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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몽 박작까 Dec 24. 2024

아빠가 보내주신 15,000원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친정에서 주시는 밥 먹고 쉬며 강의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여유롭게 보내야지 하는데 친정에 가자마자 아빠가 이리 좀 와보라고 하신다. 아빠는 쿠팡에서 물건 사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아빠가 드시는 영양제와 건강기능식품 등을 대신 구매해 드렸는데 미안하셨던 거 같다. (귀찮지 않은데. 클릭 몇 번이면 구매되는데) 엄마가 딸 바쁜데 그런 걸로 자꾸 연락한다고 구박하셨나 보다.


 아빠가 계좌이체는 하실 수 있으니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먼저 쿠팡 앱을 깔려고 했다. 그런데 하자마자 난관에 봉착한다. 친정집에 인터넷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속도가 굉장히 느린 거다. 아빠 핸드폰 요금제도 인터넷 사용량이 작은 걸 쓰시니 느릴 수밖에. 하는 수 없이 내 핸드폰의 개인용 핫스팟을 켜서 아빠 핸드폰이랑 연결했다. 그랬더니 이전보다 빠르게 할 수 있다. 쿠팡 가입도 하고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쿠팡앱에 들어가 사고 싶은 물건 검색을 하고 결제를 누르면 된다고. 결제할 때 아빠 은행 계좌랑 연결도 해놨다. 그 자리에서 사려던 물건도 몇 가지 사보았다. 나에게는 쉽지만 아빠는 처음이니 어렵다고 하셨다.






 내가 간 이후에 아빠는 연습해 보려고 쿠팡에 들어가셨다고 했다. 그런데 하실 수가 없었다고 한다. 로그아웃되어서. 아차. 내 실수다. 로그인하는 법을 알려드리지 않았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더 문제는 같이 주문했던 물건이 배송되지 않았다. 로켓배송이 아니라  며칠 더 기다리라고 말씀드렸다. 기다려도 안 오니 아빠가 전화하셨다.


아빠 : "(주문한 지 일주일 지나서) 그때 시켰던 거 택배가 아직까지 안 온다. 희한하지~ "


 사이트에 로그인해보니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배송이 취소되었다는 걸. 환불처리 된지도 모르고 일주일을 기다린 아빠에게 미안했다. 결국 아빠가 사려고 했던 물건을 내가 구매해서 보내드렸다. 아빠는 많이 고마워하셨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금액을 알려주면 계좌이체해서 보내겠다고 하셨다. 쿠팡에서 산 아빠의 영양제는 23만 원이었다. 그냥 내 돈으로 사드리고 싶었지만 아빠가 안된다며 얼마인지 계속 물으셨다. 그래서 15만 원이라고 알려드렸다.


조금 뒤 은행 알림이 울린다. 아빠가 돈을 보내주셨다.




 아빠는 15,000원을 보내주셨다. 0을 하나 못 누르고 보내셨나 보다. 씨-익 미소가 나왔다. 계좌 이체도 배운 지 얼마 안 되신 아빠의 작은 실수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체 잘 되었다고. 다음에도 뭐 살 거 있으면 얘기하시라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금액을 잘못 보내셔도 내가 빠듯해서 어쩔 수 없이 얘기해야 하는 건 아니라서. 아빠에게 자주 연락하고 살뜰히 챙기는 딸이 아니라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효녀는 못되지만 다정한 딸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렇게 해프닝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아빠가 전화 오셨다.


아빠: "아빠가 150,000원을 안 보내고 15,000원을 보냈더라고. 아빠가 다시 보낼게~"


아빠에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곧이어 은행 알림음이 울렸다.



아빠가 계좌이체 할 일이 많이 없으신데. 은행 앱을 열심히 여러 번 보시면서 아빠의 잔액을 확인해 보신 듯하다. 그러다 발견하신 듯. 딸에게 피해 가지 않으려 부담 주지 않으려 하시는 아빠의 마음이 느껴진다. 문득 아빠가 매일 같이 운동하는 게 다른 가족들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그런 거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73세의 나이에 매일 같이 산에 오르고 2만보씩 운동을 하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오랜만에 아빠가 전화 오셨다. 평소에 자주 연락하시지 않는데 무슨 일이지 싶었다. 이런저런 얘기하시다 말씀하신다.


아빠 : "운동하기 싫어도 운동 꼭 해야 돼. 아빠처럼 나이 들어서 하려면 진짜 힘들어. 지금부터 관리해야 돼. 그래야 나이 들어 고생 안 해. "


여러 얘기를 하셨는데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수화기 너머로 주저리주저리 이어지는 아빠의 잔소리를 듣는 게 싫지 않다. 아빠의 사랑이 진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아빠의 사랑을 생각하며 운동에 슬슬 취미를 붙여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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