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신박한 변신을 꿈꾸다가
"염증수치 몇인가요?"
담당 간호사에게 물었다.
"염증수치는 3이에요. (신우신염으로 입원 온) 다른 사람은 (염증수치) 5-6일 때 병원에 오는데 그것보다는 낮은 편이네요. "
토요일 늦은 저녁에 응급실에 와 입원을 했다. 병동에 와서 컨디션은 좋았다. 고열과 오한으로 힘들어 병원에 온 건데 열도 안 나고 오한도 없었다. 주말 내과 당직의사가 보러 왔다. 종합병원은 담당 주치의를 주말에는 만날 수 없다. 주말에는 당직의사가 있어 돌아가며 입원 오는 환자를 본다. 내과 당직 의사는 어떻게 입원온건지, 증상이 어떤지를 묻는 문진(물어보는 검진)을 했다. 그리고 등을 타진(두드리면서 검진) 했다.
글 쓰다 잠깐 전하는 간호 상식
신장은 2개로 양측 등 뒤에 위치하고 있다. 신우신염은 2개의 신장 중 한 군데에 발생한다. 감염된 쪽으로 옆구리 통증이 있다. 특히 등 뒤쪽을 타진했을 때 깜짝 놀랄 정도의 통증이 유발된다. 두드렸을 때 울리는 통증이 발생한다.
병원오기 전 오후부터 아랫배와 등허리에 묵직근한 통증이 있었다. 등을 두드려보지 않아 몰랐다. 내과 당직의 선생님이 오른쪽 등부터 타진을 해봤다. "앗. 윽-악"
신우신염일 때 타진통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이라던데, 정말이었다. (바로 내과의사 선생님한테 쌍욕 날릴 뻔) 왼쪽 등도 타진했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 오른쪽 신장에 염증 왔구나.'
"혹시 월요일에 퇴원해 통원치료 할 수 있을까요? "
내과당직선생님께 물었다.
"네. 염증 수치도 많이 높지 않은 편이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보이시니까, 가능할 것 같아요. 월요일 회진 때 말씀해 보세요."
Yes. 올레를 외쳤다.
일요일에는 보통 검사가 없다. 응급상황 아닌 이상 피검사, 각종 검사 등등 하지 않는다. 토요일 밤늦게 입원 와서 일요일에는 무료하게 하루를 보냈다. 수액 1개 맞으며 하루 한번 항생제 주사가 다였다. 오른쪽 옆구리 통증이 참지 못할 정도로 올라오면 진통제 주사를 맞는 정도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간호사시절 신우신염환자를 간호한 적이 있다. 대부분 응급실에 실려와 병동으로 입원 와서도 고열이 지속되었다. 이때 환자들의 고열은 잡히지 않는 열이었다. 수액을 많이 주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양쪽 옆구리에 얼음주머니를 해드려도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반면 나는 집에서 이후로 병원 와서 열이 난 적이 없다. 당연히 퇴원해서 통원치료받아도 될 것 같았다.
입원치료받지 않고 퇴원을 강력히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어린 두 아들 때문에? 신랑이 혼자 애들을 돌봐야 해서? 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 집에 시부모님이 오실까 봐였다. 시부모님은 퇴직 후 두 분이서 주말농장에 농작물 키우시면서 계신다. 1시간 내외로 걸리는 거리에 살고 계셔서 당장 달려오실 것만 같았다.
물론 나 대신 어린아이들을 돌봐주시러 오신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돼지우리인 우리 집을 보여주기 싫었다. 남들은 아파서 시부모님이 와서 애 봐주시겠다는데 왜 이렇게 극성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치부를 들키듯 집에 와서 부끄러운 민낯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특히 집안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부엌정리며 냉장고며 다용도실이 말 그대로 '개판'인 게 마음에 걸렸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옷도 폐인인데 뉴스 메인에 나오는 기분이랄까? )
사실 방광염 걸리기 전 무리를 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많았다. 우리 집의 획기적인 변화와 신박한 정리를 생각하면서부터였다. 아이들 방 침대옆 가림막 제거와 위치변경(침대 가드를 해체하는 작업부터 위치를 바꾸는 작업까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거실에 새로운 책상 2개를 놓으면서 책장 4개를 놀이방으로 위치변경, 소파 위치 변경, 놀이방에 물건을 잔뜩 비우고 작은 도서관으로 용도 변경, 옷장 안에 잡동사니 폐기, 창고에 잡동사니 폐기, 아이들 옷 작아진 것과 겨울 옷 정리, 나와 신랑옷 안 입는 옷 정리… 등등
이렇게 혼자 수만 가지 생각을 머릿속에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테트리스처럼 이동하고 갖다 붙이고 하며 대변신을 꿈꿨는데, 현실은 혼자 하기 버거운 정도의 일이었다. 남편이 시간 될 때 잠깐씩 도와주는 거로는 택도 없는 일이었다. 남편에게 거실의 대대적인 구조변경에 대해 말을 꺼내보았다. 남편은 도와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건 6개월짜리 계획이야. 하루종일 며칠을 여러사람 도움받아 무리해서 하지 않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라고. "
그렇게 무리된 일이었다. 그래도 난 꾹 참고 남편 없는 날에도 혼자 끙끙대며 일을 했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방광염 걸렸는데) 계속 무리하게 그 계획을 끌고 갔다. 응급실에 온 날도 그놈의 놀이방을 치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