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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나무와 떠나는 미미행_도쿄건축1

<기고글> 랩 타임스 LAB TIMES vol.9 2019년 12월호

서울에서 주말을 이용해서도 훌쩍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쿄를 방문한다. 이유도 다양하다. 도쿄는 일본 각지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먹방 투어를 비롯해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 투어, 오타쿠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만큼 덕질 투어, 긴자 식스, 도쿄 미드타운, 시부야 스크림과 같은 핫플레이스 투어, 그 유명한 도키 호테부터 로프트, 프랑프랑, 도큐핸즈, 무인양품, 유니클로 같은 곳의 쇼핑투어, 아사쿠사 센소지 같은 곳을 방문하는 일본 전통문화투어까지... 우리가 도쿄에 가야 하는 이유는 참 많다.

그러나 어떤 투어를 하든지 결국 건축을 피해서는 투어가 불가능하다. 어쩌면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 있는 장소로서 우리는 건축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이유라면 도쿄는 빠질 수 없는 여행지가 분명하다. 이미 도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축과 전통과 근대를 아우르는 역사적 건축물이 많아서 특히 건축을 전공하거나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전공이 아니더라도 도쿄 건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가면 도쿄 여행이 훨씬 풍요로워진다.^^




세계적인 건축물의 메카, 도쿄. 우선 도쿄에서 만날 수 있는 일본 건축은 시대별로 3가지가 있다.

첫째로 메이지 유신 이전의 일본 전통건축이다. 섬나라인 일본은 쓰나미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건축에 대한 태도가 남달랐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중국과 한국과도 또 다른 독자적인 건축양식을 확립하게 해 주었다.  

두 번째는 과도기적 근대건축이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탈아입구(脱亜入欧)와 화혼 양재(和魂洋才)의 입장에서 본격적으로 서양 건축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도쿄에는 19세기 유럽 절충주의 양식의 서양 건축, 즉 일본의 전통적 정신과 서양의 재료를 고민한 흔적의 건축을 만나 볼 수 있다.

마지막은 우리 시대의 건축의 거장들이 건축한 현대 건축들이다. 도쿄는 근대건축의 아버지인 르 꼬르뷔지에와 미국의 유기적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들이 있는 곳이자 오늘날의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의 건축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이후 일본의 현대건축은 1960년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 디자인 회의>를 계기로 메타볼리즘(Metabolism) 건축 운동 이후 큰 발전을 이루었다. 원래 메타볼리즘이란 말은 ‘신진대사’라는 뜻의 생물학적 용어지만 건축용어로는 건축이나 도시가 유기적인 생명체처럼 스스로 대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건축의 개념이나 그 운동을 말한다. 이러한 일본적인 상황과 고민들은 일본을 세계적인 건축가를 배출하는 나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Architecture Prize) 수상으로 증명된다. 프리츠커 상은 ‘건축 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의 뛰어난 결합을 보여주어 사람들과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한 건축가’에게 주는 상으로 1979년에서 2018년까지 39명의 수상자 중 일본 건축가는 동양인 최초로 이 상을 받은 단 게 겐조(1987)를 시작으로 마키 후미히코(1993), 안도 다다오(1995), SANAA (2010), 이토 도요 (2013), 반 시게루(2014)까지 5명이 이 상을 수상했다. 그럼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도쿄의 건축투어로 함께 떠나보자.


만약 도쿄에 왔는데 딱 하루 정도 건축을 보고자 한다면, 하라주쿠에서 오모테산도까지의 현대건축들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 거리는 세계적 건축가들의 서로 경연을 하는 것처럼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건축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서 일정을 다 마치고 저녁에 둘러보기에도 참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JR 야마노테선을 타고 하라주쿠역으로 간다. 밖으로 나오면 보이는 건축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서구식 목조건축인 ‘하라주쿠 역사(驛舍)’다. 바로 이곳에서 도쿄 건축여행은 시작된다.

하라주쿠역 뒤로는 18,000그루의 숲으로 우거진 도쿄에서 가장 큰 공원인 요요기 공원이 보인다. 공원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메이지 신궁이 있다.  요요기 공원 초입에 있는 육교에 올라가서 신궁 쪽으로 내려다보면 1964년 도쿄 올림픽이 열렸던 ‘국립 요요기 경기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건립 당시 “일본의 전통 사원이 현대적 감각의 건물로 충격적인 변신”이라는 평을 받았던 단 게 겐조는 이 건축을 통해 프리츠커 상을 받으며 20세기 가장 중요한 국제적 건축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요요기 경기장을 뒤로하고 큰길로 나오면 에도 시대에 신궁으로 가는 참배로 인 느티나무 가로수길 대로가 250m 정도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오모테산도(表参道)다. 오늘날에는 도쿄의 샹젤리제로 불리며 길 자체가 관광 스폿(spot)이며 양쪽으로 명품 숍과 유니크한 현대 건축들이 늘어서 있다.

먼저 오른쪽에 첫 번째로 보이는 건축은 네덜란드의 MVRDV 건축사무소가 설계한 ‘자일(GYRE)’이다. ‘자일’이라는 말은 소용돌이 또는 회전을 의미하는데 패션빌딩으로 각 층별로 바닥을 회전시키는 독특한 형상 때문에 붙여진 이 건축의 이름이다. 역시 실험적인 디자인을 멈추지 않는 네덜란드의 디자인답다.

그 옆에 하얀색으로 빛나는 맑고 투명해 보이는 건물은 일본 건축가 듀오인 SANAA가 디자인한 ‘디올 오모테산도’다. SANAA는 세지마 카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공동으로 작업하기 위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건축은 건물 외벽을 이루는 유리의 안쪽에 아크릴로 만들어진 하얀 커튼이 물결이 치는 듯 두르고 있어서 우아한 모습이 특징이다. 밤에 조명이 켜지면 더 아름답다.

멋진 건축이 즐비한 이 거리에서 하나의 건축을 꼽으라면 단연 ‘오모테산도 힐즈’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이 건축이 특별한 이유는 이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찾아 조율하는 데만 12년. 오랜 회의 끝에 마련한 해결책은 첫째, 복합시설 내에 상업 공간 및 일정 규모의 주거 공간을 명확하게 확보할 것. 둘째, 건물의 높이를 전면의 가로수를 고려하여 되도록 억제할 것. 셋째, 오모테산도와 연속할 수 있는 퍼블릭 스페이스를 중심에 둘 것. 넷째, 원래 있던 1927년에 세워진 일본 최초 도쥰카이 아오야마 아파트의 일부분은 그대로 보존하여 도쥰카이 자료실로 활용하고 개방할 것 등이었다. 그 결과 건물은 이전 모습과 새로운 복합공간이 공존하는 공간, 주변 가로수와 키를 맞춘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오모테산도 힐즈는 도시공간이란 그 자체로 공공재이고 따라서 도시 경관을 바꿀 때에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합의가 가장 중요하며, 일방적으로 기업이나 국가가 그것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길을 따라 더 내려가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다. 그중 하나는 오모테산도의 느티나무 가로수를 반영해서 외관에 느티나무 가지를 표현한 ㄱ자 모양의 건축이 프리츠커 상을 받은 이토 도요 디자인의 ‘토즈 오모테산도’이고, 그 앞에 둥근 모양의 단 노리히코의 ‘휴고 보스 빌딩’이다.

더 내려가면 여행가방이 쌓인 모양인 준 아오키의 ‘루이뷔통 매장’과 베이징 올림픽 때 새둥지 모양의 스타디움, 즉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건축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건축가 듀오인 스위스의 헤르초크 & 드 뫼롱 건축사무소(Herzog & de Meuron Architekten)가 설계한 2002년 오픈한 ‘프라다 아오야마점’이 보인다.

이곳은 비정형의 공간 연출이 독특한 6층 규모의 유리 크리스털 건축인데 날카로운 건물의 상부 형태에도 불구하고, 5개 벽면으로 구성된 외관은 다이아몬드 형태의 유리면 이평면, 볼록, 오목으로 다양하게 디자인되어 매우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건축은 직선이지만 실내는 모두 화이트의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외관의 크리스털 패널은 곡면은 걸어가다 보면 벽면이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건너편에는 같은 건축가가 설계한 프라다의 세컨드 브랜드‘미우미우 매장’도 보인다. “백화점보다는 집처럼, 개방적이기보다는 숨겨진, 사치스럽게 느껴지기보다는 겸손하게, 투명하기보다는 흐릿한”이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고 하는 이 건물은 입구가 큰 캐노피로 덮여있어서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무심하게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오히려 자극한다.

길의 끝에는 다시 안도 다다오의 건축이 보이는데 1989년에 건축된 ‘꼴레지오네’(COLLEZIONE)다. 요즘은 흔하게 보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이라서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면 중앙 천정이 뚫린 중정과 빙빙 돌려서 가게 되는 계단이 작은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공간을 크게 체험할 수 있다. 건축된 시기인 1984년을 고려해 본다면 실로 시대에 앞서는 공간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을 나와 아오야마 쪽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시작된다.

길 건너면 이번 2020년 도쿄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을 설계한 구마 겐고 디자인의 ‘네즈 미술관’이 보인다. 이곳은 자연스러운 목조건축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연출하는 구마 겐고의 대표작이다. 특히 젠 스타일의 진입로와 함께 감탄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일본식 정원이 주변의 번화한 도쿄 시내와 반전을 이룬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구마 겐고의 또 다른 건축이 있다. 디자인으로 독특한 외관이 돋보이는 ‘서니힐 대만 펑리수 과자점’이다. 하라주쿠에서 여기까지 걸어왔으면 조금 지칠 타이밍에 먹어보는 대만 과자와 더불어 근처에 오픈 키친 콘셉트의 인테리어와 로고까지 유명한 ‘블루보틀 커피’ 아오야마점이 있으니 꼭 들러서 여행의 피로를 날려버리기를 권한다.

-계속-




이 글은 2018 Winter Vol.09_랩 타임스 LAB TIMES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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