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4'를 보고
요즘 세계 여행을 하는 채널이 가득하다. 방구석에 누워서도 다양한 세계를 구경할 수 있어서 어릴 적부터 이런 프로를 좋아했다. 여러 여행 프로그램 중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이하 태세계)’를 즐겨 본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는 기안 84, 이시언, 빠니보틀, 덱스가 세계 여행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태세계는 여느 여행 프로그램과 다르다. 특별하다랄까? 우리가 흔히 해외여행을 가는 이유가 견문을 넓히고 힐링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태세계’는 여행보다 극기 훈련 같다. 여행지도 사람들이 가지 않았던 생소한 곳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척박한 지역으로 간다. 페루, 볼리비아, 인도, 마다가스카르 등등. 여행하는 동안 호캉스와 여행 스폿을 즐기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生고생을 한다.
매 시즌마다 ‘세계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 ‘이렇게 사는 분들도 있네.’ 하며 정말 말 그대로 ‘세상이 참 넓구나.’ 고 생각했다. 다양한 삶 속에서 다채롭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시즌 3까지 보며 시즌 4에 더 놀라울 게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시즌 3까지 재밌게 봤다. 그런데 이번 시즌 4는 1회부터 놀라움과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산길 네팔의 ‘차마고도’로 떠났다. 차마고도는 말 그대로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하기 위해 개통된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주요 교역로다. 네팔과 티베트를 잇는 차마고도는 문명이 닿지 않는 고대 무역로로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천상의 땅이다. 해발고도 4,000m가 넘는 험난한 히말라야산맥을 배경으로 네팔의 소수민족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셰르파’는 네팔의 산악지대에 거주하는 민족이다. 태어날 때부터 고산지대에 태어나 고산병과 고지대에 적응하며 히말라야의 고봉을 오르는 산악인을 안내하거나 짐꾼으로 활약하고 있다.
차마고도 셰르파의 삶에 대한 다큐를 인상적으로 보고 셰르파 체험을 해보고 싶어 한 기안 84. 그렇게 차마고도로 떠났고 히말라야의 여행자들 관문인 루클라 마을에 도착한다. 태세계는 짜인 각본이 아닌 즉흥적인 기안 84의 행보가 돋보인다. 그런 행보는 로컬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해보려는 것에서부터 알 수 있다. 우리는 항상 편하고 쾌적한 곳을 찾아 헤매는데 기안 84는 일부러 더 현지인들이 가는 구석지고 오래되고 낡은 식당을 찾아 헤맨다. 처음엔 그게 방송을 위해라고 생각했다. 저런 방송을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라고. 그런데 점점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고도를 여행지로 삼은 목적에 맞게 진정으로 셰르파의 삶에 들어가 보고 싶어 한다.
기안 84는 현지 음식인 ‘디도’를 맨손으로 먹고 식당에서 만난 어린 소년들과 대화를 나눈다. 식당에서 처음 만난 소년들과 눈을 마주치며 ‘디도’ 먹는 법을 배우고 그대로 음식을 조물딱 하며 손으로 먹는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기괴해 보였다. 그래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셰르파의 삶을 진정으로 체험해 보고 싶어 하는 기안 84의 진심이 느껴졌다. 영어도 잘하지 못하고 언어적인 한계가 있지만 10대 소년들과 대화하며 그 소년들이 ‘셰르파’라는 걸 알게 된다. 셰르파 소년들에게 일일 셰르파를 해보고 싶다고 얘기하며 그래도 되는지 허락을 구한다.
소년들이 단숨에 허락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인데 도와주고 싶어 하면 당연히 좋은 거 아닌가?라고. 그런데 아니었다.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쉽지 않을 거라며 걱정하며 주저했다. 코리안 아미 출신이라며 “I’m OK.”라고 말하는 기안 84 특유의 건치 미소를 보며 결국 허락했다. 그렇게 기안 84는 셰르파를 경험하게 된다.
고산지대는 아무 짐도 들지 않고 그냥 산에 오르는 것도 숨이 찬다. 그런데 머리에 이는 짐이 30kg 이상이라니. 잠깐 들기도 어려운 짐을 들고 그것도 산을 오르며 배달해야 한다는 게 무척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배달하는 거리가 짧은 게 30분. 그것도 하루에 3~4번을 한단다. 30분 배달하는 것도 힘든데 배달 1번에 15,000원의 돈을 받는다고 한다. 한 끼 식사가 5,000원이라 그럼 많이 남지 않는 거 아니냐는 말에 하는 말.
셰르파 소년 : “그래도 배는 부르잖아요.”
이고 가는 짐이 너무 높고 무거워서 중심 잡기도 힘든데 18, 20살인 청년들은 12살에 시작했다고 한다. 딱 우리 첫째 나이 때부터. 어려서부터 고생하며 고된 삶의 현장에 뛰어 들어서 그런지 철이 빨리 들었다. 돈 많이 벌면 뭐 하고 싶냐는 질문에 하는 말.
셰르파 소년 : “부모님 즐겁고 행복하게 해 드리기가 목표예요. ”
아빠가 아프셔서 생계를 위해 가장이 되었다는 소년의 그 말에 마음이 울컥했다. 심지어 그 소년은 30분 정도의 거리가 아닌 5-6시간 정도의 장거리를 운반해야 했다. 무거운 거 들고 장시간 산행을 해야 하는데 신발은 슬리퍼. 걷기 할 때 러닝화나 운동화를 고르며 발이 최대한 편한 신발을 신으려고 했는데 장비 탓하면 안 되겠다.
화면으로 보기만 하는데 실제는 얼마나 힘이 들까? 보는 내내 나도 자동으로 거북목이 된 듯 뒷목이 뻐근했다. 잠깐 체험해 보는 것도 무지 힘든데 힘들어도 계속하겠다며 참고 견디는 기안 84. 끝까지 셰르파 소년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말이 참말로 감동적이었다.
기안 84 :
기안 84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한계 고비를 계속 뛰어넘는 말과 행동에 마음이 계속 일렁였다.
상상력이 풍부해 헬기에서 떨어질까 봐 헬기 탈 때도 옆에 사람 꼭 붙잡고 갔고. 산과 산을 잇는 출렁다리도 눈 질끈 감으며 꾸역꾸역 갔던 기안 84. 그런데 셰르파 소년을 도울 때는 출렁다리의 공포보다 짐이 무거워 힘듦이 더 커서 그런지 출렁다리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극한으로 힘이 들 때 우리는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1화만 봤는데도 여운이 크다. 내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게 매일 30kg을 들고 배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정말 감사한 하루다. 앞으로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생각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