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여행이라 편한 이유
혼자 여행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내 마음만 생각하면 된다는 거다. 제주에서 2박 3일 동안 뭘 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걱정이 되진 않았다. 꼼꼼하진 않지만 즉흥적인 계획을 잘 세우는 편이기 때문이다.
제주에 가는 첫날. 비행기를 늦게 예약했다. 일요일 낮 1시 35분 비행기였다. 아침에 아이들 밥을 챙겨주고 전날 대충 싼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워크숍 다녀올게.
워크숍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냥 뭔가 엄마가 일이 있나 보다 했을 테지. 사실 아이들에게 뭐라고 얘기할지 살짝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한 적절한 단어였다.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면 자기들은 왜 안 데리고 가느냐고 배신이라며 난리가 났겠지.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해두자 싶었다. '워크숍'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특히 연극 분야에서는 연출, 연기 따위의 연극과 관련된 학습 지식을 실체로 체험하게 하는 교육과정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나도 내 취향을 탐구하고 실제로 체험하려는 의미가 있으니까. 한편으로 워크숍이 맞다라며 완전 거짓은 아니다라고 위안.
그렇게 떠나게 된 워크숍 1일 차. 늦은 비행으로 오후 3시가 다 되어 제주에 도착했다. 제주에 도착한 시간부터의 1분 1초는 매우 소중하다. 다시 안 올 것만 같은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제주 공항도 혼자 오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눈에 띄는 곳들을 마음껏 볼 수 있다. 시선이 닿는 대로 편하게 즐겨 본다. 나이 40이 되어서도 곰돌이는 왜 그렇게 좋은지. 감귤나무와 제주라고 쓰여있는 옷을 입고 있는 곰돌이를 사진 찍고서야 발길을 돌린다. 다행히 사지는 않았다. 충동구매를 할 수는 없지. 마음을 다잡고 가려는데 또 눈이 돌아가는 곳이 있다.
제주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바로 공항에 있는 디자인 스킨이다. 여행 오기 하루 전 액정 화면보호 필름이 깨졌다. 하필 카메라가 있는 부분이라 계속 신경 쓰였다.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건 카메라니까. 눈으로도 보지만 두고두고 보려면 사진은 필수니까. 당장 살 수도 없어 대충 붙여보려고 집에 있던 아들 키즈폰 액정화면을 가져왔는데 잘못 보관해서 깨져버렸다. 보호 필름 없이 다니기엔 위험부담이 있으니 살짝 걱정되던 찰나였다. 그런데 마침 디자인 스킨을 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당장 액정화면과 카메라 부분 필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맥세이프 곰돌이 카드 케이스와 리본고양이 마리 이어폰 케이스를 샀다. 평소라면 쿠팡에서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안 사거나 저렴한 걸로 골라 샀을 거다. 그런데 혼자만의 여행으로 업되어 있으니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살 수 있지 뭐.' 하며 또 FLEX 한다. (내가 필요한 거였다고 위안하며. 충동구매지만 사고 싶던 거니까. 잘 산 걸까? 요동치는 마음을 다독인다)
때로는 나를 위한 소비가 궁색해질 때가 많았다. 특히 비싼 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저렴이 사이트 테무에서 여러 가지 싼 걸 샀었는데 싼 게 비지떡이었다. 그때 산 핸드폰 케이스와 이어폰 케이스가 너무 별로여서 결국 조금 쓰다 못썼다. 제대로 된 곳에서 사자 싶어 지름신이 강림했다. 그렇게 나를 위한 선물을 주고 렌터카 빌리는 곳으로 갔다.
혼자 여행을 하면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데 제일 좋은 건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는 거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호, 내 의지, 내 마음 등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게 제일 좋은 장점인 거 같다. 평소에 그럴 일이 잘 없으니까. 남편과 아이들 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의견과 생각, 감정 등을 고려하며 살다 보니 더욱 그렇다.
렌터카 회사에서 기름을 60% 채워주었다. 앞으로 나는 2박 3일간 얼마나 돌아다니게 될까? 부지런히 많이 돌아다녀 여행해야지 생각한다. 예약한 렌터카 미니쿠퍼를 빌리고 나니 오후 4시가 다 되어 간다. 어영부영 제주에서 1일 차를 숙소에서 보낼 수는 없지. 내가 생각한 키워드 중 하나 '수국'을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길로 '카멜리아 힐'로 향한다.
제주에서 수국은 장마가 시작하기 전 6월에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간 건 5월 중순이므로 수국을 보기 힘든 시기다. 그래서 최근에 다녀온 사람 블로그를 보고 지금 수국을 볼 수 있는 명소인 카멜리아힐로 정했다. 다른 명소들은 아직 수국이 활짝 피기 전이었다. 카멜리아힐 입장마감이 5시 반이어서 서둘렀다. 공항에서 50분 정도 되는 거리라 조금만 늦어도 갈 수가 없다. 원래 공항에 내리면 공항 근처 맛집에서 해물뚝배기를 먹을 생각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다. 배고프지만 참고 일단 카멜리아힐로 향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가는데 마지막에 길을 잘못 들어선다. 제주에서 드라이브할 때 듣는 음악을 들으며 기분을 내다가 내비 소리를 못 들은 거다. 골목길로 들어서 차를 돌리는데 아주 한적하다.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카멜리아힐 까지는 3분 정도 남았다. 오픈 카지만 오픈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남은 3분은 열어서 달려보고 싶다. 그렇게 오픈해서 한적한 도로를 3분 동안 달려본다. 햇빛도 없고 구름이 낀 날씨라 달리는데 시원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다.
남편에게 자랑했더니 한소리 한다. 제주에 중국 사람 많으니까 사지 동서남북 주시하라고;; 혼자 나불거리며 돌아다니다 괜히 안 좋은 일 당할까 봐 걱정돼서 하는 소린 줄 알면서도 기분이 상한다.
남편 말대로 사지 주시하면서 카멜리아힐에 들어갔다. 잔뜩 피어있는 수국을 보니 마음이 화사해진다. 제주에서 수국이 잔뜩 피었을 때 꼭 한번 오고 싶었는데 소원성취하는 날이다. 꿈만 꿀 때는 평생 꿈으로만 남았겠지.
제주에서 꼭 해보고 싶은 키워드 '수국'을 보았다.
이제 무얼 할까?
(제주 혼자 여행기는 계속됩니다. 아직 1일 차도 다 못 풀었는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