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거울을 오랫동안 보며 한가롭게 화장하는데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바로 내 눈썹. 관리가 안 되어 덥수룩하다. 깎았다 자라난 부분이 분명하게 보여 더 지저분하게 느껴진다. 평소에도 이렇게 며칠 지냈을 텐데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내 눈썹을 이렇게 자세히 본 게 처음인 거처럼.
혼자 여행의 장점은 나에게 집중하는 거다. 나에게 집중한다는 의미는 여러 가지다. 내 생각과 기호에 초점을 맞추는 거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내 외모에 집중하게 된다는 거다. 숙소에 혼자 있으니 세상 여유롭다. 그래서 자연히 행동이 느릿느릿하게 되고 모든 꼼꼼하게 된다. 샤워할 때도 평소보다 구석구석 정성껏 하는 느긋함. 머리를 감을 때도 대충이 아니라 거품을 더욱 풍성하게 내는 섬세함. 샴푸만 하지 않고 린스도 하는데 대충 묻히는 게 아니라 10분 정도 뜸을 들이다 정성스레 헹굴 수 있는 여유로움. 애들이나 누군가 같이 여행 왔다면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혼자 여행의 매력이다. 자연히 내 외모에 집중할 수밖에.
멋 부리려고 가져간 다이슨도 천천히 너그러운 마음으로 머리카락을 얇게 잡아 돌릴 수 있다. 애들이랑 함께 여행했다면 다이슨은 챙기지도 않았겠지. 하더라도 정신없게 머리 왕창 잡고 대충 말았겠지. 화장도 기초부터 차근차근 바른다. 흡수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당연하고 정성껏 얼굴을 매만져 본다. 대충 바르고 들뜨는 화장이 아니라 촘촘히 얇게 펴 바르니 얼굴에 화장이 잘 먹는다. 화장이 잘 되어갈수록 삐죽삐죽 듬성듬성 지저분한 눈썹이 더욱 신경 쓰인다.
하필 눈썹 칼도 가져오지 않았다. 깎을 수도 없는데 마음에 안 드는 눈썹을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거울을 대충 보며 살았구나. 외모 관리도 대충 했구나. 곧 이런 생각은 이렇게 결론지어진다.
나를 아껴주지 않았구나.
결혼하고 한 가정의 아내와 아이들 엄마로 살며 나는 뒷전이었구나. 어쩌면 나를 먼저 돌보지 않고 그들을 돌보니 더 힘들게 느껴진 게 아닐까? 스스로를 잘 돌보는 사람이 타인도 잘 돌볼 수 있다.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나. 나의 삶에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쉽다. 눈썹칼이 있었다면 여유롭고 정성스럽게 내 눈썹을 조각했을 텐데. 혼자 있으니 이렇게 나에게 집중하는 점이 좋다. 평소 셀카도 잘 안 찍으면서 여행지에서는 기록에 남기려고 어플 켜서 인위적인 사진 팡팡 남긴다. 셀카도 찍어 본 지 백만 년은 된 거 같은데.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눈썹이지만 꽃단장을 하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2박 3일 여행에서의 피크. 여행 2일 차. 여행 2일 차는 하루 종일 제주에 있는 것이므로 시간활용 잘하고 싶었다. 전날 동선 짤 때 아침 일찍 문 여는 여행지를 골랐다. 그렇게 골라낸 여행지는 제주 서쪽에 있는 카약파크 '비체올린'이다. 오전에는 서쪽에 있다가 서쪽에 사는 글 쓰는 요가수행자 작가님과 점심식사를 악속 했고 오후에는 동쪽에 갈 생각이었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 카약이 이색적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카약을 타본 적 없어 경험해보고 싶다.
내 인생의 모토는 다양한 경험 쌓기다. 한 번도 안 해본 걸 도장 깨기 하듯 해볼 때 그 짜릿함이 좋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못해본 게 너무 많다. 그래서 호기롭게 아침부터 카약을 탈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비를 찍고 운전해서 가는데 표지판에 익숙한 글자가 보인다. 바로 '곽지해수욕장'. 앗 이곳은 내가 '제주혼자여행'의 62개 즐겨찾기 했던 곳 중 하나인데. 어차피 비체올린 카약파크에 시간 예약을 한 것도 아니고 혼자니 누구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자연스레 차를 곽지해수욕장으로 돌렸다.
월요일 아침 9시에 곽지 해수욕장은 사람이 별로 없다. 주차장에서 전세 낸 거처럼 주차를 하고 바다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멀리 풍차도 보인다. 어젯밤 신창풍차해안도로에서 본 풍차가 생각난다. 가까이서 보면 거대한데 멀리서 보니 귀여운 바람개비 같네. 혼자는 왠지 부끄러워 오픈카 오픈을 잘 안 하는데 주차장에 나만 있으니 오픈해 본다. 셀카도 여러 개 찍고. 하늘도 쨍하고 파란 바다도 반짝반짝 윤슬이 비추고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렇게 소소한 게 진정한 행복이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