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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Aug 31. 2020

8월의 마지막 날에

살아있다는 증거

7월 말부터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몰두한 일이 있었다. 올해 내 계획 중 하나가 4계절을 주제로 토크콘서트를 4번 하는 것이었는데, 첫 번째는 잘 치러졌지만, 두 번째부터는 코로나 때문에 불투명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보겠노라고 주최 측에 감히 제안을 드렸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시도였기에, 당연히 적잖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날 것을 손질하고 요리하며 그 비린내와 풋내에 질려버린 나는 좌절의 늪에 깊이 빠져버렸다. 한 명의 아티스트 뒤에는 수많은 스텝의 협업이 있어야 그럴싸한 결과물이 나오는 법인데,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있으려니, 미칠 노릇이었다. 내가 자청한 프로젝트였기에 어디다 불평도 못하고, 해봤자 알아줄 이도 없기에, 스스로 자책만 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 다시는 이런 일을 벌이지 않으리라...'

이렇게 깊은 내상을 입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코로나였고, 여전히 이 사태의 끝은 보이지가 않는다는 점은 또 다른 우울감을 가중시킬 뿐이었다.


"머리를 산뜻하게 잘라야겠다" 


이럴 땐 뭐라도 해야 한다. 단골 한인 미용실에 예약을 넣었다. 우리 엄마 연배이신 원장님과의 인연도 벌써 8년째다. 우리 엄마도 나 어릴 적에 동네 미용실을 혼자 하셨기에, 원장님을 보면 어릴 적에 보던 엄마 모습이 오버랩되곤 한다.


미용실이란 공간은 조곤조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교민사회의 온갖 소문, 그리고 신세한탄 하기도 참 좋은 장소이다. 솜씨도 좋으시지만 언행이 진중하신 원장님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속마음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문득 원장님께 언제 처음 독일에 오셨냐고 물었다가 지난 세월 이야기가 구비구비 흘러나오게 되었다. 이혼을 하시고는 세 아이를 두고 파마약 100개와 몇 개의 기구들, 그리고 속옷들만 싸서 처음 독일에 발을 디디셨다고 한다. 그게 21년 전, 원장님 나이 44세였을 때라고.


내가 지금 악보 몇 개만 들고 그 나라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타국.. 가령 노르웨이나 덴마크 같은 곳에 가서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상상도 못 할 스토리다. 원장님이 독일에 오셔서 겪었던 우여곡절과 산전수전은 띄엄띄엄 들어도 마치 영화 같았다. 자식들에게는 차마 다 말하지 못하셨을 그 찐~한 인생 이야기. 다행히 실력과 성실함으로 자리를 잘 잡으셔서 그 사이에 자식들도 독일에 데려오시고, 행복하게 지내고 계신다.


지금도 예약 전화가 밀려오고, 자식들은 지근거리에 살며 자주 보시며 또 손주들도 다복하게 두셨다. 집도 장만하셨고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있는 독일에 계시니, 노후도 걱정 없으실 법 한데, 원장님도 여전히 언제까지 이걸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이 많으시다고 한다. "사는 게 뭐, 눈뜨면 고민 시작이죠 뭐.."라고 눙은 쳤지만, 내까짓게 산다는 것에 대해 거론하다니 웃기는 일이다. 그것도 이모뻘 되는, 이민 1세대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으신 분 앞에서 어찌 감히 삶을 거론할 수 있을까. 


원장님이 독일에 처음 오셔서 10년간 생존을 위해 온갖 설움을 다 겪을 때는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생의 전투에 임해야 했을 것이다. 누구나 그런 시절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사는 게 전쟁 같아서 고민할 시간조차 없이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도 버거운...


그래도 나는 믿음이 있다. 고생 끝에 반드시 낙이 있다는 믿음. 그래서 치열하게 살면서도 성실과 정직을 지켜내신 원장님의 삶에 감사했다. 내 믿음을 재확인시켜주셨기에. 그리고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원장님의 삶에도 이전 같은 생존과 직결된 고민은 아닐지라도 여전히 소소한 근심이 있다는 것. 정말 "눈 뜨는 내내 고민"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가장 큰 증거가 아닐는지.




어느 이웃께서 제 노래를 듣고 싶다고 하셔서, 지난 한 달간 저를 번민에 휩싸이게 했던 결과물을 소개합니다. '여름'에 관한 노래들을 모아 온라인 토크콘서트로 만들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는 하소연을 굳이 되풀이하지 않더라도 첫 시도니까 부족해도 어여삐 봐달라는 애교의 당부 말씀을 미리 드립니다. 

꼭 한국어 자막을 켜고 감상하세요!


https://youtu.be/Dt3T0OZ2z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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