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노래를 배우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넬라 판타지아 Nella fantasia"를 잘 부르고 싶다는, 노래를 전혀 배워본 적 없는 아이 엄마의 요청이었다. 이 곡은 영화음악계의 대부 엔니오 모리꼬네가 1986년 영화 <미션>을 위해 작곡한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원곡이고, 팝페라의 원조이자 왕년의 최고의 뮤지컬 배우였던 사라 브라이트만이 모리꼬네를 조르고 졸라서 원곡에 가사를 붙여 "넬라 판타지아"라는 이름으로 2006년에 발매했다.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Nella fantasia". 그녀의 콘셉트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녀의 독보적인 목소리만큼은 '신이 내린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
작년에 어느 연주에서 프로그램 중에 이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있었다. 문제는 내 차례는 이 곡 다음이었다는 것. 엔니오 모리꼬네 옹은 작곡할 때 무슨 약을 탄 건지, 그 양반 곡은 늘 나를 울게 만든다. 요새 친구들은 "약 빨았다"고도 표현하던데, 아무튼 이 분이 쓴 멜로디는 왜 그렇게 심금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오보이스트의 담담한 연주를 통해 울리는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듣던 나는 그만 눈물이 터졌고, 급기야는 오열에 이르게 되었다. 아아.... 내 것도 노래해야 하는데..... 이런 난감할 데가....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은 그 곡이 마치고야 그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다음에 내가 불러야 할 곡인 바흐 칸타타의 빠른 템포와 근엄한 가사로 인해 눈물은 쏙 들어가고 마음을 다잡고 연주를 잘 마칠 수 있었지만, 모리꼬네 옹 작품의 최루성은 앞으로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모리꼬네 옹이 처음으로 나를 울린 건 고3 때였나. 그때도 아마 MBC "주말의 명화"였던 것 같다. 문제의 작품은 1988년 작,<시네마 천국>. 엔딩 크래딧을 다 본 영화도 드물지만 보고 나서 30분 정도는 하염없이 오열했던 것 같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리던 어느 고3에게 실컷 울고 난 후의 카타르시스가 뭔지 알게 해 준 작품이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듣는데 자동으로 눈물이 눈 앞을 가린다... 제길... 20년이 지나도 모리꼬네 옹의 마수를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다.)
영화가 성공을 거두지 못해, 그 음악도 묻혀버렸지만, 나에게는 큰 인상을 줘서 결국 OST 음반까지 구입하게 만든 작품도 있다. 2000년 작 <Canone Inverso>(캐논 인버스)는 2차 대전이라는 시대의 비극속의 음악과 사랑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20년이 지난 지금, 아쉽게도 영화 속에 기억나는 장면은 없지만, 모리꼬네의 음악이 역시나 20대의 내 심장을 격렬하게 뛰게 만들고,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는 기억은 또렷하다.
아무튼, "넬라 판타지아"를 레슨 해주기로 스케줄을 잡은 다음 날, SNS에는 온통 엔니오 모리꼬네 옹 추모 분위기였다. 지난 7월 6일 모리꼬네 옹은 91년의 삶 동안 음악가로서 받은 소임을 다 펼치시고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분을 잊고 살다가, 정말 오랜만에 "넬라 판타지아"를 통해 그분이 생각났는데, 돌아가시다니.... 그분의 음악에 울고 또 울었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관에 가서 혼자 영화를 관람하던 그 소녀가 독일까지 들고 온 CD는 이제 플레이어가 없어서 들을 수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