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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행에 카약 도전기

by 다몽 박작까



제주 혼자여행 2박 3일 동안 해보고 싶은 키워드 중 넣을까 말까 고민한 게 있다. 바로 '카약'이다. 사실 카약 타기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종종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같이 여행하는 친구나 가족이 타기 싫어해 경험할 수 없었다. 문득 생각했다. 그럼 혼자 여행일 때가 딱인가? 그렇게 전날 밤 급 계획을 짰다. 아침 일찍부터 카약을 타러 가기로.


혼자 여행의 장점은 나 혼자 의논이 끝나면 바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신속하고 자유롭다. 문제는 그게 때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거. 난이도 上인 계획이었다. 40대 여성이 혼자 카약 타기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남편도 내 계획을 듣고는 대단하다고 했다. 진작에 알았다. 이때 대단함은 멋지다는 게 아니라 못 말린다의 의미인 줄. 그렇지만 한 때 액티비티함을 즐기던 나라고 생각했기에 내 '취향'을 존중해 주고 싶었다.








곽지해수욕장에서 계속 여유를 부리다간 카약은 못 타겠지. 부랴부랴 비체올린으로 출발한다. 비체올린은 휴가철이 아니라 그런지 아침 일찍 나서서 그런지 한적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카약체험을 끊는다. 이곳은 카약체험과 트라익 이라고 해서 드리프트 카트 체험도 있다. 카트는 놀이동산이나 루지 같은 걸 타보기도 했으니 패스하기로 한다.


카약을 타기 위해선 교육이 필요하다. 10분 정도 하는 교육 영상을 시청했다. 시청하는데 불길한 기운이 든다. 생각보다 힘들다는 문구가 보인다. 방향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양쪽 벽에 부딪힐 수 있고 그럴 경우 배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생각보다 쉽지 않겠는데? '



영상을 다 보고 승선장으로 향했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나를 포함 5명이었다. 다들 둘둘이 타러 왔다. 사진도 마음껏 찍고 천천히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제일 마지막에 타기로 한다. 승선장에 계신 사장님이 한 말씀하신다. "이거 생각보다 힘들어요. 열심히 타봐요. "


아줌마의 팔뚝 힘을 보여주자는 마음으로 팔을 걷어붇혔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노를 저어 본다. 영상에서 처럼 노를 왼쪽 오른쪽 하나 둘하나 둘. 열심히 저어보는데 이상하다. 카약이 일자로 가지 않는다. 계속 한쪽으로 쏠린다. 벽에 부딪히면 안 되니까 부딪히기 전에 속도를 멈추고. 벽을 손으로 밀어서 다시 노를 젓고. 노를 저을 때마다 물이 노를 따라 쪼르륵 들어와 바지가 금세 흥건해진다. 이거 2명이 노 젓는 기준 30분 정도 소요되는 코스라고 했는데. 큰일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카약 타기. 일단 더 지치기 전에 사진이라도 찍자며 노를 내려놓고 사진부터 찍어본다. 몇 장 찍어 인증사진을 남기고는 다시 노젓기 시작. 카약 타는 사람들 보면 절도 있게 팔을 휘저어 가며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던데. 상상 속에 카약 잘 타는 사람을 생각하며 하나-둘 하나-둘 마음속으로 구령을 넣어서 해 본다. 역시 구령을 넣으니 조금 더 잘 되는 거 같다. 그런데 열심히 할수록 축축해지는 내 바지. 연한 청바지라 색깔이 선명해진다. 위치도 하필 허벅지 안쪽이다. 꼭 뭐 싼 거처럼.


그래서 결심한다. 물이 튈 정도로 열심히 하지 말고 스물스물 하게 하자고. 물 튀는 거도 문제지만 열심히 하니 어깨와 팔이 아팠다. 안 쓰던 근육들이 다 놀래고 있는 거겠지. 그래서 요령을 피워본다. 노는 카약 안에 내려놓고 한쪽 벽면에 붙어 손으로 밀어 보기. 오히려 이게 훨씬 덜 힘들다. 물도 안 튀고 배도 벽면과 적당히 거리를 둘 수 있고. 그렇게 계속 가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코스가 일자이면 가능할 텐데 커브가 계속 나온다.


뜨거운 태양 아래 햇빛을 받으며 커브를 돌기 위해 옷이 젖도록 씩씩하게 노를 저어 본다. 두 명 이서도 힘든 카약을 혼자 하려니 낑낑대면서. 근육이 1도 없어 달랑달랑 흔들리는 내 팔살과 함께 힘차게. 열심히 하다 보면 별 생각이 다 나는 법.


'카약 타기, 이제 좀 몸에 익고 있는데? 뭐랄까. 물 위의 애매한 평온? 좋아, 나쁘지 않아.'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지? 세상 모든 후회가 밀려드는 기분이다.'

'이제야 알겠네. 왜 친구와 남편이 고개를 저었는지. 그들이 현자였고 나는 바보였네.'

'그래도 해보길 잘했다. 안 해봤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 대신 해봤더니 죽을 뻔했지 라는 회상이 들겠지. 인간은 경험으로 성장하니까, 뭐.'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





카약 타고 있는 물은 평온한데 내 정신은 태풍주의보다. 생각보다도 훨씬. 그러니까 10배쯤 더 힘들다. 처음엔 힘들어 별생각 다 들다가 힘드니까 아무 생각 없어진다.


갑자기 어디선가 맑고 청아한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 멈칫. '아. 드디어 환청이 시작됐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짹짹짹. 참새였다. 생각보다 평범한 현실이다. 그 짹짹거림이 묘하게 내 마음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이 트램펄린 위에서 세 바퀴 돌며 뒤집히는 중이었는데 이젠 그냥 누워만 있는 정도다. 요동치던 감정이 새소리에 슬그머니 앉더니 결국엔 얌전히 다리 꼬고 앉아 명상 모드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때 문득 든 생각.


‘그래도 다행이다. 이 물에 악어는 없잖아.’


카약 위에서 해탈의 경지를 겪는다. 땀이 줄줄 나고. 팔은 남의 팔 같고. 물살은 괜히 나만 미워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악어는 없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삶에 감사할 수 있다니, 사람은 역시 살아봐야 안다.



‘우리 인생도 이거랑 비슷한 거 아니야?’


카약은 직선으로 쭉쭉 나갈 때도 있지만 괜히 이유 없이 휘청이며 구불구불 돌기도 한다. 꼭 인생 같다. 계획대로 안 되는 게 디폴트인지도. 한참 내리쬐는 태양 아래선 이게 진짜 미친 짓이었단 생각만 드는데 또 어느 순간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쓱 지나간다. 어이없게도 그 한 줄기 바람에 다시 노를 젓게 된다. 그러니까 결국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 숨 막히다가도 갑자기 바람 한 줄기에 기운 차리고 또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지금 이 카약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일단 간다. 팔이 아프다 못해 어깨 위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 쉬어가면서 일단 간다. 그러다 보면 결국 원하는 도착지점이 있기 마련.




카약 코스의 마지막은 그늘이다. 머리 위로 덩굴 식물들이 아치형으로 얽혀 있어 마치 초록빛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 틈새로 비집고 들어와 잔잔한 물결에 비친다. 분명 코스 내내 이런 그늘은 없었는데. 마침내 고지가 다 왔다고 수고했다는 토닥임인가? 정원을 관리하는 임부 아저씨가 엄지를 치켜 올.

리며 씨ㅡ익 미소를 지어주신다.



이 초록빛 터널을 지나며 깨달음도 얻는다. 인생도 이렇게 그늘이 있어야 숨통이 트인다고. 쨍쨍한 날만 계속되면 결국 지치니까. 햇빛도 쉬어가고 나도 쉬어가는 이 길이 꽤 마음에 든다. 역시, 혼자 여행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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