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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27. 2020

마흔 즈음에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까요?

성악가들은 마흔 쯤에 고비가 찾아온다. 사실 시장은 작고 경쟁은 치열한 이 판에서 마흔까지 버틴 것도 갸륵한 일이다. 그런데 마흔 쯤이면 레퍼토리에서 변화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어난다. 나이가 들고 목소리가 변하는 육체적 변화에, 인생의 절반쯤을 살면서 쌓은 연륜이 이제껏 부르지 않은 다른 레퍼토리로 확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동안 불렀던 10대 청소년의 로미오와 줄리엣, 혹은 신데렐라 등은 이제 후배들에게 넘겨줘야 한다. 마치 배우들이 연기 폭을 넓혀가듯이 말이다. 대중은 40대 배우에게 20대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TV 화면과 영화 스크린에 배우의 노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듯이 성악가의 목소리도 세월을 숨길 수는 없다.


나도 그런 시기여서 많은 고민을 안고 새로운 레퍼토리 확장을 꾀하고 있었다. 부담이 없는 작은 연주회 등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아무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는 내 연주들만 취소시킨 게 아니라 내가 많은 희망을 품고 있던 내 '판'도 뒤흔들어놓고 있다. 과연 코로나 이후에도 내가 계속 노래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내가 노래했던 플랫폼으로 복원이 가능할까? 노래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의구심과 자포자기의 나날 중에 한국에서 연락을 받았다. 모교에서 특강을 맡아줄 수 있냐는 요청이었다. 특강이요? 특강은커녕 강의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는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되게 만들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독일에 사는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곳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문이 열린 기분이랄까. 


강의를 준비하는 과정은 순조로웠다. 미리 대본을 써서 검토를 받고, 동영상 편집을 위해 급하게 족집게 속성 과외를 받았다. 처음 하는 촬영은 아쉬운 점이 많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의외로 복병은 인코딩이었다. 동영상 편집이 가장 큰 노동일 줄 알았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80분짜리 동영상을 인코딩 시켰더니 최후의 1분 40초를 남기고 컴퓨터가 멈춰버렸다. 그런 일을 처음 겪는지라, 그 상태로 한참을 기다렸다는 슬픈 뒷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뭔가 불길한 예감에 검색을 해보니, 다들 30분 넘는 동영상 인코딩은 피하라고 경고를 주더라는...


부랴부랴 영상을 두 개로 나눠서 인코딩을 했더니, 그다음 산은 동영상을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클라우드에 올리는 과정이었다. 독일의 치명적인 인터넷 속도를 간과한 것이다. 내가 1시간 넘게 걸려서 올린 3기가짜리 동영상을 한국에서는 7-8분 만에 받는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다. 


첫 특강..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첫 강의.

첫 동영상 촬영 및 편집.

.. 등등 온통 처음이었지만 새로운 세계에 정신 못 차렸던 지난 3주간이었다.  


그동안 팟캐스트를 하면서 수없이 들은 이야기가 "왜 유튜브는 안 해요?"였는데, 

그때마다 내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동영상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엄두를 못 내겠어요"

그런데, 이번에 배운 편집 기술이 아까워서라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마흔 즈음에 새로운 기술을 접했고, 흥미가 생겼다. 뭐든 제대로 하려면 최소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인데.. 쉰 살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래는 지난 3주간의 결과물이다. 

80분짜리 영상을 6개로 나눠서 유튜브에 올렸다.

앞서 엄살을 잔뜩 떨었듯이 모든 게 처음이라 미숙한 점 투성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오페라를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귀엽게 봐주시길...

(처음 1편의 어색하고 얼어있는 모습이 2편부터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점도 관전 포인트 중에 하나임)


이탈리아 오페라, 이 편만 봐도 충분히 아는 척하실 수 있어요

https://youtu.be/jAr6LlrqQaQ


역사상 가장 신나는 음악의 작곡가 로씨니, 흥의 세계로 빠져봅시다.

https://youtu.be/uuV3PtyxRCE



인간의 목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벨칸토 오페라

https://youtu.be/o9BLZsAK1C4



19세기 이탈리아 풍운의 역사 산증인, 위대한 작곡가 베르디를 만나보세요.

https://youtu.be/E9Tn-ve9xiY


오페라 <라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의 작곡가 푸치니를 소개합니다. 

https://youtu.be/tWAU5k9Hge4


오페라에 '리얼'한 상황이 들어가면 당신의 가슴을 이렇게 후벼 팝니다.

https://youtu.be/0BgXbUQcsU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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