtu.be/xkdHl_0JNwo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https://youtu.be/qD9PLtaj0lE

소프라노 준 앤더슨


이를 보면 잘 발달된 하관은 렛제로(leggero-가벼운) 소프라노, 드라마틱 소프라노 상관없이 '고음'에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후배의 경우, 타고난 하관과 입 크기 때문에 고음을 '타고났다'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좋은 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색은 '타고났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노래와 연이 끊기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타고 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시장이 원하는 지점과 나의 장단점을 저울질해서 치밀한 전략을 세운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나눴더니, 후배가 오징어를 많이 먹어서 하관을 넓혀야겠다고 진농 반농 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가지지 않은 것을 노력으로 성취해 낸 아름다운 스토리가 가득하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법이다. 비록 오징어는 해답을 주지 못하겠지만, 그간의 화두에 새로운 시야를 넓힌 후배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지 몹시 기대가 되는 바이다. 부디 오래오래 노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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