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웠다. 오랜만이었다. 밤을 새우는 게. (정확히 말하자면 잠을 자긴 했지만 밤을 새웠다)
전날, 아이들과 장거리 운전을 해서 친정에 다녀왔다. 친정 근처에 있는 나비공원에서 숲체험도 하고 다양한 체험도 했다. 친정 부모님과 이른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7시 반이었다. 그때부터 뻗어서 잤다. 사실 3시부터 졸렸다. 그 전날 피로가 쌓인 건지, 졸음이 몰려왔다. 친정집에서 한숨 자고 갈까 하다 너무 깜깜해질 것 같아 서둘러 집에 왔다. 애들 저녁도 먹였겠다. 집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려 졸음이 쏟아졌다. 그 자리에서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들었다.
원래 같으면 하루종일 놀았으니, 애들 숙제를 시키거나 했을 텐데 자느라 뒷전이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았다. 저녁 7시 반이니 1시간이라도 자고 애들 케어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정신없이 자고 있는데, 눈을 뜬 건 9시 반쯤 남편의 전화다. 집을 비운 남편의 안부전화. 전화까지 하고 나니 일어나야지 했지만 일어 날수 가 없다.
중간중간 아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몸은 천근만근이라 못 일어나고 눈도 못 뜨고 입만 열심히 움직였다. "이제 씻어라. " 씻고 나오니 배고프다는 말에 "우유랑 포스트 챙겨 먹어. " 다 먹었다는 말에 "양치하고 잘 준비해." "누워있으면 엄마가 갈게."라는 말도 했다. 말하면서도 비몽사몽 잠을 깰 수가 없다.
겨우, 정신 차리고 일어나니 밤 11시 반. 아이들은 이미 쌔근쌔근 자고 있다. 흐뭇하게 아이들 자는 모습을 보고는 후다닥 씻었다. 씻고 나니, 할 일들이 생각났다. 아이들 잘 때 하려고 미뤄뒀던 일이었다. 남편이 있다면 이 밤에 뭐 하는 거냐며 빨리 자라고 할 텐데, 방해하는 사람도 없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미라클 모닝을 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하루 일과 시작 전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밤에 일할 때도 있고 남편도 늦게 자는 스타일이니 쉽지가 않았다. (침대 앞에 있는 TV를 새벽 2-3시까지 보는 남편 때문이라고 핑계 대고 싶다)
맨날 새벽 5시부터 자기 시간을 가지려고 알람을 맞춰대도 일어나는 건 7시 50분 정도다. 비몽사몽으로 정신없이 애들을 깨우고 등교시키기 바쁘다. 남편은 맨날 잔소리다. 아침 일찍 알람 맞춰놓고 일어나지도 않고 알람도 안 끈다고.
"언젠가는 일찍 일어나리." 다짐해 보지만 쉽지 않다. 일단 일찍 자야 가능한데, 일찍 잘 환경이 아니다. 남편과 나는 밤늦게 일을 할 일이 종종 있다 보니, 밤에 늦게 자게 된다.
밤 12시.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평소 같으면 남편이 재밌는 TV를 보고 있다. 같이 보자는 말에 망설임 없이 잽싸게 이불속으로 들어가 TV를 본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 없어 TV 보라고 유혹하는 사람도 없다.
잠도 충분히 4시간(중간중간 깨긴 했지만)이나 잤겠다 씻고 나니, 개운했다. 여느 때처럼 TV를 볼 수도 있겠지만 할 일이 있었다. 큼직하게 3가지였다.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지만 이 3가지만 하고 다시 자야지 했다.
3가지 중에 2가지는 어려운 거였다. 하나는 비트코인 관련 사이트 회원가입과 가상화폐지갑 개설이었다. 두 번째는 안전강사 지원서였다. 세 번째는 글쓰기였다.
이 중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바로 '마스크팩 시키기'였다. 요즘 계절이 바뀌어서 그런지 얼굴이 까칠하다. 푸석푸석하고 건조한 내 피부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그래서 예전에 잘 맞았던 마스크팩을 주문한다. 주문하다 여행용 압축 파우치가 대폭 세일을 한다. 여행 갈 때 있으면 좋은 여행용 파우치. 전에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이 참에 구입할까?" 생각한다. 사려고 사이즈를 고민하는데, 큰 사이즈는 생각보다 비싸다. 지금 당장 여행 갈 일도 없는데, 다음으로 미뤄야지 생각한다.
말 그대로 허튼짓 하고 있다. 쇼핑할 때가 아니라고. 마음속에서는 아우성이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우선순위 없이 행동한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시험공부한다고 앉으면 지저분한 책상이 눈에 거슬리고 진짜 공부인 몰입의 시간이 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이 와중에도 미루고 싶은 걸까?
다시 내 할 일로 돌아와서. 미루고 싶지만 해야 할 일을 생각한다. 제일 어려운 것부터 하기로 한다. 그래도 남편이 없으니 온전히 내 할 일에 집중할 수가 있다. 새벽 1시가 훌쩍 넘어가니, 그제야 본격적으로 3가지를 건드려본다.
첫 번째는 비트코인 앱 '업비트'와 '빗썸'에서 회원가입과 kyc 인증, 계좌연동 하기였다. 처음부터 난제였다. 사실 경제 쪽으로 까막눈이다. 블록체인이니, 가상화폐니, 비트코인이니. 말로만 들어봤지 자세히 알지 못하다. 모르는 걸 건드리려니 너무 어려웠다. 그래도 언제까지 모르고 살 수는 없으니 배우고 싶었다. 이런 지식은 자식에게 알려줄 수 있는 거니까, 아니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무작정 가입했다. 거래를 하던 안 하던 그건 나중 일이고 가입이라도 해보자였다.
아시는 분이 비트코인에 대해서 알려주셨다. 회원가입이고 kyc 인증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처음이니 생소했다. 일단 차근차근 해보았다. 하다 막히면 검색해서 찾아봐가며 열심히 했다. 사실 kyc 인증도 뭘 의미하는지 모른 체 했다. 결국 하고 나니, '신분확인'이었구나. 를 깨닫는다. (몰라도 너무 무지한 나 자신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발을 내디뎠으니, 앞으로가 중요하겠지) 그렇게 결국 '업비트'는 가입하고 계좌연동 후 kyc 인증까지 완료했다. 이제는 '빗썸'차례. 빗썸도 비슷하게 가입했다. 계좌를 연동하려는데 농협만 된다고 한다. 농협통장이 없어 계좌연동은 못하고 kyc 인증만 한다. 가입하면서 클레이튼 'klaytn'이라는 개념도 찾아본다.
klaytn : 카카오의 계열사 중 블록체인 관련 회사에서 발행한 블록체인플랫폼이다.
읽어도 머릿속에 잘 남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업비트'와 '빗썸' 앱에서 회원가입과 kyc 인증, 계좌연동을 끝낸다. 하다 보니 생각보다 쉽게 되었다. 결국 그냥 사이트 회원가입일뿐이니 할 수 있는 범위였다. 이래서 모르는 거 평생 배우고 살아야 하나보다. 제일 어렵다고 느꼈던 거를 마치니 새벽 3시를 훌쩍 넘겼다. 아직 2개 더 못했는데. 자야 하는 건가. 이러다 밤 세겠는데? 마음속 갈등이 시작된다. 다음날 일요일이고 낮에 졸리면 자야지 하고 다음일에 집중해 본다.
이제 두 번째로 '안전강사 지원서' 신청이다. 지난번에 '흡연예방강사'에도 지원서를 열심히 써서 냈었는데 경력부족인지, 떨어졌다. 열심히 준비했던 터라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도전했다는 거에 의의를 두고 이 분야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지원서를 써보려고 하는데 뜻밖에 난관에 봉착한다. 한글 파일이 '읽기 전용'이다. 예시로 쓰여있는 부분이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지우고 다시 써보려는데 마우스 드래그가 되지 않는다. '한글 파일 읽기 전용 해제 하는 법' 열심히 검색해 본다.
이럴 때 컴맹인 게 답답하다. 컴퓨터 잘하는 사람은 이런 것쯤은 쉽게 해지할 수 있겠지? 생각한다. 그렇게 해제하는 법을 찾고 읽어보고 따라 하여 결국 해제한다. 이제 신청서를 작성해 본다. 그런데 쉽지가 않다. 지원분야를 3개 선정해서 하는 건데, 안전분야, 안전영역을 찾는 게 뭔지 생각한다. 안전 관련 분야가 6개에 영역이 24개나 되니, 고르기 어렵다. 내 분야 아닌 것에 고르면 바로 떨어트린다니. 신중하게 잘 읽어본다. 미완성되었지만 어느 정도 테두리를 갖춘 지원서를 작성하고 필요한 준비서류가 무엇인지 파악한다. 서류를 어떻게 준비할지 찾아보고 이 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니 마무리한다. 아직 1개. 글쓰기를 못했는데 새벽 4시가 넘었다.
글쓰기를 이렇게 잠이 안 잔 상태에서 쓸 수가 있겠어? 라며 자신과 타협한다. 피로가 조금씩 몰려오기에 자볼까 한다. 피곤하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래서 잠들기 전까지 좋아하는 책을 읽기로 한다. 책 읽으며 좋아하는 문구에 밑줄 포스트 쫙쫙 붙여준다.
새벽 5시 갑자기 문자가 온다. 미라클 모닝을 하던 모임에서 줌수업이 있다고 말이다. 맨날 범접할 수 없는 시간 새벽 5시라 못 들어가던 줌 수업이다. 미라클 모닝 아니고 미라클 나이트지만 깨어있으니 줌 수업에 들어간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짧게 강의를 듣고 책 읽기를 마저 한다.
이제 새벽 6시를 넘기고 있다. 지금이라도 자려다 필 받아서 집안일도 건드려 볼까 한다. 제일 신경 쓰이는 집안일 9가지를 써본다.
소파 위에 빨래 개기, 복도에 빨래 정리 하기, 수영복 빨래 돌리기, 검은 빨래 널기, 하얀 빨래 돌리기.
쓰다보니, 우리 집 빨래가 심각하다. 빨래정리 좀 해야겠다 생각한다. 소파 위에 어질러졌던 빨래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결국 아침 7시가 넘었다.
빨래를 정리하다 말고 갑자기 글감이 떠오른다. 이 글감 잊어버릴까 싶어 자리에 앉아 타자기를 연신 두드린다. 완성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을 열심히 적는데 신이 났다. 의식의 흐름이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거를 다 건드리고 완성해 가는 뿌듯함이 생겼기 때문이다. 누구 하나 방해하는 이 없이, 내 생각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시간을 사용한 느낌이었다.
밤 11시 반부터 아침 8시 반까지 9시간을 허튼짓으로 시작해서 해야 할 일 3가지를 하고 집안일까지 건드리고 나니, 너무 행복했다. 뿌듯함에 피로한 마음도 가시는 것 같았다.
미라클 모닝은 아니고 미라클 나이트(내 맘대로 작명)였다.
갑자기 남편에게 문자가 온다.
남편: 잘 잤어?
나: 자긴 잤는데 밤샜어.
남편: 무슨 일 있어?
나: 아니. 해야 할게 많은데 하다 보니 집중이 잘 되길래.
미라클나이트를 한 이유는?
깜깜한 밤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단지 '내 시간'이 필요했다. 멍때릴 시간과 하고싶은 일을 잔뜩 할 시간.
사진출처: 언플래쉬