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쉬었다. 한 달 반을 쉬었다. 쉬다 보니 글쓰기에 무감각해졌다. 한창 글쓰기에 푹 빠졌을 때 (그러기에는 너무 쓴 글이 적지만;;) 정말 신나게 썼다. 아이 학원을 기다리며 틈틈이 핸드폰으로 글을 썼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그 순간도 머릿속에 생각나는 감정들을 잊어버리기 싫어 기록했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썼는데, 갑자기 돌연 멈추었다. 처음에는 이번주에 못썼으니 다음 주는 꼭 써야지. 하다가 결국 한 달 반이 흘렀다. 중간중간 '써야 되는데.', '쓸거리는 잔뜩 있는데.' 라며 내 마음을 돌이켜 보려 했다. 쓰기만 하면 되는 건데, 쓸 수가 없었다. 쓸 내용이 차고 넘치는데 못쓰는 아니 '안 쓰는' 내가 답답했다. 여러 주제가 떠올랐는데 한 주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게을러져서 그런가 싶었다. 우선순위에 밀려서 그런가 싶었다. 모두 아니었다. '의식'하기 시작해서였다. 글을 쓰다 보니 브런치가 좋아하는 주제와 흐름이 보였다. 이 주제는 브런치에서 띄워주겠지? 이 주제는 쓰고 싶은데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겠지? 라며 생각했다. 점점 나만의 글쓰기가 아니라 남을 의식하는 글쓰기로 변질되었다.
글쓰기 할 때 공감은 중요하다. 내 감정을 해소하는 용도로 글을 쓰는 것도 좋다. 하지만 누군가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게 얼마나 좋은 건지 '브런치 동기들'을 통해 깨달았다. 브런치 얘들아 1기 동기들 덕분에 글쓰기 하는 것이 신이 났다. 서로 얼굴도 잘 모르지만 댓글을 통해 소통하고 공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신나게 글을 썼다. (브런치얘들아 1기 파이팅)
그런데 갑자기 한 글이 메인에 오래 걸리며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되었다. 조회수가 폭발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진심이 꾹꾹 담긴 따뜻한 댓글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은 글이었다. 동기들을 포함해서 몰랐던 분들이 그 글을 좋아했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내가 쓰고 싶은 글쓰기가 아니라, 남들을 의식한 글쓰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를 찾고 브런치에서 좋아할 만한 소재의 글을 쓰려고 했다. (이것이 그 무서운 연예인병인 건가?) 아무도 관심 없는데, 인기있는 글이 뭐가 중요하다고.
점점 나만의 글쓰기가 아니라, 보여주기식 글쓰기에 사로잡혔다. 메인에 걸리든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다. 좋아요 개수와 조회수, 댓글에 좌지우지되었다. 이런 것들로 '내 글이 성장한건가.' 라고 착각했다. 글쓰기 실력은 그대로면서, 이상한데 초점을 맞추고 글을 쓰려했다. 그래서 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반을 쉬는 동안 자책감에 사로잡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글쓰기를 해봐야겠다는 시도는 멀어졌다. 글쓰기 소재가 생겨도 다음으로 미루다 보니, 그때 그 감정이 떠오르지 않아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으니, 마음은 더욱 괴로웠다. 꾸준히 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고 더욱 괴로운 마음을 조여왔다. 그러면서 글쓰기 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찾아냈다.
바쁜 일들로 글쓰기 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댔다. '골프강습이 밀려서 이것부터 해야 돼. ' '블로그 1일 1 포스팅으로 블로그를 키워야 돼.' '애들 방학했으니, 애들 케어가 우선이지.' ' 우리 집이 이렇게 돼지우리인데, 무슨 글이야.' '글도 건강해야 할 수 있는데, 컨디션이 나빠서 휴식이 필요해.' 라며 온갖 핑계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글을 못쓰고 요동치는 내 마음을 위로했다.
차라리 글쓰기를 1도 몰랐었을 때가 더 글이 잘 써졌던 것 같다.(그러기에는 지금도 모르는 게 천지인데, 브런치에 써본 장문의 글 쓰기 전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모르니,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썼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전체적인 구성흐름이 이상한데, '라고 생각되니 더 안 쓰기 시작했다.
책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문구가 있다.
우리 뇌는 예측 불가하고 모호한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안전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다. 그런데 글쓰기야말로 정체를 알 수 없다. 정답이 없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모호한 대상이다. 여기에다 끝까지 못 쓸까 봐 불안하고, 못 썼다는 소릴 들을까 봐 또 불안하다. 결국 피하고 만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면 뇌가 말한다. '너, 피곤하지 않아? 왜 굳이 오늘 쓰려고 해? 결국 우리의 의지는 꺾인다. '그래, 내일도 있잖아.' 뇌의 유혹에 지고 만다.
이렇게 글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데, 왜 나는 계속 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이은경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거 누가 시켜서 하는 건가요?"
맞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거 아니고 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이다. 하고 싶어서 시작했고 잘 쓰고 싶어서 쓰는 건데 가진 능력에 비해 많은 것을 바라니 글이 더 안 써졌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쓰고 싶은 소재의 글을 아무 생각 없이 원 없이 써봐야겠다.
책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잘 묘사해 준 문구가 있다.
사진과 관련된 개념으로 '푼크툼(punctum)'이라는 단어가 있다. 푼크툼은 '작은 구멍' 혹은 '뾰족한 물체에 찔려 입은 부상'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로,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감정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살같이 날아와 박히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느낌이다. 다름 사람에게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데, 유독 나에게만 필(feel)이 꽂히는 그런 느낌이 푼크툼이다.
똑같은 사건으로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같은 일을 해도 신랑은 아무 생각 없이 문제 해결에만 초점을 맞춘다. 반면 나는 그 일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그걸 오랫동안 기억하고 느낀 감정들을 저장해놓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모든 추억들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없지만, 그때의 그 기쁨과 감동을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다른 사람은 아니어도 나에게만 꽂히는 그런 느낌, 푼크툼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주기적으로 글쓰기를 해야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