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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찾기 힐링여행

by 다몽 박작까




취향을 가졌다는 것은 자기다움을 스스로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취향은 결국 자기 욕구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에게 자유라는 것은 조건을 바꾸고 환경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취향은 마음이 가는 방향이니, 생각이나 의지로 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취향 선택에는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때 굳이 그 선택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취향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유 불문하고 빈번하게 선택하는 것들의 총합으로 형성된 어떤 분위기'라고 말해도 되겠다. 우리는 쾌락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철학자들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심귀연. 책 [취향] 중



취향(趣向)의 한자 뜻을 살펴보면 '무엇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의미한다. 혼자 여행의 장점은 내 마음대로 계획을 짜고 즉흥적으로 계획을 수정하는 데 있다. 2박 3일 동안 알차게 여행하고 싶어 키워드를 정했지만 그 키워드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여행 내내 이 간단한 논리가 좋아 두근두근 심장이 콩콩거렸다. 없던 계획이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흔히 말하는 '줏대'라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반면 남편은 호불호가가 아주 뚜렷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맞춰줬다기보다 내 취향이나 기호가 없어서. 아니 잘 몰라서 남편의 취향을 따랐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남편 없이 아들 2명이랑 셋이서 돌아다니는 게 너무 편하고 좋았다. 이제 아이들이 커서 손이 덜 가기도 했지만 남편 없이 셋은 내 의지대로 계획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남편이랑 가면 가고 싶은 곳들을 많이 줄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남편이랑 같이 할 땐 몰랐던 내 줏대가 스멀스멀 키워지고 있었나 보다.







키워드였던 수국을 보고 나서 배가 너무 고팠다. 수국 보기 전 밥을 먹고 싶었지만 수국을 못 볼까 봐 참았던 배가 요동친다. 지금 이 순간은 맛집이고 뭐고 다 필요 없다. 무조건 가까운 식당을 찾는다. 카멜리아힐 매표소 바로 앞에 있는 동백부엌이라는 식당에 갈 생각이었다. 입장권을 끊을 때부터 굶주린 배를 꼭 여기서 채우리라 마음먹었다. 입간판을 흘깃 보며 생선구이를 먹어야지 하고 메뉴도 생각해 놨다.


눈으로 호강했으니 이제 입이 호강할 차례.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오후 5시 반 밖에 안되었는데 마감이란다. 입장마감이 5시 반이니 이제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나 보다. 하루 종일 먹은 게 제주 오기 전 김포공항 오설록에서 먹은 녹차라떼와 녹차롤케이크 한 조각뿐인데. 무진장 배가 고파 일단 식당 앞에 파는 귤이라도 샀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렌터카 안에 들어가 귤 1개를 까먹으며 어디 가서 밥을 먹을까 고민했다.




근처 맛집을 봐둔데도 없다. 식당을 검색해 볼 수도 없다. 핸드폰 배터리는 방전되기 일보 직전. 대비한다고 가져왔던 보조 배터리는 충전을 안 해온 상태. 이럴 땐 혼자가 난감하다. 혼자 여행에서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다. 내 배도 채워야 했지만 핸드폰 배부터 채우는 게 시급했다. 그래야 네비를 찍고 숙소에 찾아가지. 이럴 줄 알았으면 드라이브 노래 좀 듣지 말걸. 사진 좀 찍지 말걸.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든다. 동백부엌식당에서 밥 먹으며 충전하는 게 딱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잠시 고민하다 카멜리아힐 오는 길에 지나가면서 본 식당에 가기로 한다. 간판도 없고 손님도 없어 보였지만 식당 외부 유리창에 쓰인 '해물 뚝배기'라는 글자가 스치듯 떠올랐다. 정확한 위치도 잘 모르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서 가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하면서.


차가 한데도 없는 식당. 문이 닫았나 싶어 가까이 가보니 영업 중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그렇게 무작정 들어갔다. 맛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뭐라도 먹고 싶었고 식당이니 되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혼자니까 편하게 아무 식당이나 가도 돼서 좋다. 함께 여행하는 누군가가 그 식당에 가는 걸 꺼려했다면 못 느꼈을 기분이겠지. 자유롭다는 의미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주차장에 차가 한 대 있었는데 식당 주인분의 차인가 보다. 저녁 6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인데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다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앉아 본다. 식당사장님에게 핸드폰 충전을 해도 되는지 묻고는 바로 메뉴를 골랐다. '해물뚝배기 정식' (꺄. 드디어 밥이다)




60대로 보이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주인아저씨는 차를 끌고 혼자 온 내가 혼밥 하는 게 외로워 보였는지 말을 걸으셨다. 혼자 왔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 갔다 오는 길인지. 밥 먹고는 어디 여행할 건지 등등.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손님이 한 명도 없어 들어가도 되나 싶었는데 오히려 혼자이니 더욱 편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해물뚝배기 안에 있는 전복과 홍합 껍데기를 손으로 잡아 빼먹고 꽃게도 야무지게 잡고 쪽쪽 먹는다. 해물 알차게 많이 주셨네 좋아하면서. 같이 주신 쌈과 제육을 싸 먹기도 하고 반찬도 골고루 먹으면서 당연히 남김없이 싹싹 먹었다.


혼자 여행을 하기 전 혼밥의 경험치를 많이 쌓아두는 건 중요한 거 같다. 그래야 더 자유롭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 혼밥을 못했던 나인데 간호학원 강사를 하며 먹은 혼밥도 3년 차다. 해물뚝배기정식쯤이야 가뿐하다. 그렇게 먹고 손을 닦고 가려는데 아저씨가 식당 앞에 있는 로즈마리를 손으로 만지고 가란다. 해물 냄새 벤 손은 냄새가 잘 안 빠지는데 그럴 때 로즈마리 만지면 좋다고. 밖으로 나가 통통하고 커다란 로즈마리를 만져보는데 기분이 좋다. 만질 때 느낌도 부들부들해서 좋은데 향긋해서 계속 손 냄새를 맡게 된다. 로즈마리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그렇게 식당 아저씨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다음 행선지는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해가 지려고 하니까 사람들이 노을질 때 추천 했던 장소. '신창풍차 해안도로'를 가야지라고. 풍차가 키워드는 아니었지만 제주로 가는 비행기 창문에서 본 풍차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서 본 적은 없는 거 같아서 한번 보고 싶었는데 거기가 노을 맛집이라니 딱이라고 생각했다. 즉흥적으로 풍차 보러 가기.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거 저거 따지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온전히 내 의식의 흐름 대로 따라가는 자유. 나 자신과의 의논만 끝나면 된다는 것. 이것이 혼자 여행의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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