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미루고 미루던 일이 있다. 해야 할 필요성도 늦게 깨닫고 미루고 미루다 2년이 흘렀다. 더 미루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일. 바로 '세탁기 옮기기'다. 우리 집에는 세탁기가 2개다. 신혼살림으로 통돌이 1개와 아기 키운다며 산 드럼세탁기가 있었다. 그러다 추가로 건조기를 샀다. 다용도실에 통돌이와 건조기, 베란다에 드럼세탁기. 그렇게 사용한 지 몇 년이 흐른 뒤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물건만 사느라 위치가 이상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통돌이세탁기 앞에 간격 두고 건조기가 위치해 있다. 그리고 10걸음 정도 더 가야 하는 베란다에 드럼세탁기가 있으니 불편했다. 더군다나 베란다에 있는 세탁기는 한겨울에 쓰기 어려워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통돌이세탁기를 비우고 드럼세탁기랑 건조기를 합치고 싶었는데 통돌이 세탁기 장점이 있는지라 아쉬웠다.
그렇게 생각한 지 1년이 흐른 뒤 통돌이 세탁기가 마침 고장이 났다. 고쳐서 써야 하나 비워야 하나 고민이 시작되었다. 막상 비우려니 통돌이 세탁기의 장점이 아쉽기도 했다. 빨래의 때를 불려놓기도 하고 이불 같은 빨래를 빨기도 좋고. 그렇지만 고쳐서 쓰자니 공간 활용이 안되고. 게다가 정리가 안된 다용도실이 큰 일거리라 생각해서 더 미루게 되었다. 진짜 내가 생각해도 지겹다. 저렇게 복잡하게 쓰면서 정리도 안 하고 살고.
정리란 게 그렇다. 정리를 못한 지 어느 일정 수위를 넘어버리면 손을 쓸 수 없는 단계까지 간다. 항상 미루기만 하니 그럴 수밖에. 살림 못한다고 하기 싫다고 온갖 핑계를 대며 미루다 보니 이렇게나 복잡하게 살았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베란다에 있는 드럼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을 땐 빨래까지 못하게 되는 상황까지 간 거다. 그래서 통돌이 세탁기를 비워내고 세탁기랑 건조기를 합칠 생각을 했다.
물건을 다 치운다고 해결이 될까 싶었다. 세탁기랑 건조기를 합치려면 높이가 나와야 하는데 세탁기 아래 선반이 있는 구조라 높이가 될까 싶기도 했다. 되든 안되든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생각하고 LG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얘기하니 기사님이 나와서 상황 보고 안될 수도 있으니 그때는 출장비용만 내라고 하신다.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생각하며 일단 날짜와 시간을 잡았다.
생각보다 오시는 날이 당겨져서 아침부터 부랴부랴 다용도실을 정리하기 바쁘다. 다용도실 정리를 몇 년 만에 하는 걸까. 일단 세탁기와 건조기 위나 옆에 있는 물건을 빼기만 하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이렇게나 많은 물건을 쌓아만 두고 살았다. 일단 비울 것을 정리했다. 못쓰는 냄비 오래된 쇼핑백 재활용 쓰레기 등등. 그리고 너무 많은 쇼핑백도 남길 것만 정리하고 다 비운다. 몇 개가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대충 쑤셔 넣어놨더니 가관이 아니다. 한약 한 박스도 보인다. 너무 오래되어서 이제는 먹을 수도 없는 한약을 비워내고. 오래된 뻥튀기도 비워내고. 그렇게 묵은 쓰레기들을 비워냈다. 위에 선반도 제거해야 하니 선반 위 물건까지 정리를 하고 나니 그제야 통돌이 세탁기와 건조기 위치가 보인다.
장장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복잡해서 미루고 싶었던 일이었다. 이젠 세탁기 전문 기사님의 손에 맡길 수밖에. 기사님이 오셔서 상황 설명을 했다. 선반도 제거해야 하고 통돌이 세탁기도 빼야 하고 드럼세탁기 밑에 선반은 제거해야 하고. 드럼 세탁기 위에 건조기도 올려야 하고. 일이 복잡할 것 같은데 기사님은 역시 전문가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일을 착착 진행하신다. 두 분이 오셨는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묵묵히 하시더니 결국 내가 바라던 데로 해주셨다.
이제야 모양새를 갖췄다. 이렇게 합체해서 빨래하고 바로 올려서 건조기에 넣으면 되니 이렇게 신세계일 수가. 불편한 채로 살았던 그 몇 년 간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불편을 느끼고도 왜 빨리 실천에 옮기지 못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세탁기를 비우고 위치를 변경하는 작업을 하니 우리 인생사도 이렇게 비우고 정리하면서 새로 퍼즐을 맞추고 하면 어떨까 싶다. 살다 보면 일도 꼬이고 인간 관계도 틀어지고 엉켜버린 실타래 같이 풀기 어려워질 때가 있기 마련이다. 더 이상 손쓸 수없이 꼬여버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말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들을 보며 오리무중일 때. 전문가의 도움도 받고 다 꺼내서 물건을 정리하듯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정리해 보기도 하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쓰레기 같은 감정은 쥐고 있지 말고 버리기도 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는 작업도 하고. 그러면서 용도에 맞게 비워내고 잘못 맞춘 퍼즐도 다시 맞추고.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을 건드려서 제자리로 오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또 새로운 인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필요 없는 물건을 비우고 흐트러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두면 어지러운 마음도 정갈해진다. 내가 몸을 움직이며 정리를 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아 방전되었던 에너지도 점점 충전된다. 그리고 마침내 정리가 끝났을 때 말끔해진 공간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따른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이고, 세로토닌 샤워를 받으며 행복한 기분이 충만해진다.
[나를 돌보기 위해 정리를 시작합니다]
정코(정리마켓)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