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기안장’에서 나오는 오징어 물회를 보며 내 기호를 더 찾고 싶다고 생각했다. 40살이 되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취향을 잘 모르겠다. 결혼하고 살면서 남편 취향 따라가고 아이들 취향에 맞춰 살다 보니. 그래서 나를 위한 여행을 가야겠다고 느꼈다.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남편이 먼저 혼자 여행도, 지인들과 함께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기에 나도 자유부인 마일리지가 많이 쌓였다. 그렇게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제주에 있는 지인 집에서 2박 3일 지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인분이 사정이 생겨 숙소 제공이 힘들다고 했다. 이대로 여행을 취소해야 할까? 날짜를 바꿔야 할까? 고민이 시작되었다. 결론은 GO 하기로 한다. 결국 숙소만 잡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급하게 적당한 숙소를 잡고 그때부터 여행계획을 하나하나 세워본다.
우선 김포공항에 주차 대행을 예약하고 제주에서 쓸 차를 렌트하기로 한다. 주차 대행이야 시간만 정하면 되는 거니까 빠르게 예약했다. 이제 제주에서 쓸 차 렌트. 어떤 차를 빌릴까? 주로 차를 빌린다면 적당한 차나 소형차를 빌렸다. 그런데 나만을 위한 여행이니 욕심부려 보고 싶어진다. 이왕 빌리는 거 타보고 싶던 차를 타보자고 마음먹는다. 바로 ‘미니쿠퍼’
내 평생 이 차를 사기는 힘들 테니 한번 끌어보자는 마음이었다. 미니쿠퍼도 몇 년 식이냐에 따라 가격이 조금씩 달랐다. 이왕 빌릴 거 깨끗하면 좋으니 2025년식을 고른다. 마침 렌터카 회사에서 이 차를 행사하고 있어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저렴하다. 그래도 내 기준에는 FLEX. 게다가 오픈카다. 제주에 오기 쉽지도 않고 혼자 제대로 여행하는 건 처음이니 FLEX 해본다. 이번 여행의 취지는 내 ‘취향’을 찾는 거니까.
그렇게 여행을 계획하고부터 내 취향 찾기가 시작되었다. 숙소를 애월 쪽에 잡고 나니 서쪽 여행지에 가보고 싶은 곳을 찾아본다. 원래 MBTI에서 P 무계획형이라 계획 같은 거 세우는 타입이 아니지만 제주까지 갔는데 숙소에만 있을 수 없으니까. 돌아다니려고 차도 빌렸는데. 계획을 세워줄 친구도 없고. 가보고 싶은 곳을 일단 네이버 지도에 저장한다. 동선도 일정도 생각 안 하고 일단 저장 저장. 가고 싶은 장소와 괜찮아 보이는 식당, 카페를 모두 저장해 본다. 찾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이 동서남북에 다 있다. 2박 3일 동안 다 갈 수 없을 만큼 많이 저장해 놨다. 이곳저곳 찾아 놓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어디든 끌리는 곳으로 가면 되니까. 혼자 여행의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세세한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거. 내 마음대로 하면 된다는 거. 그 점이 여행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게 한다.
저장한 62개의 장소를 모두 갈 수 없으니 2박 3일 동안 꼭 해보고 싶은 걸 정해 본다. 키워드가 정해진다.
‘숲’, ‘수국’, ‘해안도로’, ‘미디어아트’, ‘독립서점’, ‘맛집’, ‘뷰카페’.
2박 3일 동안 뭘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 키워드는 꼭 해야지 마음먹는다.
혼자 여행은 처음이다. 제주에 혼자 내려온 적이 한번 있지만 그땐 제주에 사는 지인분과 함께였다. 그분이 자기 집에 방도 내주고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내주었다. 혼자 즐기는 건 아주 잠깐이었다. 이번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혼자 자고 할 생각 하니 살짝 걱정되었다. 어릴 적부터 독립적인 편도 아니다. 혼밥이나 혼영을 즐기지도 않았고 혼자 자취를 해본 적도 없다. 항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며 지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전 고민이 많아졌다. 이렇게 여행을 GO 하는 게 맞는지.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혹시 몰라 몇 년 전 제주에 같이 여행 갔던 친구에게 급하게 물어보았다. 너무 급하게 물어보는 거라 그런지 친구는 역시 안된단다. 그렇게 혼자 여행하기로 한다.
내 생애 첫 혼자 여행. 인터넷에 ‘제주 혼자 여행’을 치니까 추천 장소와 코스 등이 다양하게 올려져 있다. 이렇게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데 내 나이 40. 마흔 살에 처음 도전해 보는 거네 싶다. 지금이라도 시도해 봐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렇게 설렘, 기쁨, 즐거움, 걱정, 불안, 두려움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을 안고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있는 ‘오설록’에 갔다. 좋아하는 녹차 롤케이크와 녹차라떼를 시킨다. 제주에 갈 거니까 먹는 거도 온통 제주에 관련된 거만 먹고 싶은 이 마음. 먹으면서 다이어리에 다짐을 써본다. 이번 여행동안 아프지 않고 안전하게 힐링하고 오자고.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여행계획을 잘 세우는 것도 어렵고 여행지에 혼자 가고 싶을 만큼 용기도 없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되니 할 수 있는 거, 해야 하는 거도 늘어나고. 또 찜질방 박반장 역할을 하며 안 해봤던 다양한 일들도 해보고. 간호학원 강사가 되어 혼밥도 해보다 보니 혼밥을 즐기게 되었고. 다양한 지역에 군부대 강의를 하며 모르는 지역 장시간 운전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지난번 지인 집에 여행하며 혼자 비행기도 타보고 제주에서 운전도 해보며 점점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늘렸다.
어쩌면 그런 과정들이 혼자 여행을 위한 빌드업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에 2박 3일을 잘 보내고 나면 내가 할 수 있는 범위가 더 확장되겠지?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2박 3일 제주로 혼자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